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단발머리와 교복 치마를 휘날리며 뛰어오르는 한 여자 아이가 있다. 빨간 스카프를 목에 걸쳤고 빨간 가방을 매고 남색 교복을 입고 있다. 하늘은 빨려 들어갈 것처럼 파랗고 구름은 희기 그지없다. 그 하늘로 뛰어오르는 아이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삶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그 아이 뒷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단발머리에 통통하고 토끼처럼 두드러진 앞니를 지닌 평범한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즐거워 웃고 있을지 아니면 고통에 겨워 찡그리고 있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몸에 힘이 없어지고 똑바로 걷기가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서, 아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넘어져 턱이 찢어지는 바람에 피를 철철 흘린 아이는, 병원에 갔다가 더는 마음껏 뛰어오를 수 없게 되었다는 엄청난 소식을 듣는다. 아이는 척수소뇌변성증에 걸린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약 140억 개의 신경세포와 그 10배나 되는 신경세포를 지탱하는 세포가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많은 그룹으로 나누어져, 운동할 때 작용하는 것도 있고 보고 듣고 느낄 때 작용하는 것도 있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많은 그룹의 신경세포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척수소뇌변성증은 이러한 신경세포 그룹 중 반사적으로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아주 빠르고 매끄러운 운동을 하는데 필요한 소뇌 • 뇌간 • 척수의 신경세포가 변화해서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는 병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물건이 흔들려 보이고 이중으로 보이기도 한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말하기가 어렵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게 되어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도 아직 소변이 남아 있는 느낌을 갖는다. 일어서면 갑자기 혈압이 내려가 실신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병의 시작이다.

 

몸의 흔들림이 심해지면 걸어갈 때 버팀목이 필요하게 되고, 더 진행되면 혼자서 다리를 모아서 설 수 없게 된다. 말하는 것도 점점 발음이 불명료해져 리듬이 무너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손이나 손가락의 움직임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글자를 쓰기도 어렵고 써도 읽을 수 없다. 식사할 때도 젓가락을 쓸 수 없게 되고 스푼을 사용해도 정확하게 입에 음식을 옮길 수 없다. 사람이 먹여 주어도 삼키는데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목이 막혀 주변이 온통 밥알 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어느 증상이든 조금씩이라도 확실하게 병이 진행되며 마침내 종일 침대 위에 누운 채인 상태로 몰린다. 욕창이 생겨 화농(化膿)하거나 음식을 잘못 삼켜 기관 쪽에 음식이 잘못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기도 하고 소변이 방광에 남아 방광 속에서 세균이 증가해서 방광염 • 신우염을 일으키며 5~10년 사이에 죽는 것이 보통이다……

 

 

이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아이는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뛰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자기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든지 보통 아이들처럼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며 모든 일을 평소대로 하려고 힘썼고,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양호학교로 전학을 가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과 다르게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자꾸만 줄어들었다. 게다가 병에 걸린 아이에게 차가운 사회는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자꾸만 주었다.

 

 

"걸을 때마다, 그렇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느끼는 몸의 불안정함, 미덥지 못한 몸, 모두 다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하지 못하는 굴욕감, 비참함, 모두들 그런 기분을 실제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실제로 그 사람의 기분이 되더라도 조금쯤은 그 입장에서 봐 주면 안 될까.

 

하지만 어려운 일일 거라고 바꿔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10여 년 동안 무시무시한 병마와 싸우면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운 그녀가 흘린 눈물을 모두 모아 그 양을 재니 1리터라고 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푸른 하늘은 회색빛으로 변했다. 거기에서 그 많은 눈물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눈물이 모여 마치 다듬어놓은 보석 한 개처럼 변했다. 그 영롱한 보석이 아이가 남긴 일기에 스며들었다. 게르다가 흘린 눈물이 카이 가슴에 박힌 차가운 얼음 조각을 녹였듯이 그 보석은 그 일기를 읽는 사람들 가슴 속에 스며들어 다시 눈물로 변했다. 그 눈물은 다시 온몸으로 퍼지면서 세상과 삶을 부정하는 모든 기운을 걷어냈다. 회색빛이 하늘빛으로 다시 바뀌었다.

 

 

……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읽고 살겠다는 결의로 마음을 바꿨다."

 

"나만이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 괴로워하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학교에 가지 않던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진으로 집을 잃고 직업도 잃었지만 이 책이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에게 미안했다. 도대체 왜 고마워하지 않은 걸까."

 

……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인 골치 아픈 현실 속에서, 아이가 흘린 눈물은 아이가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서 그토록 기뻐했던 까닭인 다시 찾아온 내일을 살고 있나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려주었다. 또박또박하던 글씨는 갈수록 삐뚤어졌지만, 그만큼 그 글씨가 내뿜는 힘은 강해졌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쓴 글씨는 '고맙습니다'였다.

 

고맙습니다. 나도 키토 아야 당신처럼 열심히 살겠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슬퍼서 울지언정 절대 스스로 죽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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