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허들 - 1리터의 눈물 어머니의 수기
키토 시오카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선천적으로 눈이나 몸이 불편해서 처음부터 할 수 없었던 사람과 달리, 과거에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마음대로 움직였던 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거든. 왜 안 되는 걸까. 깊은 고민에도 빠지고 감정이 앞서버려. 그래서 항상 정신과의 싸움부터 시작된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기계적으로 라디오 체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훈련도 실은 정신과의 싸움이며 단련이야. 아야. 결과야 어떻든 간에 지금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미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아야는 자주 울잖니. 그런 우리 딸을 보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그렇지만 현실의 지금이 놓인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금부터의 아야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나가지 않으면 발을 땅에 붙이고 사는 삶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돼버려. 엄마나 동생들은 네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에는 아낌없이 손을 내밀어 줄 테니까. 그래도 넌 의견을 주장하거나 싸울 떄는 척척 말을 잘 하잖니? 그건 아야가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보통 아이이고, 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정신이 강해지는 사랑의 말도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에게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말을 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도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야.

 

사랑을 알고, 안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 아이치(愛知)현에서 태어난 아야는 이 현의 이름에서만 봐도 사랑과 예지의 세상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1리터의 눈물'을 쓴 키토 아야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할 때 어머니 키토 사오카가 아야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자꾸만 줄어들 때 느끼는 그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심정을 극복해야 한다고 사오카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 덕분에 아야가 지니고 있던 열정과 의지가 더는 나빠지려고 해도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사오카는 자기 배 아파 낳은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딸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바라봐야 했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이 아려 울었고, 그 눈물도 아야가 흘린 눈물 1리터만큼이나 많았다. 어쩌면 정확하게 1리터였을 수도 있다. 엄마와 딸 사이만큼 서로 정확하게 교감할 수 있는 관계도 흔하지 않으니까.

 

이 책 '생명의 허들'에는 어머니 사오카가 흘린 눈물이 배어 있다. 그 눈물 속에는 '1리터의 눈물'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 덕분에 '1리터의 눈물'에서 얻었던 것과는 또 다른 마음울림을 느낄 수 있다. 아야에게 말했듯이 사오카 또한 아이가 차츰 쇠약해지면서 예전처럼 아무 걱정 없이 한 남자에게는 아내이자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는 어머니로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던 시절을 떠올리기만 하면 고민에 빠지고 감정이 앞서버린다.

 

모든 주부들이 그렇듯이 집안 살림과 가족에게도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아야는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아야를 포기하고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잘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건강한 아이들에게만 신경을 쏟을 수도 있다. 사오카가 실제로 그런 참담한 유혹에 시달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랬기에 사오카는 누구보다도 깊은 고민에 빠지고 틈만 나면 아야와 같이 눈물을 흘렀다.

 

'1리터의 눈물'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을지언정, 아야에게서 기적을 일으키기는 못했다. 아무리 수많은 행운이 따르고 그 덕분에 사오카와 아야가 잠시라도 웃을 수 있었을지언정, 웃음이 병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희한하게도 그건 글을 쓰다가 도저히 더는 쓸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꽉 막혔을 때 드는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사오카도 고통스러운 지난 세월을 이 책에 녹여내면서 그런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야가 세상을 떠난 뒤 한 해가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오카도 차츰 그 모진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나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남편은 편지에 썼지만, 어떻게 완전히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미 이렇게 책으로 그 모든 일을 돌이키면서 되새겼으니, 그러면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사오카는 아야를 시집보냈다고 썼다. 딸을 시집보낸다고 해서 잠시 니콜라스 스파크스가 쓴 '기억 속으로 걷기(A Walk To Remember)'를 떠올렸다. 제이미가 죽기 전에 교회에서 카터와 결혼식을 올리며 축복받는 그 장면 말이다. 그러나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아이가 겪는 고통을 얼마나 완벽하게 받아들였으면, 끝없는 행복을 가져다 줄 새신랑처럼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현실에서 겪은 모든 절망과 고통 따위는 없는 그 영원한 공간 말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 표현을 보고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도 힘든 나머지 얼이 완전히 빠져서 웃지도 울지도 않는 그런 멍한 상태에 빠져든 것 같았다. 내가 사오카가 된 것 같았다. 제목 그대로 넘지 못하면 죽는 '생명의 허들'을 아야와 손잡고 함께 뛰어넘고자 지난 10년 동안 불태운 그 위대한 모성애가 허무해지는 순간 사오카는 뜻밖으로 담담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또 다른 '1리터의 눈물'이 사람들 가슴을 적셨다.

 

이 책 맨 끝에는 아야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그 또한 다른 책으로 묶여서 출간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책까지 맨 정신으로 다 읽을 용기는 없다. '1리터의 눈물'과 이 책 '생명의 허들'을 읽으면서도 힘이 너무나도 많이 쭉 빠졌는데, 그 책까지 읽었다가는 너무 슬퍼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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