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한용운 지음 / 창작시대 / 2011년 10월
구판절판


한용운
1879년 9월 29일 출생하여 1944년 6월 29일 운명을 다함

조선말엽에 태어난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살아다가 끝내 빛을 보기 직전에 운명을 다했다. 그의 시는 조국 조선을 그리워하다 끝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법명은 '만행'이기에 만해 한용운으로 부른다.
초월적인 불교적 정신이 아닌 현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딩굴고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나누었다. 처음 붓다는 왕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평민들과 함께 살아가다 다시 그들과 헤어져 득도한 다음 다시 그들 가운데로 들어왔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는 마음에서이다. 아.. 이것조차는 버려야 한다... 3.1운동 당시 33인 민족대표 중 한명이며, 나라의 독립과 평안을 위해 온 삶을 다 바쳤다. 어둡고 탁한 시간을 보내면서 자손들에게까지 이 운명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만해는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좀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거소가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 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이다.
-을축 8월 29일 밤-"

그렇다. 만해의 시집에 나타난 일상들은 이미 마른국화가 되어 별 의미가 없어진 역사적 사건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한세대가 훌쩍 지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만해의 시는 여전히 살아있다. 왜일까? 역사를 바뀌었지만 운명은 바꾸지 않는 탓이리라.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쫓아갑니다. ... 아나, 나의 기리은 누가 내었습니까? ...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 길은 삶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길을 택한 사람도 있고, 님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죽음의 길을 운명으로 알고 가야하는 저자의 한이 깊이 배여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알 수 없어요) 이미 기울어 버린 조국의 운명, 이미 밤이 되어버린 나라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 시키고 싶어서 약하나마 등불이 되고 싶은 저자의 바램이다.
만해의 시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잃어버리고 버림 당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달픈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 "당신이 나를 짓밟는"(나룻배와 행인)다고 할지라도 버린다고 할찌라도 참고 인내하며 자신의 의미를 가져다 주는 나라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오래된 전설처럼 들린다.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현대적 동물들에게 조국과 나라를 생각하는 정신 말이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625에 대하여 설문을 조사했더니 그리스신화와 같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증인들이 생생하고 살아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이 책을 다시 들고 잃어버린 족국을 위해 온 몸을 던졌던 그들의 마음을 읽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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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2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용운선생은 강점기의 역사의 중심 속에 살았던 인물이었죠.
바른 역사를 망각한다는 것은
정말 마음을 무겁게하는 일입니다.
역사가 전설이 되는 그런 일 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낭만인생 2012-01-26 14:29   좋아요 0 | URL
매우 고무적인 분입니다. 시집을 읽어가면서 현대의 이기적 모습과는 다른 진솔함과 열정에 감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