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변호사들 -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 사건 10장면
민주노총 법률원.오준호 지음, 최규석 만화 / 미지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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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엾어서 그랬을까요? 관리자들 때문에 힘들긴 했어도 우리가 불쌍하다 이런 건 잘 못 느꼈는데, 뉴스에서는 그런 투로 나오더라고요. 물론 우리 중에서도 여기서 번 것만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며느리랑 같이 있기 싫어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청소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핍박받고,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그렇게만 비추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나도 돈 필요해서 나오지만 안 그런 사람 없잖아요."
이 분회장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에 대한 내 시선을 돌아봤다. 언론 보도에 영향을 받아 '불쌍한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우리가 그런 시각에만 머무른다면 이들의 요구를 보편적인 노동 기본권의 차원이 아니라, 가난한 집단의 처지를 좀 개선해주자는 차원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럴 경우 임금이 조금 오르고 복지가 나아지는 물질적 개선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저임금 노동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는 놓칠 수 있다.-107~108쪽

독일은 이러한 직종들을 자영업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동자라고 보고 '유사 노동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프랑스는 우리가 특수고용직이라 부르는 직종 거의 전부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이들의 노동3권을 보장한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에서도 외형상 독립 사업자이지만 경제적 종속 관계에 놓여 있을 때는 파업권을 인정하고 노동법의 보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외국에 비해 한국은 노동자성을 너무나 좁게 해석한다. 한국에서 편의점 점주들이 자신들도 노동자라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공정거래법 위반이 되죠. 그분들이 단결해서 뭘 하려고 하면, 부당공동행위로 처벌됩니다."-135쪽

이랜드-뉴코아, KTX, 현대중공업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개인의 능력이나 준비 정도와는 거의 무관해지고 있다. 기업은 거의 모든 업종과 업무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는 추세이다. 어제까지 정규직이 하던 일을 어느 순간 외주 업체로 돌리고, 상시적으로 하던 일을 언젠가부터 2년 단위로 끊어 재계약 하도록 한다. 청소 노동자부터 IT 엔지니어까지, 생산직 노동자부터 정부 연구 기관 연구원까지 비정규직은 일반적인(많은 회사에서는 심지어 유일한) 고용 형태가 되었다. 이윤 증대가 목표인 기업은, 개인이 정규직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든 어떤 능력을 갖췄든 그에 보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법이 이런 고용 형태를 합법이라고 보장해주었으므로.
비정규직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왜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지 않았냐는 말은 공정하지 않다. 비정규직은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있고,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준을 넘어섰다. 차별 규제 조항을 일부 덧붙이는 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가 비정규직 증가를 이제는 막겠다는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한다.-168~169쪽

하지만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노조 측에서 온갖 증거자료를 갖춰 고발해야 겨우 수사가 이뤄지는 반면, 노동조합의 불법행위는 회사 측의 고발만으로도 바로 수사가 시작되고 공권력이 개입한다. 현장에서 급박하게 벌어지는 용역 투입이나 노조 파괴 등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에는 너무나 느리게 대응하는 검찰과 노동부가, 노조의 불법행위에는 번갯불처럼 신속하게 대응한다. 게다가 오랜 시간이 걸려 결국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회사가 자기 입맛에 맞는 회사 노조를 만들어 민주 노조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 뒤다.-215쪽

강 변호사는 교육과 정치를 엄격히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며, 교실을 마치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공간인 양 논쟁이나 비판이 사라진 곳으로 여긴다면 시민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미숙하다는 점을 근거로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빼앗는다면, 시민으로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시민 의식을 제대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강 변호사는 "이러다가 학교는 정말로 정치적 미숙아들의 공간이 되어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교사의 권리 부정이 청소년의 권리 부정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교사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시민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만드는 사회는 어떨까요?"
교사는 순수해야 한다고 여기며 그들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만드는 일을 묵인한다면, 이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일이다.-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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