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정서를 벗겨낸 글쓰기로 
. 세상에 대한 시선의 흔적을 기록해 
. 형언할 수 없는 보편성을 포착하려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집.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고 싶다면 지나칠 수 없는 책인 듯~. 

처음 서점에서 아니 에르노의 ⟪ 세월 ⟫을 접했을 때 재미있을 듯 하면서도 몰입되지 않는 이상한 상태때문에 다시 내려놓아야 했는데 이제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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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수많은 비밀들이 있고 글쓰기는 그 주위를 맴돌아요. 우리는 비밀 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절대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죠.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저는 50년을 기다렸어요. 부모님의 이 폭력성, 이 장면이 저에게는 수치였으니까요, 수치요. - P38

비밀은 평온의 형태에요. - P48

"자, 끝났으니 더는 말하지 말자"가 제가 자주 들었던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 되짚어 보고자 하는 마음 없이 그 일들이 지나가 버렸죠. - P48

저는 우리가 읽었던 모든 글, 그리고 봤던 영화, 그림들까지도 예술적 가치와 상관없이 그것을 기억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자신의 역사 속에서 더 멀리 나아갈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요. - P58

아직 형용할 수 없었던 무엇인가에 대해 써야 했죠. 훨씬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사회학자가 저의 상황이 ‘신분계층 전향자‘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려 줬어요. 1960년대 말에는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죠. - P69

저는 에토스와 존재의 방식, 생각하는 방식조차 달랐던 세계를 지나왔죠. 그 충격은 여전히 제 안에 육체적으로도 남아 있어요. 어떤 상황들은... (중략) 마치 저의 진짜 자리가 아닌 것 같이, 진짜 그곳에 있지 않으면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 P71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 확인된 사실의 글쓰기, 가치에 대한 판단을 철저하게 없앤, 현실에 가장 가까운, 정서를 벗겨낸 글쓰기. - P78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에요.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세상에 대한 시선이요. - P85

문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언어, 언어 자원 사이의 협정이에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이야기가 만든 이 목소리를 언어에 주입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죠. - P86

⟪ 세월 ⟫ 은 끊임없는 변화 그리고 세상을 한 가지 관점만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시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죠. - P99

저는 글을 쓰면서 저의 내면을 보는 것 같진 않아요. 기억 속을 들여다보죠. (중략) 이 모든 것들은 저의 외부에 있죠. 저는 카메라일 뿐이에요. 그저 녹화를 하는 거죠. 글쓰기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 기록되었던 것들을 찾으러 가는 데 있어요. - P100

구성이란 세상과 겨루는 일이며, 체험한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을 창조하는 것이에요. - P101

글쓰기란 시간을 창조하는 일이에요. 독자들이 들어가게 될 시간이요. - P101

저는 역사책도 회고록도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과거를 그것이 현실이었을 때처럼 표현하고 싶었고, 다시 말해서 오직 감각만을 그리고 싶었죠. 그러니까 68혁명이 있기 한 달 전, 당연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시절에 우리가 느꼈던 것들이요. 이 아무것도 아님조차도 중요해요. 저는 ⟪ 세월 ⟫을 연속되는 현재의 감각들의 기억으로 썼고, 사실상 이 책은 감각의 기억만으로 만들어졌죠. - P117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해요. 절대로 무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극단적인 단절에 대한 생각은 끝내야 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중략) 저의 경우는, 사실 글쓰기 말고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네요. - P124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만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 P124

움직이게 하는 것, 다르게 보게 만드는 것은 형식이죠. 이전의 형식, 미리 설정된 형식으로는 다르게 볼 수 없어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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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 사는 열네 살 소년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수용소로 끌려다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 1년간의 이야기. 기존의 홀로코스트 이야기와는 달리 주인공이 겪는 수용소에서의 일들을 일상처럼 담담하게 묘사한 아이의 시선이, 어른이 보는 현실과 괴리되어서 읽고 난 후에 더 가슴아파지는 소설이었다. 불행을 얘기하면 살아갈 수 없기에.. 그가 겪은 비참한 현실에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생존본능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내가 아는 한 인생이나 어떤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기대와 규칙과 이성으로는 결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p206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어떤 사건들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명확하지도,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개념이 잡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개별 사건들 역시 정확히 이해되지 않음에도 그 사건들을 정상적인 경로로 분, 시간, 주, 달 단위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모든 사건을 멍한 상태에서 하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시에 이해하려 한다는 점이다. p276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p282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있든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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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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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경험했던 교육현장과 사회분위기를 떠올리며 읽게 된다.
허구와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

과두제 통치의 본질은 부자세습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부과하는 특정 세계관과 생활 방식의 지속성이다. 지배층은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층이다. 당은 혈통을 영속화하는 일이 아니라, 당 자체의 영속화에 관심이 있다. 계급 구조가 항상 변함없이 유지된다면 누가 권력을 쥐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 P278

그들은 지성이 없기에 지적 자유가 허용된다. 반면 당원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주제에서도 당과 아주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용서받지 못한다. - P279

프롤들은 그동안 죽 인간다움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들의 내면은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았다. 윈스턴 자신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다시 배워야 했던 원초적인 감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 P228

전체주의 사회의 주민은 ‘물은 딱딱하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처음엔 틀렸다고 생각하다가 곧이어 당의 말씀이라면 옳은 얘기이고, 다시 그것을 상식으로 여기며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이중사고에 길들여져 있다.이렇게 정신적으로 사육 당하는 삶의 비참함에 대하여 우리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 1984 ⟫ 는 우리 주위에서 혹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이중사고를 늘 감시하면서 맞서 싸워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윈스턴 스미스같이 되어 버린다고 암시하고 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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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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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쉬(시인, 현자, 선인)를 대신하는 크눌프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 말년에는 도시에서 숲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의 이동까지... 인도여행을 다녀온 헤세답게 익숙한 캐릭터와 배경 설정 공식을 보여주었다. 서양식의 베다 한 편을 읽은 듯~!
#내가_바라는_죽음의_순간은...
-
🔖 p166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크눌프와 같이 재능 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 1954년 헤세가 쓴 편지 중에서 

"정말 그래, 크눌프. 적절한 순간에 바라보면 거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그래. 하지만 난 또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 P81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 P91

그때 이후로 난 많은 친구와 친지, 동료와 사랑까지도 얻게 되었지만, 더이상 사람의 약속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지. 난 약속을 가지고 자신을 구속하는 일도 하지 않았네. 전혀 안 했지. 난 내게 맞는 삶을 살아왔네. 그래서 자유와 아름다움을 실컷 맛보았지만 그러면서도 난 언제나 혼자였네. - P126

삶은 얼마나 단순하고 명확했던가! 당시에 그는 아무렇게나 행동하면서 더 이상 어떤 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삶은 그에 동의했고,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국외자였다. 배회하며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젊은 날에는 사랑받았으나 이제 병들고 나이 들자 혼자 남게 되었다.
거센 피로감이 그를 덮쳤다. - P145

지치고 쇠약해졌는데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기 삶의 마지막 부분까지도 더 힘 있게 사용하여 모든 숲 가장자리와 숲속의 길들을 따라 걷고 또 걸어야만 한다는 듯이. 병들고 지쳤는데도 그의 두 눈과 코는 예전의 민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 P153

"전 왜 그것들로부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또 훌륭한 인간도 못 되었을까요?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그만 만족하거라." - P157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했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 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했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했다. - P158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크눌프와 같이 재능 있고 생명력 충만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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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 다윈 자서전
찰스 다윈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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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찰스 다윈의 인생에 더없이 어울리는 듯하다.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꼭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의 삶과 종교적 현실적 고민 뿐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자세와 노하우 등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 종의 기원 ⟫을 읽을 사람에게도 추천합니다.👍

적어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관찰과 실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날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

유기체의 다양성이나 자연선택 의 작용에 바람의 진로보다 더 훌륭한 설계가 내장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자연현상은 고정불변의 법칙에서 나온 결과이다. p101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근거 중 감정이 아닌 이성과 관련된 부분은 내게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중략) 그런 생각을 해볼 때 나는 인간과 어느 정도 유사한 이성적 사고를 하는 조물주의 존재를 배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는다. 그렇게 느끼는 나를 유신론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p106

내 가정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아이들은 건강 문제를 제외하고는 걱정을 끼친 일이 없었다. 다섯 아들의 아버지로서 이런 자랑을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본다. p138

내가 주로 즐겨왔고 일생 동안 유일하게 해온 일은 과학 연구다. 연구를 할 때 찾아오는 즐거움은 잠시나마 일상의 불편을 잊게 하거나 몰아내주었다. 남은 내 인생 이야기는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일을 제외하면 별로 기록할 것이 없다. p143

나는 베이컨의 귀납원리 에 따라 어떤 이론도 고려하지 않은 채 방대한 사실들을 수집했다. p146

내가 큰 실수를 했다거나 내 작업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그리고 경멸적인 비판을 받거나 또는 반대로 지나친 호평을 받아서 불쾌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면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잘했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p155

처음 관찰을 시작한 이후 16년이 지나서였다. 다른 책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출간이 늦어진 것이 오히려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는 자기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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