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간다
박양근 지음 / 한언출판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2006년 3월 25일. 나와 여러 동기를 태운 건빵 버스(군용 버스 색깔이 군용 건빵 봉지 색깔과 똑같을 뿐만 아니라, 모양이 건빵처럼 직사각형이라서, 흔히 건빵 버스라고 부른다)는 해병대교육훈련단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달렸다. 훗날 전역할 때도 그렇게 해병대 제 1사단 정문을 통과할 것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갓 수료한 이병이었기에, 그저 해병대교육훈련단을 빠져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누구라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뛸 지경이었다.
 

그토록 무섭기 짝이 없던 교관들도 우리가 수료할 때가 다 되어가자 갑자기 그들에게서는 절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상냥함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를 마산까지 인솔한 교관이 버스 안에서 보여준 그 친절함도 우리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2월 초에 훈련단에 들어가서 3월 말에 수료했으니, 자칫하다가는 교관들도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는 턱도 없는 말을 믿을 뻔했다.

 

마산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해군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는 우리를 해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해군행정학교 안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민간인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훈련단에서 갓 수료한 이병들에게는 정말 그만한 파라다이스가 없었다. 밥도 양껏 먹을 수 있었고 PX도 갈 수 있었고, 행사 때도 훈련단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간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일정한 시간마다 여유롭게 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종일 훈련을 받느라 온 근육이 비명을 질러댈 필요도 없었다. 훈련 대신 종일 공부를 해야 했다. 낙제를 하면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는데, 우리 기수는 다행히 낙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덧붙여서 말썽도 그다지 피우지 않는 편이었기에, 교관에게서 칭찬도 받았고 수료하기 전에 중국집에서 그토록 귀한 자장면과 탕수육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 동기들과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던 적은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먹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포상 휴가를 노리고 군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시험을 한 번 잘 못 치자마자, 바로 학과(?) 공부는 낙제하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마침 이 책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와 같은 책이 많아서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시간 결산 소감문인 '2006년을 되돌아보다 - 2월 초순 ~ 4월 중순'에도 썼듯이, 나는 군대에 들어가자마자 온갖 정신 혼란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그 정신 혼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맨 처음으로 도와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 남자라면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 군대이다. 자기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헌법 제 39조 1항에 따라 좋든 싫든 군대에 가야 한다. 문제는 거기에 '모든 국민'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군대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든지 빠지려고 안달인 놈(제목에서 대놓고 놈이라고 하니 나도 놈이라고 하겠다)이 넘쳐나는 마당에, 군대에 얼마든지 가겠다고 웃는 놈은 그야말로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다.

 

나는 군대에 가기 전에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기대 때문에 웃어볼 수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지난 시간 동안 해낸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2년 동안 사회와 단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 가능성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서 손해만 보는 건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웃기는커녕 태연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모든 가능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된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군대에 갈 수 없는 가능성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책은 단 한 가지뿐이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지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수많은 예비역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군대에서 금쪽 같은 20대 인생에서 무려 2년을 날리게 될 수밖에 없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는 제목은 결국 그런 뜻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내가 싫어하는 말이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좀 더 솔직하게 '피할 수 없으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되도록 많이 얻어내라고 앞에서 했던 그대로 말한다.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이 책에서는 매우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대에 무조건 거부감만 느끼지 말고 조금이라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이 책이 매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군대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1~2학년 때는 많은 남자 선배들을 군대에 보내고 복학한 남자 선배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2006년 2월에는 나도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군대에 갔다. 2008년 2월에 전역한 뒤에는 나도 복학생이 되어 먼저 복학한 남자 선배들과 여러 후배들에게서 환대를 받았고, 이제는 후배들이 전역하고 복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축하와 위로를 건넨다. 그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에게든지 삶은 소중하며, 그 삶을 알차게 꾸려나갈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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