내가 초등학교 시절. 광주 사태가 일어났다. 지금은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불리지만 당시엔 다들 그렇게 불렀다. 4학년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다가 입을 꼭 다물고 주먹을 꽉 쥐고 약간 흥분한 상태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기억은 없다. 다만 말미에 "여러분들이 크면 반드시 이 일은 알게 되고 알려져야 합니다." 그랬다. 여러분이 크면... 당시 선생님은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휴학을 하고 시골에 내려가 교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이 적어 그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친구들의 죽음과 아픔을 눈으로 보고 체험했던 선생님은 피바다가 된 광주를 잊으면 안된다고, 세상이 바뀌면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주먹을 꽉 쥐셨다. 그리고 37년 가까이 흘렀다. 세상이 바뀐 것 같았는데 더디게 더디게 흐른다. 


오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마량장으로 갔다. 고양을 살 생각이었다. 그동안 미루고 또 미뤘다. 아니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늘 5.18 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광주를 기억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 났다. 그리고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고양을 사러 장에 가 오천을 주고 고양이 한 마리를 사왔다. 이름을 뭘로 할까? 광주? 빛고을? 고양이 이름으로 안 맞다. 그럼 뭘로 할까? 아직도 고민 중이다. 



작년 여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사실 글은 읽기 쉬운 곡은 아니었다. 하지만 광주항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언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내 주변엔 나보다 7-15살 정도 많은 나이의 형들이 죽은 가족이 적지 않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가슴이 묻고 살 것이다. 그동안 악날한 전두환과 그 후 세대, 한나라 당과 바그네 일당 등은 얼마나 많이 광주가 북한이 개입한 전쟁이라고 조작해 왔던가. 사진에 나온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도 거짓이라며 끝까지 고집했다. 

















광주항쟁을 기록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개정되어 다시 나온다고 한다. 읽고 싶다. 그리고 민중의 아픔을 담은 그의 소설 <장길산>도 읽고 싶다. 우연히 그의 책을 알게 되면서 시대를 담고 해석하고 조망하는 진정한 작가의 정신이 느껴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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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자정이 다 되어 2박 3일의 긴 주말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 골목 입구에 주차하면 가을이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 나온다. 그런데 어제는 뛰어 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겨울 겨울이가 쥐약을 먹고 죽은 적이 있어 이 가을이도 혹시 쥐약을 먹은 것이 아닐까? 쓸쓸한 시골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 없이 무너졌다. 집에 도착하자마도 아이들에게 '가을이 어디간줄 알아?' 하며 가을이 안부부터 물었다.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방금까지 있었다고. 십 여분쯤 지나니 뒷집 개와 함께 나타났다. 흐........ 이 녀석...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었구나. 와줘서 고마웠다. 




몇 달 전에 사 놓고 아직도 읽지 않은 윌리엄 폴 영 장편소설 <갈림길> 읽고 있다. 전에 <오두막>을 읽을 때 느꼈던 감동이 워낙 커서 리뷰나 추천은 보지도 않고 곧바로 사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도 안 읽었으니 마음이 짠하다. 비록 오늘 읽기 위해 펼쳐 들기는 했지만 얼마나 흡입력이 있어서 끝까지 읽게될런지 모를 일이다.


윌리엄 폴 영의 소설은 기독교 풍인데 범신론적 느낌이 강하다. 자연과 하나님이 다르지 않아 보이고, 평화와 사랑을 모든 소설에 끼워 넣었다. 어쩌면 위험하고, 어쩌면 감동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쨌든 난 그의 소설을 좋아 한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업가 앤서니 스펜서, 완벽한 삶을 사는 그에게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그에게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문득 프로스트이 '가보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난다.


가보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아쉽게도 한 사람 나그네 

두 길 갈 수 없어 길 하나 

멀리 덤불로 굽어드는 데까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곤 딴 길을 택했다. 똑같이 곱고 

풀 우거지고 덜 닳아 보여 

그 길이 더 마음을 끌었던 것일까. 

하기야 두 길 다 지나간 이들 많아 

엇비슷하게 닳은 길이었건만. 


그런데 그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발길에 밟히지 않은 낙엽에 묻혀 있어 

아, 나는 첫째 길을 후일로 기약해 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법이라 

되돌아올 수 없음 알고 있었다.  


먼 먼 훗날 어디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렇게 말하려나 

어느 숲에서 두 갈래 길 만나, 나는... 

덜 다닌 길을 갔었노라고 

그래서 내 인생 온통 달라졌노라고.


잘 몰랐는데 <이브>라는 소설도 보인다. 이브는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다. 


사람은 모두 제길을 간다. 그런데 어떤 길은 슬픔의 길이고, 우울한 길이다. 또 어떤 길은 행복의 길이고 기쁨의 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슬픔의 길을 가는 이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우울해 진다. 당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보며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감사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가을이는 행복하게 사는 데 날 행복하게 한다. 그것도 조금 이상하다. 난 누군가를 기쁘게 한 적이 있을까?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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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지난하다. 가뭄에 목말라 허덕이던 지난 주와 다르게 이번주는 연일 비다. 여름을 알리는 비일까? 가끔 삶이 무겁다는 생각보다 밀도가 높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불가피하게 천천히 가야할 때가 온다. 허송세월 보내는 듯하고, 삶이 퇴행하는 것 같지만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보내고 나면 모두 지혜를 주고 소망을 준다. 오늘 점심을 먹기 위해 텃밭에 나가에 상추게 제법 자랐다. 잎다리를 몇깨 뜯어 비빔밥에 넣었다. 매일보면 크지 않아 보이던 상추가 이틀만에 보니 제법 자랐다. 관심이 사랑이라지만, 때론 적당한 무관심도 좋은 것 같다. 



지난 주부터 교리 서적을 주로 읽어보고 있다. 기독교 교리에서 가장 탁월하고 정밀하다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읽고 있다. 로버트 쇼는 섭리에 대해 피조물을 보존하고 통치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섭리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은 만물을 움직이신다. 모호하고 아이러니가 가득해 보이지만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일정한 법칙과 원리가 지배한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 새뮤얼 볼턴의 <크리스천, 자유를 묻다>에서는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성경적으로 탐색한다. 2장에서 새뮤얼 볼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어려움도 극복한다. ... 하나님은 자녀에게 사랑의 영을 주신다. 사랑의 영이 주어진 까닭에, 무거운 짐처럼 여겨졌을 일이 즐겁고 기쁘게 행할 수 있는 일로 바뀐다."(41쪽)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란 진리에대한 종속이며, 사랑하는 것에 천착하는 것이다. 루터가 노예의지론에서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자유는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이며 자발적이다. 그런면에서 의지의 자유는 노예가 아들로서의 자유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성도를 지키시는 교리다. 한 번 택한 사람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엄밀하게 죄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죄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지만, 이웃과 사회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사랑은 이웃 사랑이 있지 않는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자유는 관계적이며, 절대와 상대의 간극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된다. 새물얼 볼턴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율법에 속박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율법에 순종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141쪽)


율법을 행위나 삶으로 읽어보자. 훨씬 쉽게 이해된다. 자유는 삶이 배제되지 않는다. 즉 절대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늘 상대적이다. 다만 존재의 자유는 절대적이며 독립적이다. 존재의 자유는 삶의 자유 속에서 운명지어진다는 점도 잊으면 안된다. 사랑은 늘 타인을 향하는 것이기에. 


여름이 왔다. 아카시아 꽃이 천지다. 오늘도 하나님의 섭리의 시침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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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을 찍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독교인인지라 카톡방에는 연일 홍씨를 뽑아야하는 수천가지 이유를 올리는 빨갱이들의 광란이 끊이지 않았다. 난 그런 빨갱이가 싫다. 그 빨갱이들은 자신이 빨갱이인줄도 모르고 문재인을 빨갱이라며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카톡방이 조용해졌다. 심지어 슬프다 우울하다는 말도 없다. 그냥 잠잠해 졌다. 다 아는 사람들이라 함부로 가타부타 말하지 않지만 올라오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정말 조용해 좋다. 역시 박씨와 함께 한국 보수 기독교도 몰락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까? 이런 말도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지만 진심이다. 제발 한국교회 정신 좀 차려라. 


문재인 당선 소식에 관련 책을 뒤져보았다. 슬프게 문재인 책은 없다.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들이 보인다. 6권 정도인데 나머지는 창고에 있는지 방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읽어야 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도 이번에 참에 구입해 읽어 봐야겠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노무현 자서전이라 이름 붙인 <운명이다> 후반부를 읽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했던 일이 노무현 관련 사람과 기업을 세무조사하고 구속하는 일이었다. 아.....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때의 일들이. 그런데 난 그 때 노무현을 잘 몰랐다.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만약 세월호가 없었다면 난 아직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슬피지만 대한민국을 일깨운 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다. 그래서 더 아프고 부끄럽다. 


287쪽에 '대연정' 이야기도 나온다. 자신이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다는 것도. 하나하나 보인다. 그때 보이지 않던 정치 이야기들이... 뉴스들이...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진실의 피카츄 이름으로된 책이 보인다. 목차를 보니 문재인 비판 글이다. 꼴통 보수가 쓴 엉터리 책이다. 이런 책을 책이라고 내놓은 것이지... 문재인 관련 서적이 의외로 많다. TV연설에서 다들 말을 못한다고 비판했는데 오늘 취임 연설을 들이니 잘한다. 문재인 역시 고수다. 난 그의 대통령 취임을 환영하고 기대한다. 물론 사람이기에 부족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이 남긴 유산을 잘 활용하고 계승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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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그리고 박완서


어제 서점에 들러 오랜만에 나스메 소세키의 책 두 권과 김태환의 <우화의 서사학>을 샀다. 나쓰메 소세키는 현암사 출판사 것을 소설 전집을 틈 날 때마다 한 권 사모으는 중이다. 어제는 <우미인초>와 <긴 봄날의 소품>이다. <긴 봄날의 소품>부터 읽기 시작해 절반 정도부터 읽었다. 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이 책은 전집 외로 분류한 책이다.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일단 일단 읽었다. 책 제목과 같은 '긴 봄날의 소품'을 읽으면서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른한 어느 봄날의 스냅 사진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어떻게보면 따뜻한 일상의 무의미한 이야기다. 가끔 출렁이는 마음의 파동을 느낀 적도 없지만 미미하다. 다른 책도 이럴까? 예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과한 기대를 가진 탓인지 다른 책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우인 미초는 나중에 읽어야 겠다. 


사려고 꼼지락 거렸던 박완서의 애도 이야기 <한 말씀만 하소서>는 놓고 온 것이 후회된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일기 형식을 써내려간 글이다. 아니 일기다. 그녀는 나중에 누군가 읽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자신의 마음의 아픔을 써내려간다고 말한다. 


처음 그녀의 마음은 아프다. 그것을 어찌 타자가 공감할 수 있으랴. 다시 가서 사고 싶다. 









김태환의 <우화의 서사학>은 매우 특별한 책이다. 왜 아직까지 몰랐을까 싶은 아쉬움이 많이 드는 책이다. 부제로 40가지 테마로 읽는 이솝 우화로 달았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릇된 해석을 시도해온 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이솝 우화는 삶의 지혜와 교훈을 오직 그것과 대비되는 인간의 부정적 특성, 즉 어리석음, 무지, 악덕, 태만 등의 과의 관계에서만 표현된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솝우화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보다는 인간이란 존재를 실존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본래의 서사적 긴장을 복원'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인 것이다. 


봄날의 간다. 여름이 온다. 나의 삶도 뜨거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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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5-07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부르면 왠지 시원해지는듯한. ㅎ
저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낭만인생 2017-05-10 23:22   좋아요 1 | URL
ㅎㅎ 이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