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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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이 된 뒤 대학 동기들은 매우 힘겨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와 같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들을 휘어잡았고, 대학교에서 보낸 지난 세 해를 돌이켜볼 틈도 없이 임용고시 공부를 본격으로 시작해야 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그들은 설사 시간이 있더라도 내 전화를 받기가 쉽지 않았고, 오랜만에 휴가를 나가서 만나자고 연락해도 잠깐이나마 만나기도 힘들어했다. 항상 무슨 일이 있었고, 설사 무슨 일이 없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만나기가 좀 그렇다고 어렵게 사정을 설명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처럼 말이다.  


 
처음으로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혔으며, 같이 장기자랑을 연습하고 모두 술자리에 모여 웃고 떠들던 때가 세 해 하고도 약 여섯 달 전이다. 내가 동아리와 학과를 정신없이 오고가며 힘들어할 때 그들이 나에게 힘내라고 격려해 준 때가 두 해 하고도 약 여섯 달 전이다. 내가 해병대에 간다고 했을 때 그들이 그토록 격렬하게 반대하며 나를 걱정해 주던 때가 약 두 해 전이다. 내가 해병대에 온 뒤 그들에게 전화를 걸면 정말 반갑게 받던 것은 한 해 전까지만 현실이었다.  


 
그들에게나 나에게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엄연한 현실은 가혹했다. 모두 각자 사회와 군대에서 자기 앞에 주어진 과제에 막중한 부담을 느껴야 했다. 그런 우리에게 대학교에서 같이 보낸 지난 두 해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아쉬운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로 옆에 있었다. 각자 일이 있어서 바쁘게 따로 움직일지언정 함께 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충분히 힘을 주었다.  


 
그런데 내 동기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막상 그 행복한 시간 속에서 나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동아리와 학과를 오고가면서 나름대로 바쁘게 사는 동안,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부조리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깨달으면서 나는 화를 냈다.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고마운 것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또 화를 내고 슬퍼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동기들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내가 화를 내고 슬퍼하는 까닭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배려'를 읽은 뒤 이 책 '경청'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이토벤처럼 행동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베토벤은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 연습만 강요하는 지독하게 고집이 센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독선과 아집을 자기도 모르게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화가 필로모프를 예로 들 수 있듯이 예술가에게 좋은지 나쁜지 지금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성격을 베토벤도 음악을 하면서 더욱 견고히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붙여준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강한 별명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구조 조정이라는 한파가 몰아치고 이토벤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 위기 속에서 자기를 쌀쌀맞게 대하는 회사 사람들과 아내를 보면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왜 그러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토벤'이라는 별명 속에 숨은 뜻을 깨닫고 마음을 얻는 지혜인 경청하는 방법에 조금씩 눈을 뜨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확실히 변하는 이토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도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어떤 위기라도 서로 경청하고 깨달으면서 극복해 나갔다.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에게 뭉클한 감정을 안기지만, 이토벤 아들 현이가 아버지가 만든 바이올린으로 멋진 편곡을 선사하는 장면에서는 슬프면서도 짜릿한 감동을 준다. 그 모든 이야기를 '배려'에서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마음을 울릴 수 있도록 이끌어나간 솜씨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냈다.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토벤이나 나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다른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요즘과 다르게 예전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메신저를 켜서 많은 사람들과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나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의 항상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았다. 게다가 황당하게도 이야기하는 내가 스스로 모순에 빠져버리는데,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은 과연 어땠을까? 아무리 참을성이 뛰어나더라도 결국은 답답하고 짜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또 다른 진실을 깨우쳐 주려고 이야기하려고 해도, 나는 그들이 하는 진솔한 이야기를 거의 대부분 막아버렸고 어쩌다가 듣는다 하더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래서 거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내가 처한 현실은 항상 짜증나고 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했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닥친 새로운 현실을 원망하면서 그제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지금 잔인한 현실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할 지 걱정했다. 그들은 이런 나를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스노우퀸이 이토벤이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시선을 조금씩 따뜻하게 바꿨듯이, 그들도 나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경청할 수 없다. '배려'를 읽은 뒤에 이 책 '경청'을 읽은 건 정말 적절한 순서였다고 생각한다. 순서가 반대로 되었다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이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독후감마다 항상 다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대학 동기들에 관한 한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기에는 이 독후감이 딱 좋았다. 나는 동기들을 배려하지 않는 바람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진실을 얻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으니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겠다.  


 
2007년 12월 2일. 2008년도 중고등교원임용고시. 대부분 동기들은 이 고시에 응시했다. 나는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이번에 임용고시를 치는 동기들에게 이번에 무조건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편지를 썼다. 그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그들이 실망했다면, 나는 그 실망 때문에 생긴 상처를 완전히 치료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다독거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2008년 1월 7일. 내가 한창 정기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결과가 나왔다. 나는 그 결과를 보고 매우 슬퍼했다. 구포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새마을호를 탔다. 열차 안에서 차창 밖 부산 풍경을 바라보면서, 바깥에 있는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면서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고 전화로나마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기들이 잘 되어야 나도 마음이 편할 텐데, 그들이 그 결과를 보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8량 편성인 열차에서 7호차에 탔기 때문에 동력차인 8호차가 최고 출력을 내면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자꾸만 간지럽혔다. 이제 내 동기들은 실망을 극복하고 오랜 수험 기간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내가 탄 열차를 움직이는 동력 장치처럼 활동해야 한다.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시라도 그들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면, 마음을 얻는 지혜인 경청을 깨달은 지금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수 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도 어떻게든지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를 기르고자 부지런히 힘쓰겠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사랑하는 내 동기들에게 새해에는 행운만이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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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 한국사의 잊혀진 무대, 한국 해양의 역사
강봉룡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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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부대에서 한 해에 3주씩 도구 해안에서 전투수영 훈련을 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도 나는 수영을 매우 즐겨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영장이나 강과 계곡에서만 수영을 했지 바다에서는 수영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한편으로는 겁도 났다. 그래도 큰 맘 먹고 부딪쳐 보니까, 역시 예상대로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는 훈련이었다. 안 그래도 날씨도 더운데 종일 시원한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불만이라고는 단지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되는 몸 풀기(PT)가 힘들다는 것과, 도구 해안 옆에 있는 포항제철 때문에 물이 더럽다는 것뿐이었다.

 

너울거리는 파도를 오랫동안 정신없이 가르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숨이 잘 골라지지 않아 정신이 번쩍 들고 사점이 찾아온 것 같지만, 약 200m만 헤엄쳐 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수영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히 그랬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계속 헤엄쳐 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km를 훌쩍 넘는 거리를 헤엄쳐 가 합격선을 통과했다.

 

헤엄치는 동작을 반복하는 신호를 온몸에 보내는 생체 회로 말고는 거의 모든 회로가 전원이 나갈 것 같은 그런 지경에서도 나는 가끔씩 주위를 살폈다. 숨을 쉬고자 물속에 담근 머리를 밖으로 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물과 그 위에 일렁이는 파도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뿐이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그 드넓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 그윽한 심연과 수평선은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인류로 진화한 유인원이 정글에서 벗어나 황량한 사바나로 간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지니고 있는 그 모호함과 가능성에 기대와 두려움을 한꺼번에 품고 배를 만들어 바다 위에 띄웠다. 바다에서 무엇이 나올지도 몰랐고 수평선에 무엇이 있을지도 몰라 항상 불안했지만, 그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정도로 해상 활동은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이익이 해상 활동에 더욱 적극으로 나서도록 그들을 부추겼고, 해상 활동과 실리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관계로서 서로를 키웠다.

 

근대 유럽에서 그토록 눈부신 문명이 발달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일찍이 신항로를 개척하며 해상 활동에 누구보다도 적극성을 보였던 근대 유럽인들은 온 세상에 위세를 떨치며 번명할 수 있었다. 그건 세계사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일 뿐이며, 일일이 그 예를 들자면 이 글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종이가 들어갈지 쉽게 짐작할 수조차 없다. 땅에만 머무르고 바다로 진출하려고 하지 않은 자들은 바다를 제패한 자들에게 짓밟혔다. 그것은 세계사에서 엄연한 현실이며 '법칙'이었다.

 

이 책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는 그 법칙이 한국사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사에서 나타난 모든 해상 활동에 중점을 뒤서 한국사에서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과 큰 흐름을 해상 활동 주체와 연관하여 추적하고 설명한다. 고조선에서부터 한일 합방까지 이어진 한국사를 해양 세력 태동 • 부흥 • 쇠퇴기로 나누고, 삼국 시대에 일어난 모든 국제 전쟁과 임진왜란을 각각 '제 1 • 2차 동북아 대전'으로 이름붙인 것도 흥미롭다. 그 때문에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주장이 등장하거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이는 공교육 과정에서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라서, 얼떨결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이 매우 알차고 어렵지도 않아서, 그 정체 모를 거부감은 금방 사라지고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교양을 쌓는데 제격이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사 전반을 다룬 온갖 책을 읽으면서 이념 대립에 따른 서술 방식 차이와 기술 • 과학 • 문학 • 철학 같은 주제에 따른 차이는 이미 몇 번이고 느꼈지만, 단지 땅에서 바다로 공간 관점을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점이 달라진다는 건 처음으로 알았다.

 

지은이는 삼국 시대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천 여 년 동안 해상 활동이 활발했을 때는 한반도가 비록 수많은 외세 침략에서 자유롭지 못했을지언정 그들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지는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다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세계사에서 가장 드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고가 자기 영토에 견주었을 때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고려를 정복하는데 40여 년이나 걸렸고, 그것도 화친이라는 형식 아래 겨우 고려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이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지독한 항전사이며,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뚜렷한 개방성을 자랑한 고려가 얼마나 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외세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주요 까닭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한 가지가 바닷길이나 항구가 막혀 문물 교류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명한 예를 한 가지 들자면 왜구가 극심하게 한반도 연안을 약탈하던 시기와 교역에 문제가 생겼던 시기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바닷길을 따라 중국 대륙과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이미 국제 무역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고, 그 세 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국제 무역에서 나름대로 이익을 보면서 발전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맹 관계와는 맞지 않는 현상도 수시로 일어났다. 남하 정책을 쓴 고구려에서 출발해 한반도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일본 열도를 이어지는 연안 항로가 고구려 때문에 막혔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청해진을 건설하고 국제 무역을 주도해 해상왕으로 인정받은 장보고, 나주 오다련 일가를 포섭하는데 성공해 후백제를 무너뜨리고 고려를 건국할 핵심 기반을 마련한 왕건, 임진왜란에서 백척간두에 모인 조선을 구한 이순신……한국사에서 굵직한 필체로 자기 이름을 남긴 이들은 바다가 얼마나 중요핮니 인식하고 바다에서 슬기롭게 활동할 줄 알았던 진정한 바다 사람들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수준 높은 유교 문화를 전파한 왕인도 삼국 시대에 해상 무역에서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잡은 백제 사람이었기에 일본에 유교 문화를 전파하고 그 시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몽고와 화친한 고려 정부가 공도 조치를 내놓고, 고려 뒤를 이은 조선이 조치를 정책으로 확정하면서 해상 세력은 치명타를 입고 몰락하고 만다. 그 때부터 한반도에는 개방성 대신 폐쇄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침 조선 정부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유교 사상은 고유한 성리학으로 발전하면서 그 폐쇄성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그 결과는 극삼한 문물 빈곤, 늦어진 근대화, 그리고 한일 합방이라는 끔찍한 비극이었다.

 

광복절을 맞이한 뒤 한반도 남쪽에는 대한민국이 섰고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섰다. 문호를 열고 국제 사회에 진출하고자 힘쓴 남한과 중국과 소련에만 의존하고 국제 사회에서 문을 굳게 잠근 북한이 지금 각자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 결과만 봐도 앞에서 말한 법칙이 근현대 한국사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 성장과 국력 신장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온갖 폐해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문을 닫아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겉으로는 문을 열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열린 공간인 바다와 그에서 파생되는 온갖 것에 막연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바다 사람과 섬이라고 하면 천박하다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떠올리는 경향이 여전히 짙다. 이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여전히 냉대하던 그야말로 천박하고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던 폐쇄성과 성리학 관념에 젖은 사대부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좋지 않은 인습이다. 그리고 바다를 멀리하면서 생긴 폐쇄성이 짙은 단일 민족 따위 온갖 논리들은 긍정할 만한 측면보다는 이상하게 변질되어 인종 차별과 지역감정 따위 온갖 문제를 불러일으킨 부정 측면이 훨씬 더 뚜렷하다. 조선 시대에 뿌리내린 잔재가 현대 한국인들 머릿속을 지배해서, 21세기 해양 시대를 열어 가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매우 곤란하지 않겠는가?

 

21세기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여전히 바다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우주는 너무 엄혹한 공간이며 우주를 지구처럼 이용하기에는 인류가 지닌 기술 수준이 턱없이 낮다. 하지만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공간이다. 당장 필요한 원자재 9할 7푼과 원유 9할 9푼을 항로로 나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은 바다에 사활을 걸고 과감한 해양 지향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해야 한다. 그 전에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바탕이 되는 관념을 바꿔야 한다. 이 책이 거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수영하면서 본 그 아찔한 심연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줄 끝없는 가능성과 개방성이었다는 사실을. 옛날에 한반도에서 살았떤 우리 조상들은 그 가능성을 보고 배를 저어 바다로 나깠고, 그 덕분에 한반도에서 번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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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의 Only One
임형주.김민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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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내가 활동하던 동호회에 배경 음악으로 'The Sally Garden'이 깔린 때가 있었는데, 그 노래를 우연히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와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 노래를 부른 임형주라는 사람에게 잠깐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팝페라라는 음악 분야를 새로 개척해 그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량과 업적을 쌓고 있다는 정보만 말 그대로 정보로 기억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이 책 '임형주의 Only One'을 만났다. 'Best One'이 아닌 'Only One'이 되라는 이어령 선생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아 책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고 그는 책날개에서 밝혔다. 그 뒤 본문에서 그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성공과 고난을 진솔하게 풀어놓고 있다. 쿠크다스를 즐겨 먹고 여성스러운 취미를 지녔으며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기도 한 20대라고 믿기도 힘들 정도로 앳된 소년에게서, 어떻게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한 힘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을 읽은 뒤 임형주가 부른 노래를 몇 십 곡 더 들어봤는데, 그가 부르는 노래에는 나이를 뛰어넘는 깊이와 힘이 있다. 음악에 관한 소양이 너무나도 빈약해서 그 깊이와 힘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풍부한 사진자료, 임형주가 추천하는 음악, 끝에 나오는 임형주 음반 소개와 자켓 사진. 임형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사서 소장해야 할 책이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지만 온 세상에 잘 알려진 팝페라 예술가다운 감수성과 천재성으로 온갖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그가 지니고 있는 깊이는 대단하다. 세계로 나아가는 그 꿈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그가 이야기한 모든 것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책 후반부를 읽기 전까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책 후반부에서 임형주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보며, 나는 책을 편안하게 읽고 싶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노래하고 즐길 수 있는 복합 음악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서 음악으로 몸과 마음에 생긴 온갖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대중성을 가미한 클래식 잡지를 발견해 사람들에게 클래식이 지닌 풍요로움과 기쁨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는 밝혔다.

 

사람들은 내가 모든 일을 긍정하면서 사는 것 같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모든 것을 부종하는 태도가 뼛속까지 배어 있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게으른 나를 채찍질해 지금 내 수준만큼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신 삶이 너무 피곤해졌다. 깨어있을 때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항상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나는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아무 뜻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음악도 예술에 들어가므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즐겨 들은 음악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갖 고민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달래주기는커녕 우울함과 쓸쓸함을 키웠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클래식을 즐겨 듣기에는 내 머리가 이미 힙합과 가요, 그 가운데에서도 어떤 특정한 선율에 너무 많이 절어 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음악이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클래식을 즐겨 듣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링리 것 같으니, 임형주가 만들고 싶어하는 그런 공간이 생기면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떻게든지 시간을 내서 들어가겠다.

 

내가 그런 생각보다도 더욱 신경을 쓴 것은 임형주의 어머니가 이 책에 쓴 글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공부기술'에서 조승연이 지금과 같은 공교육 체제가 언제부터 갖추어졌으며, 그 체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비판한 대목을 떠올렸다. 제 1 • 2차 세계 대전이 온 세상을 휩쓸 때 독일에서 처음으로 구축된 그 거대한 공교육 체제는 그 전까지 이어오던 자율 학습 존중이라는 바람직한 전통을 부정하고, 특정한 집단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식을 권장도 아닌 강요하는 풍토를 뿌리내리게 했다.

 

임형주의 어머니는 형주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게 자기가 지닌 그 풍부한 감수성을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필수 자질로 다듬도록 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과외나 학원을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자연과 어울리면서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내고, 그 속에서 시련과 아픔이 감동으로 승화하도록 유도했다. 그 글을 읽고 나서야 임형주가 나이답지 않게 노래 안에 온갖 희로애락을 절절이 담아낼 수 있었던 까닭을 이해했다. 스스로 모든 것을 겪어본 이들에게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어머니가 임형주를 유럽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개성 말살 체제에 동참시켜 보통 남자 아이들처럼 키우려고 했다면, 그는 절대 지금처럼 유명한 인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승연도 옛날 사람들이 지금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학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20대 초반에 일찌감치 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부모들에게 어린이들을 억지로 그 안에 집어넣지 말고 아이들 개성을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개성 말살 체제에 이제 사교육까지 끼어들면서, 그 속에서 아이들이 지닌 파릇파릇한 새싹이 시들고 죽어가고 있다. 공교육만으로도 모자라 온갖 사교육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 똑똑할지언정 개성이 없고, 개성이 있다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 뭔가 부족하고 일그러져 있다. 그런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길을 닦으면서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요즘 부모들은, 임형주의 어머니가 쓴 글을 읽고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가 지닌 능력을 이끌어내면서 행복해질 방법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행복의 파랑새는 마음 안에 그 새를 맞아들일 둥지를 마련한 사람에게만 날아온다고 했다."

 

임형주, 김민호 지음. '임형주의 Only One'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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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절대 당하지 마라 - 동경대 출신 일본인 교수가 쓴 통렬한 일본 비판서!
호사카 유우지 지음 / 답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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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한국에서 나는 모든 것을 수탈했다. 그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시간 속에서 한국인들이 대일본 제국이라는 괴물을 바라보며 품은 증오는,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찮다는 표현도 너무나도 부족할 만큼 깊고 지독했다. 그 괴물에 맞서 한국인들은 증오를 불태우며 끈질기게 싸운 끝에 찬란한 광복절을 맞이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게 크게 패하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한국에게나 일본에게나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절체절명인 과제가 똑같이 주어졌다. 그러나 한국은 냉전 대립 최전선으로 다시 한 번 외세가 일으킨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결국 6.25 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으며 2차 세계 대전을 막 끝낸 패전국 일본보다도 훨씬 더 참담한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6.25 전쟁 특수를 누리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전후 복구에 성공해, 경제 성장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

 

이미 전후 복구에 성공하고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절대 강자 노릇을 하던 미국에게서 지원을 받아 재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일본을 6.25 전쟁이 끝난 뒤에 잿더미밖에 남지 않은 한국은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몇 십 여 년만에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칭송까지 받을 정도로 세상 앞에 당당하게 우뚝 섰다. 그 원동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일본에게 또 당할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이 가장 큰 것이라는 주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그토록 미워하던 일본에게서 울며 겨자 먹기로 3억 달러라는 차관을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한국이 지닌 국력은 나름대로 대단하기에, 사대주의에 찌들었던 농업 국가 조선이 무너진 것처럼 일본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앞에서 당당해지기에는 켕기는 부분이 너무 많으며, 아직 한국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 나라가 얼마나 강한지 판단하는데 기준이 되는 경제력과 군사력 가운데 어느 것도 한국이 일본보다 낫지 않다. 그 때문에 일본은 여전히 기고만장해 있으며, 그동안 저지른 전쟁 범죄 따위 온갖 만행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해 줄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분통 터지면서도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무서운 일은 일본이 대일본 제국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일본 제국 부활을 이상으로 삼은 극우파가 지배하는 일본은, 한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본 식민지나 다름없으며 고대부터 지금까지 일본이 한반도를 정벌하고 지배했다는 증거가 수두룩하다고 억지를 쓴다. 심지어 한국은 일본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현대 국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논리도 내세운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전범 영정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 수상이라는 사람이 버젓이 참배하고, 평화 헌법을 개정하면서 자위대를 전쟁권이 있는 군대로 만들려고 힘쓰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일본에 맞서고자 한국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많은 결실을 보았다. 그렇기에 한국이 지금 이 위치까지 왔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해 보인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대로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일본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슨 협상을 할 때만 봐도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한국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부분까지 철저하게 조사해 나와서 자기 의도대로 협상을 이끌어가는 일본에게 한 방 먹고, 정부는 시민들에게 온갖 쌍욕을 큰 됫박으로 푸짐하게 얻어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를 그렇게 욕하는 시민들은 일본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일본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일본 고위 관료들과 극우파들이 망언을 내뱉을 떄는 때려죽일 놈이니 찢어죽일 놈이니 어쩌니 험하게 욕하면서도, 평소에는 일본 문화를 그토록 좋아하고 국내 관광보다 일본 관광을 더 즐기는 세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무한육면각체의 비밀' 같은 책을 읽으면서 그저 통쾌함을 느낄 뿐, 현실에서도 통쾌한 승리를 맛보려고 하는 생각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러니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이 냄비 근성을 지녔다고 비꼬아도 우리는 뚜렷하게 반박할 수가 없으며, 일본인들이 두려움 없이 망언을 내뱉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들은 다 죽여버릴 것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변하고 행동하는 것이 없다.

 

이런 형편이니 우리는 이 책 '일본에게 절대로 당하지 마라'를 쓴 호사카 유우지가 지적한 대로, 지금까지 일본에게 너무 처참하게 당하기만 해서 당하는 것도 이제는 버릇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책을 쓴 작가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호사카 유우지라는 일본인은 놀랍게도 한국을 매우 좋아하며 심지어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자기가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은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고 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한국이 일본에 관해서 너무 모른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술을 국가 전략에 철저하게 응용하고 있는 나라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모두 이길 수 있다(知彼知己 百戰百勝)', '먼저 이겨놓고 싸운다(先勝而後求戰)' 따위 격언을 분명히 행동으로 옮긴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도 일본은 조선에 수시로 첩자를 보내서 조선 내부 사정을 훤히 알아냈다.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돌아온 유성룡과 김성일이 전쟁 준비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선조가 김성일이 한 주장을 받아들여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과, 수 백 년에 걸친 공도 정책 때문에 해안 방어가 매우 소홀하다는 점을 간파한 뒤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침략을 결정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 강국으로 발전한 일본은 조선을 집어삼키고자 계획을 세우고 착착 실천했다. 이 또한 국제 정세에 어두운 조선이 지닌 약점을 잘 파악하고, 조선보다 발 빠르게 신문물을 받아들여 소화한 덕분이었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뒤에도 일본은 조선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대한민국이 들어선 뒤에도 일본은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연구소 수백 여 곳에서 대한민국에 관한 모든 것을 분석하고 연구해 대외 정책에 활용했다. 그 덕분에 일본은 한국에 관하여 한국인들이 미처 모르는 부분까지 파악하는 무서울 정도로 뛰어난 정보 수집과 분석력을 자랑하고, 한국과 협상을 벌이거나 경쟁해야 할 때 국제 사회에서 같은 조선에거 시작해도 더욱 강한 힘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할 정도로 영민한 일본을 한국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는 일본에 없는 것이 있고, 그 안에 끝없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높은 교육열과 모성애, 최고가 되라는 한국 가정교육, 한국 남자를 강하게 만드는 군대 생활, 자랑스러운 아시아 대륙에 빛나는 한민족, 살신성인 정신, 좌절은 해도 자살은 하지 않는 삶을 끈질기게 이어가려는 자세……그가 주목한 한국인들이 지닌 가능성이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밑도 끝도 없지만, 일단 작가는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런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일본에 항상 당하기만 하는 한국을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이 그토록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무참히 짓밟아 놓고도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옛 대일본 제국을 찬양하며 예전과 같은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강대국으로 나아가려고 해 동북아시아에 파란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까닭을, 일본 문화와 정신을 이루는 근본이 되는 황국 사상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황국 사상은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서 이어진 천황이 통치하는 황국은 반드시 온 세상을 평정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낳고, 그 망상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깊숙이 뿌리내려 버린 것이다. 그 망상을 뿌리내리는 작업은 매우 오랫동안 이어졌다. '임나일본부설', '식민사관', '탈아론', '대동아공영권' 따위 한국을 깎아내리고 지배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 온갖 논리들은 그 무시무시한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나온 산물이다.

 

일본 정신을 이루고 있는 뿌리가 그러하니, 도무지 대책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매우 뜻밖인 가능성과 대책을 제시한다. 일본을 쥐고 뒤흔드는 황국 사상에서 정점에 올라 있는 천황이 스스로 일그러진 권위를 인식하고 과감하게 깨 버린다면 핵폭발과 같은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몇 해 전에 천황이 자기 몸에 흐르는 피는 한국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해, 일본 사람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극우파들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에 주요 인사를 심어놓고 일본을 좌지우지하고 있기에, 천황이 그렇게 말해서 일본 시민들이 일어난다고 한들 내부 투쟁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일본 시민들은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고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는 근본인 천황을 의심하고 비판하지 않도록 강요받고 있어서, 시민들끼리도 한 뜻을 모아 뭉치기가 쉽지 않다. 또 희한하게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통 일본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 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겉으로 나타나는 모든 대립, 곧 경제, 안보, 역사 따위 모든 것은 대개 일본 정부와 막강한 힘을 거머진 극우파 세력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뿐, 시민들이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 극우파들에게서 자유로운 한국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사업은 외교 문제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탄생한 시민 단체들은 누구보다도 의욕이 왕성하고 활동에 거의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렇기에 시민들이 나서야 할 까닭은 더욱 분명해진다. 작가도 마지막 단원에 '한일 시민연대의 고리를 엮어서'라는 제목을 붙이고 시민들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곧 양식이 있는 일본 시민 단체들이 일본에서 힘을 내 더욱 열심히 활동할 수 있도록 한국 시민 단체들이 긴밀히 협조하면서 부지런히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시민들이 역사를 바로잡고 두 나라 사이 관계를 근본에서부터 바꿔놓을 주체라고 꾸준히 선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에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 있는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넘어서 일본을 변하게 할 막강할 힘은 마지막 단원에서도 나오듯이 바로 시민들이 계승해 새롭게 창조하는 문화에 있다. 거세게 불어 닥치는 한류 열풍은 극우파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혐한류'라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들이대 봤자 사람들이 그저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은 한국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문화 속에 숨어 있는 민족 정서와 좋은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는데 힘쓰고, 일본 사람들이 한류를 좋아하는 틈을 타서 반한 감정을 없애고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일본을 휘어잡고 있는 망령과 그를 살리려고 온갖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는 이들에 관하여 투철하게 파악하고,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서 힘을 빼앗는데 매우 많은 신경을 꾸준히 써야 한다.

 

그때야 일본 안에서 보이지 않게 근본에서부터 여러 가지가 변하면서, 망상에 사로잡힌 세력도 결국 시민들이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두 나라 사이에 있던 적게심을 녹일 방법이 생기고, 동북아시아를 이끌어갈 동반자로 거듭나고자 한국과 일본은 서로 손을 잡고 서로 잘못한 것을 사과하며 진심으로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 내용을 따라가면서 별도로 계속 생각을 하다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론이 나왔다. 극우파들이 일본 시민들을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가정 아래 계속 생각을 이어나갔더니, 결국 남한과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과 일본 사이에서도 임지현 교수가 지적한 '적대적 공범자'들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이 심어놓은 남한 수구 세력과 일본 극우파가 한일 시민들 위에 군림하며 기득권을 지키고자, 잘못된 교육을 강요하고 서로 대립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그 수법이 너무나도 교묘해서 보통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내가 한 해 넘게 활동했던 학생 운동 단체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시민운동 단체들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방안도, 남한과 북한과 일본을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 사이 상호 관계를 파헤치고 부수는 방법을 연구하는 가운데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에 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 결과를 정리하다 보면 동북아 역사 인식을 정립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시민운동 차원에서도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운동이 그런 큰 흐름을 타고 진행된다면,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에서 대립과 모순이 사라진 진정한 평화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7월에 모나코에서 열린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한국은 일본에 맞서 동해라는 명칭을 잘 지켜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분명히 일본에 맞설 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실책을 겪었지만, 잘 한 일도 분명히 있다. 이는 철저한 준비로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일본에게 당하지 않고 이기려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용암처럼 뜨거운 적개심을 화산처럼 그저 폭발시키기만 하면 안 된다. 그 끓어오르는 감정을 일본을 연구하는 차가운 머리를 유지할 동력원으로 슬기롭게 써야 한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하며,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일본에 당하지 않고자 얼마나 힘썼는지 반성하며, 실력을 확실하게 길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결국 동북아시아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자신감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군대에서 읽은 책 가운데 'PR Korea - 우리 문화 영어로 표현하기', '독도는 우리 땅'과 같은 책은 내용을 모두 외우는 것이 의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이 준 여러 가지 깨달음도 깊이 새겨야 한다. 또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무수한 일 가운데 몇 가지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읽고자 '독도는 우리 땅'을 꺼내들면서, 호사카 유우지 교수에게 그저 깊이 고개를 숙이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런 일본인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문득 지만원이나 한승조 같은 인물들이 떠오른다. 감동으로 달아오른 머리를 간신히 식혀놨더니 금방 또 뜨거워지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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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 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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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6학년생일 때 알고 지내던 4학년 후배 가운데 창호라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이 오른손잡이였는지 왼손잡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왼팔 절반이 없었다. 긴팔 옷을 입으면 소매가 나풀거렸고, 반팔 옷을 입으면 잘려나간 뒤 아문 자국이 둥글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녀석을 한편으로는 신기한 눈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온갖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창호는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녔고 축구도 곧잘 했다. 짧은 왼팔과 긴 오른팔을 휘두르면서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녀석 모습은 볼만했다. 하지만 손으로 하는 운동을 하는 건 거의 못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른팔이 남아 있었기에 어떻게든지 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두 손을 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아이들과 견주었을 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 '오체불만족'을 쓴 주인공 오토다케 히로타다(이하 오토)는 팔다리가 하나도 없는데도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같은 온갖 운동을 했다. 그냥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농구부에 들어가 심지어 뛰기까지 했다 보통 사람들이 과연 상상할 수 있겠는가? 팔다리가 없는 그가 농구공을 통통 튀기면서 키가 큰(?) 농구 선수들 사이를 재빠르게 누비는 모습을! 물론 수비할 때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바라봐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내 수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보통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 반 거부하는 마음 반으로 말린 학교 관계자들이 본 광경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뭉툭한 팔과 어깨와 겨드랑이를 이용하여 젓가락과 포크를 써서 혼자서 멋지게 밥을 먹고, 농구공을 튀기고 글씨를 썼다. 눈을 몇 번이고 비비고 보던 그들은 오토가 보통 아이들과 학교에 다니는 것을 결국 허락했다.

 

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자기를 바라보는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며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즐겁게 살았다. 자기 스스로 '축제의 사나이'라고 할 정도로 학생회 활동과 축제 준비에 항상 적극으로 앞장섰고, 영화감독도 하고 여러 기지 일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알차게 보냈다. 미식축구부에서는 컴퓨터로 작전을 짜면서 두뇌 구실을 톡톡히 해내며, 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떠올랐다.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고만고만하게 살다가 졸업하는 보통 아이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온몸이 불편한 오토가 보낸 학창 시절은 정말 특별하고 멋진 시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장애인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정상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전했다. 그러면서 닥쳐온 고난에 두려움 없이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때로는 분명한 한계와 그 때문에 찾아오는 너무나도 쓰라린 고통 때문에 심하게 우울해지고 눈물까지 흘렸다. 겨울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한 뒤 학교까지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다리가 없는 오토에게 너무 심한 고통이었다. 사물함을 열고 싶어도 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든지 사물함을 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 그를 도와주지 않고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너무 매정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앵인들이 왜 마음에 상처를 입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선생님과 친구들은, 오토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반드시 스스로 해내도록 용기를 주고 때로는 도움말을 하기도 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오토를 정말 배려해야 할 때는 한없이 따뜻하게 배려해 줬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오토가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고, 무슨 오락을 하든지 오토가 같이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규칙을 만들었다.

 

오토를 맡았던 다카기 선생님은 자기를 정말 무서웠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자기가 담임이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다카기 선생님 덕분에 움츠러들지 않는 당당함과 용기를 얻은, 장애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고 주장한 오카 선생님 덕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서만큼은 분명한 두각을 드러내면서 도전 정신과 자신감을 한 단계 올린다. 그가 해낸 모든 일은 그를 믿고 지켜보고 도와주는 모든 이들이 오토와 함께 이루어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시 장애인은 정상인들이 돕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이끌어낸다면, 그건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떠벌리는 것밖에 안 된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도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못 한다고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실제로 사회에 장애인을 배려하는 풍토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 때문에 장애인들은 어디에 가든지 불편을 겪어야 하고, 그런 장애인들을 정상인들은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그 불편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기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 어이없는 현실에 오토는 누구보다도 일찍 눈을 떴다. 일본에서 손으로 꼽는 명문대학이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장애를 긍정하고 장애와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놀라운 발상을 실현하고자 힘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인식하자, 신이 그 인식을 꿰뚫어 보았는지 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마음의 장벽 없애기(Barrier Free)'라는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지니고 있었던 장애인과 정상인을 구분하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장벽'을 허문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표현마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아마 미국에서는 '장애인(Disabled)'라는 표현 대신 '특징이 있는 사람들(Different Person)'이라는 표현이 널리 퍼졌다. 곧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이 부족하거나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오토도 장애를 단순한 '신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신체 특징은 활동하려는 의지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오토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이 그를 포용했기에 현실이 되었다. 사회가 장애인을 포용해야지 비로소 장애가 특징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는 장애는 말 그대로 장애일 뿐 특징이자 능력이 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상한 사고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계단만 즐비한 건물 앞에서 한숨을 쉬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숨어 있는 은근하면서도 뚜렷한 우월감과 차별 의식은 버리고, 장애인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장애인들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오토도 팔다리가 없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토록 열심히 일하며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지 않았는가?

 

그가 들려주는 전혀 우울하지 않은 발랄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는 어떤지 생각했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장애인들을 훨씬 더 심하게 차별하고 깔본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그들이 이룬 사회에서 이토록 차별이 극심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이 책과 같은 책을 펴낼 장애인, 아니 특별한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희망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저 한숨을 쉰다.

 

사회를 비판하기 전에 나를 먼저 비판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다카기 선생님이나 오카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장애인을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정상이라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장애인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관념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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