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허들 - 1리터의 눈물 어머니의 수기
키토 시오카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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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천적으로 눈이나 몸이 불편해서 처음부터 할 수 없었던 사람과 달리, 과거에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마음대로 움직였던 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거든. 왜 안 되는 걸까. 깊은 고민에도 빠지고 감정이 앞서버려. 그래서 항상 정신과의 싸움부터 시작된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기계적으로 라디오 체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훈련도 실은 정신과의 싸움이며 단련이야. 아야. 결과야 어떻든 간에 지금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미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아야는 자주 울잖니. 그런 우리 딸을 보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그렇지만 현실의 지금이 놓인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금부터의 아야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나가지 않으면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삶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돼버려. 엄마나 동생들은 네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에는 아낌없이 손을 내밀어 줄 테니까. 그래도 넌 의견을 주장하거나 싸울 떄는 척척 말을 잘 하잖니? 그건 아야가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보통 아이이고, 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정신이 강해지는 사랑의 말도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말을 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도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야.

 

사랑을 알고, 안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 아이치(愛知)현에서 태어난 아야는 이 현의 이름에서만 봐도 사랑과 예지의 세상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1리터의 눈물'을 쓴 키토 아야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할 때 어머니 키토 사오카가 아야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자꾸만 줄어들 때 느끼는 그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심정을 극복해야 한다고 사오카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 덕분에 아야가 지니고 있던 열정과 의지가 더는 나빠지려고 해도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사오카는 자기 배 아파 낳은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딸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바라봐야 했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이 아려 울었고, 그 눈물도 아야가 흘린 눈물 1리터만큼이나 많았다. 어쩌면 정확하게 1리터였을 수도 있다. 엄마와 딸 사이만큼 서로 정확하게 교감할 수 있는 관계도 흔하지 않으니까.

 

이 책 '생명의 허들'에는 어머니 사오카가 흘린 눈물이 배어 있다. 그 눈물 속에는 '1리터의 눈물'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 덕분에 '1리터의 눈물'에서 얻었던 것과는 또 다른 마음울림을 느낄 수 있다. 아야에게 말했듯이 사오카 또한 아이가 차츰 쇠약해지면서 예전처럼 아무 걱정 없이 한 남자에게는 아내이자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는 어머니로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던 시절을 떠올리기만 하면 고민에 빠지고 감정이 앞서버린다.

 

모든 주부들이 그렇듯이 집안 살림과 가족에게도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아야는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아야를 포기하고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잘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건강한 아이들에게만 신경을 쏟을 수도 있다. 사오카가 실제로 그런 참담한 유혹에 시달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랬기에 사오카는 누구보다도 깊은 고민에 빠지고 틈만 나면 아야와 같이 눈물을 흘렀다.

 

'1리터의 눈물'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을지언정, 아야에게서 기적을 일으키기는 못했다. 아무리 수많은 행운이 따르고 그 덕분에 사오카와 아야가 잠시라도 웃을 수 있었을지언정, 웃음이 병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희한하게도 그건 글을 쓰다가 도저히 더는 쓸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꽉 막혔을 때 드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사오카도 고통스러운 지난 세월을 이 책에 녹여내면서 그런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야가 세상을 떠난 뒤 한 해가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오카도 차츰 그 모진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나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남편은 편지에 썼지만, 어떻게 완전히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이렇게 책으로 그 모든 일을 돌이키면서 되새겼으니, 그러면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사오카는 아야를 시집보냈다고 썼다. 딸을 시집보낸다고 해서 잠시 니콜라스 스파크스가 쓴 '기억 속으로 걷기(A Walk To Remember)'를 떠올렸다. 제이미가 죽기 전에 교회에서 카터와 결혼식을 올리며 축복받는 그 장면 말이다. 그러나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아이가 겪는 고통을 얼마나 완벽하게 받아들였으면, 끝없는 행복을 가져다 줄 새신랑처럼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현실에서 겪은 모든 절망과 고통 따위는 없는 그 영원한 공간 말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 표현을 보고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도 힘든 나머지 얼이 완전히 빠져서 웃지도 울지도 않는 그런 멍한 상태에 빠져든 것 같았다. 내가 사오카가 된 것 같았다. 제목 그대로 넘지 못하면 죽는 '생명의 허들'을 아야와 손잡고 함께 뛰어넘고자 지난 10년 동안 불태운 그 위대한 모성애가 허무해지는 순간 사오카는 뜻밖으로 담담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또 다른 '1리터의 눈물'이 사람들 가슴을 적셨다.

 

이 책 맨 끝에는 아야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그 또한 다른 책으로 묶여서 출간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책까지 맨 정신으로 다 읽을 용기는 없다. '1리터의 눈물'과 이 책 '생명의 허들'을 읽으면서도 힘이 너무나도 많이 쭉 빠졌는데, 그 책까지 읽었다가는 너무 슬퍼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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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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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삶이 바뀌는 계기는 과연 언제 찾아올까? 그리고 그 계기 덕분에 삶이 뒤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한 찰나면 충분할 수도 있고, 몇 번이고 위기를 넘겨야 할 수도 있고, 평생을 보내고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야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각자 다를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계기가 몇 번이고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연히 어떤 계기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읽으면서 한 뜬금없는 생각이다. 이 책에 나오는 폰더 씨에게도 그런 계기가 우연히 찾아온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갈수록 일이 심하게 꼬이고 불행해지는 한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섯 사람과 한 천사와 자기 앞날을 보는 초현실 체험(Surreal Experience)을 한다. 그 뒤 그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희망을 품으면서, 병실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와 손을 맞잡고 어떻게든지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폰더 씨에게 찾아온 그런 초현실 체험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 초현실 체험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을까? 교통사고를 당한 뒤 기절한 상태에서 겪은 단순한 환각 이야기를 담은 책일 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극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토록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혼이 시들고 감정이 메말라 버린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내가 책을 너무 대충 읽어서 그런 건가? 이 책에 극찬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정말 한 번 제대로 물어보고 싶다.

 

 

1. 공은 여기서 멈춘다. 나는 내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트루먼).

 

2. 나는 지혜를 찾아 나서겠다. 나는 남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솔로몬).

 

3. 나는 행동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순간을 잡는다. 지금을 선택한다(체임벌린).

 

4.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나에게는 충분한 의지가 있다(안네).

 

5.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콜럼버스).

 

6.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선택했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겠다(링컨).

 

7.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겠다. 나에게는 믿음이 있다(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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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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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읽으면서 나는 자아를 스스로 난도질했다. 미즈타니 오사무는 나에게 그런 광란을 불러 일으키고자 그 책을 쓴 건 절대 아니겠지만, 그 책을 읽을 때 내 안에서는 지금까지 사범대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겼고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내버려 두면서 곪은 모든 모순이 터져 버렸다. 곪은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이 내뿜는 악취는 온몸을 떨리게 했고, 그 떨림이 마음속에 폭주하는 풍파를 일으켰다.

 

마사후미, 겐지, 다카시……'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에 나오는 모든 아이들을 내 글 속으로 불러낸 뒤 그 아이들에게 내 혼을 집어넣고, 모순덩어리 그 자체인 추악한 내 자아를 그들 앞에 주저하지 않고 내팽개쳤다. 내 혼이 씐 아이들은 그들이 미워하는 어른들과 같이 그대로 자라려고 하는 나를 몹시 비난했다. 그들은 그들이면서 또한 내 안에 있는 양심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짜 놓은 연극 치고는 나에게 돌아오는 타격이 너무 심했다.

 

독후감을 다 쓰고 결론을 내면서 나는 간신히 아이들을 달래고 스스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 봤자 지금과 같은 형편 속에서는 한낱 글로만 남을 확률이 1에 가깝다는 결론이 여전히 나를 괴롭게 했다. 2년 동안 스스로 공부하고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현장에 그나마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으면서도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군대에서 세상 사는 요령을 터득하면서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지금 내가 과연 전역한 뒤에 보통 사람들이 걷는 평범한 길을 거부하고 곪아터진 모순을 과감하게 째서 아물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문득 떠오른 책 제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읽었고 독후감을 본격으로 쓰기 시작한 뒤에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책이었다. 지은이 오히라 미쓰요가 나에게 나지막하면서도 강하게 충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 살았으며 얼마나 놀랍게 변했는지 잘 알고 있다. 미즈타니 오사무가 당장 달려가 만나야 할 정도로 그녀는 어둡고 악한 구렁텅이로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계기를 만났고, 야쿠자 두목의 17살 먹은 아내에서 어둠에 잠겨 있는 아이들을 구하는 길을 역설하는 변호사로 거듭났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누구보다도 알차게 살면서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빛을 보여주고자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정말 잘 살아줬어."

 

미즈타니 오사무는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전에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내게는 아이들의 과거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현재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시간이 걸려도 좋고,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도 좋으니까. 그들이 자신의 뜻과 자신의 힘으로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무조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살아주기만 해도 좋다. 살다 보면 아이들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서서히 인생을 배워간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어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어떤 아이라도 그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칭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면서 살아. 지금까지 잘 해 왔잖아. 자책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 그 자체에 어떤 뜻이 있는 게 절대 아니야. 그 때문에 자기가 지닌 힘과 열정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안 하는 것만 못해.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잖아. 삶을 접어야 할 까닭이 없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한없이 몇 번이고 기운이 빠지고 극도로 우울해지더라도 열심히 살겠다. 그리고 내가 과연 오히라 미쓰요 같은 사람이 될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항상 반성하면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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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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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와 교복 치마를 휘날리며 뛰어오르는 한 여자 아이가 있다. 빨간 스카프를 목에 걸쳤고 빨간 가방을 매고 남색 교복을 입고 있다. 하늘은 빨려 들어갈 것처럼 파랗고 구름은 희기 그지없다. 그 하늘로 뛰어오르는 아이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삶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그 아이 뒷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단발머리에 통통하고 토끼처럼 두드러진 앞니를 지닌 평범한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즐거워 웃고 있을지 아니면 고통에 겨워 찡그리고 있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몸에 힘이 없어지고 똑바로 걷기가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서, 아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넘어져 턱이 찢어지는 바람에 피를 철철 흘린 아이는, 병원에 갔다가 더는 마음껏 뛰어오를 수 없게 되었다는 엄청난 소식을 듣는다. 아이는 척수소뇌변성증에 걸린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약 140억 개의 신경세포와 그 10배나 되는 신경세포를 지탱하는 세포가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많은 그룹으로 나누어져, 운동할 때 작용하는 것도 있고 보고 듣고 느낄 때 작용하는 것도 있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많은 그룹의 신경세포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척수소뇌변성증은 이러한 신경세포 그룹 중 반사적으로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아주 빠르고 매끄러운 운동을 하는데 필요한 소뇌 • 뇌간 • 척수의 신경세포가 변화해서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는 병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물건이 흔들려 보이고 이중으로 보이기도 한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말하기가 어렵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게 되어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도 아직 소변이 남아 있는 느낌을 갖는다. 일어서면 갑자기 혈압이 내려가 실신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병의 시작이다.

 

몸의 흔들림이 심해지면 걸어갈 때 버팀목이 필요하게 되고, 더 진행되면 혼자서 다리를 모아서 설 수 없게 된다. 말하는 것도 점점 발음이 불명료해져 리듬이 무너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손이나 손가락의 움직임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글자를 쓰기도 어렵고 써도 읽을 수 없다. 식사할 때도 젓가락을 쓸 수 없게 되고 스푼을 사용해도 정확하게 입에 음식을 옮길 수 없다. 사람이 먹여 주어도 삼키는데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목이 막혀 주변이 온통 밥알 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어느 증상이든 조금씩이라도 확실하게 병이 진행되며 마침내 종일 침대 위에 누운 채인 상태로 몰린다. 욕창이 생겨 화농(化膿)하거나 음식을 잘못 삼켜 기관 쪽에 음식이 잘못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기도 하고 소변이 방광에 남아 방광 속에서 세균이 증가해서 방광염 • 신우염을 일으키며 5~10년 사이에 죽는 것이 보통이다……

 

 

이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아이는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뛰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자기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든지 보통 아이들처럼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며 모든 일을 평소대로 하려고 힘썼고,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양호학교로 전학을 가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과 다르게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자꾸만 줄어들었다. 게다가 병에 걸린 아이에게 차가운 사회는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자꾸만 주었다.

 

 

"걸을 때마다, 그렇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느끼는 몸의 불안정함, 미덥지 못한 몸, 모두 다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하지 못하는 굴욕감, 비참함, 모두들 그런 기분을 실제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실제로 그 사람의 기분이 되더라도 조금쯤은 그 입장에서 봐 주면 안 될까.

 

하지만 어려운 일일 거라고 바꿔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10여 년 동안 무시무시한 병마와 싸우면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운 그녀가 흘린 눈물을 모두 모아 그 양을 재니 1리터라고 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푸른 하늘은 회색빛으로 변했다. 거기에서 그 많은 눈물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눈물이 모여 마치 다듬어놓은 보석 한 개처럼 변했다. 그 영롱한 보석이 아이가 남긴 일기에 스며들었다. 게르다가 흘린 눈물이 카이 가슴에 박힌 차가운 얼음 조각을 녹였듯이 그 보석은 그 일기를 읽는 사람들 가슴 속에 스며들어 다시 눈물로 변했다. 그 눈물은 다시 온몸으로 퍼지면서 세상과 삶을 부정하는 모든 기운을 걷어냈다. 회색빛이 하늘빛으로 다시 바뀌었다.

 

 

……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읽고 살겠다는 결의로 마음을 바꿨다."

 

"나만이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 괴로워하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학교에 가지 않던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진으로 집을 잃고 직업도 잃었지만 이 책이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에게 미안했다. 도대체 왜 고마워하지 않은 걸까."

 

……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인 골치 아픈 현실 속에서, 아이가 흘린 눈물은 아이가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서 그토록 기뻐했던 까닭인 다시 찾아온 내일을 살고 있나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려주었다. 또박또박하던 글씨는 갈수록 삐뚤어졌지만, 그만큼 그 글씨가 내뿜는 힘은 강해졌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쓴 글씨는 '고맙습니다'였다.

 

고맙습니다. 나도 키토 아야 당신처럼 열심히 살겠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슬퍼서 울지언정 절대 스스로 죽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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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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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에서는 이순신이야말로 진정한 무인이며 온 국민이 본받아야 할 인물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윤리 교과서에서도 그랬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박노자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 체제를 굳히면서 이순신을 신과 같은 위치로 끌어올렸으므로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 사람이 지닌 이성이란 이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 절대 온전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서 드러나는 이중성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나는 차츰 지쳤다. 22년 동안 얻어낸 변변찮은 지식마저도 그토록 나를 괴롭히는데, 지식이 갈수록 많아지면 나중에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가지고 해병대에 들어간 뒤 나는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지겹게도 들었다. 수요일마다 정훈 교육이라고 해서 세 가지 큰 주제(군인 정신, 국가관, 안보관)에 포함된 18가지 교육 과제에 관한 자료를 읽고 국군방송을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도 이순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하긴 대한민국 정부와 해군과 해병대가 이순신을 그토록 칭송하는 까닭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순신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으며, 불가능을 모르는 군인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줬다. 해병대에서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상승불패의 정신'을 그토록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임진왜란 때 그 어떤 것도 이순신을 돕지 않았다. 책에 나온 표현에 따르면 이순신은 자기 몸이 적장과 임금이 합쳐진 듯했으며 둘 다 자기를 괴롭히는 탓에 너무 아프고 괴롭고 피곤했다. 임금은 멀리서 수려한 어구로 빨리 왜군을 없애라고 잔뜩 보채기나 했고, 사직을 보존하고자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우고 트집을 잡아 이순신을 고문하고 죽이려고 했다. 임금 주위에는 세태를 제대로 파악할 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신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도 이순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나라 바깥에도 명나라에서 군대를 이끌고 온 진린은 철저하게 정치 논리에 따라 움직여서 전투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틈만 나면 전공을 증명할 수족이 필요하다면서 부하들을 닦달하며 술잔을 들이키고, 여의치 않으면 묵묵히 전투에만 신경 쓰는 이순신에게 어린아이처럼 보챘다.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들에게 유린당한 조국 산하를 바라보는 애국심이 불타올랐던 그는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을지는 짐작할 필요도 없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에 따르면 이순신은 항상 찬 정한수를 마시고 싶어했다. 찬 정한수가 마음 속에 있는 모든 한을 녹여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김훈은 이 소설에서 이순신이 겪었던 그런 고뇌를 대놓고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던 듯 하다. 술을 마시다가 뒤통수에 뜨끔한 느낌이 오더니 코피를 쏟고, 추운 날에는 어깨가 쑤시고 잘 때는 거의 항상 땀이 흘렀다는 그런 표현으로 그가 겪었던 고통을 드러내고 있다. 그 고통이 단순히 의금부에 불려가서 당한 고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소설을 찬찬히 읽다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 전체에 나오는 임진왜란이 휩쓸고 지나간 조선을 묘사한 표현은 정말 끔찍하다. 그리고 너무 담담하게 사실을 표현하고 있어 끔찍하다는 수사만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흔히 말하는 '탐미적 허무주의'가 단어와 문장에 묻어나, 고구마맛탕을 집었던 젓가락에 묻은 꿀처럼 뚝뚝 떨어진다.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를 당한 조선 수군을 다시 육성하여 명랑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노량 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저 담담하게 이어진다. '일식'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차분한 문체를 지켰다.

 

전란이 가져온 참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쓴 효과는 뭐라고 뚜렷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책을 읽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있었지만 너무 처참하면서도 격렬한 흐름이 심장을 뚫고 사지를 갈가리 찢어놓는 듯 했다. 왜구들에게 도륙당한 원혼들이 내 안에서 울었다. 밤마다 땀을 흘리며 뒤척이던 이순신이 느낀 고뇌가 내 혈관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오랜만에 참으로 대단한 소설을 만났다. 문학이 지닌 힘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으며, 왜 그렇게 김훈이 유명한지도 알았다. '칼의 노래'라는 제목을 빌어서 이순신이 찬 장검이 울었다. 이순신은 장검을 차고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책을 다 읽은 뒤에 이순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는 싫었다. 그저 책에서 전하는 대로 담담하게 조선 수군을 재건하며 왜놈들에게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한없이 불태우고 떠난 이순신 앞에서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 의지가 전혀 걸러지지 않고 완벽하게 드러난 장계 마지막 부분을 보자.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부록이 두 가지가 있다.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 '선조실록', '연려실기술', '장계', '유시', '고서', '행장'에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짜맞춘 '충무공 연보'는 정치 권력 관계에 따라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인물지'는 이 소설에 나오는 역사 속 인물에 관한 정보를 담았다. 둘 다 소설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라는 역사 속 사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체계를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만 읽고 끝내지 말고 부록도 꼭 챙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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