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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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대한 소문으로 처음 알게 된 박쥐. 그 감독의 이름도 너무 유명해져서 내게 박쥐를 처음 소개했던 친구는 무척 들떠있었다. 나처럼 영화감독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 사람도 아는 이름이 박찬욱 아닌가. 영화감독이라기보다 한명의 연예인같은 사람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자기 작품을 보고싶어하고 한번 더 눈길을 주게 만드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그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조금 껄끄럽다. 물론 작품은 좋다. 몇년 전 올드보이를 봤을때 쉽게 점수를 매길수도 없다고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온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다만, 그리 유쾌하지도 않다. 두려우면서도 궁금해서 자꾸만 힐끔힐끔 쳐다보게 만드는 것, 그게 박찬욱의 작품이다. 

  내가 박찬욱의 작품을 대하는 그 마음은 태주가 성현을 대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받아주고 키워주었지만 병약한 아들의 수발을 들게하고 학대하는 라여사의 집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 한 사람, 그가 성현이다. 태주는 기적을 행하는 신부가 되어 나타난 성현을 그렇게 여겼다. 유일한 희망이고 빛이 성현이라고. 하지만 성현도 위험했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사람의 피를 빨아먹었다. 건물 위를 기척도 없이 기어오르고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았다. 믿기 어렵지만 뱀파이어란다. 태주는 언젠가 자신도 그에게 피를 빨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없거나 최대한 늦게 일어나도록 하기위해 확실한 그 무언가로 강하게 엮인 사이여야 했다. 태주는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이 사람에게서 두려움과 욕망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 

  태주라는 인물은 같은 여자라고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식모살이처럼 있던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이나 그저 챙겨주기만 해야하는 남편과는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현을 만나기 전까지 잠시나마 억눌린 마음을 푸는 방식이 섬뜩하기도 하고 낯설다. 물론 이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못된다. 그저, 박찬욱 아가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 태주가 불쌍하기도 해서 뭐라고 할수도 없고. 

  이 작품을 그토록 불편하게 만드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 성현은 불쌍한사람, 특히 아픈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할만큼 심성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살인을 해서 남의 피를 빼앗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가 됐다. 아픈 친구 효성을 위해 아프리카의 연구소로 갔지만 이브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 죽고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그때 수혈받은 피로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그는 자꾸만 피를 갈구하는 욕망에 괴로워하지만 한편으로 몸에 생긴 수포마저 없애고 상처도 금새 치유되는 강한 몸에 매료된다. 의식과 본능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는 자신에게 천국을 보여주는 여자 태주를 만나 사랑하면서 신부이길 거부한다. 이제 그에게 신은 태주이다. 태주를 위해 그녀를 억압하는 강우는 없어져야한다. 

  왜 하필 신부가 뱀파이어가 됐을까. 이는 트와일라잇에 나오는 뱀파이어 의사만큼 아이러니하고 신기하다. 하지만 본능이라는게 거의 없어진듯 너무도 잘 참고 인간을 돕는 뱀파이어 의사가 도인처럼 보였다면 박쥐의 성현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자꾸 불안하게 보였다. 태주와의 순탄하지 못한 사람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성현에겐 확고한 가치관도 없어 더욱 그랬다. 그 가치관이 태주에 대한 사랑이 되고나서부터는 더욱 심란했다. 그렇지만 태주와 마찬가지로 성현도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인물들도 이야기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가 먼저이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화한 작품이기때문에 책을 읽고나니 영화의 연출을 짐작하기 쉬웠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끌어와 갈등의 골을 최대한 늘여놓았다. 정말 이 감독은 감추고 싶어하는 마음의 어두운 면을 거침없이 끄집어내어 표현해낸다. 그래서 피도 많고 잔인하지만 누구나 갖고있는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탓에 나는 매번 찡그리면서도 손가락질을 하지 못한다. 아마 영화도 언젠가는 보겠지.. 미간에 주름을 몇개 만들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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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1 - 사랑과 권력을 가슴에 품은 최초의 여왕
한소진 지음 / 해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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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얼마 안남았다. 곧 드라마 선덕여왕이 시작한다. 이전에 방송으로 주요인물로 캐스팅된 배우들의 모습을 눈여겨 봐두었다. 보기만해도 기대돼서 하루하루 날이 가는것만 손꼽을 정도였다. 더욱이 아직 흔히 사극에서 조명하지 않았던 신라 선덕여왕이다. 그점에서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신라도 문화수준이 높았던 나라이니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온갖 물건들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한시라도 빨리 보고싶은 드라마였다. 그런데 소설로 먼저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재미도 놓칠수가 없어 찾았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 딸 덕만공주이다. 진평왕의 시대, 그 무렵에는 누구 못지않게 주목받고 유명한 인물이 있다. 바로 미실이다. 단순한 색공 그 이상의 권력과 부를 누린 여인으로 진평왕 선대에도 왕을 모셔왔다.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그녀는 남편을 빼앗긴 왕후들의 적이 되어갔다. 이는 진평왕의 왕후 마야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덕만공주는 자라났다.  

  책에서 그려낸 선덕여왕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타고난 신동이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일에 궁금증을 갖고 있었고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배우고 익히는 아이였다. 공주의 신분이니 거드름을 피울법도 한데 덕만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신분이 가지는 힘을 남용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못만드는 것이 없다는 두풍의 재주를 보기위해 일부러 침대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기다리는 아이였고 그 신통한 재주를 익히기 위해 자주 찾아갔으며 머지않아 곧 아재비라고 부르며 허물없이 대해주었다. 신분이 아니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재주를 인정하고 높여주어 사람을 얻는 타고난 리더의 품성을 갖고 있었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아마도 여성일 것이다. 우선 선덕여왕은 왕에 등극하는데에도 그 전례가 없어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왕이 된 후에도 여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향기없는 꽃이라며 조롱을 받고 주변국인 백제와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아 해를 넘기는 전쟁을 치루어냈다. 왕이 되기 전에도 역시 백성을 위해 하고자 하는일에 도움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모두 잘 이겨냈다. 막힌 길이 생기면 뚫기위해 고민했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다른길을 찾았다. 그렇게 차근차근 덕만은 인정을 받고 신뢰를 얻었다. 

  드라마의 내용과는 조금 달라보이는 책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마음에 든다. 주인공이 선덕여왕이고, 그녀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실력있는 인재를 얻고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는데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용서와 화합이라는 덕목이었기 때문에 작품 전체가 덩달아 부드러워졌다. 그와함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랑이 적당히 곁들여져있어 예쁘기도 하다. 그저 딱 하나, 생각보다 미실의 존재감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것이 의외였고 덕만아래 선화공주는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공주여도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먼저 고개숙일줄 알았던 선덕여왕의 감동적인 모습만은 드라마에서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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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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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직장인인 오가와는 한 직원의 송별회날 만취한 아르바이트생을 데려다주고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니 어딘가 평범하지 않아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혀있다. 전화도 시계도 없어지고 잠시 정전까지 되면서 흥분한 오가와는 긴장을 풀기위해 했던 진실게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력을 알고는 더욱 무서워한다. 빈집털이범인 남자에 아이를 유괴한적이 있는 초능력자, 방화를 저지른적이 있었던 자살하려던 소녀가 그들이다. 오가와는 어쩌다 이런 사람들과 갇히게 되었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다. 그저 아이를 낳고있을 아내의 곁으로 어서 가고싶을 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설정으로 궁금증이 많이 생겼던 작품이 악몽의 엘리베이터였다. 더욱이 엘리베이터라고 하면 공포물의 배경으로도 좋은 곳 중의 하나이니 무척 잘 어울렸다. 누가 그랬다더라 하는 지나가는 짧은 이야기로 엘리베이터 괴담을 몇번 들은적은 있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작품안에서 비중있는 장소로 나온것을 본 적은 처음인듯 하다. 그렇게 보니 또 색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이 좁고 한정된 장소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책은 세 사람의 악몽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가장 처음 등장하는 것이 오가와의 악몽이다. 그의 시선에서 일이 일어나고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갇힌 엘리베이터 안에 네 사람이 함께 하기까지의 사정같은것은 절대로 나오지 않으니까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의 파악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어지는 다른 사람의 악몽에서 시선이 옮겨지면서 이 일을 둘러싼 다른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오가와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의 시선으로 옮겨져 또 다른 사실이 밝혀지고 에필로그까지 읽게 되면 완벽하게 전후 사정이 맞아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사건을 알게 된다.  

  등장인물 각각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다시 전개되지만 과감하게 중복되는 부분은 건너뛰고 새로운 사실들을 양념처럼 추가한다. 때문에 등장인물의 시선을 골라서 읽어도 나쁘지 않을것 같지만 책의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는 것이 맛갈나다. 모든 재료와 양념이 잘 어우러진 요리처럼. 모든 사람의 생각과 입장이 나타났기 때문에 아주 풍부하고 입체적이면서 완벽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이런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같은 형식의 전개를 좋아한다. 에필로그에까지 숨겨둔 무언가가 있다는건 조금 얄밉게도 느껴졌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기노시타 한타라는 이름은 처음인데 이 악몽시리즈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악몽시리즈가 이번에 처음 우리나라에서 출간됐다고 들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고 첫 책인데 다행히 좋은 인상을 받아 이어질 책들에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어질 악몽시리즈는 어떤 내용일지, 그 책도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번갈아가면서 전개가 될지 궁금하다. 기억해두어야 할 작가가 또 한사람 늘었지만 즐겁다. 함께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모양인데 볼 수 있다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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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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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도한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강력계 형사들 사이에서 탐정 갈릴레오로 불리며 사건의 트릭을 밝혀내거나 미심쩍은 부분을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사건종결에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활약은 역시 장편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천재 수학자이자 대학동기인 이시가미를 상대로 두뇌싸움을 펼칠때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예지몽에서도 그의 능력이 어김없이 발휘됐다. 탐정 갈릴레오가 형사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상의 구멍을 과학적으로 메워주는 내용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예지몽에서는 심령과 관련되어 보이는 일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운명이라거나 귀신이라는 말이 나오면 난감할 것이다. 이를 마음대로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길이 없지 않느냐며 인정하기에도 곤란하다. 남의 집에 한밤중에 몰래 들어갔다가 발각되어 도망가던중 사람을 차로 치어 잡힌 청년. 어릴때부터 자신의 운명인 소녀의 이름을 되뇌이며 자랐고 이제 그 상대가 아름다운 모습의 여고생으로 자신앞에 나타났다. 그 여고생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녀의 꿈을 꾸고 자신의 신부가 될거라며 주변에 말하고 다닌 그 청년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어이없는 일이 없지는 않을것이다. 물론, 이어지는 이야기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목숨이 끊어지던 시간에 영혼이 되어 애인의 앞에 나타나는 사건이나 죽은 피해자의 딸이 도깨비불을 봤다고 하는 내용도 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보이는 사건도 등장하고 예지몽을 꾸는 소녀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전까지는 구사나기가 툭하면 유가와를 찾는것처럼 보였는데 이번엔 그를 찾아가는 형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고 해도 찾아갔을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라고 한다면, 너무 도도하고 인간미가 별로 없어보여 그의 능력까지 괜히 인정하기 싫었던 이전과는 달리 특유의 냉정함과 논리적인 사고로 변함없이 사건해결에 실마리를 주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런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꿈속에 나타난 운명의 상대를 찾아 주거침입을 하다 발각돼 도망치던 도중 교통사고를 냄' 이라거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여자를 찾아가 설득하려다 홧김에 죽여 흔적을 지우고 도주했으나 피해자의 영혼이 나타나 살인을 알림' 과 같은 믿지못할 사건개요를 적어야 했을 것이다.   

  유가와의 활약이 빛날수록 덩달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을 잘 믿지 않는 논리적이고 냉정한 성격인 모양이라고 느꼈다. 이전 작품 중 편지라는 책을 보면서 조금 차갑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비슷하게 느끼면서 역시였나 하고 여기던 참이다. 하지만 독선적이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 예지몽에서는 틈을 남겨놓았다. 아직 과학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을 그렇게 모두 부정하는것은 옳지 못하다는 반론의 여지탓인지 아니면 그러한 현상을 믿거나 혹은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작품을 위한것인지도. 

  어쨌거나 이번에도 유가와는 멋지게, 자신답게 모두 해냈다. 이런사람 정말 있을까 싶지만 어느새 그만의 매력을 느껴 더는 얄밉게 볼 수 없게됐다. 다음에 또 멋진 장편으로 유가와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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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5천만 원의 전쟁
이종룡 지음, 곽성규 구술정리 / 호랑나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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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면 어떤 영화처럼 금융계의 보이지않는 전쟁을 다루는 소설같다. 처음엔 제멋대로 그렇게 단정짓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주 우연히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임을 알았다. 서점에 갔는데 이 책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표지도 노란색이니 더욱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눈에 뜨인건 '빚쟁이'라는 단어였다. 그제야 조금 감이 왔다. 그리고 저 억소리 나는 금액에 놀라고 말았다.

  10년이나 걸렸다지만 난 그 시간도 놀랍다. 그시간동안 꾸준히 갚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금액을 생각하면 더 오래 걸릴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단하다 싶었다. 그렇게 표지를 넘기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장 넘기지 않아 놀라다못해 멍해지고 말았다. 사람이 어떻게 달랑 한두시간 자고 육체노동을 하루종일 할 수 있다는 건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가 이렇게까지 무너져버렸던 당시의 현실은 참혹했다. 빚때문에 가족과 친척에게도 상처와 피해를 주고 도망다니고 자신은 주민등록까지 말소가 되고 고소까지 당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나가 부딪히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빚청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IMF때 망해버린 이종룡은 그 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놀기 좋아하고 사장이 되고싶어 무리하게 돈을 끌어모아 가게를 인수했다고 했다. 오직 그날의 매출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멋부리기 좋아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방탕한 과거가 아니라 망한 이후 일을 해서 빚을 갚겠다고 작정하기까지의 그의 모습이다. 그리고 결심하고도 쉽지 않아 몇번 반복했던 주저않기였다. 그의 어려워진 사정이 아니라 자꾸만 몸이 편하고 허황된 과거를 돌아보는 마음이다. 사람은 좋았던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멈춰서는 실수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이를 알기때문에 몇푼 안되는 아르바이트 월급에 좌절하고 밑바닥으로 떨어진 현실에서 자꾸만 사장님 소리를 듣던때를 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한심하게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울고있는 아내와 대학을 포기한 아들을 보고 생니를 두개나 스스로 뽑아가며 무섭게 결심을 새로 하는 부분을 보고 울컥했다.

  몸이 힘든것도 이기고 잠이 오는 것도 이기고 영원히 제자리걸음일듯한 절망에 빠진 마음을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내심 안쓰러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모두 견뎌냈다. 그리고 일에 진심을 담기 시작하면서 웃음을 찾게됐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사람들의 온정도 알게됐다. 무엇보다 이종룡 그 자신이 변했다. 아르바이트를 평균 7개나 하면서 그는 일을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이 숙지하고 있는 중요사항을 모두 깨우쳤고 더불어 가치관도 달라졌다. 작은 것도 버리지 않고 단 1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신뢰를 얻는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게됐고 자신이 받은 도움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하게 됐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갚았다는 것도 물론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변화야말로 정말 큰 소득이 아닐까. 나누고 서로 돕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게되고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또한번 울컥했다.

  마지막 남은 빚 100만원을 송금하고 주저앉아 울었다는 그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 10년은 더 일해서 식구들이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말소된 주민등록도 해결됐고 쌓여가는 저축액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손바닥에 불이나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너무 고된 그의 아르바이트 일정에 걱정이 된다. 10년 더 일하면 그땐 환갑이 된다. 돈도 신뢰도 잃으면 안되지만 되돌릴수는 있다. 하지만 건강은 잃게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제 몸을 돌봤으면 좋겠다. 때로 어린아이를 돌보듯 살살 달래가며 보듬어주어야 하는것이 건강이라고 전하고싶다. 앞으로는 정말 행복한 날만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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