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집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에서 이것저것 일을 하다가 책을 미처 다 읽지 못했다. 그래서 부산에 이 책을 들고 갔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었고, 기숙사에 들어온 뒤 침대에 벌렁 누워서 나머지를 다 읽었다.

 

며칠 뒤에 동생한테 빨리 이 책을 집으로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다음에 집에 갈 때 나는 연락을 받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결국 한 달이 넘어서야 나는 이 책을 집에 가져갔다. 그런데 그 동안 나는 책을 대충이나마 몇 번 더 읽었다. 책이 매우 재미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체로키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살게 된 아이가 바라보는 자연과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자연을 벗으로 삼고 자연 속에서 살아온 할아버지는 문명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르지만, 자연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박식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자연스레 꿰뚫고 있다.

 

그런 할아버지는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처참하게 짓밟힌 자연을 안타깝게 여기고, 문명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꿀을 쓸데없이 모아 놓았다가 나중에 곰이나 사람에게 빼앗기는 벌이나, 돈에 목숨을 걸고 추잡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나 똑같다고 일갈하는 그를 보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한지 모른다.

 

사람이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교훈은 지겹다 못해 진저리를 칠 만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논리 아래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한 문학 작품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양자 과정에서 무수한 방법이 갈라지므로, 같은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양성이 문명을 풍요롭게 한다고 하지만, 나는 요즘은 어떤 면에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이상하게도 같은 주제를 띠고 있다면 '아무리 돌려 말해도 결국은 그 말이잖아' 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것이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보수화'일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하긴 겉으로는 다른 논리를 포용하려고 힘쓰는 척 해도 실제로는 내가 옳다는 것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을 지닌 나이니, 이미 내 안에는 보수성이 깊이 뿌리내려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희망이 없다. 새로운 길을 찾고 걸어갈 넘치는 의욕은 청춘에게만 있는 둘도 없는 행운이니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껏 누리라는 말이 이상할 정도로 가슴 속에 깊이 와닿는다.

 

어쨌든 문명을 비판하면서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주제를 다룬 책은 특별하지 않다면 그저 그렇고 어떤 때는 거부감을 느낀다. 아마 이는 뇌는 익숙해진 것은 기억에 상관없이, 곧 신경을 쓰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도록 배선을 정리한다는, 이른바 '오토마톤 구조'를 보여준다는 말을 뒷받침할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삶을 글자로만 느껴도 저절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느낌에는 진실(reality : 실제)이 없고 실체(substance : 실재)가 없다. 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것이 바로 자기도 모르게 세뇌당했다는 건가? 자기가 온몸으로 경험하여 얻은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럴 때마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견디기 힘들다. 문명 사회에서 벗어나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고, 문명 사회에서나 누릴 수 있는 정보로 이루어진 바다에 푹 빠져 있는 주제에, 문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학교에서도 촌놈 소리를 듣고 순수하게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들 앞에서는 나름대로 아는 체를 할 수 있다만, 이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과 견주어 보면 어른과 어린애만큼 차이가 난다. 무언가 제대로 알지 않고, 이것저것 주워듣고 아는 체만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 책이 주는 좋은 교훈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나는 고리타분한 일상과 관념에 젖어 있던 내 모습을 엉뚱한 곳에서 동기를 얻어 까발리고 마구 칼질을 해 버렸다. 그 뒤 뭔가 발전한다면 좋다. 그런 것 말고도 이 책 제목대로 따뜻한 영혼을 구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문명 사회에는 지나치게 익숙해져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색에 한 번 잠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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