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읽으면서 나는 자아를 스스로 난도질했다. 미즈타니 오사무는 나에게 그런 광란을 불러 일으키고자 그 책을 쓴 건 절대 아니겠지만, 그 책을 읽을 때 내 안에서는 지금까지 사범대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내버려 두면서 곪은 모든 모순이 터져 버렸다. 곪은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이 내뿜는 악취는 온몸을 떨리게 했고, 그 떨림이 마음속에 폭주하는 풍파를 일으켰다.
마사후미, 겐지, 다카시……'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에 나오는 모든 아이들을 내 글 속으로 불러낸 뒤 그 아이들에게 내 혼을 집어넣고, 모순덩어리 그 자체인 추악한 내 자아를 그들 앞에 주저하지 않고 내팽개쳤다. 내 혼이 씐 아이들은 그들이 미워하는 어른들과 같이 그대로 자라려고 하는 나를 몹시 비난했다. 그들은 그들이면서 또한 내 안에 있는 양심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짜 놓은 연극 치고는 나에게 돌아오는 타격이 너무 심했다.
독후감을 다 쓰고 결론을 내면서 나는 간신히 아이들을 달래고 스스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 봤자 지금과 같은 형편 속에서는 한낱 글로만 남을 확률이 1에 가깝다는 결론이 여전히 나를 괴롭게 했다. 2년 동안 스스로 공부하고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현장에 그나마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으면서도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군대에서 세상 사는 요령을 터득하면서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지금 내가 과연 전역한 뒤에 보통 사람들이 걷는 평범한 길을 거부하고 곪아터진 모순을 과감하게 째서 아물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문득 떠오른 책 제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읽었고 독후감을 본격으로 쓰기 시작한 뒤에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책이었다. 지은이 오히라 미쓰요가 나에게 나지막하면서도 강하게 충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 살았으며 얼마나 놀랍게 변했는지 잘 알고 있다. 미즈타니 오사무가 당장 달려가 만나야 할 정도로 그녀는 어둡고 악한 구렁텅이로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계기를 만났고, 야쿠자 두목의 17살 먹은 아내에서 어둠에 잠겨 있는 아이들을 구하는 길을 역설하는 변호사로 거듭났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누구보다도 알차게 살면서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빛을 보여주고자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정말 잘 살아줬어."
미즈타니 오사무는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전에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내게는 아이들의 과거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현재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시간이 걸려도 좋고,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도 좋으니까. 그들이 자신의 뜻과 자신의 힘으로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무조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살아주기만 해도 좋다. 살다 보면 아이들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서서히 인생을 배워간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어떤 아이라도 그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칭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면서 살아. 지금까지 잘 해 왔잖아. 자책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 그 자체에 어떤 뜻이 있는 게 절대 아니야. 그 때문에 자기가 지닌 힘과 열정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안 하는 것만 못해.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잖아. 삶을 접어야 할 까닭이 없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한없이 몇 번이고 기운이 빠지고 극도로 우울해지더라도 열심히 살겠다. 그리고 내가 과연 오히라 미쓰요 같은 사람이 될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항상 반성하면서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