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타일 - 세계 리더로 키우는 하버드만의 자기 관리법
강인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2004년 4월 15일에 시간통계를 시작한 뒤, 지나간 시간은 무조건 결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달 결산과 한 해 결산을 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숫자로 이루어진 결산을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게 묶고 가공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 관심을 계속 이어가다 보니까 2008년에 '군 복무 결산'이 나왔고, 단순한 시간 결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창조한 모든 것을 체계를 갖춰 결산한 '산문 모음', '편지 모음', '독후감 모음', '학습결과 모음' 따위가 쏟아져 나왔다. 차츰 쌓이는 결과물을 바라보면서 포트폴리오 기법이 나에게 얼마나 적합한 동기 부여 기법인지 확인하고 흐뭇한 기분에 젖었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결과라도 차곡차곡 쌓다 보니까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고, 2009년도 벌써 절반 넘게 지났다. 한 학기만 더 다니면 드디어 오랫동안 몸 담았던 부산대학교를 졸업한다. 버릇대로라면 '대학 생활 결산'이라는 제목으로 두꺼운 책을 한 권 만들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2009년이 지나면 어떻게든지 책을 적어도 한 권은 더 만들어 놓고 좋아서 헤헤 웃고 있을 생각을 하니 멋쩍어서, 잠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 난 뒤 '대학 생활 결산'을 어떻게 할 지 미리 한 번 계획을 짜 보기로 했다. 올 한 해 동안 작성할 과제물과 개인 공부 성과는 '학습 결과 모음(2009)'로 정리하고, '2008~2009 시간 결산'은 2009년 5~7월에 아예 기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이 약간 부실하겠지만 어쨌든 묶기는 묶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제본한 '독후감 모음'은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고, 영화 감상문이 제본할 만큼 충분히 모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서, 결국 다시 제본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편지 모음'과 '여행기 모음(사색기행)'은 아직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서 글을 좀 더 쓴 뒤에 제본하기로 했다.

 

종합하면 결국 '대학 생활 결산'이라고 제본할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졸업하기 전에 앞에서 이야기한 이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산문 한 편을 쓰면 그만일 것이다. '군 복무 결산'을 마치면서 '군 복무 결산을 마치며'라는 글을 책 마지막에 덧붙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마치며'라는 산문은 '대학 생활 결산'이 아닌 몇 년 뒤에 나올 '산문 모음 2'에 들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글에 무슨 내용이 들어가느냐이다. 사실 3학년 기말고사를 끝낸 뒤 본격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불안할 때 내가 주로 했던 일이 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대학생으로서 해 봐야 할 일 30가지', '대학생 때 꼭 읽어야 할 책 100권',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책상에 쓰여 있는 격언 50가지' 따위를 보면서 나는 그 가운데 무엇을 해 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저절로 쉴 때가 많았다. 항상 의욕만 미친 듯이 불타올랐지 그 의욕을 실제로 일하는데 효율 높게 쓸 수 있도록 자기를 관리하지는 못하는 바람에, 이것저것 손을 대기는 했지만 제대로 한 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넘쳐나는 의욕 때문에 시도도 해 보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좌절하곤 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목록들 가운데 내 한숨을 가장 크고 깊게 한 것은 '하버드 대학생들이 명심하는 격언 30가지'였다. 이것은 이 책 '하버드 스타일'에도 실려 있었는데, 몇 가지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겹게 본 것들이었다. 세계 최고 명문대라고 하는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 모든 각오를 현실에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다. 이 책은 그 전설(?)과도 같은 하버드 대학교에 직접 가서 학생들과 면담한 결과와 그 소감을 담은 책이다. 읽는 내내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뼈저리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설레발을 치며 살았지만 정작 해낸 것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이 책을 쓴 강인선 씨가 밝혔듯이 내가 보여준 패기와 정열 또한 하버드 대학생들 앞에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도 아닌 이끼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버드 학생들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루에 12~13시간을 한결같은 집중력으로 공부하고, 똑같은 일을 해도 남보다 멋지게 해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새로운 것, 무시무시하게 양이 많은 공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친구들과의 경쟁, 온갖 실패의 가능성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스타'이면서 동시에 '매니저'가 되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도록 교육 받았다.

 

하버드가 제공하는 최고의 교육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매섭게 단련할 수 있는 기회다. 단순히 똑똑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강인하고 끈질긴 기질,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낼 수 있는 자기관리 능력,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까지도 갖춰야 한다. 하버드에서 성공하고 살아남으려면 이 '하버드 스타일'이 몸과 마음과 머릿속에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 스타일이 평생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해주는 최고의 자산이 된다……'

 

 

이 책을 쓴 강인선 씨가 조선일보 기자라서 책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색안경을 쓰고 싶지도 않다. 하버드 대학교가 신자유주의 최전선 첨병인 미국에서 정상에 선 대학으로서 피도 눈물도 인간미도 전혀 없는 가장 처절한 생존 경쟁을 표상한다는 비판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지만, 한 학기만 더 다니면 부산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는 나는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갖추고 4년 내내 혹독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하버드 졸업생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들을 비판할 주제도 안 되고 근거도 없다. 그런 내가 내놓는 결산은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을까.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도 어떻게든지 '하버드 스타일'에 필적할 수 있는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샘솟는다. 난데없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지금 내 처지에서는 임용고시에 어떻게든지 합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그래야 몇 달 뒤에 쓸 '대학 생활을 마치며'라는 산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자기 관리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립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항상 '하버드 스타일'을 생각하면서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자 온 힘을 다해,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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