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 2008 촛불의 기록
한홍구 지음, 박재동 그림, 김현진 외 글, 한겨레 사진부 사진, 참여사회연구소 외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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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이다. 기록은 영원히 살아남아 인류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우리 출판문화인들이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2009년 여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기록하는 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작가의 붓은 꺾였으며, 카메라의 렌즈는 막혔다. PD의 입은 봉쇄되었으며, 시민들의 사생활은 낱낱이 발가벗겨졌다. 올바른 생각으로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탐욕과 무지의 끈으로 결박당한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앞에 인용한 글은 2009년 7월에 발표된 '출판문화인 시국선언문'에 나오는 첫 문단이자,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역사학에서 과거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한 가지이자, 이성을 지닌 한 인간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오롯이 표현해서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기록이다.

 

기록하는 방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해졌다. 원시 시대에는 동굴에 벽화를 그렸고, 문자가 발명되면서 돌에 반드시 보존해야 할 내용을 문자로 기록했고, 파피루스와 양피지를 쓰기 시작한 뒤에는 문서라는 개념이 등장해 본격으로 기록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녹음기,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녹화기가 발명되면서, 기록할 때 더는 글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문서, 사진, 녹취록, 동영상……혼합된 형태까지 나타나면서 기록 문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흘러간 뒤에는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품은 모든 것들 가운데 극히 일부라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기록이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반성하며 때로는 옛 것에서도 새로운 것을 배워 더욱 나은 앞날을 만들고자 힘쓰는 기반이 바로 기록이다. 그렇기에 기록은 영원히 살아남아 인류가 나아갈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고 출판문화인들이 시국선언문에서 예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시국선언문에서 개탄한 것처럼, 민주주의를 으뜸으로 여긴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자들이 남긴 기록은 어디에도 설 곳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작태를 놓치지 않고 담은 모든 기록들을 수구 세력은 '괴담', '모략', '오해'라고 매도하며 자기 주장만 강변하는데 정신을 팔았다. 제갈공명이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을 보고 좌절한 것처럼, 민중은 공인된 폭력 집단이 지키는 명박산성을 보고 절망했다. 그 역겹기 짝이 없을 정도로 굳건한 컨테이너들은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고 지배 체제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해방 뒤에도 대한민국에서 사회 지도층 노릇을 해 온 암담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상징한다. 컨테이너 너머로 아무리 많은 기록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기록은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을 감추거나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것들뿐이다. 만약 그런 것을 찾기 힘들다면 있는 사실을 비틀어 가공해 선전하고, 심지어 이미 널리 알려진 기록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곡해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극우라는 분류가 아까운 지만원이 천하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민주당이 한나라당 투표를 방해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례들만 찾아다니며 절차 문제를 논하는 것이 최근에 벌어진 가장 유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내 홈피에 와서 글을 읽는다면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부터 '김정일과 주체 사상을 신봉하는 주체 좌파 빨갱이' 기질이 농후하다고 홈페이지에 휘갈길 것이다. 이런 인물이 '대표 보수 논객'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으니, 진정한 대한민국 보수 세력은 이미 죽은 지 한참 오래 됐다. 그런데도 그들은 비극으로 얼룩진 역사 앞에서 참회하기는커녕 진실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겠다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줄창 늘어놓는다.

 

지만원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최근 소식을 보고 한 누리꾼이 댓글을 남겼다. 지만원 같은 사람이 기사에 나온다는 게 역겹고, 이런 인간이 문근영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역겹고, 이런 인간이 잘 먹고 산다는 게 역겹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한 누리꾼이 문근영은 범민련이라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기부한 자체가 문근영이 그 지경에 몰리게 된 까닭이라고 주장하면서 건전한 보수인 척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쓴 모든 댓글을 다 읽어본 뒤, 결국 본질이 조중동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보수라고 자칭하며 편향되고 전도된 대한민국을 바로잡고자 객관에 따른 현실을 논한다는 사람들이 구사하는 논리와 기록이랍시고 들이미는 자료를 정작 살펴보면, 거짓과 조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으며 설사 사실이라도 하더라도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상식과 어긋나기 짝이 없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작성한 보고서에 나온 수치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들통나자, 나경원 의원이 보여준 추악하기 짝이 없는 말바꾸기는 원래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이기에 놀랍지도 않다.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점잖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정작 논쟁을 벌여보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어떤 것일까. 촛불 집회에 참가한 뒤에 처음에는 순수한 촛불을 좋아했지만 폭력 시위를 일삼는 그들에게 실망했다는 경험을 내놓으며 조선일보가 보도하는 선동 기사에 맞장구를 치는 이들은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촛불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촛불은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를 반박하고자 어떤 기록을 보여줘야 할까. 수구 좌파 세력이 선동하는 촛불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이 역시 민중을 수호하는 지팡이답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기록을 보여줘야 할까.

 

이 책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를 그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뭐라고 이야기할까.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역동했던'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이 책을 그들은 어떻게 깎아내릴까. 그 대답이야 그동안 수구 세력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에 굳이 여기에 자세히 적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설사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석 달 가까이 거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촛불 곳곳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시민이 경찰을 때리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명백한 진실이라고 외칠 것이다. 사실과 이해를 자기들 좋을 대로 끼워맞추는 그 재주에는 경탄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위에 거슬리는 그 재주를 그저 인정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 책 제목대로 민중들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면, 그들은 어둠이 있기에 빛이 밝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서 맞설 것이다. 그토록 민주주의를 간곡하게 바랐던 시민들이 밝힌 촛불을 보고 시민들이 남긴 무수한 기록 가운데 극히 일부를 가공하고 정리하고 해석한 이 책을 이명박 정부와 그를 추종하는 수구 세력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그저 깎아내리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시민들이 남긴 '무수한 기록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이 선사한 온갖 장치들로 무장한 시민들은, 썩어빠진 공권력이 드러낸 표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며, 예전과 같이 권력이 제공하는 정보만 믿으라고 강요하는 시대착오에 분노했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수구 세력이 폭압을 일삼더라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를 깨달으며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문제의식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이 남긴 무수한 기록으로써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책은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출판문화인들이 남긴 멋진 시국선언문이 분명히 천명하듯이.

 

 

"책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임무는 시대를 기록하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며, 권력자의 독선을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의 입에 재갈이 채워지고, 거짓의 언어가 세상을 뒤덮는다 할지라도 감히 시대의 사관史官임을 자임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에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임무는 시대의 횃불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거짓을 폭로하며, 약한 자를 짓밟고 선한 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잔혹한 그대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쓰고 만들고 읽는 모든 책에서 진실의 언어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린이책이든, 청소년책이든, 어른이 보는 책이든 그 어떤 책에서든! 그리고 그 책들은 도서관이든 시장통이든 지하철 안이든 그 어디에서든 진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역사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권력자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영예로운 권력을 오로지 탐욕과 이기심으로 채워버린 그대들이여, 기억하라! 그대들의 오늘을 숨죽인 채 기록하는 이들이 이 땅 곳곳에 살아 있음을. 지금 역사는 그대들의 위선과 아집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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