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달라이 라마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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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 씨가 지은 '만화로 보는 불교 이야기'라는 만화책을 예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다. 모두 네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 역사, 이야기, 사상, 문화 따위를 잘 다루고 있어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 나름대로 불교에 관해 좀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고 어른들과도 가끔씩 종교를 이야기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전에는 종교에 관한 지식이 너무 없어서, 나는 그저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고 어른들은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식이었을 뿐,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한 뒤 심리학에 손을 댔다.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이라고 하면 서양 심리학이 절대로 우세하다. 그랬기에 일단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분석학을 기본으로 배웠고, 그 뒤에 여러 가지 이론을 배웠다. 동양에서 나온 이론은 전혀 배우지 않았다. 나는 왜 그런지 매우 궁금했지만 궁금증을 풀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에 지니고 있던 불교에 관한 지식과 심리학 지식이 서로 충돌하는 바람에 제법 어지러웠다. 또 나는 세월이 흐르면서 갈수록 극에 가까운 비관론자가 되어 버렸기에, 몸과 마음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사실 사람은 아는 만큼 행동하기는 정말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은 매우 뜻깊은 책이었다.

네 살 때부터 수행하고 명상하며 살아온 14대 달라이라마와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 커틀러는 사람이 사는데 영향을 미치는 마음에 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하워드 커틀러처럼 서양 심리학에 머리가 절어 있는 사람들은 달라이라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우 많은 것을 깨닫고 자기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것 가운데 많은 것을 버려야 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기에 내가 매우 부끄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학자들이 앞다투어 동양 사상을 연구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인류가 과연 지금과 같이 서양 사상에 젖어 산다면 과연 지구에서 인류 문명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너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대개 상생, 조화, 곧 공동체를 강조하는 동양 사상이야말로 인류 문명이 처한 위기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확신했다. 새롭게 조명받는 동양 사상 가운데 불교 사상은 매우 주목받고 있는데,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은 그 까닭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책표지에 "행복은 삶의 목표이며 삶의 모든 몸짓은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릇된 신념과 행동 때문에 스스로를 망쳤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달라이라마는 분명하게 밝힌다. 그 조건을 깨닫고 삶을 올바르게 꾸려 나간다면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질 수 있으며 저절로 세상도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분명히 삶을 새롭게 꾸려가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여전히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서 뭐라고 의견을 남기기에는 좀 찜찜하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내가 삶을 꾸려가는 방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계속 읽으면서 나를 바꿔보려고 계속 힘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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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 (보급판 문고본)
한창욱 지음 / 새론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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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하련솔 일정이 있어서 동아리방에 갔더니 세미는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학생회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에도 아무도 없었다. 할 일이 없어졌다. 요즘은 할 일이 없으면 무조건 읽을거리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기에, 저절로 눈이 학생회실 전체를 쭉 훑었다. 학생회실은 너저분하기는 하지만 읽을거리는 많다. 그렇기에 무엇을 읽어야 할 지 결정해야 했다. 일단 책꽂이에 시선이 꽂혔다. '경제사학습', '자본주의의 실체', '민중을 위한 철학', '올바른 윤리교육을 위한 방법론'……상당히 집중해야 하는 책들뿐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았는데 온갖 종이와 책으로 어지러운 책상 위에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이라는 귤색 표지를 한 책이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책을 집어들고 한 번 쭉 훑어보는 식으로 읽었다. 친절하게도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글자가 큼직했고 색깔도 파란색을 썼다. 그런 것을 훑어보기만 했더니 10분 만에 모두 다 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맨 앞쪽을 펼쳤는데 세미가 동아리방에 들어왔다. 며칠 뒤에 나는 학생회실에서 그 책을 모두 다 읽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저자가 기자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성공한 한국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같은 습관과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주제를 담은 짤막한 문장을 적고 그 아래에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와 생각을 풀어놓았다. 꼭 직장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꾸려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내용이 상당히 많다. 자기 개발 지침서라면 당연한 일이다.

매우 흔한 구성이다. 책 내용도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다. 뚜렷한 신념, 긍정하는 생각, 시간을 잘 활용할 것 따위는 빠질 수 없다. 가끔씩 독특한 생각을 풀어놓기는 하지만, 그것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아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충분한 사례와 근거로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육하 원칙만 따라서 그저 훈계하는 식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공부한 것이 유전자 속에 스며들어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터무니없는 견해도 가끔씩 나온다.

자기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책 치고는 좀 성의가 없는 것 같다. 책이 워낙 많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라서, 이 책 말고도 성공학에 관한 책은 서점에 넘쳐나기에 웬만한 책 아니면 내 눈길을 끌기 힘들다. 성공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이런 책에 나오는 내용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일부러 비판하는 투로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책이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고, 가치 판단도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거침없이 말할 자신은 없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성공학에 관해서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보다는, 차라리 성공한 사람들이 쓴 전기를 읽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그래도 뭔가 좀 아는 사람들이 짤막하게 간추린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아는 것을 정리하고 자기 행동과 습관과 생각을 반성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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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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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운데에서도 수원, 성남, 광명 같은 곳과 다르게 개발이 덜 된 편에 속하는 군포, 화성, 용인 같은 지역이 지니는 특성이 있었다. 도시는 커지고 인구는 늘어나지만 그에 걸맞은 행정, 문화, 치안 따위를 담당할 기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빈 틈을 파고들어 강호순이라는 살인마는 유유히 살인을 즐기고 다녔다. 살인마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것은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지만, 유난히 이번 사건은 독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경기도 개발 문제에 관해 몇 가지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긍정할 만도 하다. 특정한 지역에서 치안 문제가 일어난 까닭을 분석해 보고, 경찰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여러 가지 대책이 나타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미치광이들에게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경찰서 신설, 경찰 인력 증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대책 마련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강호순을 사형시키라고 요구한다. 강호순은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 당해 보지 않았으면 아예 말을 하지 마라면서 아주 간단하게 모든 반대 논리를 무시한다. 인육을 먹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크리스트 교도들을 찢어죽이려는 포악한 짐승을 보고 콜로세움에서 열광하며 죽음만을 외치는 로마 국민(이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시민이 아닌 국민이었다)들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지금 불어닥치고 있는 광풍을 직접 느껴보면, 이 광풍은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이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미친 짓이다. 사형제도 자체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사형제도로 반대 세력을 척살하는 데만 모든 관심을 집중했던 수구 세력이 언론으로써 그 광풍을 부추기고 있다. 강호순에 관한 기사는 아무리 살인마라도 어쩔 수 없는 '인간' 강호순이 지닌 인권마저 무시하고, 너무나도 지나치게 '살인마' 강호순에 관한 선정성과 자극만 넘치고, 양도 너무 많다. 마침 용산 참사 때문에 이명박 정부로 더욱 집중되고 있는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부수 효과도 톡톡히 거둬서, 그들은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치안 유지라는 명목 아래 오래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던 사형제 존폐 논란, CCTV 확대 논란, 흉악 범죄자 신상 정보 공개 논란 따위가 다시 고개를 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가 기본으로 삼고 있는 인권 존중 정신을 근본에서부터 말살하여,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온갖 폭압을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작업을 쉽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만약 수구 세력이 바라는 대로 된다면, 박종철 같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이 또 다시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루 만에 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미친 공권력 아래 목숨을 잃는 '인혁당 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 따위는 전혀 없다.

 

사형제 존폐 논란에 끼어들 때마다 내가 사형제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추천하는 예술 작품이 있다. 영화로서는 '데이비드 게일', 그리고 소설로서는 이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군대에서 읽을 때만 하더라도 사형수 정윤수와 그를 찾아가는 문유정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감과 고백과 참회와 용서 그 자체가 발산하는 눈부신 인간미에만 초점을 맞췄고, 실제로 그 덕분에 문학 작품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아늑한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사실 나는 이 글에 그 아늑한 즐거움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었다. 사형수 정윤수가 쓴 파란 공책(책에서는 '블루노트'라고 나온다)와 모니카 고모를 따라 정윤수를 찾아가는 문유정이 겪은 이야기를 병행하는 구성이 매우 참신하고 좋다는 생각만 했다. 죽음만 기다리는 사형수이고 자살을 세 번이나 시도했던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마침내 사람이 느끼는 감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사랑까지 자기도 모르게 느끼게 된다는 그 자체에 감동하기만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또다시 사회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문학 속에 스며들어 있는 논리와 감성을 해석해야 한다는 강한 의식에 사로잡힌 뒤에는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굳이 정윤수와 문유정이 만나면서 이어지는 그 미묘한 심리 자체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읽고 감동한 사람들이 정윤수에게 보여주었던 반응이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동생과 함께 삶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다가,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 정윤수다. 사람들은 정윤수가 쓴 파란 공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워했고,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랑을 사형수가 되고 난 뒤에야 겨우 느꼈는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결말에서는 안타까워하다 못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정윤수를 저 세상으로 보낸 사형제라는 제도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정당성과 효과를 의심했다. 그들은 아마 이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생명'이란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며, "때론 살아서 이 생을 견디는 것이 죽음보다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목숨이라도 분명 유지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때 이 책을 읽고 그렇게 감동해서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던 이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결국 그들이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동은 사이비 교주나 연예인을 무작정 추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수준 낮은 것일 뿐이었다는 말인가? 그들은 이 소설을 읽은 뒤에 사형제 존폐 논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필요한 온갖 사회학 개념과 기초 상식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정말 없다는 말인가? 사형제 역사, 현대 인권 개념 성립 역사, 법치주의 역사 같은 것을 제대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명박이라는 괴물은 이명박이라는 존재 자체가 유난히 특출나서, 시민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난관과 장치를 다 극복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근본에서 지탱하고 있는 철학, 사회학, 역사학 같은 인문학 소양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데, 아니 최소한 사회 혼란을 방지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소양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이 사회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무슨 판관 포청천이라도 된 것처럼 '저 놈의 목을 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은 한 결 같다. 자기 혈족이 그렇게 됐는데도 사형제를 폐지하고 인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그 따위 소리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강호순은 싸이코패스(psychopath)라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 인권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근본에서부터 잘못되고 감정에만 사로잡힌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며, 한 번 곰곰이 돌이켜 볼 의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

 

그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수구 언론은 마침 자기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용산 참사를 덮고자 강호순에 관한 치졸하기 짝이 없는 온갖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더니 드디어 강호순 얼굴까지 마음대로 공개해 버렸다. 더욱 무서운 일은 사람들이 명백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수구 언론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동조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감정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불쏘시개와 장작을 풍족하게 마련해 주니까, 불길이 너무 거세게 타올라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그 불길은 썩어빠진 모든 것을 맑게 바로잡는 깨끗한 불길이 아니라, 온갖 오물 위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천박한 불길이다. 그 불길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은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인권 의식, 배려 따위도 사라지고 있다.

 

조직 폭력배에 관한 영화가 나와서 성공을 거두더니 아이들이 커서 조직 폭력배가 되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조직 폭력배를 모방한 폭력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그토록 열심히 사형제 폐지를 외치던 사람들이, 유영철과 강호순을 바라보면서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사형제 반대론자는 강호순과 똑같은 사람 대접도 아까운 것들이라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게다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서 실종되었던 제주 어린이집 교사가 8일 만에 성폭행을 당한 뒤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고대 사회에서나 있었을 법할 온갖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사형 방법을 사람들이 부르짖고 있다. 도대체 이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이 지금 다시 주목받아야 하는 까닭이 분명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은 뒤에 사람들이 또다시 무작정 사형제 폐지를 외치는 것은 곤란하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광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줏대 없이 왔다갔다하는 자기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왜 그렇게 이성을 잃고 왔다갔다 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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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 담백 군대 이야기
주호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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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한 나는 찬장에 남아 있던 라면 두 개를 신 김치와 함께 삶아 먹고 한숨 푹 잤다. 그리고 깨어나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이상 관련 논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포스트 모던의 입장에서 본 이상의 시>, <일제의 식민지 문화 정책과 이상>, <이상, 그의 이상과 실체> 등 보기에도 숨이 막히는 제목들이 책상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렵게 논문 제목을 정하고 나서 막상 집필에 들어가려 하니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가야 할 지 막막했다.

 

 

장용민, 김성범 지음. '무한육면각체의 비밀' 83쪽

 

 

2008년 9월 29일. 힘겹게 눈을 떴더니 어머니에게서 전화 두 통이 와 있었고, 이부자리는 온몸을 자반고등어처럼 뒤집으면서 자는 나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서둘러 이불을 개고, 근질근질한 온몸에 비누거품을 묻힌 뒤 찬물로 씻어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맑아지니 온 방이 지저분해 보여서 도저히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약간 남아 있던 밥 먹다 그대로 놔 둔 그릇도 씻어서 찬장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낀 녹도 솔로 긁어서 없앴다.

 

갑자기 힘이 쭉 빠져서 다시 이부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책상과 책꽂이를 바라봤다. 꽉꽉 들어차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책꽂이와 온갖 잡다한 것들이 널부러져 있는 책상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책상과 책꽂이에 걸맞게 나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글을 썼는지 반성해 보면, 결과가 마음에 들 까닭이 절대 없기 때문이다. 그토록 짜증나고 무덥던 여름이 가고 책 읽고 글 쓰기에 가장 좋다는 가을이 왔지만,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서 그냥 이래저래 시간을 때우고 있다. 2008년 9월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부풀어 올랐던 벅찬 가슴은 어느새 나를 냉정하게 버린 그녀만큼이나 싸늘해져 버렸다.

 

지난 여름에 제본한 군 복무 결산 자료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2007년 9월, 곧 병장 1호봉 때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많은 성과를 올렸다. 2006년 9월에는 일병 2호봉이었기에 글을 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책 읽는 데도 여전히 눈치를 봐야 했지만, 병장이 된 뒤 내 손에 들어온 권력은 막강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개인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다. 2006년은 너무나도 힘들고 서러웠던 시기였기에, 그 시기에 쌓인 설움을 풀고자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막상 상병 6호봉이 되고 나니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7~8월이 그냥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동안 체계를 나름대로 잡아서 그런지, 9월부터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무조건 대대 간부들과 축구를 하면서 체력을 기를 수 있었다. 대대 간부들은 온갖 훈련에 오랜 시간 동안 단련이 된 사람들이라서, 원래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는 그 사람들과 축구를 하면 어김없이 파김치가 되곤 했다. 그런데도 그 파김치를 끌고 체력단련장으로 가서 근육을 키웠다. 대대장 님에게 누구보다도 군 복무를 더 열심히 한다는 칭찬도 들었다.

 

그렇게 힘들고 서러웠던 군 복무 때도 그렇게 열심히 자기 개발에 몰두했는데, 막상 그렇게 그리워하던 전역식 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결산을 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숱한 망언과 망동으로 얼룩진 지난 2008년보다 왜 2006~2007년이 더 알차게 느껴지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런 회의가 끝도 없이 이어지다 보니까 어이없게도 그렇게 싫던 군 복무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는 차원을 넘어서서 생각이고 말이고 모두 멈춰 버린다. 지나간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통계라는 객관 자료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현실과 진실은 항상 모순투성이다. 그토록 예전에 대한민국 국군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던 내가 막상 군인이 되고 난 뒤에는 정훈 교육 모범 사례로 인정 받기까지 했다. 군대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만 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나는, 지금 형편없이 나약해져 버린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며 흐느끼고 있다. 해병대 문화에 진저리를 치던 내가 예비군에 편성되지도 않았는데도, 군복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가 선임들에게 거수 경례를 붙인다.

 

그런 모순 때문에 찾아오는 혼란은 나만 괴롭히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기억을 남기는 걸까? 자기가 복무한 중대가 있는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대에서 보낸 시간에 진저리를 치는 이들이, 술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그것은 순수한 향수인가, 아니면 떼어낼 수 없는 애증인가?

 

그런 물음은 논리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며, 설사 대답한다 하더라도 정답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저 그 평가하기 모호한 시절을 회상하게 해 주는 것, 그리고 좋았던 때를 생각하면 웃고 열을 받을 수밖에 없던 때를 생각하면 화를 내며 육두문자를 퍼부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만화책이 나온 뒤 수많은 누리꾼들이 열광했다. 아마 앞에서 이야기한 그런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에 날카로운 비판을 퍼붓기로 유명한 '한겨레'에서도 '애국적 과잉이 없는 솔직한 복무담'이라는 평을 내릴 정도로, 이 책은 솔직담백하다. 군대에 관한 좋다 나쁘다 같은 이런저런 평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예비역들이 느꼈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물론 예비역들이야 다 알다시피 어디에 복무했느냐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천지 차이이지만, 그래도 예비역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공통인 요소 또한 이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예비역들에게는 한 결 같을 것이다. 예비역들뿐만 아니라 군대에 가기 전인 현역 대상들에게는 재미있는 군 복무 안내서로, 군 복무를 하는 아들을 둔 부모님들에게는 고생하고 있을 아들 생각하면서 웃고 울게 만드는 책으로,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들에게는 남자친구가 보낸 다정하고 솔직한 편지와 같은 책으로. 모두에게 나름대로 뜻이 있다.

 

주호민 예비역 육군 병장은 군 복무 결산을 이 책 '짬'으로 끝냈다. 그 뒤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를 신나게 그리고 있다. 나는 예비역 해병대 병장으로서 간신히 나름대로 군 복무 결산을 끝냈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몇 번이고 다시 마음 먹지만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방종에 몸과 마음이 지쳐서, 내가 나 같지 않다는 환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고 있기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고 있으니, 더욱 힘들다.

 

벌써 2008년 9월이다. 돌아가자. 힘들지만 풍요로웠던 2007년 9월로. 시간을 거슬러 그 때 보여주었던 놀라운 열정과 의지를 다시 불러 일으키자. 모든 확률은 절대 사라지지 않기에, 희망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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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
손영철 지음 / 작은씨앗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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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어나라는 명령도 없었는데 오전 3시부터 애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서 몸단장한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지도관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다. 이제 정말 집에 간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보다.

 

느직하게 일어나서 천천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약속했던 대로 남는 체육복을 모두 걷어서 지섭이에게 넘겨주었다. 붉은대게살찜은 예상했던 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아침을 먹었다.

 

전역교육대 청소를 하고 검사를 받는데 몸이 너무나도 심하게 달았다. 버스에 올라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버스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서문을 통과하는 순간 환호성은 극렬해져서 지도관들이 귀를 막을 지경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모두 고함을 지르며 바깥으로 뛰어나가 마음껏 뛰어다녔다. 너무 기뻐서 울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형산강 다리를 건너고, 포항시외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북대구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서 부모님과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면서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런 것을 보고 바로 몽환 같은 현실이라고 하는가 보다……

 

 

위에 인용한 글은 2008년 2월 3일에 쓴 일기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2월 3일에서 정확하게 한 해 전, 곧 2008년 2월 3일에 나는 전역했다. 오늘은 내 전역 1주년 기념일이다.

 

전역 1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전혀 없었다. 남자들에게는 나름대로 기념할 만한 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당사자를 챙겨줘야 한다고 인정받지는 못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서 조용히 2009년 2월 3일이 되자마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전역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오늘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데 늦잠 때문에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수강 신청을 하고 난 뒤에는 방에서 정신 없이 곯아떨어졌다. 푹 자고 일어난 뒤 책가방을 싸 들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교육론 원서에 파묻혔다. 그러고 난 뒤 하루가 끝나가는 오후 11시쯤이 되어서야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3학년 1학기 수강 신청을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다른 새해를 맞이하고 2008년 결산을 할 때, 그 많은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초한 많은 좌절과 절망에 지친 삐쩍 마른 한 20대 중반 청년(?)이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발랄하던 사람이 그렇게 참담하게 변해버린 것일까?

 

안에 있을 때는 너무나도 싫어서 사회에 나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잘 해 낼 것처럼 후임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온 뒤에 군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군 복무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이야기를 툭툭 뱉었다. 그런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흠칫 놀랐던 것은 나만이 겪는 경험이 아닌 모든 예비역들이 겪는 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군대에서 내가 그렇게 짜증을 냈던 까닭이다. 사회에 나가서 군 복무 시절을 그리워할 정도라면 굳이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전역 날짜만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계속 군대에 남아서 그 장점만 살리고 단점은 없애고자 힘쓰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그 장점과 단점 가운데 필요한 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을 하거나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군대, 특히 대한민국 국군에 관해서는 그런 생각을 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예비역들이 군대에서 '잃어버린' 2년이라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온갖 서러움과 분노를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가? 지나간 시간이라서 그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군대와 다른 점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공교육 구조 안에서 자율성을 억압당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특히 남자들은 더욱 심한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뿐만 아니라 나와 형님들이 속한 세대도 그랬다. 그렇게 12년 동안 병영 같은 학교에서 살았으니, 어찌 대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자유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달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는 본산인 군대에 가게 된다. 대학교에서 자유로움을 누리던 남자들은 그와 정반대인 환경인 군대에서, 엄청난 혼란과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12년 동안 겪은 게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적응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대학교에서 누리던 것이 있는 데다가 학교와 군대는 비슷하더라도 결국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낯설 수밖에 없다.

 

군대 가기 전부터 군인 같았다는 나도 막상 군대에 간 뒤에는 뭐 이런 곳이 다 있느냐고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소리치면서, 군대와는 상극인 내 모습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훈련이고 뭐고 다 힘들고 귀찮고 짜증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신 교육만큼은 꾹 참고 받기가 힘들었다.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지도 못했다.

 

국방일보는 대개 병들 사이에서는 취사장에서 튀긴 건빵 담아올 때, PX에서 라면이나 냉동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거리 사 와서 펼쳐놓고 먹을 때, 그리고 페인트칠 할 때 쓰는 약간 두툼한 종이뭉치일 뿐이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국방일보도 그러한데 수시로 나오는 온갖 정훈 교육 자료를 병들이 챙겨 읽을 까닭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훈병은 아니었더라도 해병대사령부와 해군본부에서 주최하는 정훈 퀴즈 대회에 해마다 꼭 나갔기 때문에, 항상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이병과 일병 때는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하는 판국이라서 뭔가 읽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글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기 때문에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읽었다는 것이다. 한 달 정도만 국방일보와 정훈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도 앞으로 나올 내용을 웬만하면 전부 예측할 수 있다. 단지 변하는 것은 온갖 사례를 가져다 붙이는 것뿐이다. 가져다 붙이는 사례와 정보 그 자체는 상식을 늘리는 데는 좋았지만, 정훈 교육 내용 자체에 그다지 동의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국방부에서 자료에 성의는 참 많이 표시하지만, 전역한 뒤에 반드시 '군대 정신 교육 비판'이라는 논문을 꼭 쓰겠다고 이병 때부터 마음 먹었던 판국에 그런 성의가 고맙게 느껴질 까닭은 전혀 없었다.

 

국방일보, 정훈 자료, 대통령 훈시문, 국방부 장관 훈시문, 참모총장 훈시문, 사령관 훈시문, 사단장 훈시문……쏟아지는 명령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고 그 와중에 군대에 속한 내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당했다. 그 수많은 문서에 파묻히기 전에도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를 읽을 때는 나름대로 수긍할 수 있었지만, 이 책 '아들아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를 읽을 때는 거부감이 잔뜩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정한 아버지가 한 달마다 보내는 편지 스물 네 통이라는 구성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예비역 장성이라고 해서 훈시문과 같은 구성이 없었기에 그나마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영원한 이등병은 없는 거란다'라는 제목이 이등병이었던 나에게 나도 언젠가는 전역한다는 희망을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침 또한 이 책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는 나무랄 내용은 거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쓰신 편지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묘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입견이라도 해도 할 수 없다. 육군 포병으로서 군 복무를 마치신 아버지와 공군 장교로서 군 복무를 마친 손영철 예비역 공군 준장은 분명히 달랐다. 병과 장교는 어쩔 수 없이 다르다고 느끼는 바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군대에서 높은 사람들이 훈시문을 내리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생각해 볼 겨를 도 없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면서 무조건 복종하는 행태에 넌덜머리가 났던 터라 더욱 그렇다. 결국 군대 자체에 대한 진저리로 이어진다.

 

모두 다 인정할 수 있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군대에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할 수 있으므로 그에 따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계급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언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이렇게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도 군대에 가면 나아질 확률도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군 복무 시절에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는 군대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자기를 규제하는 것은 절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권장해야 하지만, 다시 군대로 스스로 돌아가서 그 올가미에 얽매이는 미련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어차피 이 책도 기본 논조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이니, 이미 예비역 병장인 내가 이렇게 단언하는 것쯤이야 그 정도야 이 책을 쓴 작가도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 글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 구성에 따라 아버지에게 쓰는 진심 어린 편지 한 통과 같이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글을 마무리하려는 이 시점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손가락을 부지런히 잘 놀리고 있던 나를 황당하게 했다. 글을 언제 쓰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 하더라도 구성 방식과 내용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매우 큰 깨달음을 나도 모르게 얻었다.

 

이 깨달음만으로도 전역 1주년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는 아마 충분할 것이다. 전역 2주년 기념일에는 임용고시 최종 합격이라는 선물을 줘야 할 텐데, 그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해서 큰일이다. 글을 다 쓴 뒤에 다시 중앙도서관으로 올라가서 책을 펼쳐야겠다. 2008년에 그렇게 스스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면서 살았으니, 올해에는 좀 얌전하게 살 필요도 충분히 있다. 조용히 살면 자기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데 필요한 원칙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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