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 한국사의 잊혀진 무대, 한국 해양의 역사
강봉룡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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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실무 부대에서 한 해에 3주씩 도구 해안에서 전투수영 훈련을 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도 나는 수영을 매우 즐겨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영장이나 강과 계곡에서만 수영을 했지 바다에서는 수영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한편으로는 겁도 났다. 그래도 큰 맘 먹고 부딪쳐 보니까, 역시 예상대로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는 훈련이었다. 안 그래도 날씨도 더운데 종일 시원한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불만이라고는 단지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되는 몸 풀기(PT)가 힘들다는 것과, 도구 해안 옆에 있는 포항제철 때문에 물이 더럽다는 것뿐이었다.

 

너울거리는 파도를 오랫동안 정신없이 가르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숨이 잘 골라지지 않아 정신이 번쩍 들고 사점이 찾아온 것 같지만, 약 200m만 헤엄쳐 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수영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히 그랬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계속 헤엄쳐 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km를 훌쩍 넘는 거리를 헤엄쳐 가 합격선을 통과했다.

 

헤엄치는 동작을 반복하는 신호를 온몸에 보내는 생체 회로 말고는 거의 모든 회로가 전원이 나갈 것 같은 그런 지경에서도 나는 가끔씩 주위를 살폈다. 숨을 쉬고자 물속에 담근 머리를 밖으로 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물과 그 위에 일렁이는 파도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뿐이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그 드넓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 그윽한 심연과 수평선은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인류로 진화한 유인원이 정글에서 벗어나 황량한 사바나로 간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지니고 있는 그 모호함과 가능성에 기대와 두려움을 한꺼번에 품고 배를 만들어 바다 위에 띄웠다. 바다에서 무엇이 나올지도 몰랐고 수평선에 무엇이 있을지도 몰라 항상 불안했지만, 그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정도로 해상 활동은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 이익이 해상 활동에 더욱 적극으로 나서도록 그들을 부추겼고, 해상 활동과 실리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관계로서 서로를 키웠다.

 

근대 유럽에서 그토록 눈부신 문명이 발달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일찍이 신항로를 개척하며 해상 활동에 누구보다도 적극성을 보였던 근대 유럽인들은 온 세상에 위세를 떨치며 번명할 수 있었다. 그건 세계사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일 뿐이며, 일일이 그 예를 들자면 이 글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종이가 들어갈지 쉽게 짐작할 수조차 없다. 땅에만 머무르고 바다로 진출하려고 하지 않은 자들은 바다를 제패한 자들에게 짓밟혔다. 그것은 세계사에서 엄연한 현실이며 '법칙'이었다.

 

이 책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는 그 법칙이 한국사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사에서 나타난 모든 해상 활동에 중점을 뒤서 한국사에서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과 큰 흐름을 해상 활동 주체와 연관하여 추적하고 설명한다. 고조선에서부터 한일 합방까지 이어진 한국사를 해양 세력 태동 • 부흥 • 쇠퇴기로 나누고, 삼국 시대에 일어난 모든 국제 전쟁과 임진왜란을 각각 '제 1 • 2차 동북아 대전'으로 이름붙인 것도 흥미롭다. 그 때문에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주장이 등장하거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이는 공교육 과정에서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라서, 얼떨결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이 매우 알차고 어렵지도 않아서, 그 정체 모를 거부감은 금방 사라지고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교양을 쌓는데 제격이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사 전반을 다룬 온갖 책을 읽으면서 이념 대립에 따른 서술 방식 차이와 기술 • 과학 • 문학 • 철학 같은 주제에 따른 차이는 이미 몇 번이고 느꼈지만, 단지 땅에서 바다로 공간 관점을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점이 달라진다는 건 처음으로 알았다.

 

지은이는 삼국 시대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천 여 년 동안 해상 활동이 활발했을 때는 한반도가 비록 수많은 외세 침략에서 자유롭지 못했을지언정 그들에게 완전히 무릎을 꿇지는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다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세계사에서 가장 드넓은 제국을 건설한 몽고가 자기 영토에 견주었을 때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고려를 정복하는데 40여 년이나 걸렸고, 그것도 화친이라는 형식 아래 겨우 고려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이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지독한 항전사이며,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뚜렷한 개방성을 자랑한 고려가 얼마나 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외세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주요 까닭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한 가지가 바닷길이나 항구가 막혀 문물 교류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명한 예를 한 가지 들자면 왜구가 극심하게 한반도 연안을 약탈하던 시기와 교역에 문제가 생겼던 시기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바닷길을 따라 중국 대륙과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이미 국제 무역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고, 그 세 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국제 무역에서 나름대로 이익을 보면서 발전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맹 관계와는 맞지 않는 현상도 수시로 일어났다. 남하 정책을 쓴 고구려에서 출발해 한반도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일본 열도를 이어지는 연안 항로가 고구려 때문에 막혔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청해진을 건설하고 국제 무역을 주도해 해상왕으로 인정받은 장보고, 나주 오다련 일가를 포섭하는데 성공해 후백제를 무너뜨리고 고려를 건국할 핵심 기반을 마련한 왕건, 임진왜란에서 백척간두에 모인 조선을 구한 이순신……한국사에서 굵직한 필체로 자기 이름을 남긴 이들은 바다가 얼마나 중요핮니 인식하고 바다에서 슬기롭게 활동할 줄 알았던 진정한 바다 사람들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수준 높은 유교 문화를 전파한 왕인도 삼국 시대에 해상 무역에서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잡은 백제 사람이었기에 일본에 유교 문화를 전파하고 그 시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몽고와 화친한 고려 정부가 공도 조치를 내놓고, 고려 뒤를 이은 조선이 조치를 정책으로 확정하면서 해상 세력은 치명타를 입고 몰락하고 만다. 그 때부터 한반도에는 개방성 대신 폐쇄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침 조선 정부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유교 사상은 고유한 성리학으로 발전하면서 그 폐쇄성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그 결과는 극삼한 문물 빈곤, 늦어진 근대화, 그리고 한일 합방이라는 끔찍한 비극이었다.

 

광복절을 맞이한 뒤 한반도 남쪽에는 대한민국이 섰고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섰다. 문호를 열고 국제 사회에 진출하고자 힘쓴 남한과 중국과 소련에만 의존하고 국제 사회에서 문을 굳게 잠근 북한이 지금 각자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 결과만 봐도 앞에서 말한 법칙이 근현대 한국사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 성장과 국력 신장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온갖 폐해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문을 닫아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겉으로는 문을 열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열린 공간인 바다와 그에서 파생되는 온갖 것에 막연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바다 사람과 섬이라고 하면 천박하다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떠올리는 경향이 여전히 짙다. 이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여전히 냉대하던 그야말로 천박하고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던 폐쇄성과 성리학 관념에 젖은 사대부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좋지 않은 인습이다. 그리고 바다를 멀리하면서 생긴 폐쇄성이 짙은 단일 민족 따위 온갖 논리들은 긍정할 만한 측면보다는 이상하게 변질되어 인종 차별과 지역감정 따위 온갖 문제를 불러일으킨 부정 측면이 훨씬 더 뚜렷하다. 조선 시대에 뿌리내린 잔재가 현대 한국인들 머릿속을 지배해서, 21세기 해양 시대를 열어 가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매우 곤란하지 않겠는가?

 

21세기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여전히 바다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우주는 너무 엄혹한 공간이며 우주를 지구처럼 이용하기에는 인류가 지닌 기술 수준이 턱없이 낮다. 하지만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공간이다. 당장 필요한 원자재 9할 7푼과 원유 9할 9푼을 항로로 나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은 바다에 사활을 걸고 과감한 해양 지향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해야 한다. 그 전에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바탕이 되는 관념을 바꿔야 한다. 이 책이 거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수영하면서 본 그 아찔한 심연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줄 끝없는 가능성과 개방성이었다는 사실을. 옛날에 한반도에서 살았떤 우리 조상들은 그 가능성을 보고 배를 저어 바다로 나깠고, 그 덕분에 한반도에서 번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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