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 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초등학교 6학년생일 때 알고 지내던 4학년 후배 가운데 창호라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이 오른손잡이였는지 왼손잡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왼팔 절반이 없었다. 긴팔 옷을 입으면 소매가 나풀거렸고, 반팔 옷을 입으면 잘려나간 뒤 아문 자국이 둥글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녀석을 한편으로는 신기한 눈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온갖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창호는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녔고 축구도 곧잘 했다. 짧은 왼팔과 긴 오른팔을 휘두르면서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녀석 모습은 볼만했다. 하지만 손으로 하는 운동을 하는 건 거의 못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른팔이 남아 있었기에 어떻게든지 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두 손을 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아이들과 견주었을 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 '오체불만족'을 쓴 주인공 오토다케 히로타다(이하 오토)는 팔다리가 하나도 없는데도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같은 온갖 운동을 했다. 그냥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농구부에 들어가 심지어 뛰기까지 했다 보통 사람들이 과연 상상할 수 있겠는가? 팔다리가 없는 그가 농구공을 통통 튀기면서 키가 큰(?) 농구 선수들 사이를 재빠르게 누비는 모습을! 물론 수비할 때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바라봐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내 수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보통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 반 거부하는 마음 반으로 말린 학교 관계자들이 본 광경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뭉툭한 팔과 어깨와 겨드랑이를 이용하여 젓가락과 포크를 써서 혼자서 멋지게 밥을 먹고, 농구공을 튀기고 글씨를 썼다. 눈을 몇 번이고 비비고 보던 그들은 오토가 보통 아이들과 학교에 다니는 것을 결국 허락했다.

 

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그는 자기를 바라보는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며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즐겁게 살았다. 자기 스스로 '축제의 사나이'라고 할 정도로 학생회 활동과 축제 준비에 항상 적극으로 앞장섰고, 영화감독도 하고 여러 기지 일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알차게 보냈다. 미식축구부에서는 컴퓨터로 작전을 짜면서 두뇌 구실을 톡톡히 해내며, 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떠올랐다.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고만고만하게 살다가 졸업하는 보통 아이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온몸이 불편한 오토가 보낸 학창 시절은 정말 특별하고 멋진 시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장애인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정상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전했다. 그러면서 닥쳐온 고난에 두려움 없이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때로는 분명한 한계와 그 때문에 찾아오는 너무나도 쓰라린 고통 때문에 심하게 우울해지고 눈물까지 흘렸다. 겨울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한 뒤 학교까지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다리가 없는 오토에게 너무 심한 고통이었다. 사물함을 열고 싶어도 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든지 사물함을 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 그를 도와주지 않고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너무 매정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앵인들이 왜 마음에 상처를 입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선생님과 친구들은, 오토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반드시 스스로 해내도록 용기를 주고 때로는 도움말을 하기도 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오토를 정말 배려해야 할 때는 한없이 따뜻하게 배려해 줬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오토가 같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고, 무슨 오락을 하든지 오토가 같이 즐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규칙을 만들었다.

 

오토를 맡았던 다카기 선생님은 자기를 정말 무서웠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자기가 담임이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다카기 선생님 덕분에 움츠러들지 않는 당당함과 용기를 얻은, 장애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고 주장한 오카 선생님 덕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서만큼은 분명한 두각을 드러내면서 도전 정신과 자신감을 한 단계 올린다. 그가 해낸 모든 일은 그를 믿고 지켜보고 도와주는 모든 이들이 오토와 함께 이루어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시 장애인은 정상인들이 돕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이끌어낸다면, 그건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떠벌리는 것밖에 안 된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도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못 한다고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실제로 사회에 장애인을 배려하는 풍토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 때문에 장애인들은 어디에 가든지 불편을 겪어야 하고, 그런 장애인들을 정상인들은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그 불편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기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 어이없는 현실에 오토는 누구보다도 일찍 눈을 떴다. 일본에서 손으로 꼽는 명문대학이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장애를 긍정하고 장애와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놀라운 발상을 실현하고자 힘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인식하자, 신이 그 인식을 꿰뚫어 보았는지 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마음의 장벽 없애기(Barrier Free)'라는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지니고 있었던 장애인과 정상인을 구분하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장벽'을 허문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표현마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아마 미국에서는 '장애인(Disabled)'라는 표현 대신 '특징이 있는 사람들(Different Person)'이라는 표현이 널리 퍼졌다. 곧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이 부족하거나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오토도 장애를 단순한 '신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신체 특징은 활동하려는 의지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오토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이 그를 포용했기에 현실이 되었다. 사회가 장애인을 포용해야지 비로소 장애가 특징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는 장애는 말 그대로 장애일 뿐 특징이자 능력이 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상한 사고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계단만 즐비한 건물 앞에서 한숨을 쉬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숨어 있는 은근하면서도 뚜렷한 우월감과 차별 의식은 버리고, 장애인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장애인들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오토도 팔다리가 없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토록 열심히 일하며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지 않았는가?

 

그가 들려주는 전혀 우울하지 않은 발랄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는 어떤지 생각했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장애인들을 훨씬 더 심하게 차별하고 깔본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그들이 이룬 사회에서 이토록 차별이 극심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이 책과 같은 책을 펴낼 장애인, 아니 특별한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희망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저 한숨을 쉰다.

 

사회를 비판하기 전에 나를 먼저 비판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다카기 선생님이나 오카 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장애인을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정상이라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장애인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관념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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