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경기도 가운데에서도 수원, 성남, 광명 같은 곳과 다르게 개발이 덜 된 편에 속하는 군포, 화성, 용인 같은 지역이 지니는 특성이 있었다. 도시는 커지고 인구는 늘어나지만 그에 걸맞은 행정, 문화, 치안 따위를 담당할 기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빈 틈을 파고들어 강호순이라는 살인마는 유유히 살인을 즐기고 다녔다. 살인마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것은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지만, 유난히 이번 사건은 독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면서 경기도 개발 문제에 관해 몇 가지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기회가 되었다는 것은 긍정할 만도 하다. 특정한 지역에서 치안 문제가 일어난 까닭을 분석해 보고, 경찰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여러 가지 대책이 나타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미치광이들에게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경찰서 신설, 경찰 인력 증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대책 마련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강호순을 사형시키라고 요구한다. 강호순은 사람도 아니라고 한다. 당해 보지 않았으면 아예 말을 하지 마라면서 아주 간단하게 모든 반대 논리를 무시한다. 인육을 먹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크리스트 교도들을 찢어죽이려는 포악한 짐승을 보고 콜로세움에서 열광하며 죽음만을 외치는 로마 국민(이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시민이 아닌 국민이었다)들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지금 불어닥치고 있는 광풍을 직접 느껴보면, 이 광풍은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이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미친 짓이다. 사형제도 자체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사형제도로 반대 세력을 척살하는 데만 모든 관심을 집중했던 수구 세력이 언론으로써 그 광풍을 부추기고 있다. 강호순에 관한 기사는 아무리 살인마라도 어쩔 수 없는 '인간' 강호순이 지닌 인권마저 무시하고, 너무나도 지나치게 '살인마' 강호순에 관한 선정성과 자극만 넘치고, 양도 너무 많다. 마침 용산 참사 때문에 이명박 정부로 더욱 집중되고 있는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부수 효과도 톡톡히 거둬서, 그들은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 치안 유지라는 명목 아래 오래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던 사형제 존폐 논란, CCTV 확대 논란, 흉악 범죄자 신상 정보 공개 논란 따위가 다시 고개를 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가 기본으로 삼고 있는 인권 존중 정신을 근본에서부터 말살하여,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온갖 폭압을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작업을 쉽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만약 수구 세력이 바라는 대로 된다면, 박종철 같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이 또 다시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루 만에 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미친 공권력 아래 목숨을 잃는 '인혁당 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 따위는 전혀 없다.

 

사형제 존폐 논란에 끼어들 때마다 내가 사형제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추천하는 예술 작품이 있다. 영화로서는 '데이비드 게일', 그리고 소설로서는 이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군대에서 읽을 때만 하더라도 사형수 정윤수와 그를 찾아가는 문유정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감과 고백과 참회와 용서 그 자체가 발산하는 눈부신 인간미에만 초점을 맞췄고, 실제로 그 덕분에 문학 작품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아늑한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사실 나는 이 글에 그 아늑한 즐거움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었다. 사형수 정윤수가 쓴 파란 공책(책에서는 '블루노트'라고 나온다)와 모니카 고모를 따라 정윤수를 찾아가는 문유정이 겪은 이야기를 병행하는 구성이 매우 참신하고 좋다는 생각만 했다. 죽음만 기다리는 사형수이고 자살을 세 번이나 시도했던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마침내 사람이 느끼는 감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사랑까지 자기도 모르게 느끼게 된다는 그 자체에 감동하기만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또다시 사회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문학 속에 스며들어 있는 논리와 감성을 해석해야 한다는 강한 의식에 사로잡힌 뒤에는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굳이 정윤수와 문유정이 만나면서 이어지는 그 미묘한 심리 자체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읽고 감동한 사람들이 정윤수에게 보여주었던 반응이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동생과 함께 삶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다가,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 정윤수다. 사람들은 정윤수가 쓴 파란 공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워했고,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랑을 사형수가 되고 난 뒤에야 겨우 느꼈는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결말에서는 안타까워하다 못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정윤수를 저 세상으로 보낸 사형제라는 제도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정당성과 효과를 의심했다. 그들은 아마 이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생명'이란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며, "때론 살아서 이 생을 견디는 것이 죽음보다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목숨이라도 분명 유지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때 이 책을 읽고 그렇게 감동해서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던 이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결국 그들이 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동은 사이비 교주나 연예인을 무작정 추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수준 낮은 것일 뿐이었다는 말인가? 그들은 이 소설을 읽은 뒤에 사형제 존폐 논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필요한 온갖 사회학 개념과 기초 상식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정말 없다는 말인가? 사형제 역사, 현대 인권 개념 성립 역사, 법치주의 역사 같은 것을 제대로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명박이라는 괴물은 이명박이라는 존재 자체가 유난히 특출나서, 시민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난관과 장치를 다 극복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근본에서 지탱하고 있는 철학, 사회학, 역사학 같은 인문학 소양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데, 아니 최소한 사회 혼란을 방지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소양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이 사회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무슨 판관 포청천이라도 된 것처럼 '저 놈의 목을 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은 한 결 같다. 자기 혈족이 그렇게 됐는데도 사형제를 폐지하고 인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그 따위 소리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강호순은 싸이코패스(psychopath)라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 인권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근본에서부터 잘못되고 감정에만 사로잡힌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며, 한 번 곰곰이 돌이켜 볼 의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

 

그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수구 언론은 마침 자기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용산 참사를 덮고자 강호순에 관한 치졸하기 짝이 없는 온갖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더니 드디어 강호순 얼굴까지 마음대로 공개해 버렸다. 더욱 무서운 일은 사람들이 명백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수구 언론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동조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감정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불쏘시개와 장작을 풍족하게 마련해 주니까, 불길이 너무 거세게 타올라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그 불길은 썩어빠진 모든 것을 맑게 바로잡는 깨끗한 불길이 아니라, 온갖 오물 위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천박한 불길이다. 그 불길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은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인권 의식, 배려 따위도 사라지고 있다.

 

조직 폭력배에 관한 영화가 나와서 성공을 거두더니 아이들이 커서 조직 폭력배가 되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조직 폭력배를 모방한 폭력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그토록 열심히 사형제 폐지를 외치던 사람들이, 유영철과 강호순을 바라보면서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사형제 반대론자는 강호순과 똑같은 사람 대접도 아까운 것들이라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게다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서 실종되었던 제주 어린이집 교사가 8일 만에 성폭행을 당한 뒤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고대 사회에서나 있었을 법할 온갖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사형 방법을 사람들이 부르짖고 있다. 도대체 이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이 지금 다시 주목받아야 하는 까닭이 분명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은 뒤에 사람들이 또다시 무작정 사형제 폐지를 외치는 것은 곤란하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광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줏대 없이 왔다갔다하는 자기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왜 그렇게 이성을 잃고 왔다갔다 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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