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
김주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항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바깥 세상 소식을 듣는데 가장 유용했던 것은 신문이 아닌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내가 있던 중대는 항상 순검 때 '9시 MBC 뉴스데스크'를 봤다. 원래 내가 상병 때까지만 하더라도 순검 시간만 되면 완전히 얼어붙어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자율형 순검이라는 제도가 등장하면서, 일 주일에 이틀만 예전과 같은 통제형 순검이 실시되었다. 나머지 닷새 동안은 당직 근무자가 인원 파악을 할 수 있도록 각 생활반마다 인원이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 허용되었다. 한 해 동안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자율형 순검은 앞에서 설명한 까닭 덕분에 나에게는 매우 좋은 제도였다.
 

2007년에 나는 수구 세력이 정권을 탈취하고자 발악하는 모습을 'MBC 뉴스데스크'로써 똑똑히 지켜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 이명박과 박근혜가 벌였던 한나라당 경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사기 공약을 내걸어 권좌에 오르는 모습까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명박이 쓴 '신화는 없다'를 군대에서 읽고 이명박을 찬양하는 독후감을 썼다가 동생에게 혼쭐이 날 정도로 나는 시대상에 어두웠다. 나 또한 2007년 대선에서 사기 공약에 속아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벌어졌는지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 그 대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답은 막연하기 짝이 없으므로, 좀 더 세세하게 따져 보면 몇 가지 세부 결론이 나온다. 내가 이명박이라는 인물에 관해 아는 것이 매우 부족했던 탓도 있기는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MBC 뉴스데스크'에서 시국을 걱정하는 발언이 지금과 같이 격렬하게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는 탓도 있는 것 같다.

 

대대장실, 전령실, 합동사무실에 쌓여 있는 조중동 따위 신문만 간신히 읽을 수 있었고, 한겨레나 시사in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인터넷방을 갈 수 있는 계급도 병장 이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랬기에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온갖 새로운 소식을 제 때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곤 'MBC 뉴스데스크'뿐이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MBC 뉴스데스크'에서 지금과 같이 시대를 통탄하지는 않았다. 논리정연한 보도와 시사 비판을 이어간 뒤 마무리하는 논평, 그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것들이었고, 특별히 반정부 성향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8년 4월에 'PD 수첩'이 한미 쇠고기 협상이 졸속으로 타결된 것을 염두에 뒀는지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어쨌든 미국산 쇠고기가 지닌 문제를 집중 취재하면서부터, 본격으로 현 정권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MBC PD들은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작태가 어떤 참상을 불러올 수 있는지 분명히 경고했고, 신경민 아나운서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천박하고 무능한 정부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으며, 엄기영 사장은 외압 따위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선동 목적이 분명한 '괴담'에 홀려 판단력이 흐려졌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국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재협상과 이명박 정부 타도를 외치자 당혹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형식으로나마 두 번이나 고개를 숙여야 했고, 이명박 친위대가 몇 번이고 귀찮게 뛰어다니며 신경을 써야 했다. 국민 위에 왕권 신수설에 따른 위대한 군주로 군림하며 비판 따위는 무시하고 그저 칭송만 받고 싶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촛불이 사그라들자마자 이명박 정부는 모진 탄압을 일삼으며, 특히 인터넷과 언론을 장악하고자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 정점이 바로 사상 초유인 미디어법 재투표 통과와 그를 이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2009년 8월에 MBC 이사진을 전면 교체한 것이다. 미디어법 재투표 통과는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고, MBC 이사진 교체 실상이 어떠한지만 따져보겠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2009년 8월 7일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이사 9명과 감사 1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그 인물들이 누구인지 세세하게 알아보니까 다음과 같다.

 

 

1. 고진(64) 한국방송 영상산업진흥원 원장, 목표 MBC대표이사 사장, MBC 보도본부장
2. 김광동(46) 현,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현, 한국발전연구회 부회장
3. 김우룡(66) 현, 한양대 석좌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MBC 편성기획부장
4. 남찬순(60) 현, 고려대 초빙교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
5. 문재완(48) 현, 한국외대 법대교수, 매일경제신문 기자
6. 정상모(61) 민주언론운동연합 부이사장, 한겨레 민족국제부장, 편집부국장
7. 차기환(46) 현, 우정합동법률사무소 공동대표변호사,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8. 최홍재(40) 현,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9. 한상혁(48) 현,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방송위원회 기금관리위원회 위원

 

 

친일 수구 세력인 '뉴라이트(시민정신으로 이름을 바꾸기는 바꿨는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는가)' 출신이(김우룡, 차기환, 최홍재) 3명, 동아일보 논설위원(남찬순) 1명, 매일경제신문 기자(문재완) 1명. 극우(?) 성향 MBC 개혁론자(김우룡) 1명. 9명 가운데 6명은 MBC를 작정하고 정권에 충성하도록 길들이고자, 이명박 정권이 임명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진정한 미디어 산업 발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런 이들이 MBC에게 시대에 뒤쳐지는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책임을 묻겠다고 설쳐댄다. 이에 조중동 또한 신이 나서 사설로 지원 사격을 하고 있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엄기영 사장은 외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지만, 그 선언이 왠지 모르게 초라해 보인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력이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서글픔 속에서도 어떻게든지 희망을 찾는다. 신경민 아나운서가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할 때 보여준 촌철살인 마무리 발언은 매우 많은 사람들을 후련하게 했다. 엄기영 사장이 보여주는 더러운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결단력 또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신경민 아나운서가 보고 싶다. 엄기영 사장이 뉴스데스크에서 보여줬던 깔끔하면서도 진중한 진행도 다시 보고 싶다. 그러면서 'MBC 뉴스데스크'는 정권 앞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이 썩어빠진 사회를 또렷하게 비판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갑자기 김주하 아나운서가 보고 싶다.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읽었던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가 MBC에 관한 단상 속에서 떠올랐다. 1997년에 처음으로 MBC에 입사한 뒤 그녀가 겪은 모든 일과 고뇌가 담긴 그 책을 읽고 되새기면서, 당찬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MBC에서 방영하는 'MBC 뉴스데스크'를 군대에서 꾸준히 본 기억이 자꾸만 겹쳐졌다. 그러면서 앞에서 계속 이야기한 'MBC 뉴스데스크'가 지금 내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어떤 구실을 했는지 스스로 되새겼다.

 

깔끔한 진행과 논리로 명성을 쌓았던 김주하 아나운서가 지금도 그대로 MBC에서 이 시국을 명쾌하게 진단해 주고 있을 것인지 갑자기 궁금하기 짝이 없어졌다. TV를 끊은 뒤 항상 인터넷으로 신문만 읽었는데, 오랜만에 'MBC 뉴스데스크'를 틀어서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버드 스타일 - 세계 리더로 키우는 하버드만의 자기 관리법
강인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2004년 4월 15일에 시간통계를 시작한 뒤, 지나간 시간은 무조건 결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달 결산과 한 해 결산을 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숫자로 이루어진 결산을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게 묶고 가공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 관심을 계속 이어가다 보니까 2008년에 '군 복무 결산'이 나왔고, 단순한 시간 결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을 체계를 갖춰 결산한 '산문 모음', '편지 모음', '독후감 모음', '학습결과 모음' 따위가 쏟아져 나왔다. 차츰 쌓이는 결과물을 바라보면서 포트폴리오 기법이 나에게 얼마나 적합한 동기 부여 기법인지 확인하고 흐뭇한 기분에 젖었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결과라도 차곡차곡 쌓다 보니까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고, 2009년도 벌써 절반 넘게 지났다. 한 학기만 더 다니면 드디어 오랫동안 몸 담았던 부산대학교를 졸업한다. 버릇대로라면 '대학 생활 결산'이라는 제목으로 두꺼운 책을 한 권 만들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2009년이 지나면 어떻게든지 책을 적어도 한 권은 더 만들어 놓고 좋아서 헤헤 웃고 있을 생각을 하니 멋쩍어서, 잠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 난 뒤 '대학 생활 결산'을 어떻게 할 지 미리 한 번 계획을 짜 보기로 했다. 올 한 해 동안 작성할 과제물과 개인 공부 성과는 '학습 결과 모음(2009)'로 정리하고, '2008~2009 시간 결산'은 2009년 5~7월에 아예 기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이 약간 부실하겠지만 어쨌든 묶기는 묶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제본한 '독후감 모음'은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고, 영화 감상문이 제본할 만큼 충분히 모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서, 결국 다시 제본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편지 모음'과 '여행기 모음(사색기행)'은 아직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서 글을 좀 더 쓴 뒤에 제본하기로 했다.

 

종합하면 결국 '대학 생활 결산'이라고 제본할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졸업하기 전에 앞에서 이야기한 이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산문 한 편을 쓰면 그만일 것이다. '군 복무 결산'을 마치면서 '군 복무 결산을 마치며'라는 글을 책 마지막에 덧붙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마치며'라는 산문은 '대학 생활 결산'이 아닌 몇 년 뒤에 나올 '산문 모음 2'에 들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글에 무슨 내용이 들어가느냐이다. 사실 3학년 기말고사를 끝낸 뒤 본격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불안할 때 내가 주로 했던 일이 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대학생으로서 해 봐야 할 일 30가지', '대학생 때 꼭 읽어야 할 책 100권',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책상에 쓰여 있는 격언 50가지' 따위를 보면서 나는 그 가운데 무엇을 해 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저절로 쉴 때가 많았다. 항상 의욕만 미친 듯이 불타올랐지 그 의욕을 실제로 일하는데 효율 높게 쓸 수 있도록 자기를 관리하지는 못하는 바람에, 이것저것 손을 대기는 했지만 제대로 한 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넘쳐나는 의욕 때문에 시도도 해 보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좌절하곤 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목록들 가운데 내 한숨을 가장 크고 깊게 한 것은 '하버드 대학생들이 명심하는 격언 30가지'였다. 이것은 이 책 '하버드 스타일'에도 실려 있었는데, 몇 가지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겹게 본 것들이었다. 세계 최고 명문대라고 하는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 모든 각오를 현실에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다. 이 책은 그 전설(?)과도 같은 하버드 대학교에 직접 가서 학생들과 면담한 결과와 그 소감을 담은 책이다. 읽는 내내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뼈저리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설레발을 치며 살았지만 정작 해낸 것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이 책을 쓴 강인선 씨가 밝혔듯이 내가 보여준 패기와 정열 또한 하버드 대학생들 앞에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도 아닌 이끼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버드 학생들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루에 12~13시간을 한결같은 집중력으로 공부하고, 똑같은 일을 해도 남보다 멋지게 해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새로운 것, 무시무시하게 양이 많은 공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친구들과의 경쟁, 온갖 실패의 가능성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스타'이면서 동시에 '매니저'가 되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도록 교육 받았다.

 

하버드가 제공하는 최고의 교육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매섭게 단련할 수 있는 기회다. 단순히 똑똑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강인하고 끈질긴 기질,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낼 수 있는 자기관리 능력,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까지도 갖춰야 한다. 하버드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으려면 이 '하버드 스타일'이 몸과 마음과 머릿속에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 스타일이 평생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해주는 최고의 자산이 된다……'

 

 

이 책을 쓴 강인선 씨가 조선일보 기자라서 책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색안경을 쓰고 싶지도 않다. 하버드 대학교가 신자유주의 최전선 첨병인 미국에서 정상에 선 대학으로서 피도 눈물도 인간미도 전혀 없는 가장 처절한 생존 경쟁을 표상한다는 비판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지만, 한 학기만 더 다니면 부산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는 나는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갖추고 4년 내내 혹독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하버드 졸업생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들을 비판할 주제도 안 되고 근거도 없다. 그런 내가 내놓는 결산은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을까.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도 어떻게든지 '하버드 스타일'에 필적할 수 있는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샘솟는다. 난데없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지금 내 처지에서는 임용고시에 어떻게든지 합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그래야 몇 달 뒤에 쓸 '대학 생활을 마치며'라는 산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자기 관리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립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항상 '하버드 스타일'을 생각하면서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자 온 힘을 다해,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 엮음 / 여우와두루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이 두 권 다 2008년에 타오른 촛불을 그 무엇보다도 더 생생하게 증언한 책이다. 그렇기에 전자를 읽고 독후감을 쓰자마자 이 책에 관한 독후감도 그에 이어 단숨에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억지로 밤을 새면서 독후감 한 편을 겨우 쓰는 바람에,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글을 쉴새없이 이어서 쓸 수가 없었다. 밤을 굳이 새 가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을 쓸 필요는 너무나도 사기성이 짙은 중도 실용을 외치는 세상에서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한 까닭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너무나도 많지만 글 한 편도 제대로 써내지 못한 채 멍하니 신문만 쳐다보는 몇 년째 계속 되는 이 미친 고질을 밤을 샌 다음 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름마다 반복되는 이 고질을 2006년과 2007년에는 군대 근무와 당직이 이어나갔고, 2008년에는 뜨거운 여름 내내 이어진 촛불 집회가 유지했다. 낮에는 정신 없이 아고라에 올라오는 글을 읽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회에 참석하러 나갔다. 집회가 한창일 때는 밤을 새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 여름은 부산대학교 학생이자 촛불 예비군 중대 제 1소대원으로서 주로 보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엉망진창인 일상에서 나는 분명한 모순을 체험했다. 한 편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산 역사 현장에 나가서 나름대로 한몫하고자 힘썼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길어진 시간 동안 전공 공부와 개인 공부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일단 전체 평점이 3점 이하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강한 의지를 발휘해서 수업도 꼬박꼬박 잘 들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모순을 더 심하게 했다. 되든 안 되든 항상 그랬지만 특히 그 때 더 심하게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안락은 위기에 처한 사회 앞에서는 뒷전이 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무서운(!) 논리까지 동원했지만, 혼란스러운 자아를 진정시키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2008년에 생활 박자(circadian rhythm)는 엉망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민중이 바랐던 것처럼 이명박이 대국민 하야 선언이라고 했거나 국정 기조를 전환했더라면 그나마 대한민국사 속에서 한 몫 했다는 아주 작은 보람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바랐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고라에서 저지하려고 했던 것들 대부분이 현실이 되었고, 촛불 집회에 참가하는 인원이 차츰 줄어들면서 수구 세력은 맹렬한 보복을 가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촛불 - Season 2'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우세해지면서 '촛불 - Season 3'를 준비하고자 부경 아고라에 들어갔다가 어처구니없는 내부 분란에 휩싸여 쫓겨나듯이 탈퇴하고 말았다. 2009년 1월 1일에 희부옇게 밝아오는 부산대학교 앞 거리를 힘없이 터벅터벅 걸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서럽게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촛불이 타오르던 현장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그 때는 그저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사실 이 책 또한 그 절규 속에 내가 원망한 대상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 담긴 모든 사진과 글(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터넷 댓글도 분명히 '글'이라는 칭호를 얻었다)을 다음 아고라에서 직접 읽으면서, 나는 이런 글을 나중에도 다시 읽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 모든 글이 세상에 이렇게 망조가 짙게 드리우지 않았다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고라에 올라오는 글을 그토록 심각하게 읽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책이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만드는 이 책이 나온 뒤, 이상하게도 현실은 더욱 암담해졌다. '어둠은 빛을 밝힐 수 없습니다'보다 훨씬 더 생생한 민주주의 쟁취 투쟁 현장을 담았지만, 현실은 그에 보답하지 못했다. 이 책 마지막에 남은 아이 손에 든 촛불마저 꺼져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상식은 죽어가며 촛불은 횃불로 다시 타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켜져 있는 촛불을 보면서 희망을 찾기에도 이제는 지친다.

 

촛불이 다시 타오를 그 날을 기대하면서 그나마 여유로운 시간에 내가 한 사람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만 부지런히 닦아도 모자라거늘, 2009년 가운데 벌써 반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없을 정도로 숱한 시간을 방탕하게 흘려보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때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했기에, 억지로 밤을 새면서 몸을 축내가며 하지 않아도 될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줍잖은 지식을 가지고 '천민 민주주의', '디지털 마오이즘', '디지털 포퓰리즘' 따위 해괴한 망언을 늘어놓는 코 빨간 주성영을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국회의원으로 내밀고 몇 개월 뒤도 예측하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속아넘어가 능력도 없는 공식 전과 14범(?!) 사기꾼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앉힌 국민들이 대가를 치르는 것과 같이 말이다. 

 

책을 뒤적거리며 독후감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아침을 맛있게 먹었거늘 입맛이 쓰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 책에 들어간 모든 내용을 남긴 수많은 누리꾼들이 겪었을 좌절과 분노를 자꾸만 곱씹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렇다. 그래도 점심 때가 다 되어가자 어김없이 침이 고이는 입을 쩝쩝거리며, 이 책 뒤를 이은 '대한민국 논술사전 아고라'를 읽고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에서 강조했듯이 지금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형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상식(물론 그 상식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 가운데 지극히 일부일 뿐이지만)'마저도 모르거나 알면서도 곡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무료로 나누어 준 떡을 먹으며 싱긋 웃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 2008 촛불의 기록
한홍구 지음, 박재동 그림, 김현진 외 글, 한겨레 사진부 사진, 참여사회연구소 외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이다. 기록은 영원히 살아남아 인류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우리 출판문화인들이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2009년 여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기록하는 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작가의 붓은 꺾였으며, 카메라의 렌즈는 막혔다. PD의 입은 봉쇄되었으며, 시민들의 사생활은 낱낱이 발가벗겨졌다. 올바른 생각으로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탐욕과 무지의 끈으로 결박당한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앞에 인용한 글은 2009년 7월에 발표된 '출판문화인 시국선언문'에 나오는 첫 문단이자,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역사학에서 과거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한 가지이자, 이성을 지닌 한 인간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오롯이 표현해서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기록이다.

 

기록하는 방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해졌다. 원시 시대에는 동굴에 벽화를 그렸고, 문자가 발명되면서 돌에 반드시 보존해야 할 내용을 문자로 기록했고, 파피루스와 양피지를 쓰기 시작한 뒤에는 문서라는 개념이 등장해 본격으로 기록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녹음기,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녹화기가 발명되면서, 기록할 때 더는 글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문서, 사진, 녹취록, 동영상……혼합된 형태까지 나타나면서 기록 문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흘러간 뒤에는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품은 모든 것들 가운데 극히 일부라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기록이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반성하며 때로는 옛 것에서도 새로운 것을 배워 더욱 나은 앞날을 만들고자 힘쓰는 기반이 바로 기록이다. 그렇기에 기록은 영원히 살아남아 인류가 나아갈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고 출판문화인들이 시국선언문에서 예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시국선언문에서 개탄한 것처럼, 민주주의를 으뜸으로 여긴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자들이 남긴 기록은 어디에도 설 곳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작태를 놓치지 않고 담은 모든 기록들을 수구 세력은 '괴담', '모략', '오해'라고 매도하며 자기 주장만 강변하는데 정신을 팔았다. 제갈공명이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을 보고 좌절한 것처럼, 민중은 공인된 폭력 집단이 지키는 명박산성을 보고 절망했다. 그 역겹기 짝이 없을 정도로 굳건한 컨테이너들은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고 지배 체제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해방 뒤에도 대한민국에서 사회 지도층 노릇을 해 온 암담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상징한다. 컨테이너 너머로 아무리 많은 기록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기록은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을 감추거나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것들뿐이다. 만약 그런 것을 찾기 힘들다면 있는 사실을 비틀어 가공해 선전하고, 심지어 이미 널리 알려진 기록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곡해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극우라는 분류가 아까운 지만원이 천하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민주당이 한나라당 투표를 방해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례들만 찾아다니며 절차 문제를 논하는 것이 최근에 벌어진 가장 유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내 홈피에 와서 글을 읽는다면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부터 '김정일과 주체 사상을 신봉하는 주체 좌파 빨갱이' 기질이 농후하다고 홈페이지에 휘갈길 것이다. 이런 인물이 '대표 보수 논객'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으니, 진정한 대한민국 보수 세력은 이미 죽은 지 한참 오래 됐다. 그런데도 그들은 비극으로 얼룩진 역사 앞에서 참회하기는커녕 진실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겠다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줄창 늘어놓는다.

 

지만원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최근 소식을 보고 한 누리꾼이 댓글을 남겼다. 지만원 같은 사람이 기사에 나온다는 게 역겹고, 이런 인간이 문근영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역겹고, 이런 인간이 잘 먹고 산다는 게 역겹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한 누리꾼이 문근영은 범민련이라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기부한 자체가 문근영이 그 지경에 몰리게 된 까닭이라고 주장하면서 건전한 보수인 척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쓴 모든 댓글을 다 읽어본 뒤, 결국 본질이 조중동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보수라고 자칭하며 편향되고 전도된 대한민국을 바로잡고자 객관에 따른 현실을 논한다는 사람들이 구사하는 논리와 기록이랍시고 들이미는 자료를 정작 살펴보면, 거짓과 조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으며 설사 사실이라도 하더라도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상식과 어긋나기 짝이 없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작성한 보고서에 나온 수치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들통나자, 나경원 의원이 보여준 추악하기 짝이 없는 말바꾸기는 원래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이기에 놀랍지도 않다.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점잖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정작 논쟁을 벌여보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어떤 것일까. 촛불 집회에 참가한 뒤에 처음에는 순수한 촛불을 좋아했지만 폭력 시위를 일삼는 그들에게 실망했다는 경험을 내놓으며 조선일보가 보도하는 선동 기사에 맞장구를 치는 이들은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촛불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촛불은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를 반박하고자 어떤 기록을 보여줘야 할까. 수구 좌파 세력이 선동하는 촛불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이 역시 민중을 수호하는 지팡이답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기록을 보여줘야 할까.

 

이 책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를 그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역동했던'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이 책을 그들은 어떻게 깎아내릴까. 그 대답이야 그동안 수구 세력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에 굳이 여기에 자세히 적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설사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석 달 가까이 거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촛불 곳곳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시민이 경찰을 때리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명백한 진실이라고 외칠 것이다. 사실과 이해를 자기들 좋을 대로 끼워맞추는 그 재주에는 경탄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위에 거슬리는 그 재주를 그저 인정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 책 제목대로 민중들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어둠이 있기에 빛이 밝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서 맞설 것이다. 그토록 민주주의를 간곡하게 바랐던 시민들이 밝힌 촛불을 보고 시민들이 남긴 무수한 기록 가운데 극히 일부를 가공하고 정리하고 해석한 이 책을 이명박 정부와 그를 추종하는 수구 세력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그저 깎아내리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시민들이 남긴 '무수한 기록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이 선사한 온갖 장치들로 무장한 시민들은, 썩어빠진 공권력이 드러낸 표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며, 예전과 같이 권력이 제공하는 정보만 믿으라고 강요하는 시대착오에 분노했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수구 세력이 폭압을 일삼더라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를 깨달으며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문제의식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이 남긴 무수한 기록으로써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책은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출판문화인들이 남긴 멋진 시국선언문이 분명히 천명하듯이.

 

 

"책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임무는 시대를 기록하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며, 권력자의 독선을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의 입에 재갈이 채워지고, 거짓의 언어가 세상을 뒤덮는다 할지라도 감히 시대의 사관史官임을 자임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에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임무는 시대의 횃불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거짓을 폭로하며, 약한 자를 짓밟고 선한 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잔혹한 그대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쓰고 만들고 읽는 모든 책에서 진실의 언어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린이책이든, 청소년책이든, 어른이 보는 책이든 그 어떤 책에서든! 그리고 그 책들은 도서관이든 시장통이든 지하철 안이든 그 어디에서든 진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역사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권력자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영예로운 권력을 오로지 탐욕과 이기심으로 채워버린 그대들이여, 기억하라! 그대들의 오늘을 숨죽인 채 기록하는 이들이 이 땅 곳곳에 살아 있음을. 지금 역사는 그대들의 위선과 아집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음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7년 12월 19일에 벌어진 이명박 후보 대통령 당선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진 뒤 아직도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허황된 공약을 온갖 미사여구로 그럴 듯하게 치장할 줄만 알았지 실제로는 나라를 위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만천하에 폭로했다. 그러면서 그를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폭도로 몰아가며 무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어떻게든지 감추고자 애쓰고 있다.
 

지금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는 시국 선언문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듯이, 정말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다.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를 빌미로 대한민국은 정부에서 잘 대처하고 있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끊임없이 선전한다. 하지만 경제 현상을 어느 정도 비판하면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경제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설명할 때, 세계 경제를 탓하기보다는 정부가 내놓는 그릇된 경제 정책을 더 많이 탓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강만수 전 장관이 무리하게 고환율 정책을 쓰고 환율을 안정시키는데 적극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쓸데없이 몇 천 억 달러를 국제 투기꾼들 손에 쥐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에서 내가 이야기한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는다.

 

진정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을 줄인 말로서 2007년에 조중동 같은 수구 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자 만든 신조어이다)라고 볼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애당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 여건을 가꿔나갈 생각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개인 영달과 권력에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증명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그 친위대는 선량한 시민들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좌익 폭도'로 몰아붙이면서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면서 위대한 민주 항쟁인 6월 항쟁 기념사에서 대놓고 시민들이 일궈 놓은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극도로 뻔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 분노는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새롭게 조명하는 움직임이다. 2009년 5월 23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린 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서거하면서, 정국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애당초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실정을 바라보면서, 시민들은 수구 언론이 항상 보도했던 것과 다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얼마나 국정을 잘 운영했는지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움직임은 지난 한 해 동안 꾸준히 고조되었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폭발하듯이 활발해졌다.

 

그에 관해서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민중은 어리석어서 영웅을 알아보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아서,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위대한 인물이 죽고 난 뒤에야 그 진가를 깨닫는다고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 막연한 사명감을 지니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만, 그들 가운데 과연 진정으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이다.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듣다 보면, 과연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명제가 항상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명군들이 나타나지만 민중은 항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수구 세력에게서 그런 명군을 지켜내는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이 지닌 속성은 다음 아고라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고 있는 '집단 지성'이라는 좋은 개념이 아닌 '중우 정치'에 이용되는 어리석음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으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해서 설치고 있는 자체가 '중우 정치'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막상 좀 더 자세하게 역사를 알아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떤 이는 '천재 수학자는 이론을 제시하고 실력 있는 수학자는 그 이론을 증명한다'는 말을 남겼다. 앞에서 한 이야기에서 천재 수학자와 실력 있는 수학자 가운데 과연 누가 더 중요한지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가? 물론 이론 자체를 제시하는 천재 수학자가 당연히 그 이론을 증명할 뿐인 실력 있는 수학자보다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둘 다 수학이 발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주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와 민중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 그리고 역사 속에서 영웅(?)과 민중이 지닌 속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제시된 비유를 다시 되새겨 보자. 영웅을 천재 수학자, 민중을 실력 있는 수학자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주저하지 않고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단 경계하고 봐야 한다. 현명한 몇몇 영웅들이 모든 역사를 창조하며, 무지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민중들은 그저 그 흐름에 따를 뿐이며 때로는 그 흐름을 거부해 역사를 퇴보시킨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서슴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공교육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주로 왕, 황제, 장군, 귀족 따위 위대한 인물을 중심으로 배운다. 그들은 대개 역사가 기록되는 전형에 따라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인 이기심을 극복하고 이타성을 발휘한 '성인'이자 '영웅'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무지한 민중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그에 실패하면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싹트고 진보가 이루어진다. 그 뒤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 예전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개혁을 시행하고 민중을 계몽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역사란 그런 것이었다. 그 속에서 민중들은 그들도 모르게 잘못된 사회 구조를 개혁할 주체가 아닌, 항상 가르침을 받아야 할 수동 객체로 전락해 버렸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이미 연구 대상을 선택하는 데서부터 연구자, 곧 역사가가 특정한 관점을 도입해서 해석하면서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고착된 사회 질서와 계급 구조에서 권력과 부를 거머쥔 지배 세력은 항상 중립과 객관을 부르짖으면서, 민중을 교묘하게 역사 속에서 힘없이 떠밀리기만 하는 객체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그들과 관련이 없거나 그들에게 불리한 역사 사실들은 일부러 자취를 없애버렸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역사란 그런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민중들은 그들도 모르게 지배 세력이 원하는 것만 배웠고 그것만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도록 길들여졌다.

 

민중들을 그렇게 만드는 역사 서술 방식에 반기를 든 책이 바로 이 책 '민중의 세계사'이다. 저자인 크리스 하먼은 이 책에서 민중을 자기도 모르게 역사 앞에서 수동인 객체로 만들어 버리는 틀에 박힌 역사 서술 방식 따위는 집어치우고, 투철한 사회주의자로서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역사 서술 방식에 따라 민중을 역사 앞에 주체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민중은 도도하면서도 격렬하게 흐르는 역사 속에서 절대 무기력하게 떠밀리고 있지만 않았다. 누구보다도 더 격렬하게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맞서 싸웠다. 그것들은 초기에는 주로 천재지변이었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천재지변보다는 같은 인류에게 천재지변보다 더 크고 일상인 고통을 강요하는 이상한 사회 질서와 제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강요하며 개인 영달을 추구하는 데만 혈안이 된 지배 세력이었다.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은 삶을 기본으로 한다. 자기가 살아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아무 뜻도 없다. 그렇기에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역사관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동과 그에 따른 인류 발전 과정을 철저하게 규명하고자 힘쓴다. 그러고자 저자는 유럽 중심, 좀 더 넓게 이야기하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미국으로 이어지는 유럽과 아메리카 중심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중국, 인도, 서남 아시아, 아프리카와 같은 지금까지 잘 다루어지지 않거나 설사 다룬다고 하더라도 비중이 낮았던 지역사를 서양과 대등하게 다루면서, 인간과 노동이 발생한 근원을 심도 있게 서술하고자 힘쓴다.

 

896쪽이라는 방대한 내용을 읽어 나가는 게 솔직히 매우 힘들었지만, 어떻게든지 차근차근 읽으면서 민중이 움직이는 거대한 역사를 두꺼운 책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영웅이 존재한다면, 영웅은 그들 자체만으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중이 지지하지 않는 영웅은 역사 안에서 아무 뜻도 없다. 특히 지금까지 지배 계층에서는 영웅이라고 칭송했지만, 실제로 민중들에게는 재앙만을 안겨 준 폭군이 인류사에서는 쉴 새 없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21세기 초기에 대한민국에 대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폭군 이명박을, 대한민국에서 모든 권력을 창출하는 주체인 민중이 단결해서 몰아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지금 이렇게 책으로 나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집필되고 있는 '민중의 세계사' 안에, 자랑스러운 투쟁 기록을 당당하게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