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글에서 내가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신문을 매우 즐겨 읽었다. 나는 모의고사 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시 모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면접에서는 시사 문제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신문을 반드시 꼼꼼하게 읽어두어야 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을 활용한 교육)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해서, 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신문을 읽었다. 머릿속에 사회에 관한 지식(물론 중앙일보를 틀어쥐고 있는 세력 입맛에 맞게 철저하게 편집된 지식이라서 진실에서 매우 멀어지기는 했지만)이 조금씩이나마 쌓이면서 나는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객관에 따라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준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한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완전히 중앙일보가 말하는 바에 끌려갔다. 그 바람에 대학교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많은 것을 뜯어고쳐야 했다. 거기에 쏟은 힘과 시간을 생각하면 아까워서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중앙일보가 보여주는 대로 생각하고 말했던 내가 한심하서 견딜 수 없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이 책을 알았다. 언론이 지닌 힘에 관해서 알고 신문을 제대로 읽고 싶었던 나는 주저없이 사서 봤다. 나는 책을 모두 읽은 뒤 주저앉아서 꺼이꺼이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어서 결국 중간쯤 읽은 뒤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아십니까'라는 책을 사 볼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우리나라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 정치학과 경제학과 사회학이 신문과 연결된 모습, 신문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는 까닭, 신문이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법 따위를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게 보여준다. 신문과 언론에 관한 진실을 알수록 그저 화만 났다. NIE랍시고 학생들이 열심히 기득권이 지배하는 신문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관해 얼마나 삐뚤어지고 한 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가지게 될 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인류 문명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지식은 그 속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과 부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은 권력과 부를 지닌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다. 권력과 부를 지닌 기득권층(어쩌면 이는 남자들도 포함한다)은 보통 사람들이 깨닫는 것을 싫어했다. 그랬기에 기득권층은 특별 교육과 일반 교육을 나누고, 심지어 보통 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공부할 수 없도록 했다. 보통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여자들은 학교를 다닐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책이 쏟아져 나오고, 인터넷과 언론이 발달하고, 기본 교육이 지니는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예전과 다르게 누구나 쉽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로 간다면 지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성급하게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았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득권층은 지식을 이용하여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기득권층은 그 방법을 교육과 신문에서 찾았다. 인류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을 파악하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문을 읽을 수밖에 없다. 신문에 기득권층이 원하는 것을 실어서 보여주면 사람들 대부분은 신문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간다. 신문은 객관으로 세상을 보여준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사람들 가운데 신문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저 막강한 신문사가 제시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과연 신문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리개가 되어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평생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어떠한가? 수구 세력들이 여전히 판치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이치에 맞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은 뭇매를 맞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독재를 그리워하고, 국가보안법 같은 악법이 여전히 살아남아 힘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어이없는 현실인가?

언론에 끌려가면서 그것이 자기가 내린 판단인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회는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분명히 그랬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정의로운 언론인들과 신문을 비판하면서 입체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언론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은 책에서도 말하듯이 신문사 구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독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신문사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람들은 바로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몇몇 사람들은 한겨레를 추켜올린 책이라고 막연하게 이 책을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이 책을 싸잡아 비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히 신문보다는 훨씬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입맛에 맞게 사회를 편집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가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말하면 펄펄 뛸 사람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널렸다. 이 책은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왜 그것이 단순한 편들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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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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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에서 내가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신문을 매우 즐겨 읽었다. 나는 모의고사 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시 모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면접에서는 시사 문제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신문을 반드시 꼼꼼하게 읽어두어야 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을 활용한 교육)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해서, 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신문을 읽었다. 머릿속에 사회에 관한 지식(물론 중앙일보를 틀어쥐고 있는 세력 입맛에 맞게 철저하게 편집된 지식이라서 진실에서 매우 멀어지기는 했지만)이 조금씩이나마 쌓이면서 나는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객관에 따라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준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한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완전히 중앙일보가 말하는 바에 끌려갔다. 그 바람에 대학교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많은 것을 뜯어고쳐야 했다. 거기에 쏟은 힘과 시간을 생각하면 아까워서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중앙일보가 보여주는 대로 생각하고 말했던 내가 한심하서 견딜 수 없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이 책을 알았다. 언론이 지닌 힘에 관해서 알고 신문을 제대로 읽고 싶었던 나는 주저없이 사서 봤다. 나는 책을 모두 읽은 뒤 주저앉아서 꺼이꺼이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어서 결국 중간쯤 읽은 뒤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아십니까'라는 책을 사 볼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우리나라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 정치학과 경제학과 사회학이 신문과 연결된 모습, 신문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는 까닭, 신문이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법 따위를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게 보여준다. 신문과 언론에 관한 진실을 알수록 그저 화만 났다. NIE랍시고 학생들이 열심히 기득권이 지배하는 신문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관해 얼마나 삐뚤어지고 한 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가지게 될 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인류 문명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지식은 그 속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과 부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은 권력과 부를 지닌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다. 권력과 부를 지닌 기득권층(어쩌면 이는 남자들도 포함한다)은 보통 사람들이 깨닫는 것을 싫어했다. 그랬기에 기득권층은 특별 교육과 일반 교육을 나누고, 심지어 보통 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공부할 수 없도록 했다. 보통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여자들은 학교를 다닐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책이 쏟아져 나오고, 인터넷과 언론이 발달하고, 기본 교육이 지니는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예전과 다르게 누구나 쉽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로 간다면 지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성급하게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았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득권층은 지식을 이용하여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기득권층은 그 방법을 교육과 신문에서 찾았다. 인류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을 파악하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문을 읽을 수밖에 없다. 신문에 기득권층이 원하는 것을 실어서 보여주면 사람들 대부분은 신문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간다. 신문은 객관으로 세상을 보여준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사람들 가운데 신문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저 막강한 신문사가 제시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과연 신문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리개가 되어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평생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어떠한가? 수구 세력들이 여전히 판치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이치에 맞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은 뭇매를 맞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독재를 그리워하고, 국가보안법 같은 악법이 여전히 살아남아 힘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어이없는 현실인가?

언론에 끌려가면서 그것이 자기가 내린 판단인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회는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분명히 그랬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정의로운 언론인들과 신문을 비판하면서 입체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언론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은 책에서도 말하듯이 신문사 구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독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신문사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람들은 바로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몇몇 사람들은 한겨레를 추켜올린 책이라고 막연하게 이 책을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이 책을 싸잡아 비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히 신문보다는 훨씬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입맛에 맞게 사회를 편집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가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말하면 펄펄 뛸 사람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널렸다. 이 책은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왜 그것이 단순한 편들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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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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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1분'을 읽은 뒤에도 그 소설이 왜 그렇게 많이 팔리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 감정이 그만큼 메말랐다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영혼을 근본에서부터 움직일 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받는 파울로 코엘료가 쓴 책을 모두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파울로 코엘료 3부작을 찜해놓고 있었는데, 며칠 뒤 과방에 갔더니 '연금술사'가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책을 펼쳤다. 몇 시간만에 읽어버린 뒤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다지 새롭지 않으며 왜 이 작품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지 알 수 없었다. 편안하고 쉽게 읽을 수 있고 마음에 은은한 파도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빠져들만한 소설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생각해 볼 점은 있다.

이 책을 읽은 뒤 지금까지 연금술이 지니고 있던 영혼과 관련된 측면을 왜 내가 파악하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이미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일식'을 읽으면서 연금술, 종교, 신비주의 따위가 얽힌 관계와 그 관계에서 벗어난 것들이 뜻하는 바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완전히 깨졌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금술'은 단순히 가치 없는 금속을 굉장히 가치 있는 금속인 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대상도 금속이 아니다. 연금술로서 자기 꿈으로 나아가는 자기를 정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자기를 정련하는 사람에게 꿈으로 가는 길과 그 길을 안내하는 표지를 보여준다. 표지를 보고 길을 따라가면 꿈은 어느 새 현실이 된다. 소설 속에서 산티아고는 피라미드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고, 사랑하는 파티마에게 돌아갈 수 있다. 사실 이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내 마음을 거의 흔들어 놓지 못했다.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연금술(alchemy)은 무엇인가? 화학을 공부하다 보면 연금술이 얼마나 허황한 믿음에 매달렸는지 저절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연금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alchemy'와 화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chemistry'를 보라. 연금술에서 화학이 나왔다고 쉽게 추측할 수 있지 않은가? 분명히 화학은 연금술에서 나왔다. 소설에서 나오는 것과 다르게 연금술사들은 결국 원하는 금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연금술 덕분에 사람들은 물질과 화학 반응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근대 화학이 나타나고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금술이 지닌 신비주의, 종교, 영혼 따위와 관련된 것들은 현대 화학에서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파울리 배타 원리, 양자역학 원자 모형, 아보가드로 법칙 따위가 앞에서 말한 것들이 설명하던 것을 대신해 물질과 현상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이는 화학뿐만 아니라 과학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창조론을 진화론이 몰아낸 것처럼 말이다. 과학은 무엇보다도 객관이 중요하기에, 신비주의와 미신이 주는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성장해 왔다. 이는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학은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여전히 과학철학을 잘 몰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신비주의, 종교, 영혼 따위가 주는 영향을 과학에서 더욱 줄여버린다면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칠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과학과 결합하면 어떤 독특한 것이 생길 수 있으며, 과학이 발전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뉴턴이 신학을 깊이 공부한 뒤에 만유 인력에 관한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던 나는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더욱 넓고 깊은 의견을 만들려면 그저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열심히 이 세계를 탐구하도록 나를 은근히 자극했다.

그렇게 자극받아서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나는 자아를 정련하여 꿈을 현실로 만드는, 책 제목대로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다. 아마 파울로 코엘료는 모든 사람들이 '연금술사'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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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1 -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장용민 지음 / 시공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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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교과서에서 이상이 쓴 '오감도'를 배웠다. 글쎄 개성이 없는 아이들이 도로를 달리는 것은 개성 없고 암울한 사회를 나타낸다나,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생각해 볼 때 광기가 스며들어 있는 작품이라나,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독특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나 뭐라나.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귀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흔히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원래 언어 영역만큼 내가 싫어하는 시험도 드물었다. 수능 자체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내가 보기에 언어 영역은 여러 영역 가운데에서도 다양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가장 심하게 망치는 시험이다. 곧 시험이 실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팍팍 떨어뜨린다. 자기가 느낀 바대로 답하는 것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만약 반항하면 점수는 깎이고, 부모님과 선생님이 학생을 비난한다.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학생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있던 나는 심하게 투덜거렸다.

수업은 재미없었지만 작품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과 별도로 나름대로 이상에 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때는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 전집'을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문학 전집을 뒤져가며 '날개', '권태', '거울', '가정', '이상한 가역반응' 따위 작품을 읽었다. 그 여러 가지 작품에서 한결같이 상식과 어긋나고 뒤틀려 보이는 생각과 시선이 제대로 드러났다. 어릴 때부터 삐딱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반골 기질이 뚜렷했던 나는 그런 생각과 시선이 듬뿍 배여 있는 작품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도 그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쓴 장용민과 김성범도 심상찮은 사람이다. 소설 주인공인 장덕희와 정건우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일으킨 사건은 너무 충격이 커서 나는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다. 문제아(?)이며 반역자(?)인 이 두 사람이 얽힌 일과 그 속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말 그대로 상식에 도전하는 것이며 진실과 허구를 알 수 없는 혼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반역은 흥미로운 일이다. 세상을 심하게 못 믿어 항상 반역을 꿈꾸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읽으면, 극도로 불안하여 물질을 만나기만 하면 모두 없애버리는 반물질이 떠오른다. 차이점이 있다면 반물질은 물질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반역하려는 사람은 사회보다 너무 형편없이 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과 다르게 사회학은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다. 이상에 가까운 조건이 성립되기 너무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승리하여 세상을 뒤흔드는 일을 많이 봤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이상에 미쳤고(MAD: 소설 속에서 장덕희가 인터넷에서 쓰는 이름이다), 이상처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어버리고 싶어하는 장덕희와, 다니던 대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세상에 복수할 방법을 꿈꾸는 정건우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다. 장덕희를 실제로 만난 정건우는 장덕희가 제안하는 바에 끌려 그가 짠 계획에 동참한다. 그들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라는 소설을 지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 연재한 소설이 크게 성공하자 그들은 나중에 안기부 비밀 자료실에 침투하여 자료를 빼내오고, 그 자료로 새로운 소설을 지어 올린다. 그 뒤 상상도 하지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장덕희와 정건우는 자기들이 쓴 소설과 똑같은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자기들이 쓴 소설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조사한다. 그러면서 결국 그들은 조선총독부 아래에 있는 비밀을 알아낸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조선총독부 아래에 있는 민족 정기를 억누르는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천재 건축가 이상이 그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단단히 미친 정신병자가 지껄인 헛소리로밖에 보이지 않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그 건축물로 가는 길을 몰래 알려주려고 이상이 남긴 암호문이었던 것이다. 비밀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수록 그들은 더욱 위험해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과 그들 사이에 숨막히는 대결이 벌어진다.

상식에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고 바람직한 일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인 '천사와 악마'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도대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 혼란을 적절하게 불러일으키는 정교한 이야기 구조(물론 이것은 읽는 사람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상식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벗어나는 이야기 따위가 많이 나와서 읽을거리가 꽤 풍부하다. 단 그 이야기를 포함한 이 소설을 다 읽은 뒤에 찾아올 충격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저 일본 쪽발이들이 이런 찢어죽여도 시원찮은 짓을 해서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펄펄 뛰든,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면서 기를 찾으려고 하든, 당장 조선총독부 터를 찾아가서 그 건축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든, 무엇을 하든 자기 마음대로다.

일제가 민족 정기를 완전히 없애려고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주요 명당에 쇠말뚝을 박고 바위를 깨고 땅을 파서 쇳물을 붓는 기가 막힌 일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건물, 곧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허물고 땅을 파헤치자 그 아래에 박혀 있는 말뚝 9388개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민족 정기를 없애려고 한 일본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땅을 파헤쳐 말뚝을 뽑는 포크레인을 보며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단지 '건축무한육면각체'뿐인가? 여전히 숨겨진 진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진실을 파헤칠 용감한 젊은이들, 곧 장덕희와 정건우와 같은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나타나기를 작가들은 꿈꿨던 것이 아닐까? 그저 현실 속에 깊이 파묻히기에 바쁜 겁쟁이들에게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린 것이 아닐까? 갑자기 주먹으로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겁쟁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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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김강자 지음 / 푸른숲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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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가운데 경찰만큼 힘든 직업도 없다고 어릴 때 누구한테 들었다. 둘째 삼촌이 경찰이시고 첫째 고모부도 경찰이신데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몸은 자랐지만 여전히 철이 없었던 나는 매우 궁금했다. 제시간 맞춰 출근하고 퇴근하는 보통 공무원들과 다르게, 틈만 나면 사건이 터져 출동하고 밤 새워 일한다. 그런데도 월급은 쥐꼬리만큼 적어서 다른 공무원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특별 수당이나 출장비가 두둑한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생계에 시달리면서 그런 힘든 일까지 하려고 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삶에 치이면서도 사람들이 존경해 주는 것도 아니다. 경찰이 지니고 있는 권위는 '짭새'라는 속어가 매우 흔히 쓰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크게 떨어졌다.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없어져야 할 권위는 여전히 잘 살아있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떨어지지 말아야 할 권위가 떨어졌다.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워낙 혼란스럽고 법이 지닌 권위가 크게 떨어지다 보니까, 법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도 권위가 저절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찰들이 과연 제대로 자부심을 지니고 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책을 쓴 김강자 씨는 자기는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남자도 힘들어하는 길을 걸으면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경찰서장이 되고 '미아리 텍사스'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범죄를 토벌(?)하려고 힘썼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를 들어내는 그런 용기와 그 용기를 뒷받침하는 실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책을 읽어보면 궁금증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여자들이 사람이 아니라 한낱 공동변소가 되어버린 사창가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를 뿌리 뽑으려고 그녀는 지금까지 끝없이 싸웠다. '미아리 텍사스'와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흉악범들과 맞섰던 당찬 여자이다. 성범죄를 다루는 여경이 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기분이 착잡해졌다.

경찰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범죄를 좋든 싫든 다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이 날카로워질까? 사람이 얼마나 역겨운 존재인지 항상 되새길 수밖에 없는 경찰들이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한다. 하긴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범죄와 맞서 싸우는 경찰이 훨씬 심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범죄를 다루는 경찰들은 속된 말로 참 더러워서 못 살겠다고 투덜댈 것이다. 자기 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들이 사창가에서 겨우 돈 몇 푼에 옷을 벗는 그런 현실을 바라보면 과연 기분이 어떨까? 여자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그저 참을 수 없는 욕정을 쏟아 부을 암컷으로만 보는 남자들. 어린 여자들을 그저 돈벌이에 이용하는 데만 애쓰고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악덕 사창업주들. 학교와 집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방황하다가 쉽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불나비처럼 사창가로 몰려가는 비행 청소년들. 서울에서 이 부끄러운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미아리 사창가였다. 한 때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매춘 문제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강자 씨는 이런 모습에 화를 내면서 주저하지 않고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 분이 완전히 기계 같이 강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여자로서 한없이 나약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경찰로서 살면서 힘들었던 일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려도 다음날 아침에 말없이 콩나물국을 차려주면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시어머니에게 표현하는 고마움, 아이를 둔 어머니이지만 경찰이라서 바쁜 바람에 자식들을 제대로 못 챙겨서 느끼는 미안함, 범죄자들이 자식을 들먹일 때 느끼는 서늘함, 남편과 사랑한 이야기, 부하 형사들이 늘어놓는 푸념을 듣고 가슴이 저렸던 이야기 따위를 읽다 보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런 아픈 가슴을 딛고 성범죄와 맞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여자이기에 더욱 멋지다.

김강자 씨와 같은 사람들이 매춘과 관련된 범죄를 뿌리 뽑으려고 힘썼고 그 결과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는 이미 옛 명성을 잃었고, 많은 사창가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성매매 방지법도 마련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주사위가 뜻대로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매매 방지법이 통과된 뒤 창녀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매춘을 놓고 온갖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매춘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 여성부에서 고상한 척 하는 몇몇 꼴통 여권주의자들 때문에 애꿎은 여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견, 사람 본능을 무시하고 대책을 세워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온갖 의견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진실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논쟁을 떠나서 분명한 것이 있다. 성범죄는 뿌리 뽑아야 할 추악한 것이다. 그리고 김강자 씨 같은 분들이 있기에 사창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신음하는 여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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