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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글에서 내가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신문을 매우 즐겨 읽었다. 나는 모의고사 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시 모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면접에서는 시사 문제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신문을 반드시 꼼꼼하게 읽어두어야 했다. 게다가 그 당시에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을 활용한 교육)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해서, 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신문을 읽었다. 머릿속에 사회에 관한 지식(물론 중앙일보를 틀어쥐고 있는 세력 입맛에 맞게 철저하게 편집된 지식이라서 진실에서 매우 멀어지기는 했지만)이 조금씩이나마 쌓이면서 나는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객관에 따라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준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한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완전히 중앙일보가 말하는 바에 끌려갔다. 그 바람에 대학교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많은 것을 뜯어고쳐야 했다. 거기에 쏟은 힘과 시간을 생각하면 아까워서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중앙일보가 보여주는 대로 생각하고 말했던 내가 한심하서 견딜 수 없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이 책을 알았다. 언론이 지닌 힘에 관해서 알고 신문을 제대로 읽고 싶었던 나는 주저없이 사서 봤다. 나는 책을 모두 읽은 뒤 주저앉아서 꺼이꺼이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어서 결국 중간쯤 읽은 뒤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아십니까'라는 책을 사 볼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우리나라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 정치학과 경제학과 사회학이 신문과 연결된 모습, 신문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는 까닭, 신문이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법 따위를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게 보여준다. 신문과 언론에 관한 진실을 알수록 그저 화만 났다. NIE랍시고 학생들이 열심히 기득권이 지배하는 신문을 읽으면서 사회 문제에 관해 얼마나 삐뚤어지고 한 쪽으로 치우친 시각을 가지게 될 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인류 문명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지식은 그 속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권력과 부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은 권력과 부를 지닌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다. 권력과 부를 지닌 기득권층(어쩌면 이는 남자들도 포함한다)은 보통 사람들이 깨닫는 것을 싫어했다. 그랬기에 기득권층은 특별 교육과 일반 교육을 나누고, 심지어 보통 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공부할 수 없도록 했다. 보통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여자들은 학교를 다닐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책이 쏟아져 나오고, 인터넷과 언론이 발달하고, 기본 교육이 지니는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예전과 다르게 누구나 쉽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로 간다면 지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성급하게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았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득권층은 지식을 이용하여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 기득권층은 그 방법을 교육과 신문에서 찾았다. 인류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을 파악하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문을 읽을 수밖에 없다. 신문에 기득권층이 원하는 것을 실어서 보여주면 사람들 대부분은 신문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간다. 신문은 객관으로 세상을 보여준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사람들 가운데 신문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저 막강한 신문사가 제시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과연 신문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리개가 되어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평생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어떠한가? 수구 세력들이 여전히 판치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이치에 맞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은 뭇매를 맞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독재를 그리워하고, 국가보안법 같은 악법이 여전히 살아남아 힘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어이없는 현실인가?
언론에 끌려가면서 그것이 자기가 내린 판단인 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회는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분명히 그랬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정의로운 언론인들과 신문을 비판하면서 입체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언론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은 책에서도 말하듯이 신문사 구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독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신문사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람들은 바로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몇몇 사람들은 한겨레를 추켜올린 책이라고 막연하게 이 책을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이 책을 싸잡아 비난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히 신문보다는 훨씬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입맛에 맞게 사회를 편집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가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말하면 펄펄 뛸 사람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널렸다. 이 책은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왜 그것이 단순한 편들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