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 - 세계를 전복하는 사상 입문
히로세 준 지음, 김경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2월
절판


사파티스타는 세계에 대해 맨얼굴을 드러내고 육성으로 호소하는 방식으로 무언가가 실현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다큐멘터리를 믿지 않는다. 픽션의 힘을 믿는 것, 픽션의 힘에 입각해서 운동을 전개하는 것, 여기에 사파티스타 운동의 참신함이 있다. 픽션을 이야기하면서 살아갈 때야말로 사람은 리얼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이다.-131쪽

현재 리비아 무력 개입에 나선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정부가 열을 올리며 선전하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절대로 유럽과 같은 '민주주의'를 늦게나마 자국에도 도입하려는 '민주 혁명'따위가 아닌 것이다.
희망하는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과일 노점상을 하던 20대 청년이 장사 밑천을 몰수당하고 절망 속에 분신자살을 한 사건에 대해 젊은이들이 크게 공감함으로써 아랍의 봄의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랍의 봄은 청년의 운동, 프레카리아트의 운동이며, '불안정', 더 정확하게 말하면 '준準안정' 위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기존의 정치 경제 시스템 전부를 거부하는 운동인 것이다. 지역적으로 특수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지중해 건너편에도 탄력적으로 불이 옮겨붙었고, 나아가 유럽과 세계의 모든 도시에도 가뿐하게 불씨를 퍼뜨렸던 것이다.-176~177쪽

원자력 발전 사고는 빙결이나 눈사태처럼(또는 지진이나 쓰나미처럼) 준안정 상태의 해결로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과냉각수나 경사면에 쌓인 눈처럼 준안정 상태 그 자체의 지속으로서 '일어나고 있다.' 가령 계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점진적으로 향해 간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원자력 발전 사고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사고의 본질은 바로 그러한 현세적 현실과 더불어 잠재적 에너지의 과포화가 늘 유지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가시적인 차원에서 상전이가 연속적인 답으로서 산출될 뿐만 아니라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는 과잉에 있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 사고는 준안정에서 준안정으로 끊임없이 옮아가는 운동으로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형이다.-207쪽

혁명의 기쁨은 그것이 '일어났을' 때 생기지만, 봉기의 기쁨은 그것이 '일어나고 있을' 때 생겨난다. 혁명은 기쁨으로 가는 과정이지만, 봉기는 그 자체로 기쁨의 과정이다. 혁명에서 발생하는 모든 피로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기쁨으로 보상받지만, 봉기에서는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는 피로가 기쁨과 일체를 이루고 있다. 문제 해결 사회에서는 도래해야 할 해방의 기쁨이라는 약속 아래 피로를 불문에 부치지만, 문제 제어 사회에서 피로는 해방의 기쁨을 지속시키는 조건으로 떠오른다. 요컨대 혁명은 피로를 알지 못하지만, 봉기는 피로하다. 우리가 봉기의 시대를 살면서 쌓아 가는 것은 피로뿐만이 아니다. 방사선 피폭 양도 쌓여 간다. 그것은 그러한 축적이 우리의 신체와 뇌에 파놓은 '균열'을 물리적으로 한층 벌어지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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