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1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08년 12월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기 전부터 임용고시 준비 계획을 세웠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계획했던 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고,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그냥 흘러가 버렸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제대로 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공 원서 몇 백 쪽 읽고, 영어 회화 연습을 20시간 넘게 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매 순간마다 닥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시간통계와 함께 살아온 지난 5년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으면서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 후회하고 있다. 설사 내가 계획대로 일을 다 했다 하더라도, 2009년 11월에 나와 함께 시험을 칠 다른 모든 수험생들 가운데 대부분이 나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2009년 1월 또한 실패했다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못난 자아가 원망스러울 때는, 항상 평소에 쓸모없는 책이라고 했던 성공 우화나 성공한 인물들이 쓴 자서전을 찾게 된다. 이 책 '마시멜로 이야기'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군대에서 이런 책을 열 권 넘게 읽으면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만 계속 했는데, 지금 그 책들을 다시 찾고 있는 내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유혹은 성공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이다. 성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얼마나 심하게 비틀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개인 비서와 운전수가 항상 붙어 있는 멋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장님이 될 수는 없다.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산 1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달콤한 '마시멜로'를 계속 먹었기 때문이다. 가장 달콤한 마시멜로라는 성공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맛이 좋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계속 먹었다. 분명히 맛은 있었다.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찰리가 그랬던 것처럼 배가 약간 고프다고 해서 햄버거를 성급하게 우걱우걱 씹어삼켰고, 그 때문에 포엘라 같은 진수성찬은 더는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억만장자가 되느니 김태희 같은 돈 많고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하느니 뭐 어쩌느니 그 따위 성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크게 성공하는 방법은, '사상 최악'이라는 취업 한파를 이겨내고 2009년 중등교원 임용 '경쟁'고시를 통과하는 것뿐이다. 한 솥 밥 먹으면서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모든 이들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당장 내 앞날이 어두워진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짜증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기적을 일으켜서 이런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지금 당장 임용고시를 쳐야 하는 내 삶이 바뀔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깝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수많은 사범대학생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정부는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국민들 목소리를 들어준다던 노무현 정권 때도 그 모양 그 꼴이었는데, 아예 귀가 없고 입만 세 개가 뚫린 듯한 악귀 같은 이명박 정부 앞에서는 목소리를 높여봐야 아무 소용 없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100만 명이 들고 일어났지만 그것마저도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이명박을 바라보면서 엄청난 좌절을 맛 본 탓인지, 나는 너무 나약해져 있었다. 몸이나 마음이나 모두 그렇다.

 

그랬던 지난 세월과 지금 나약해진 몸과 마음을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지금일 뿐이다. 이제 지난 해까지 그랬던 것처럼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그나마 작은 성공이라도 거둘 확률은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주변에 수미산만큼 쌓여 있는 마시멜로 따위는 모두 무시해야 한다. 가장 크고 달콤하고 맛있을 것 같은 마시멜로를 한 가지 예로 들자면, 자취방 바로 앞에 있는 바에서 나를 기다리는 향긋하면서도 독한 칵테일과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매우 친해진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따위는 이제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찰리도 고등학생 때 멋진 차를 몰고 다니면서 여자들 사이에서 매우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차를 유지하느라 일을 계속 해야 했고 그 때문에 공부를 못해서 운전 기사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2008년은 이미 숱한 착오 끝에 실패로 끝났다고 단정지었고, 결산도 2009년 1월 초에 끝냈다. 그러니 2008년 이전 세월은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달에 내가 얼마나 많은 마시멜로를 까먹었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는지 차분하게 분석하는 게 좋다. 그래야 4학년 1학기가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2월이라도 공부만 하면서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헛된 지출 목록(평균치)(2009년 1월 현황)>

 

 

1. Sega Virtua Tennis - 200원 x 30일 = 6000원

 

2. 부산대학교 순환버스비 - 800원 x 30일 = 24000원

 

3. 자판기 음료수 - 1000원 x 30일 = 30000원

 

4. 그 밖 잡다한 것 - 500원 x 30일 = 15000원

 

합계 - 75000원

 

 

<필수 예상 지출(평균치)>

 

 

1. 밥값(금정회관) - 5000원 x 30일 = 150000원

 

-> 도시락을 준비하면 줄일 수도 있다.

 

2. 책값 - 55000원

 

-> 새 학기 초에는 더 들 수도 있다.

 

3. 교통비 - 2000원 x 30일 = 60000원

 

4. 적금 - 100000원

 

5. 납입금(전기, 가스, 인터넷, 휴대전화) - 70000원

 

 

합계 - 480000원

 

 

과외 지도로 벌 수 있는 돈을 생각해 볼 때 남는 돈은 아무리 아껴도 겨우 5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에도 눈치가 매우 심하게 보이는 판이니, 겨우 5만 원이라도 어떻게든지 아껴서 한 달 동안 잘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그래도 부모님에게 등록금과 방세 얻어쓰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이는데, 손을 더 벌려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 눈치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분석은 사실 1월에도 잘 들어맞는다. 1월에 이미 위에서 분석한 대로 돈을 헛되이 많이 썼다. 그 때문에 공공 요금을 다 내고 나니까, 인터넷 강의와 교재비가 없어서 부모님에게 돈을 더 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잘만 아꼈더라면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됐는데, 이런저런 마시멜로를 먹다 보니까 돈이 사라져 버렸다.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을 냉정하게 따져보니까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찰리와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침형 인간'을 그렇게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면서 읽어 놓고도, 요즘은 오전을 잠으로 다 보내는 바람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날려먹었고,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는 시간은 아예 낼 수가 없어서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느라 돈을 많이 썼다. 무료로 밥을 주는 기사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햄버거 따위를 마구 사 먹었던 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찰리가 포커를 쳤다면 나는 세가 버추어 테니스를 즐겼고, 이래저래 따져보니까 나와 찰리가 너무나도 많이 겹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한탄할 필요는 없다. 찰리도 그런 자기 모습이 한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에 있는 수많은 마시멜로를 포기하고 '성공'이라는 가장 크고 달콤하고 맛있는 마시멜로를 먹고자 꾸준히 힘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대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기반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나와 같은 모습이었던 찰리도 해냈는데 내가 하지 못한다는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가장 크고 달콤하고 맛있는 마시멜로를 포기하고 눈 앞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시멜로에 손을 대는지 여기에서 시시콜콜 이야기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따위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깨닫고,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분석 끝에 나온 결과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과는 분명하다. 찰리가 대학에 합격했으니 나는 올해 임용고시에 반드시 합격하겠다. 그리고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를 반드시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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