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간다
박양근 지음 / 한언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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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5일. 나와 여러 동기를 태운 건빵 버스(군용 버스 색깔이 군용 건빵 봉지 색깔과 똑같을 뿐만 아니라, 모양이 건빵처럼 직사각형이라서, 흔히 건빵 버스라고 부른다)는 해병대교육훈련단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달렸다. 훗날 전역할 때도 그렇게 해병대 제 1사단 정문을 통과할 것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갓 수료한 이병이었기에, 그저 해병대교육훈련단을 빠져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누구라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뛸 지경이었다.
 

그토록 무섭기 짝이 없던 교관들도 우리가 수료할 때가 다 되어가자 갑자기 그들에게서는 절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냥함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를 마산까지 인솔한 교관이 버스 안에서 보여준 그 친절함도 우리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2월 초에 훈련단에 들어가서 3월 말에 수료했으니, 자칫하다가는 교관들도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는 턱도 없는 말을 믿을 뻔했다.

 

마산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해군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는 우리를 해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해군행정학교 안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민간인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훈련단에서 갓 수료한 이병들에게는 정말 그만한 파라다이스가 없었다. 밥도 양껏 먹을 수 있었고 PX도 갈 수 있었고, 행사 때도 훈련단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간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정한 시간마다 여유롭게 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종일 훈련을 받느라 온 근육이 비명을 질러댈 필요도 없었다. 훈련 대신 종일 공부를 해야 했다. 낙제를 하면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우리 기수는 다행히 낙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덧붙여서 말썽도 그다지 피우지 않는 편이었기에, 교관에게서 칭찬도 받았고 수료하기 전에 중국집에서 그토록 귀한 자장면과 탕수육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 동기들과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던 적은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먹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포상 휴가를 노리고 군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시험을 한 번 잘 못 치자마자, 바로 학과(?) 공부는 낙제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마침 이 책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와 같은 책이 많아서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간 결산 소감문인 '2006년을 되돌아보다 - 2월 초순 ~ 4월 중순'에도 썼듯이, 나는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온갖 정신 혼란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그 정신 혼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맨 처음으로 도와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 남자라면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 군대이다. 자기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헌법 제 39조 1항에 따라 좋든 싫든 군대에 가야 한다. 문제는 거기에 '모든 국민'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든지 빠지려고 안달인 놈(제목에서 대놓고 놈이라고 하니 나도 놈이라고 하겠다)이 넘쳐나는 마당에, 군대에 얼마든지 가겠다고 웃는 놈은 그야말로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다.

 

나는 군대에 가기 전에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기대 때문에 웃어볼 수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지난 시간 동안 해낸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2년 동안 사회와 단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서 손해만 보는 건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웃기는커녕 태연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모든 가능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된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군대에 갈 수 없는 가능성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책은 단 한 가지뿐이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지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수많은 예비역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군대에서 금쪽 같은 20대 인생에서 무려 2년을 날리게 될 수밖에 없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는 제목은 결국 그런 뜻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내가 싫어하는 말이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좀 더 솔직하게 '피할 수 없으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되도록 많이 얻어내라고 앞에서 했던 그대로 말한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이 책에서는 매우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에 무조건 거부감만 느끼지 말고 조금이라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이 책이 매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군대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1~2학년 때는 많은 남자 선배들을 군대에 보내고 복학한 남자 선배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2006년 2월에는 나도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군대에 갔다. 2008년 2월에 전역한 뒤에는 나도 복학생이 되어 먼저 복학한 남자 선배들과 여러 후배들에게서 환대를 받았고, 이제는 후배들이 전역하고 복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축하와 위로를 건넨다. 그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에게든지 삶은 소중하며, 그 삶을 알차게 꾸려나갈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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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타크래프트 1
박민서 지음 / 경성라인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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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학교 1학년 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만났다. 그 때가 1998년이니까 확장판인 '브루드워(BroodWar)'가 처음 나타난 시기이다. 그 때까지 컴퓨터 오락이라고 해 봐야 테트리스, 고인돌, 슈퍼마리오, 헥트리스 따위 오락밖에 모르고 있던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하자마자 푹 빠져 버렸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면서 온 나라에 PC방이 마구 생겨났다. 그 당시에는 PC방 요금이 1시간에 1500원이었는데, 새벽에는 1000원이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3000원을 들고 새벽같이 일어나 PC방에 달려가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아침잠이 매우 많은 편인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게임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많고 크다. 그런데 그것을 다 이야기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일단 이야기하겠다. 공상 과학 소설을 쓰는데 푹 빠졌다는 것이다. 내 소설은 그럭저럭 유명한 편이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나는 그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다. 물론 공부도 안 하고 그런 짓이나 하는 나를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매우 못마땅해 하셨지만 말이다.

공책 10여 권에 300쪽이 넘는 소설을 썼는데, 나름대로 온갖 정성을 쏟았다. 과학책을 읽고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설명하려고 애썼고, 평가가 좋은 소설을 읽으며 좀 더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를 좀 쓰고 싶어서 영어를 나름대로 공부했다. 하지만 지금 읽어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내가 쓴 글을 보고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쓴 스타크래프트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 가운데 '머린의 꿈', '소설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책인 '소설 스타크래프트 저그전'이 가장 인상 깊은 책이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스타크래프트에서 나오는 종족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들은 내용이야 작가가 다채롭게 꾸몄지만, 한결같이 기본 가정은 게임과 다르지 않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이 세 종족이 살아남으려고 코프룰루 섹터가 있는 은하계에서 벌이는 전쟁 속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소설 스타크래프트 저그전'은 다르다. 원래는 고대 종족 젤 나가가 프로토스와 저그를 창조했지만, 여기에서는 프로토스는 아예 나오지 않으며 저그도 '안전협의회'라는 군부가 만들어 낸 괴물로 나온다. 주무대도 코프룰루 섹터가 있는 은하계가 아니라 지구가 개척한 자원 채취 행성이다.

행정부이며 사법부인 지구사령부와 군부인 안전협의회가 온 세상을 통치하는 뒷날. 지구에 있는 모든 자원이 거의 바닥나고 인류는 살아남으려면 우주로 진출해야 했다. 하지만 우주 진출 계획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명령에 잘 따르는 군부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군부는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지구사령부는 죄수 부대를 이용하여 우주를 개척했고, 자원 채취 행성을 개척하여 다시 인류 문명을 유지한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주는 혜택에서 자원 채취 행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차단당했다. 행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대 볼 때 매우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친다. 안전협의회가 몰래 만들어 낸 저그라는 괴물이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군부, 곧 안전협의회는 정치계에서 힘을 크게 잃었고, 전쟁이 없는 사회에서 군부 폐지론이 차츰 커지자 위기를 느끼고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자원 채취 행성 여섯 곳 가운데 자원 생산량이 가장 많은 테란 행성에 괴물을 나타나게 하여 자원 채취를 어렵게 하고, 자원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때 그들이 괴물을 막아서 인류 문명을 유지하는데 힘쓰고 있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계획대로 잘 나갔다. 지구사령부와 안전협의회가 힘을 다투는 동안 테란 행성 사람들은 극한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주사위가 잘 굴러가다가 멈춰버린다. 테란 행성 총사령관인 커먼이 그 음모를 알아채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지구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연결한다. 독립 운동은 결국 성공한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안전협의회 의장 앨런 앰브리의 부관 숀 브리슨이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앨런이 자기를 신임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자, 그를 감옥에 가두고 커먼에게 빌붙는다. 커먼은 지구로 가서 인류가 모두 잘 살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이래나 저래나 정치는 더럽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영웅은 위대하다는 느낌은 이 소설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소설에서든지 볼 수 있는 구조가 여기에도 다 나타나 있다. 사실 음모, 저항, 배신 따위로 이루어진 구조를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고 지루해 할 필요는 없다. 얼마나 많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확실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그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 양자 과정은 우주를 나눈다. 그 때문에 우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서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한다.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기에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끝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렇기에 한 가지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내 마음에 가장 들지 않는 부분을 제시하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지구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어 단일 통치체제가 이루어졌으며, 정치체제는 기능에 의해서 행정을 맡아보는 지구사령부와 군사적 사안을 관장하는 안전협의회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민족이나 이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졌으며, 전 인구의 90% 이상이 혼혈이 되었다. 정치적 이슈가 사라졌으며, 각 민족 고유의 역사는 과거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철학적 사고는 따분한 것이 되어 기피되었다. 인류는 추구해야 할 이상을 잃어버렸고 오직 개인적인 행복만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 발달된 과학기술이 가져다 주는 안락한 문명에 젖어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공상 과학 소설을 뒤적여 보면 반드시 맨 처음에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나타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 내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글을 써 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 정부가 나타나고, 영어가 공용어가 되며, 사람들은 극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문명을 누리는데 푹 빠지고, 민족이 사라지고, 철학이 사라진다……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제법 많은 공상 과학 소설에서 한결같이 그 가정이 나타나고, 이 소설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생각도 하지 않는가 보다. 이런 세상을 글로 쓰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글을 썼을까?

이는 신자유주의가 몰고 오는 끔찍한 흐름과 잘 연결된다. 인류에서 2할밖에 안 되는 가진 자들이 나머지 8할을 지배하는 사회를 당연한 것처럼 몰아가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민중을 위한 철학, 역사, 민족 의식 따위는 필요없다. 영향력을 넓히는데 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무식한 것들은 그저 자기들이 주는 것이나 받아먹고 자기 말만 잘 들으면 그만이다. 얼마나 역겹고 치졸한 생각인가! 이 소설에서도 지구사령부와 안전협의회가 지구 지배력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동안 그저 자원을 쓰면서 즐거움을 좇기에 바쁜 사람들이 나온다. 자원이 제대로 공급되기만 하면 그만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없다. 철학? 역사? 사회학? 그런 것을 뭐하려고 알아야 해? 이렇게 편안하고 좋은데 그런 것이 왜 필요해?

그런데 요즘 신자유주의자들이 원하는 바가 예전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판치고, 인문학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라. 건실한 생각과 철학을 확립하기는커녕 그런 고민도 제대로 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나라는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뇌를 단련하다'를 읽고 감상문을 쓸 때 제기했던 문제, 곧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간단하게 무시해 버리는 정말 이상한 풍토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어찌나 사람들이 고민을 안 하고 그저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지 알 수 있으니,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래서는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클럽'에서 지만원은 시스템클럽 회원들은 정신 귀족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물론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헛소리만 늘어놓는 정신 귀족이기에 그 말도 헛소리가 되어 버렸지만,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충분하다. 우리는 깨어나서 생각해야 한다. 생각도 하지 않는 바보가 되면 안 된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바보가 되어 버렸지만, 다행히 그들과 견주어 볼 때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다. 여전히 그 크고 잘못된 흐름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점에서 특히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으며,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부끄럽다. 아직 갈 길이 험하고 멀다.

비록 이 소설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고민하고 있던 한 가지 주제를 풀어내는데는 크게 성공했다. 그리고 상당히 이야기도 짜임새 있고 재미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산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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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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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내가 '뇌를 단련하다' 다음으로, 곧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나는 존경하는 인물이 남긴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류비셰프가 쓴 책은 전혀 구할 수 없었기에 매우 안타까웠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여전히 살아있고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렇기에 신간 서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그가 쓴 책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21세기 지의 도전', '랜덤한 세계를 탐구한다', '우주로부터의 귀환', '임사체험',……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글을 쓰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 온 사람이기에, 처음 읽는 사람은 과연 한 사람이 쓴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 주제가 다양하다. 이런 책들을 읽기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을 일단 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책표지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책꽂이 안에 책이 빈틈없이 가득 꽂혀 있는 모습이 책표지에 나와 있다.다치바나 다카시가 거의 살고 있는 '고양이 건물(예술가 세노 갓파가 쓴 '다치바나 씨의 작업실 "고양이 빌딩" 전말기'가 나와 있다)'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일하면서 저 책을 다 읽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책꽂이를 바라보면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과 커다란 책꽂이에 가득한 책을 바라보면서 나는 군침을 삼킨다. '읽다'와 '쓰다'라는 동사를 보면서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아무리 써도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다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것이 내가 만성 불안증을 앓는 한 가지 까닭이 된다. 젊을 때는 그럴 수 있다면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나를 위로했지만, 여전히 나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2005년 3월에 나는 내가 가진 책을 처음으로 분류했다. 사실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생각을 실천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일을 한 뒤 참 내가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나는 엄청나게 세세하게 나뉘어 있는 지식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몇 가지나 깊이 있게 공부했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그런데 막상 눈으로 확인한 결과는 너무 엄청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이미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기에, 그가 거침없이 주장하는 바가 내 가슴을 무지막지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과 자료를 정리해 주는 비서를 따로 둬야 할 정도로 많은 책과 자료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몽땅 읽는다고 들은 뒤에는 정말 질려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괴로워하다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그 책을 샀다. 그 책이 바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이다.

혼자 공부하는 방법, 책읽기에 관한 생각, 출판에 관한 생각, 말과 이미지에 관한 생각, 서재 이야기, 작업 이야기, 지식 세계에 대한 생각, 평론가로 활동하게 된 배경 따위 온갖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잡지나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책이기에, 좀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서 산만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내가 보기에는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 단점(?)을 충분히 메우고 남을 만큼 내용이 알차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읽는 사람 몫이다. 하지만 나중에 평론가가 안 된다 하더라도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독서론, 서재론, 작업론은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차근차근 읽으면서 나는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평생 동안 공부에 몰두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아직은 내 의지가 매우 부족하기에, 학문에 몰두할 수 있도록 계속 거듭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학문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국문학자 조윤제가 쓴 '나의 학구생활'과 함께 읽어 볼만한 책이다. 그리고 '사색기행'과 함께 다치바나 다카시에 관해서 알기에 매우 좋은 책이다. 이 책도 다 읽었으니, 이제 '사색기행'을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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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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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08년 12월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기 전부터 임용고시 준비 계획을 세웠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계획했던 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그냥 흘러가 버렸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제대로 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공 원서 몇 백 쪽 읽고, 영어 회화 연습을 20시간 넘게 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매 순간마다 닥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시간통계와 함께 살아온 지난 5년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으면서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 후회하고 있다. 설사 내가 계획대로 일을 다 했다 하더라도, 2009년 11월에 나와 함께 시험을 칠 다른 모든 수험생들 가운데 대부분이 나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2009년 1월 또한 실패했다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못난 자아가 원망스러울 때는, 항상 평소에 쓸모없는 책이라고 했던 성공 우화나 성공한 인물들이 쓴 자서전을 찾게 된다. 이 책 '마시멜로 이야기'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군대에서 이런 책을 열 권 넘게 읽으면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만 계속 했는데, 지금 그 책들을 다시 찾고 있는 내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유혹은 성공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이다. 성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얼마나 심하게 비틀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개인 비서와 운전수가 항상 붙어 있는 멋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장님이 될 수는 없다.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산 1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달콤한 '마시멜로'를 계속 먹었기 때문이다. 가장 달콤한 마시멜로라는 성공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맛이 좋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계속 먹었다. 분명히 맛은 있었다.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찰리가 그랬던 것처럼 배가 약간 고프다고 해서 햄버거를 성급하게 우걱우걱 씹어삼켰고, 그 때문에 포엘라 같은 진수성찬은 더는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억만장자가 되느니 김태희 같은 돈 많고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하느니 뭐 어쩌느니 그 따위 성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크게 성공하는 방법은, '사상 최악'이라는 취업 한파를 이겨내고 2009년 중등교원 임용 '경쟁'고시를 통과하는 것뿐이다. 한 솥 밥 먹으면서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모든 이들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당장 내 앞날이 어두워진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짜증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기적을 일으켜서 이런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지금 당장 임용고시를 쳐야 하는 내 삶이 바뀔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깝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수많은 사범대학생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정부는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국민들 목소리를 들어준다던 노무현 정권 때도 그 모양 그 꼴이었는데, 아예 귀가 없고 입만 세 개가 뚫린 듯한 악귀 같은 이명박 정부 앞에서는 목소리를 높여봐야 아무 소용 없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100만 명이 들고 일어났지만 그것마저도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이명박을 바라보면서 엄청난 좌절을 맛 본 탓인지, 나는 너무 나약해져 있었다. 몸이나 마음이나 모두 그렇다.

 

그랬던 지난 세월과 지금 나약해진 몸과 마음을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지금일 뿐이다. 이제 지난 해까지 그랬던 것처럼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그나마 작은 성공이라도 거둘 확률은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주변에 수미산만큼 쌓여 있는 마시멜로 따위는 모두 무시해야 한다. 가장 크고 달콤하고 맛있을 것 같은 마시멜로를 한 가지 예로 들자면, 자취방 바로 앞에 있는 바에서 나를 기다리는 향긋하면서도 독한 칵테일과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매우 친해진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따위는 이제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찰리도 고등학생 때 멋진 차를 몰고 다니면서 여자들 사이에서 매우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차를 유지하느라 일을 계속 해야 했고 그 때문에 공부를 못해서 운전 기사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2008년은 이미 숱한 착오 끝에 실패로 끝났다고 단정지었고, 결산도 2009년 1월 초에 끝냈다. 그러니 2008년 이전 세월은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달에 내가 얼마나 많은 마시멜로를 까먹었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는지 차분하게 분석하는 게 좋다. 그래야 4학년 1학기가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2월이라도 공부만 하면서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헛된 지출 목록(평균치)(2009년 1월 현황)>

 

 

1. Sega Virtua Tennis - 200원 x 30일 = 6000원

 

2. 부산대학교 순환버스비 - 800원 x 30일 = 24000원

 

3. 자판기 음료수 - 1000원 x 30일 = 30000원

 

4. 그 밖 잡다한 것 - 500원 x 30일 = 15000원

 

합계 - 75000원

 

 

<필수 예상 지출(평균치)>

 

 

1. 밥값(금정회관) - 5000원 x 30일 = 150000원

 

-> 도시락을 준비하면 줄일 수도 있다.

 

2. 책값 - 55000원

 

-> 새 학기 초에는 더 들 수도 있다.

 

3. 교통비 - 2000원 x 30일 = 60000원

 

4. 적금 - 100000원

 

5. 납입금(전기, 가스, 인터넷, 휴대전화) - 70000원

 

 

합계 - 480000원

 

 

과외 지도로 벌 수 있는 돈을 생각해 볼 때 남는 돈은 아무리 아껴도 겨우 5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에도 눈치가 매우 심하게 보이는 판이니, 겨우 5만 원이라도 어떻게든지 아껴서 한 달 동안 잘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그래도 부모님에게 등록금과 방세 얻어쓰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이는데, 손을 더 벌려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 눈치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분석은 사실 1월에도 잘 들어맞는다. 1월에 이미 위에서 분석한 대로 돈을 헛되이 많이 썼다. 그 때문에 공공 요금을 다 내고 나니까, 인터넷 강의와 교재비가 없어서 부모님에게 돈을 더 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잘만 아꼈더라면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됐는데, 이런저런 마시멜로를 먹다 보니까 돈이 사라져 버렸다.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을 냉정하게 따져보니까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찰리와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침형 인간'을 그렇게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면서 읽어 놓고도, 요즘은 오전을 잠으로 다 보내는 바람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날려먹었고,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는 시간은 아예 낼 수가 없어서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느라 돈을 많이 썼다. 무료로 밥을 주는 기사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햄버거 따위를 마구 사 먹었던 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찰리가 포커를 쳤다면 나는 세가 버추어 테니스를 즐겼고, 이래저래 따져보니까 나와 찰리가 너무나도 많이 겹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한탄할 필요는 없다. 찰리도 그런 자기 모습이 한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마시멜로를 포기하고 '성공'이라는 가장 크고 달콤하고 맛있는 마시멜로를 먹고자 꾸준히 힘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대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기반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나와 같은 모습이었던 찰리도 해냈는데 내가 하지 못한다는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가장 크고 달콤하고 맛있는 마시멜로를 포기하고 눈 앞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시멜로에 손을 대는지 여기에서 시시콜콜 이야기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따위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깨닫고,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분석 끝에 나온 결과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과는 분명하다. 찰리가 대학에 합격했으니 나는 올해 임용고시에 반드시 합격하겠다. 그리고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를 반드시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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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무려 6명이나 죽었다. 용산 지구 재개발 계획이 공포된 뒤 보상금이 새로운 삶을 꾸려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용산구청 앞에서 정부에서 그토록 권장하는 '평화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용산구청 앞에 붙어 있던 것은 '떼 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라는 현수막이었다. 이미 넉넉하게 보상 받고 재개발 계획이 현실이 된 뒤 거기에서 돌아올 막대한 이득만 생각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이들도 용산구청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2년 동안이나 온갖 평화로운 방법을 전부 다 써 봤지만 사시사철 붙어 있는 현수막만큼이나 용산구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화가 폭발한 철거민들은 강경 투쟁을 결정했고 용역 업체와 강경 진압에 대비하고자 망루를 쌓고 여러 가지 생필품과 시너 따위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대화와 소통 따위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답만 강요하는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그러자 정부는 곧장 본색을 드러냈다. 협상도 제대로 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망루를 쌓고 대치하기 시작한 지 25시간 만에 전문 테러리스트 같은 심각한 범죄자들을 잡는 데나 동원될 경찰특공대가 최후 저항 수단으로 화염병을 준비해 놓았던 철거민들을 '때려잡고자' 투입되었다. 진압 작전 전문가들조차 이번 작전은 시작부터 어긋난 실패작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평소에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법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작전 결과는 참담했다. 철거민들은 촛불을 든 100만이 넘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법 폭력 시위꾼'으로 몰렸고 강제 진압 대상이 되었다. 안전 확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철거민들뿐만 아니라 경찰특공대원 1명도 아까운 목숨을 잃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그 뒤에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야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정부 편에서는 '불법 폭력 시위꾼'들이 또다시 법을 우습게 알고 법치 근간을 뒤흔드는 난동을 피워 이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낳았다고 일갈하고, 정부 홍보 언론 같은 주류 언론들은 '정의로운' 경찰이 죽었고 그를 죽인 이들은 철거민들이 내놓은 돈까지 떼먹으면서 비리를 저지르는 '전문 불법 폭력 시위꾼'이라고 선전했다. 그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지만, 이미 지난 시간 동안 민중을 탄압하고 자기 이득만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수구 세력이었기에 그 오만방자함과 뻔뻔함은 도를 넘어섰다.

 

그 뻔뻔한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들을 지지하는지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 보기 바란다. 수구 세력 덕분에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필요 없다. 자기들도 월급 받아서 그냥 밥만 먹고 살면서 세상이 온통 썩어 빠졌다고 욕을 바가지로 하는 주제에, 왜 이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근원을 옹호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한 결 같은 논리만 들이대며 무작정 비난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자기들은 이번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자기들은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올바르게' 살고 있는 '준법 정신'이 투철한 '모범 국민'이라서 계속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것 같은가? 경제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에서 자기 맡은 바를 열심히 하기만 하면 성공이 보장될 것 같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수구 세력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요즘에는 성공이라는 말도 가당찮게 들린다. 과연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에서 누구든지 제대로 성공할 기회가 보장이 되기라도 하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특권 의식을 지닌 사람들은 서민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자기들 능력 없으면 능력 없는대로 사는 게 당연한 것이며, 그 따위 능력이 없어서 괜히 지금 길거리에 나자빠져서 떼 쓰고 폭력 시위나 하는 사람들이라고 일갈하는 이들이 왜 같은 서민이어야 하는가? 서민이 자기와 다를 바가 없는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빴던 철거민들을 비난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가?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순수 문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강하게 느낀다. '운동권'과 '비운동권', '이성에 따른 준법 정신이 투철한 민주 시민'과 '불법 난동을 일삼는 이성 따위는 없는 이기주의자', 이 따위 모든 것에 '순수'와 '불순'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분법이 적용되고 있는 터라 더욱 그렇다. 철학계에서도 사변 철학이 진정한 진리를 발견하는 왕도라는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당에, 순수 문학이라는 것이 이 시대 속에서 도대체 무슨 긴요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저 회의가 들 뿐이다.

 

류비셰프가 주장한 바를 나름대로 고쳐서 지금 현실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더러운 현실을 떠나 순수한 이상을 문학 속에 담는 것을 추구하는 게 진정으로 이 세상과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며, 상아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그고 현실이 요구하는 바를 뻔뻔하게 외면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진정으로 순수한 문학과 시간을 헛되이 날리기만 하는 말장난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과 사회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실상은 순수 문학도 사회 참여 문학도 아닌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글쓰기에만 매달리는 이들도 넘쳐난다. 둘 다 이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30년 가까이 꾸준히 변하지 않는 시대상을 반영해서 사랑받고 있는 걸작을 읽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리라. 

 

작가 조세희는 이명박 정권은 30년 전보다 더 악랄한 정권이라면서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대한민국을 노다지 금 캐 가듯이 착취하라고 생겨난 나라인 줄 알고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추악한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문학이 절실하다. 이와 같은 명작이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자책만을 일삼아 오고 분노로 이 책을 읽고 글을 끼적이는 부끄러운 대학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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