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
김주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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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군 복무를 할 때 바깥 세상 소식을 듣는데 가장 유용했던 것은 신문이 아닌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내가 있던 중대는 항상 순검 때 '9시 MBC 뉴스데스크'를 봤다. 원래 내가 상병 때까지만 하더라도 순검 시간만 되면 완전히 얼어붙어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자율형 순검이라는 제도가 등장하면서, 일 주일에 이틀만 예전과 같은 통제형 순검이 실시되었다. 나머지 닷새 동안은 당직 근무자가 인원 파악을 할 수 있도록 각 생활반마다 인원이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 허용되었다. 한 해 동안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자율형 순검은 앞에서 설명한 까닭 덕분에 나에게는 매우 좋은 제도였다.
 

2007년에 나는 수구 세력이 정권을 탈취하고자 발악하는 모습을 'MBC 뉴스데스크'로써 똑똑히 지켜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 이명박과 박근혜가 벌였던 한나라당 경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사기 공약을 내걸어 권좌에 오르는 모습까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명박이 쓴 '신화는 없다'를 군대에서 읽고 이명박을 찬양하는 독후감을 썼다가 동생에게 혼쭐이 날 정도로 나는 시대상에 어두웠다. 나 또한 2007년 대선에서 사기 공약에 속아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벌어졌는지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 그 대답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답은 막연하기 짝이 없으므로, 좀 더 세세하게 따져 보면 몇 가지 세부 결론이 나온다. 내가 이명박이라는 인물에 관해 아는 것이 매우 부족했던 탓도 있기는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MBC 뉴스데스크'에서 시국을 걱정하는 발언이 지금과 같이 격렬하게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는 탓도 있는 것 같다.

 

대대장실, 전령실, 합동사무실에 쌓여 있는 조중동 따위 신문만 간신히 읽을 수 있었고, 한겨레나 시사in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인터넷방을 갈 수 있는 계급도 병장 이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랬기에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온갖 새로운 소식을 제 때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곤 'MBC 뉴스데스크'뿐이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MBC 뉴스데스크'에서 지금과 같이 시대를 통탄하지는 않았다. 논리정연한 보도와 시사 비판을 이어간 뒤 마무리하는 논평, 그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것들이었고, 특별히 반정부 성향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8년 4월에 'PD 수첩'이 한미 쇠고기 협상이 졸속으로 타결된 것을 염두에 뒀는지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어쨌든 미국산 쇠고기가 지닌 문제를 집중 취재하면서부터, 본격으로 현 정권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MBC PD들은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작태가 어떤 참상을 불러올 수 있는지 분명히 경고했고, 신경민 아나운서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천박하고 무능한 정부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으며, 엄기영 사장은 외압 따위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선동 목적이 분명한 '괴담'에 홀려 판단력이 흐려졌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국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재협상과 이명박 정부 타도를 외치자 당혹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형식으로나마 두 번이나 고개를 숙여야 했고, 이명박 친위대가 몇 번이고 귀찮게 뛰어다니며 신경을 써야 했다. 국민 위에 왕권 신수설에 따른 위대한 군주로 군림하며 비판 따위는 무시하고 그저 칭송만 받고 싶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촛불이 사그라들자마자 이명박 정부는 모진 탄압을 일삼으며, 특히 인터넷과 언론을 장악하고자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 정점이 바로 사상 초유인 미디어법 재투표 통과와 그를 이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2009년 8월에 MBC 이사진을 전면 교체한 것이다. 미디어법 재투표 통과는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고, MBC 이사진 교체 실상이 어떠한지만 따져보겠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2009년 8월 7일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이사 9명과 감사 1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그 인물들이 누구인지 세세하게 알아보니까 다음과 같다.

 

 

1. 고진(64) 한국방송 영상산업진흥원 원장, 목표 MBC대표이사 사장, MBC 보도본부장
2. 김광동(46) 현,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현, 한국발전연구회 부회장
3. 김우룡(66) 현, 한양대 석좌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MBC 편성기획부장
4. 남찬순(60) 현, 고려대 초빙교수, 동아일보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
5. 문재완(48) 현, 한국외대 법대교수, 매일경제신문 기자
6. 정상모(61) 민주언론운동연합 부이사장, 한겨레 민족국제부장, 편집부국장
7. 차기환(46) 현, 우정합동법률사무소 공동대표변호사,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8. 최홍재(40) 현,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9. 한상혁(48) 현,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방송위원회 기금관리위원회 위원

 

 

친일 수구 세력인 '뉴라이트(시민정신으로 이름을 바꾸기는 바꿨는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는가)' 출신이(김우룡, 차기환, 최홍재) 3명, 동아일보 논설위원(남찬순) 1명, 매일경제신문 기자(문재완) 1명. 극우(?) 성향 MBC 개혁론자(김우룡) 1명. 9명 가운데 6명은 MBC를 작정하고 정권에 충성하도록 길들이고자, 이명박 정권이 임명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진정한 미디어 산업 발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런 이들이 MBC에게 시대에 뒤쳐지는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책임을 묻겠다고 설쳐댄다. 이에 조중동 또한 신이 나서 사설로 지원 사격을 하고 있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엄기영 사장은 외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지만, 그 선언이 왠지 모르게 초라해 보인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력이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서글픔 속에서도 어떻게든지 희망을 찾는다. 신경민 아나운서가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할 때 보여준 촌철살인 마무리 발언은 매우 많은 사람들을 후련하게 했다. 엄기영 사장이 보여주는 더러운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결단력 또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신경민 아나운서가 보고 싶다. 엄기영 사장이 뉴스데스크에서 보여줬던 깔끔하면서도 진중한 진행도 다시 보고 싶다. 그러면서 'MBC 뉴스데스크'는 정권 앞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이 썩어빠진 사회를 또렷하게 비판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갑자기 김주하 아나운서가 보고 싶다.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읽었던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가 MBC에 관한 단상 속에서 떠올랐다. 1997년에 처음으로 MBC에 입사한 뒤 그녀가 겪은 모든 일과 고뇌가 담긴 그 책을 읽고 되새기면서, 당찬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MBC에서 방영하는 'MBC 뉴스데스크'를 군대에서 꾸준히 본 기억이 자꾸만 겹쳐졌다. 그러면서 앞에서 계속 이야기한 'MBC 뉴스데스크'가 지금 내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어떤 구실을 했는지 스스로 되새겼다.

 

깔끔한 진행과 논리로 명성을 쌓았던 김주하 아나운서가 지금도 그대로 MBC에서 이 시국을 명쾌하게 진단해 주고 있을 것인지 갑자기 궁금하기 짝이 없어졌다. TV를 끊은 뒤 항상 인터넷으로 신문만 읽었는데, 오랜만에 'MBC 뉴스데스크'를 틀어서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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