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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평점 :
일단 서평 집이라 구입했다. 서민이라는 낯선 존재는 알라딘 메인이라는 소개로 무마되었다. 낯선 이라고 거부하지는 않지만 조심스러운 건 사실 아닌가. 그러나 자칭 저명한 존재라는 작가의 코믹스러움에 같이 웃고 말았다. 하여튼 서민교수는 재미있는 분이다.
표지에 보면 정혜운 피디의 소개문이 있다. "서민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는다. 사기전 표지를 유의하여 보는 특성상 유독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표지 가장 위쪽에 자리한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라는 말. 만약 이 말이 없었다면 이 책을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독서 생존기'라는 말이 심장을 울렁거리게 한다. '독서'와 '생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도 힘든데 이 책은 두 단어를 조합해 한 구문을 만들어 냈다. 잘한 일이지 않는가.
*읽다가 "이 자식 좌파잖아!"라며 부르르 떨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시길.*
부르르 떨기까지? 설마 누가? 하여튼 글에서 이미 즐거움이 묻어난다. 그런데 글로 들어가면 의외의 진지함이 역습한다. 첫 리뷰인 이얼 프레스의 <얌심을 보았다>를 읽으면서 삶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외면하는 상황에서 그뤼닝거라는 경찰, 그는 유태인들의 입국을 스스로 자청한다. 결국 이러한 무모한 희생과 배려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다. 모른 체하면 될 일을 나서서 구한다. 그렇다고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감사하는가? 아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위험을 감수해야할까? 그뤼닝거는 생존의 위기 사항에서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도 ‘그때 했던 것과 똑같이 할 겁니다.’라고 답한다.
진지한 서평에 책을 찾아보니 있었다. 흐름출판에서 2014년에 출간되었다. 사야하나? 다음 장 그 다음 장. 서민은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충동질한다. 고약한 심보다. 사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사라고 은밀히 강요하는 저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읽을 책인 산더미인데 말이다.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를 마무리 하며 이렇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저자가 선택한 책들이 다소 어려워 읽기에 버거울 때가 많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이 책을 ‘장바구니’ 넣기를 주저하지 말자. 워낙 만나기 힘든 스승이니 말이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진지한 유머에 격하게 ‘풋’하고 웃고 말았다. 개그만 정찬우가 서민 교수를 ‘한 수 위’라고 말한 건 분명, 유머에 있어서일 것이다. 블랙유머를 ‘풍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서민 교수의 책은 풍자도 아니다. 진지한데 웃기다. 저자가 기생충 박사라 그런지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평하면서 기생충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이건 서평인지 기생충 강의 시간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저자도 안다. 자신이 주책부리고 있다는 것을. 더 웃긴 건 자신이 주책바가지인 것을 전혀 숨기지 않음으로 독자들의 허를 찌른다 것. 독자는 그냥 웃고 만다. 그건 비웃도 아니고, 헛웃음도 아니다. 주책 떠는 자신을 감추지 않는 서민교수의 당당한 주책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해 장황하게 쓴 건, 이런 식으로라도 지식을 뽐내고픈 치기일 것이다. 나이가 50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니, 철이 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65쪽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호기심에 책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투명인간’이 아닌 것이다. 신발장수 신발만 보인다는 말 것이 아닌 게다. 기생충 박사는 기생충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이니 말이다. 괜히 샀나 싶다. 아직도 읽을 책이 산더미인데 읽기 본능을 충동질하는 이 책을 왜 샀단 말인가. 이미 늦은 후회지만 때는 늦었다.
이러다 집 나가겠다. 전세금 빼고 책 사자.
하기야, 닭들이 내놓은 정책이 뭐 얼마나 대단한겠는가? 33쪽
교실에서 밤을 새우며 책을 베끼는 중학생들이라니, 그들의 문학적 열정에 그저 숙연해진다. 75쪽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해 장황하게 쓴 건, 이런 식으로라도 지식을 뽐내고픈 치기일 것이다. 나이가 50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니, 철이 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65쪽
나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수입이 있다면 죽자고 책만 읽으며 살아도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세상에는 읽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 정말 많지 않은가?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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