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집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에서 이것저것 일을 하다가 책을 미처 다 읽지 못했다. 그래서 부산에 이 책을 들고 갔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었고, 기숙사에 들어온 뒤 침대에 벌렁 누워서 나머지를 다 읽었다.

 

며칠 뒤에 동생한테 빨리 이 책을 집으로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다음에 집에 갈 때 나는 연락을 받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결국 한 달이 넘어서야 나는 이 책을 집에 가져갔다. 그런데 그 동안 나는 책을 대충이나마 몇 번 더 읽었다. 책이 매우 재미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체로키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살게 된 아이가 바라보는 자연과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자연을 벗으로 삼고 자연 속에서 살아온 할아버지는 문명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르지만, 자연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박식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자연스레 꿰뚫고 있다.

 

그런 할아버지는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처참하게 짓밟힌 자연을 안타깝게 여기고, 문명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꿀을 쓸데없이 모아 놓았다가 나중에 곰이나 사람에게 빼앗기는 벌이나, 돈에 목숨을 걸고 추잡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나 똑같다고 일갈하는 그를 보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한지 모른다.

 

사람이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교훈은 지겹다 못해 진저리를 칠 만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논리 아래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한 문학 작품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양자 과정에서 무수한 방법이 갈라지므로, 같은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양성이 문명을 풍요롭게 한다고 하지만, 나는 요즘은 어떤 면에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이상하게도 같은 주제를 띠고 있다면 '아무리 돌려 말해도 결국은 그 말이잖아' 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것이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보수화'일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하긴 겉으로는 다른 논리를 포용하려고 힘쓰는 척 해도 실제로는 내가 옳다는 것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을 지닌 나이니, 이미 내 안에는 보수성이 깊이 뿌리내려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희망이 없다. 새로운 길을 찾고 걸어갈 넘치는 의욕은 청춘에게만 있는 둘도 없는 행운이니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껏 누리라는 말이 이상할 정도로 가슴 속에 깊이 와닿는다.

 

어쨌든 문명을 비판하면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주제를 다룬 책은 특별하지 않다면 그저 그렇고 어떤 때는 거부감을 느낀다. 아마 이는 뇌는 익숙해진 것은 기억에 상관없이, 곧 신경을 쓰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도록 배선을 정리한다는, 이른바 '오토마톤 구조'를 보여준다는 말을 뒷받침할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삶을 글자로만 느껴도 저절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느낌에는 진실(reality : 실제)이 없고 실체(substance : 실재)가 없다. 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것이 바로 자기도 모르게 세뇌당했다는 건가? 자기가 온몸으로 경험하여 얻은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럴 때마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견디기 힘들다. 문명 사회에서 벗어나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고, 문명 사회에서나 누릴 수 있는 정보로 이루어진 바다에 푹 빠져 있는 주제에, 문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학교에서도 촌놈 소리를 듣고 순수하게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들 앞에서는 나름대로 아는 체를 할 수 있다만, 이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과 견주어 보면 어른과 어린애만큼 차이가 난다. 무언가 제대로 알지 않고, 이것저것 주워듣고 아는 체만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 책이 주는 좋은 교훈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나는 고리타분한 일상과 관념에 젖어 있던 내 모습을 엉뚱한 곳에서 동기를 얻어 까발리고 마구 칼질을 해 버렸다. 그 뒤 뭔가 발전한다면 좋다. 그런 것 말고도 이 책 제목대로 따뜻한 영혼을 구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문명 사회에는 지나치게 익숙해져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색에 한 번 잠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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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통신
손석춘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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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하련솔 여름 전수 일정은 매우 고되었다. 날씨도 덥고 연습해야 할 몸짓도 꽤 어려워서 제법 애를 먹어야 했다. 특히 처음 해 보는 창작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계속 배우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그런 일정을 하니까 어쩌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나고 나니까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쓸 수가 있지 그때는 아주 환장하는 줄 알았다. 힘들게 동작을 만들어 놓고도 서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몇 번이고 다시 고치는 일도 많았다.

 

어쨌든 무사히 전수 발표회를 끝낸 뒤 무명전사 동아리방에서 조촐한 뒤풀이를 열었다. 하련솔과 무명전사 사람들 말고도 경북대학교 연합 몸짓패 사람 몇 명도 참석했다. 순대, 떡볶이 따위 음식을 먹으면서 몸짓패답게 서로 몸짓을 보여주면서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수 발표회가 끝나고 뒤풀이가 열리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동아리방을 청소하고 난 뒤에도 나름대로 시간이 많이 있었다. 무엇을 할 지 고민하다가 동아리방 창틀에 걸쳐 있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보통 책과 견주어 볼 때 제법 작은 책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편지 모음이고 특별하게 어려운 내용도 없어서 누워서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진보 논객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손석춘이 젊은이들에게 다정한 말투로 현대 한국 사회를 걱정한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뒤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수구 세력들이 사회에 끼친 폐해를 편지 형식으로 낱낱이 밝힌다. 다정한 말투로 사회를 비판하는 문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나름대로 우리나라에서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기에,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문예 일꾼으로서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반동에 저항하는 투쟁은 힘겹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관심을 끊고 자기 일에만 매달린다면 희망이 없다. 이런 다정한 말로 사회를 걱정하고, 내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사회에 관심을 끊고 내 일에만 매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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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타크래프트 1 - 에피소드 1, Desperate Alliance
임영수,신주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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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만큼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유행하는 컴퓨터 게임도 없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98년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나왔으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나온 뒤 스타크래프트는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모르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침 그때 PC방이 처음 생기고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높은 인기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그때까지 안정된 대전 모드를 지원하는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사실 스타크래프트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서버(Starcraft Battlenet Server)에는 그때 유행하던 울티마 온라인 서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PC방은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프로 게이머(Professional Gamer)라는 직업이 등장하자, 게임에 몰두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재미있는 게임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왔으니 열광할만도 했다. 어떤 대학교는 인터넷 게임을 다루는 학과를 신설하기도 했고, 프로 게이머들이 그런 학과에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거기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들은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를 보고 속이 터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초기에는 신주영, 임영수, 이기석과 같은 강자들이 나타났는데 영원한 강자는 있을 수 없듯이 그 뒤를 이어서 수많은 프로 게이머들이 강자라는 명성을 얻으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가운데 임요환, 박정석, 홍진호와 같은 인물들이 제법 이름을 날렸다. 온라인 게임 TV를 잘 보지 않아서 프로 게이머들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세월이 흘러 게임 산업이 나름대로 발전하여 다양한 인터넷 게임들이 인기를 얻고 프로 게이머들이 생겼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만큼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게이머는 흔하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미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들은 여전히 온게임넷(OnGameNet) 같은 게임 전문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으며 활약하고 있다. 실력 있는 프로 게이머들은 연예인처럼 팬클럽이 있고, '테란 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임요환은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인터넷 소설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인터넷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책으로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공상 소설들은 책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점에서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책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이 '소설 스타크래프트'였다. 공상 소설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게임 시나리오를 소설로 만든 것이라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지금과 다르게 중학생 때는 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비상한 관심을 보여 당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오락실 갈 돈도 모자라서 쩔쩔맸던 내가 6000원이라는 거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일단 서점에 가서 단숨에 다 읽고, 오락실이나 PC방에 갈 돈을 아껴서 샀다.

 

그 때는 대개 PC방 요금이 1시간에 1500원이었고, 친구들과 한 번 PC방에 몰려가면 적어도 두 시간씩은 앉아 있었다. 곧 두 번만 참으면 이 책 한 권을 살 수 있었다. 5권까지 나왔는데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 시나리오까지만 다뤄서 아쉬웠다. 브루드워 시나리오가 담겨 있을 6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재미만 얻은 것이 아니라, 그때 내가 몰두하던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게임 공상 소설을 쓰는데도 참고하고, 한글판이 나오지 않았을 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물론 미션 해설집이 있기는 했지만, 좀 딱딱한 설명조로 일관하는 미션 해설집보다는 이야기 한 편으로 풀어내린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고 머리에도 더 잘 들어왔다.

 

프로 게이머들이 직접 써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에는 사람들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전술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기본 이야기 흐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건 묘사는 프로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게임이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토대로 삼고 있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라는 세 종족이 광활한 우주에서 벌이는 생존 게임(?)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태서더, 제라툴, 알다리스, 짐 레이너, 사라 케리건, 아크투러스 멩스크, 에드문드 듀크 따위 스타크래프트 초기 영웅들 사이에 드러나는 갈등, 사랑, 고뇌도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그 때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 잘 짜인 스타크래프트 시나리오가 과연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때 스타크래프트 말고도 수많은 게임 시나리오를 읽어 보았는데, 나름대로 매우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시나리오를 몇 편 발견했다. 그런 시나리오들도 과연 문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게임 시나리오를 소개한 문학 교과서는 못 봤다. 그런데 잘 짜인 영화 시나리오를 소개한 문학 교과서는 분명히 봤다. 영화 시나리오가 문학에 속한다면 게임 시나리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게임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서 시나리오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뚜렷해진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게임 시나리오도 문학에 집어넣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순수 문학과 사회 참여 문학을 둘러싼 열띤 논쟁과 견주어 볼 수도 있었다. 문학에 관한 논쟁은 흔히 문학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고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순수 문학을 강조하는 측과 사회 참여 문학을 강조하는 측은 각자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지 관한 견해를 지니고 서로를 비판한다. 게임 시나리오를 문학에 집어넣는 일도 문학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문학적이다'라고 말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그런데 그 기준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적어도 문학에서는 그 기준을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문학 이론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 문학 이론이라는 것도 워낙 다양해서 사람마다 말이 다른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궁금한 점만 이야기하고 끝내버리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탄탄한 시나리오를 소설로 풀어낸 이 소설은 매우 재미있다. 그리고 오버마인드라는 신과 같은 존재가 통치하는 저그 사회 체계 따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뜻밖으로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던진다. 스타크래프트를 그저 즐기기만 하는 사람들한테 특히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고 나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새롭게 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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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국가 -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본 사회 진단과 전망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열대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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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55년 동안 일본에서 집권한 자민당 정권이 드디어 종말을 맞이했다. 8월 30일 중의원 총선에서 480석 중 야당인 민주당이 단독 과반수인 241석을 훨씬 뛰어넘는 308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자민당과는 사뭇 다른 일본 정책 기조를 분명히 기대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중국, 한국 세 나라에서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미국, 중국, 한국 세 나라에서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재정건전화 정책, 서민복지 강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지 또는 대안 마련 따위 여러 가지 정책은 동북 아시아 여러 나라, 특히 대한민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아소 다로 총리가 민주당에게 정권을 맡긴다면 일본 경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곧 17대 대통령 선거 유세 때 이명박 후보자가 했던 것과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일본 국민들에게는 전혀 먹혀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막판 변수 또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극우 세력이 아무리 자민당을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아소 다로로 이어지는 자민당 정권이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저지른 온갖 실정에 지친 듯하다. 평생 동안 처음으로 자민당을 찍지 않았다고 하는 노인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걸 보면, 자민당이 지금까지 정말 엄청나게 잘못하기는 한 것 같다. 그 근본에는 자민당이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미명 아래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이 있다.

 

전영수는 저서 '일본을 통해 본 한국경제 프리즘'에서 2002년 2월에 일본경제는 바닥을 찍고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했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삶은 경제가 어렵다고 외치던 때나 뚜렷하게 회복된다고 하는 때나 변하는 바가 거의 없어보였던 것 같다. 국고는 나날이 풍족해지고 주가는 뛰었지만, 정작 서민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프리터(아르바이트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 결국 한 마디로 비정규직 신세)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만큼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졌다. 도시든 시골이든 일본답게 깔끔하기 짝이 없지만, 정작 그 위에서 벌어지는 현실 자체는 정돈된 거리답지 않게 너무나도 암울하고 추악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과 긴밀한 경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던 일본 또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불러일으킨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오죽하면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극우주의자인데도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며 일본과 같은 처지에 놓인 한국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어하는 일본 가수도 있을까. 2008년 8월에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투쟁 결의 대회 때 일본에서 연대하고자 찾아온 일본 여자들을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국가 재정은 갈수록 풍요로워지고 거리는 갈수록 화려해지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꾸려가는 삶은 갈수록 비참해지며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런 암담한 현실에 일본 사람들은 넌덜머리를 냈으며, 결국 나라를 그 모양 그 꼴로 만든 자민당 정부를 투표로써 심판한 것이리라.

 

사실 나는 지금까지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글 가운데 정치와 관련된 글은 그다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실제로 반핵 운동도 전개했으며 학생 운동에도 많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글만을 보고서는 그가 한중일 삼국 관계에 관해서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절대 미루어 짐작할 수 없었다.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新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거악과 언론' 같은 명작을 써서 썩어빠진 일본 자민당을 혼쭐냈다 하더라도, 최근에는 어떻게든지 변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솔직히 가끔씩 하기도 했다. 일본 공산당을 비판하기에 조총련과 북한 또한 바람직하지 않게 보다가 일본 극우 세력과 통하는 논리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설레발에 가까운 생각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열광했던 다치바나 다카시가 정작 정치면에서는 나를 그토록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이 책 '멸망하는 국가'를 사서 읽었다. 역시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 장씩 책을 넘길 때마다 역시 열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 시장, 천황론, 근현대사 문제, 헌법론, 신자유주의……현대 일본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이 책에서도 거침없는 필력으로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례를 분석하면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논리가 왜 타당성이 있는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주요 내용과 그에 관한 생각을 간단하게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1. 라이브도어 사건 -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리먼브라더스(2008년 8월에 조선일보가 인수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가 9월에 부도나는 바람에 크게 망신을 당한 그 회사)와 라이브도어(일본 미디어 시장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리만브라더스 배만 잔뜩 불려준 그 회사)가 짜고 일본 미디어 시장 장악 공작을 펼치다가, 소프트뱅크 인베스트먼트(SBI)에서 나서는 바람에 실패한 사건.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계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거대한 흑막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특히 리만브라더스가 짠 어떻게든지 자기들은 이익을 보게 만드는 라이브도어 융자 계획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증권거래법이나 분식회계 사건이 아닌 더 거대한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한 검찰이 무려 특수 검사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전담반을 편성해 수사를 벌였다고 한다. 라이브도어 사장 호리에가 지하 금융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에, 그동안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일본 지하 금융계가 실물 금융계에 어떻게 부정하게 개입해 왔는지 드러날지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거기에 관해서는 어쩌다가 실물과 관련된 쓸만한 정보가 나오기도 한다고 간단하게 언급한 뒤, 더 큰 문제는 리만브라더스로 대표되는 미국금융자본이 일본에서 금융 이익을 강탈해 가는 구조라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미디어는 적대 인수 합병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산업이라는 사실 또한 확고하게 밝힌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 금융 자본이 정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도 라이브도어 사건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까닭이 전혀 없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본은 국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덧붙이자면 정작 일본을 보고 배워야 할 점은 배우지 않고, 자기들 뿌리를 유지해 주는 안 좋은 것들만 배우는 친일 수구 세력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미 이명박 정부를 보위하는 조선일보가 앞에서도 밝혔듯이 리만브라더스를 인수해서 금융 강국으로 거듭나자고 주장했다가, 리만브라더스가 갑작스레 몰락하는 바람에 신문으로서 공신력은 이미 바닥에 이르렀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게다가 라이브도어 사건이 일본 언론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중동 중심 언론 장악 기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공신력이 극도로 떨어진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미디어 시장에 적극으로 뛰어들어 대한민국 언론 개혁 선두에 서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다. 거짓투성이인 언론 관련법은 무조건 철폐되어야 한다.

 

 

2. 천황론과 대일본제국 - 태양신은 여성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천황과 도쿄대'라는 방대한 저서를 최근에 출간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여기에서도 간략하게 다루며, 천황제가 근대 일본과 현대 일본에서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가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그리고 여성 천황 논쟁 안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일본 근현대사 문제를 명쾌하게 파헤친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근현대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일본 근현대사 논란에서 한국 사람들이 배울 것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3. 야스쿠니론, 헌법론 - 생각과 태도를 바꿔라

 

흔히 일본 극우 세력은 일본 평화 헌법 9조가 일본이 강대국으로 거듭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면서, 틈만 나면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사실 1955년에 일본 보수당 두 곳이 합쳐져서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일본 극우 세력에게서 비호를 받고 있는 자민당이 무려 54년이나 집권했는데도 헌법이 개정되지 않은 게 정말 신기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헌법이 지금까지 개정되지 않은 것 자체가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일본 극우파들이 장악한 자민당 정권에서 자꾸만 나오는 개헌론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론을 비판한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이 어떤 조약을 근거로 국제 사회와 평화를 수호하고 안전과 신의를 보장받기로 약속했는지 분명하게 밝히며, 극우 세력은 그런 기본 상식조차 없는 주장을 내뱉는다고 일갈한다. 국가보안법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수구 세력이나 몇 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평화를 일그러진 신념 때문에 스스로 깨뜨리려고 하는 일본 극우파나 몰상식한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4. 고이즈미 개혁의 진실 - 그 정치 방법과 일본의 앞날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앞에서도 몇 번이고 강조했듯이 고이즈미가 추진하는 개혁 자체는 일본에게는 이득이 하나도 없으며 모든 이득을 미국이 챙겨가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완성판이다. 고이즈미가 기를 쓰고 추진한 그 대표 정책이 우정국 민영화 정책이다.

 

놀라운 것은 우정국 민영화 정책이 참의원에서 좌초되자 중의원을 해산시켜 버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 보여준 과감함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설사 가결되엇다고 하더라도 중의원을 해산시킨 뒤 총선거로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정국 민영화 가결을 개혁 실적으로 내세워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면, 자기 권력을 더욱 공고히 굳힐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부흥을 추진하려면 처음부터 개혁을 추진한 세력이 계속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서 18년이라는 유례 없는 장기 집권을 실현한 것을 보고 배우는 듯하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런 꼼수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우정국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며, 그런 우정국이 적자가 난다고 해서 개혁(?)해서 민간업자에게 팔아넘기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짓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일부 민간업자들이 챙길 이득을 위해 넘겨주는 것은 애당초 당위론에서부터 어긋나며, 민영 체제로 바뀐 우정국에서 제공할 서비스가 국내 투자를 가장한 외국 자본 침탈에 따라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정국이 적자가 나는 까닭 또한 우정국 자체가 부실한 탓이 아니라 우정국과 관련된 정책을 자기들이 콩고물을 챙겨먹기 좋도록 변질시킨 자민당 정권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라는 이름을 내걸었다가 거대한 반대에 부딪치자 이번에는 '선진화'라는 말을 내세워서, 기득권이 더욱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보장하려고 하는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이 저지르는 작태 또한 고이즈미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과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최근에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건실한 인천국제공항을 팔아넘기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인천국제공항노조를 지원하고 반대 운동을 전개하여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자민당이 저지른 실책을 한국에도 널리 알려서, 한나라당이 얼마나 많은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추악한 정당인지 사람들이 하루빨리 깨닫도록 해야 한다.

 

본문이 다루는 주제와는 약간 빗나간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 국철이 부도난 뒤 민간에서 경영하게 되면서 일본 철도가 국가 물류 동맥으로서 새롭게 거듭난 사례를 제시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선진화 정책 또한 그런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철도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끔씩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짧은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 국철이 부도가 난 뒤 민영화가 이루어진 데는 정략 판단이라고 볼 만한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선진화 정책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결국 그 수혜자가 국민도 아니고 선진화 대상 기업도 아닌 일부 투기 세력과 기득권층일 뿐이기 때문이다. 

 

 

5. 포스트 고이즈미의 미래 - 킹 메이커의 집념과 야망

 

오랫동안 이어진 자민당 독재 체제 안에서 최근에 대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 온 고이즈미 전 총리 또한 자민당에서 총리로 선출되면서부터 이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적한 것처럼 '킹(총리)'에서 '킹 메이커(총리로 올라설 사람을 지명할 수 있는 배후 권력자.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로 거듭나고자 자민당 안에서 항상 힘겨루기를 벌여왔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보기에는 이미 고이즈미는 '킹 메이커'라고 불려도 적합할 만한 정점에 올라섰으며, 그에 따라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혁이 좌초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다치바나 다카시가 전망하는 일본 정계와 사회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다. 이미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정책을 가지고 그렇게 기를 쓰는 마당에, 무슨 희망을 볼 수 있겠는가? 하긴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쓴 뒤 3년 만에 그 희망을 보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던 것 같다. 중국과 한국이 본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하고자 꿈틀대는 모습을, 다치바나 다카시는 극우파와 같은 생각을 일삼는 고이즈미가 의회에서 전제 군주와 같은 대접을 받는 진풍경에서 보았다.

 

언론 관련법을 국회법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통과시킨 한나라당에서 이제는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이원정부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2006년에 고이즈미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이 꿈꾼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가 고이즈미'가 킹 메이커로 군림하면서 다음 총리 후보와 주요 각료 후보를 지명하는 시대(비록 지금은 실패로 돌아갔지만)라면,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한나라당이 꿈꾸는 '포스트 이명박 시대'는 이번에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개헌안에서 그 윤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고이즈미와 마찬가지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서 한나라당 안에서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마당에서 권력 분화를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단순하게 한나라당 안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짓을 보니까 도저히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니는 속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나라당이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어디에서 조사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여론 조사 결과를 들이대면서 애써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민심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서 떠날 대로 떠났다는 사실을 한나라당 또한 모를 까닭이 없다. 그렇기에 나중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통령과 여당이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으려는 포석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암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일본처럼 국민이 투표로써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6. 이라크 문제 - 부시 정권의 기만과 일본의 책임

 

앞에서 이야기한 평화 헌법 9조에 관한 비판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평화 헌법 9조 덕분에 일본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세계 어디에서도 전쟁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평화를 수호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어줄 수 있었다. 이는 일본이 그토록 소망하는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여러 나라, 특히 한국과 중국이 거부감을 덜 느끼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 때도 한국처럼 미국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이라크에 파병하는 바람에 치르는 곤욕 또한 아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극우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평화 헌법 9조를 개정해 버리면, 그 뒤에는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군사 지원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군산복합체를 기반으로 경제 난국을 타개하는데 익숙했던 미국인지라 경제 불황이 닥치면 전쟁은 필연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전쟁에서 일본이 더는 손을 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 구조 개편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마당에, 군사 행동마저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일본에는 더는 답이 없다. 일본 헌법을 뒷받침하는 역사 배경에 관한 몰상식 때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설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고이즈미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이 내세우는 '보통국가론'을 다치바나 다카시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덧붙여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애국과 안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이 후퇴했는지도 빠뜨리지 않는데, 이는 반공과 안보 논리가 지배한 대한민국사에 크나큰 경종을 울린다.

 

여기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라크 문제에 관해서 한국을 교훈으로 삼은 것은 한국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도 막상 미국이 파병을 요구하자 선뜻 거절하지 못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면서 국방 예산 8~9% 증액을 보장하고 군사력 증강에 힘쓰기는 했지만, 막상 미국과 혈맹을 강조하는 보수 세력이 하는 주장을 과감하게 물리치기는 힘들었나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파병은 실현되었고, 자국민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반군에게 참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런 이라크 파병을 놓고 한나라당 탓만 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데, 다치바나 다카시가 주장한 평화 헌법 9조 효용론과 미일 군사협정론을 보고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앞으로 한국 또한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SOFA)을 정말로 대등한 나라끼리 맺은 조약답게 개정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숭미 수구 세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미국에게 군사 문제 때문에 휘둘리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7. 미디어론 - 인터넷 시대, 언론의 사명과 미래

 

투철한 언론인으로서 한평생을 자민당 정권이 저지른 부패를 고발하는데 바친 다치바나 다카시는, 마지막 장에서 자민당이 언론에 자기들에게 불편한 것은 보도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언론 또한 권력 입맛에 맞추고자 논조를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에 따른 태도를 보이는 현실을 고발한다. 덧붙여서 미국에서 벌어진 챌린저 호 폭발 사고가 왜 벌어졌는지에 관한 자세한 분석까지 덧붙여서, 사회가 유지되는 근간이 일본에서는 이미 심각하게 삐걱거리며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런 삐걱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지만 절대 정의로운 심판을 받지 않는 추악한 일들을 폭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매체라고 강조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디나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사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처럼, 대한민국사에서 사회 정의를 끈질기게 가로막은 수구 언론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대표 언론으로 군림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는 수구 세력이 다시 집권할 수 있었던 까닭도 김대중 & 노무현 정권 때 언론이 집요하게 그들을 깎아내린 탓에 있다. 조갑제나 지만원 같은 작자가 사회 정의를 외치면서 수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마당에, 과연 대한민국에서 다치바나 다카시 같이 훌륭하고 정의로운 언론인을 찾는 게 가능한 일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 책에 담긴 글은 2005~2006년에 쓰여진 것이다. 곧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라 현직에 있으면서 우정국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다가 입법 부결이라는 장애물을 만나자 의회 해산이라는 파장을 일으킨 시기에 쓰여진 글이다. 고이즈미는 결국 아베 신조를 차기 총리로 낙점했고, 아베 신조는 2009년 8월 30일에 민주당에게 참패를 당한 아소 다로를 차기 총리로 내세웠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일본 국민들을 도탄으로 몰아넣고, 끊임없는 극우 책동으로 동북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적한 '킹 메이커'로서 군림하려고 끊임없는 정치 공작을 일삼은 고이즈미는 결국 국민들에게 철퇴를 맞아 '킹 메이커' 자리에서 물러나는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 했다. 

 

일본에는 55년 동안 정권을 쥐고 흔들며 동북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권력에서 나오는 더러운 단물을 빨아온 자민당이 있다면, 한국에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잠시 정권을 내 줬지만, 2007년에 다시 집권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면서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북한과 갈등을 조장하며 부정 축재를 일삼는 한나라당이 있다. 과연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에서는 일본과 같은 대변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결 같이 부패한 수구 세력에 맞서는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언론인을 대한민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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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
슈테파니 츠바이크 지음, 안영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관점(觀點)은 무엇인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데 쓰는 시야다. 가시광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적외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관점이라고 하면 이런 관점이 아닌 정신 작용에 따른 관점을 생각한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매우 차원이 높은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관점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주제로 삼았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사소할 수도 있는 관점 차이 때문에 실제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는 냉전도 자본주의를 삐딱하게 바라본 한 청년 때문에 생겼다.

 

그런데 그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주체가 사람이라면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워낙 많이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물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자기가 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세상을 생각하고 해석한다고 치자. 동물도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 끈질기게 이어져 왔지만, 그에 관한 논쟁은 다 집어치우고 단순하게 '만약 그렇다면'이라고 생각해 보자. 상당히 우스꽝스럽지 않겠는가? 동물이 아주 신념이 강한 다원주의자가 아니라면,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행동이 대단히 이상해 보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는 생물들이야 인류가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명 자체가 시덥잖고 사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는 문명 비판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율리아 프란츠라는 노처녀 여의사 눈에 들어와 그 집에서 살면서 '시시'라는 이름을 얻은 고양이가 집안에서 주인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양이는 자기 이름을 함부로 짓는 율리아를 생각이 없다면서 속으로 나무라고, 동물병원에 가서는 아주 난리굿판을 벌이는 따위로 독자들이 피식 웃도록 한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끔씩 이것이 시시가 한 생각인지 작가가 한 생각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리고 고양이 눈으로 바라볼 때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나는 율리아가 새로 생긴 남자친구(?)와 옷을 벗고 질펀하게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고도 전혀 흥분하지 않고 담담한 시시를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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