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타크래프트 1 - 에피소드 1, Desperate Alliance
임영수,신주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스타크래프트만큼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유행하는 컴퓨터 게임도 없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98년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나왔으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까지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나온 뒤 스타크래프트는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모르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침 그때 PC방이 처음 생기고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높은 인기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그때까지 안정된 대전 모드를 지원하는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사실 스타크래프트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서버(Starcraft Battlenet Server)에는 그때 유행하던 울티마 온라인 서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PC방은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프로 게이머(Professional Gamer)라는 직업이 등장하자, 게임에 몰두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재미있는 게임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왔으니 열광할만도 했다. 어떤 대학교는 인터넷 게임을 다루는 학과를 신설하기도 했고, 프로 게이머들이 그런 학과에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거기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들은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를 보고 속이 터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초기에는 신주영, 임영수, 이기석과 같은 강자들이 나타났는데 영원한 강자는 있을 수 없듯이 그 뒤를 이어서 수많은 프로 게이머들이 강자라는 명성을 얻으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가운데 임요환, 박정석, 홍진호와 같은 인물들이 제법 이름을 날렸다. 온라인 게임 TV를 잘 보지 않아서 프로 게이머들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세월이 흘러 게임 산업이 나름대로 발전하여 다양한 인터넷 게임들이 인기를 얻고 프로 게이머들이 생겼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만큼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게이머는 흔하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미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들은 여전히 온게임넷(OnGameNet) 같은 게임 전문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으며 활약하고 있다. 실력 있는 프로 게이머들은 연예인처럼 팬클럽이 있고, '테란 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임요환은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한 인터넷 소설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인터넷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책으로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공상 소설들은 책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점에서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책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이 '소설 스타크래프트'였다. 공상 소설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게임 시나리오를 소설로 만든 것이라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지금과 다르게 중학생 때는 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비상한 관심을 보여 당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오락실 갈 돈도 모자라서 쩔쩔맸던 내가 6000원이라는 거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일단 서점에 가서 단숨에 다 읽고, 오락실이나 PC방에 갈 돈을 아껴서 샀다.

 

그 때는 대개 PC방 요금이 1시간에 1500원이었고, 친구들과 한 번 PC방에 몰려가면 적어도 두 시간씩은 앉아 있었다. 곧 두 번만 참으면 이 책 한 권을 살 수 있었다. 5권까지 나왔는데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 시나리오까지만 다뤄서 아쉬웠다. 브루드워 시나리오가 담겨 있을 6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재미만 얻은 것이 아니라, 그때 내가 몰두하던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게임 공상 소설을 쓰는데도 참고하고, 한글판이 나오지 않았을 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물론 미션 해설집이 있기는 했지만, 좀 딱딱한 설명조로 일관하는 미션 해설집보다는 이야기 한 편으로 풀어내린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고 머리에도 더 잘 들어왔다.

 

프로 게이머들이 직접 써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에는 사람들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전술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기본 이야기 흐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건 묘사는 프로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게임이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을 토대로 삼고 있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라는 세 종족이 광활한 우주에서 벌이는 생존 게임(?)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태서더, 제라툴, 알다리스, 짐 레이너, 사라 케리건, 아크투러스 멩스크, 에드문드 듀크 따위 스타크래프트 초기 영웅들 사이에 드러나는 갈등, 사랑, 고뇌도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그 때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 잘 짜인 스타크래프트 시나리오가 과연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때 스타크래프트 말고도 수많은 게임 시나리오를 읽어 보았는데, 나름대로 매우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시나리오를 몇 편 발견했다. 그런 시나리오들도 과연 문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게임 시나리오를 소개한 문학 교과서는 못 봤다. 그런데 잘 짜인 영화 시나리오를 소개한 문학 교과서는 분명히 봤다. 영화 시나리오가 문학에 속한다면 게임 시나리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게임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서 시나리오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뚜렷해진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게임 시나리오도 문학에 집어넣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순수 문학과 사회 참여 문학을 둘러싼 열띤 논쟁과 견주어 볼 수도 있었다. 문학에 관한 논쟁은 흔히 문학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고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순수 문학을 강조하는 측과 사회 참여 문학을 강조하는 측은 각자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지 관한 견해를 지니고 서로를 비판한다. 게임 시나리오를 문학에 집어넣는 일도 문학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문학적이다'라고 말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그런데 그 기준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적어도 문학에서는 그 기준을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문학 이론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 문학 이론이라는 것도 워낙 다양해서 사람마다 말이 다른 일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궁금한 점만 이야기하고 끝내버리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탄탄한 시나리오를 소설로 풀어낸 이 소설은 매우 재미있다. 그리고 오버마인드라는 신과 같은 존재가 통치하는 저그 사회 체계 따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뜻밖으로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던진다. 스타크래프트를 그저 즐기기만 하는 사람들한테 특히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고 나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새롭게 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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