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
김강자 지음 / 푸른숲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공무원 가운데 경찰만큼 힘든 직업도 없다고 어릴 때 누구한테 들었다. 둘째 삼촌이 경찰이시고 첫째 고모부도 경찰이신데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몸은 자랐지만 여전히 철이 없었던 나는 매우 궁금했다. 제시간 맞춰 출근하고 퇴근하는 보통 공무원들과 다르게, 틈만 나면 사건이 터져 출동하고 밤 새워 일한다. 그런데도 월급은 쥐꼬리만큼 적어서 다른 공무원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특별 수당이나 출장비가 두둑한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생계에 시달리면서 그런 힘든 일까지 하려고 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삶에 치이면서도 사람들이 존경해 주는 것도 아니다. 경찰이 지니고 있는 권위는 '짭새'라는 속어가 매우 흔히 쓰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크게 떨어졌다.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없어져야 할 권위는 여전히 잘 살아있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떨어지지 말아야 할 권위가 떨어졌다.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워낙 혼란스럽고 법이 지닌 권위가 크게 떨어지다 보니까, 법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도 권위가 저절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찰들이 과연 제대로 자부심을 지니고 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책을 쓴 김강자 씨는 자기는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남자도 힘들어하는 길을 걸으면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경찰서장이 되고 '미아리 텍사스'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범죄를 토벌(?)하려고 힘썼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를 들어내는 그런 용기와 그 용기를 뒷받침하는 실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책을 읽어보면 궁금증이 저절로 풀릴 것이다. 여자들이 사람이 아니라 한낱 공동변소가 되어버린 사창가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를 뿌리 뽑으려고 그녀는 지금까지 끝없이 싸웠다. '미아리 텍사스'와 전쟁을 선포하고 온갖 흉악범들과 맞섰던 당찬 여자이다. 성범죄를 다루는 여경이 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기분이 착잡해졌다.

경찰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범죄를 좋든 싫든 다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이 날카로워질까? 사람이 얼마나 역겨운 존재인지 항상 되새길 수밖에 없는 경찰들이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한다. 하긴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범죄와 맞서 싸우는 경찰이 훨씬 심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범죄를 다루는 경찰들은 속된 말로 참 더러워서 못 살겠다고 투덜댈 것이다. 자기 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들이 사창가에서 겨우 돈 몇 푼에 옷을 벗는 그런 현실을 바라보면 과연 기분이 어떨까? 여자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그저 참을 수 없는 욕정을 쏟아 부을 암컷으로만 보는 남자들. 어린 여자들을 그저 돈벌이에 이용하는 데만 애쓰고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악덕 사창업주들. 학교와 집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방황하다가 쉽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불나비처럼 사창가로 몰려가는 비행 청소년들. 서울에서 이 부끄러운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미아리 사창가였다. 한 때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매춘 문제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강자 씨는 이런 모습에 화를 내면서 주저하지 않고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 분이 완전히 기계 같이 강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여자로서 한없이 나약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경찰로서 살면서 힘들었던 일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려도 다음날 아침에 말없이 콩나물국을 차려주면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시어머니에게 표현하는 고마움, 아이를 둔 어머니이지만 경찰이라서 바쁜 바람에 자식들을 제대로 못 챙겨서 느끼는 미안함, 범죄자들이 자식을 들먹일 때 느끼는 서늘함, 남편과 사랑한 이야기, 부하 형사들이 늘어놓는 푸념을 듣고 가슴이 저렸던 이야기 따위를 읽다 보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런 아픈 가슴을 딛고 성범죄와 맞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여자이기에 더욱 멋지다.

김강자 씨와 같은 사람들이 매춘과 관련된 범죄를 뿌리 뽑으려고 힘썼고 그 결과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는 이미 옛 명성을 잃었고, 많은 사창가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성매매 방지법도 마련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주사위가 뜻대로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매매 방지법이 통과된 뒤 창녀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매춘을 놓고 온갖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매춘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 여성부에서 고상한 척 하는 몇몇 꼴통 여권주의자들 때문에 애꿎은 여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견, 사람 본능을 무시하고 대책을 세워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온갖 의견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진실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논쟁을 떠나서 분명한 것이 있다. 성범죄는 뿌리 뽑아야 할 추악한 것이다. 그리고 김강자 씨 같은 분들이 있기에 사창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신음하는 여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