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주의 Only One
임형주.김민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내가 활동하던 동호회에 배경 음악으로 'The Sally Garden'이 깔린 때가 있었는데, 그 노래를 우연히 들으면서 나는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와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 노래를 부른 임형주라는 사람에게 잠깐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팝페라라는 음악 분야를 새로 개척해 그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량과 업적을 쌓고 있다는 정보만 말 그대로 정보로 기억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이 책 '임형주의 Only One'을 만났다. 'Best One'이 아닌 'Only One'이 되라는 이어령 선생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아 책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고 그는 책날개에서 밝혔다. 그 뒤 본문에서 그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성공과 고난을 진솔하게 풀어놓고 있다. 쿠크다스를 즐겨 먹고 여성스러운 취미를 지녔으며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기도 한 20대라고 믿기도 힘들 정도로 앳된 소년에게서, 어떻게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한 힘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을 읽은 뒤 임형주가 부른 노래를 몇 십 곡 더 들어봤는데, 그가 부르는 노래에는 나이를 뛰어넘는 깊이와 힘이 있다. 음악에 관한 소양이 너무나도 빈약해서 그 깊이와 힘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풍부한 사진자료, 임형주가 추천하는 음악, 끝에 나오는 임형주 음반 소개와 자켓 사진. 임형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사서 소장해야 할 책이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지만 온 세상에 잘 알려진 팝페라 예술가다운 감수성과 천재성으로 온갖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그가 지니고 있는 깊이는 대단하다. 세계로 나아가는 그 꿈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그가 이야기한 모든 것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책 후반부를 읽기 전까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책 후반부에서 임형주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보며, 나는 책을 편안하게 읽고 싶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노래하고 즐길 수 있는 복합 음악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서 음악으로 몸과 마음에 생긴 온갖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대중성을 가미한 클래식 잡지를 발견해 사람들에게 클래식이 지닌 풍요로움과 기쁨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는 밝혔다.

 

사람들은 내가 모든 일을 긍정하면서 사는 것 같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모든 것을 부종하는 태도가 뼛속까지 배어 있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게으른 나를 채찍질해 지금 내 수준만큼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신 삶이 너무 피곤해졌다. 깨어있을 때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항상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나는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아무 뜻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음악도 예술에 들어가므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즐겨 들은 음악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갖 고민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달래주기는커녕 우울함과 쓸쓸함을 키웠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클래식을 즐겨 듣기에는 내 머리가 이미 힙합과 가요, 그 가운데에서도 어떤 특정한 선율에 너무 많이 절어 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음악이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클래식을 즐겨 듣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링리 것 같으니, 임형주가 만들고 싶어하는 그런 공간이 생기면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떻게든지 시간을 내서 들어가겠다.

 

내가 그런 생각보다도 더욱 신경을 쓴 것은 임형주의 어머니가 이 책에 쓴 글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공부기술'에서 조승연이 지금과 같은 공교육 체제가 언제부터 갖추어졌으며, 그 체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비판한 대목을 떠올렸다. 제 1 • 2차 세계 대전이 온 세상을 휩쓸 때 독일에서 처음으로 구축된 그 거대한 공교육 체제는 그 전까지 이어오던 자율 학습 존중이라는 바람직한 전통을 부정하고, 특정한 집단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식을 권장도 아닌 강요하는 풍토를 뿌리내리게 했다.

 

임형주의 어머니는 형주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게 자기가 지닌 그 풍부한 감수성을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필수 자질로 다듬도록 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과외나 학원을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자연과 어울리면서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내고, 그 속에서 시련과 아픔이 감동으로 승화하도록 유도했다. 그 글을 읽고 나서야 임형주가 나이답지 않게 노래 안에 온갖 희로애락을 절절이 담아낼 수 있었던 까닭을 이해했다. 스스로 모든 것을 겪어본 이들에게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어머니가 임형주를 유럽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개성 말살 체제에 동참시켜 보통 남자 아이들처럼 키우려고 했다면, 그는 절대 지금처럼 유명한 인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승연도 옛날 사람들이 지금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학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20대 초반에 일찌감치 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부모들에게 어린이들을 억지로 그 안에 집어넣지 말고 아이들 개성을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개성 말살 체제에 이제 사교육까지 끼어들면서, 그 속에서 아이들이 지닌 파릇파릇한 새싹이 시들고 죽어가고 있다. 공교육만으로도 모자라 온갖 사교육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에게서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 똑똑할지언정 개성이 없고, 개성이 있다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 뭔가 부족하고 일그러져 있다. 그런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길을 닦으면서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요즘 부모들은, 임형주의 어머니가 쓴 글을 읽고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가 지닌 능력을 이끌어내면서 행복해질 방법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행복의 파랑새는 마음 안에 그 새를 맞아들일 둥지를 마련한 사람에게만 날아온다고 했다."

 

임형주, 김민호 지음. '임형주의 Only One'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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