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할 대로 부패해 버린 

한국교회, 출구는 없다!


칼빈이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을 넘어 더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신자는 없고, 예수를 믿는 이들을 많지만 따르는 이들이 없다. 근심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생각하기를 넘어 행동할 때가 되었다. 거침 없이, 막힘 없이 정의와 공의를 향하여 손을 들어야 한다. 김근수의 <행동하는 예수>가 출간 되었다. 저자는 2013년에 이미 <슬픈예수>를 통해 진정한 혁명이 무엇인지 말했다. 이제 행동하는 예수를 통해 몸으로 혁명을 몸으로 살아가야함을 설파한다.

















두 권도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신광은의 <천하무적 아르뱅주의>와 부쉬의 <칼바르트>평전이다. 밀양에서 살인자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으니 피해자의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다. 그 뜨거웠던 <밀양>이 <도가니>란 괴물이 되어 돌아왔고, 불사조처럼 조를 먹고 부패와 멸망을 토해내고 있다. 


과연 '천하무적'이다. 누군가 괴물이 된 한국교회의 깔뱅주의를 초토화할 아서왕과 신탁의 기사들이 필요하다. 간통하다 현장에서 들켜 에어컨 붙잡다 떨어져 죽은 한기종 전 대포 모목사는 천국에 갔을까? 한심한 작태다. 삶은 없고 이론만 있다. 몸은 없고 머리가 있는 괴물이 아니던가.







옥성호의 등장은 신선한 바람이었다. 이젠 외로운 혁명자가 되었다. 홀로 거대한 S 교회와 싸운다. 왜? 싸울까? 영혼중심을 벗어나 권력을 탐하고 탐욕스런 아르뱅주의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법이라도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선이되고, 누군가 아파하고 죽는다하여도 교회성장에 좋다면 마셔도 되는 독배를 들고 있다. 이런 어리석은 인간들이 어디있단 말인가. 


오강남 교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모호한 경계선을 가진다. 그러나 이젠 눈여겨 보고 있다. 분명한 선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른 종교가 아닌 개신교를 말한다. 삶이 부재한 현대 한국교회를 조준하였다. 참으로 아이러다. 그토록 존경받은 초대의 한국교회는 다 어디가고 이젠 지탄의 대상이요, 부패의 온상이 되고 말았단 말인가. 



다시 김근주다. 예레미야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 두 권의 책이다. 반드시 읽어야할 책들이다. 예레미야는 유대의 종말을 고한 비탄의 선지자다. 스스로 자승자박하여 유다의 미래를 몸으로 보여 주었다.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나쁘다고 죽이려 들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의 위력을 보였다. 뽑고 다시 심으리라고 했다. 유대가 뽑히듯 한국교회는 뽑힐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전심으로 회개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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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원주 2016-05-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강 예레미야를 성경과 대조하면서 진지하게 읽고 있습니다. 꼭 들어야할 주의 말씀입니다. 책 리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