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5천만 원의 전쟁
이종룡 지음, 곽성규 구술정리 / 호랑나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보면 어떤 영화처럼 금융계의 보이지않는 전쟁을 다루는 소설같다. 처음엔 제멋대로 그렇게 단정짓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주 우연히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임을 알았다. 서점에 갔는데 이 책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표지도 노란색이니 더욱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눈에 뜨인건 '빚쟁이'라는 단어였다. 그제야 조금 감이 왔다. 그리고 저 억소리 나는 금액에 놀라고 말았다.

  10년이나 걸렸다지만 난 그 시간도 놀랍다. 그시간동안 꾸준히 갚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금액을 생각하면 더 오래 걸릴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단하다 싶었다. 그렇게 표지를 넘기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장 넘기지 않아 놀라다못해 멍해지고 말았다. 사람이 어떻게 달랑 한두시간 자고 육체노동을 하루종일 할 수 있다는 건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가 이렇게까지 무너져버렸던 당시의 현실은 참혹했다. 빚때문에 가족과 친척에게도 상처와 피해를 주고 도망다니고 자신은 주민등록까지 말소가 되고 고소까지 당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나가 부딪히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빚청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IMF때 망해버린 이종룡은 그 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놀기 좋아하고 사장이 되고싶어 무리하게 돈을 끌어모아 가게를 인수했다고 했다. 오직 그날의 매출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멋부리기 좋아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방탕한 과거가 아니라 망한 이후 일을 해서 빚을 갚겠다고 작정하기까지의 그의 모습이다. 그리고 결심하고도 쉽지 않아 몇번 반복했던 주저않기였다. 그의 어려워진 사정이 아니라 자꾸만 몸이 편하고 허황된 과거를 돌아보는 마음이다. 사람은 좋았던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멈춰서는 실수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이를 알기때문에 몇푼 안되는 아르바이트 월급에 좌절하고 밑바닥으로 떨어진 현실에서 자꾸만 사장님 소리를 듣던때를 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한심하게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울고있는 아내와 대학을 포기한 아들을 보고 생니를 두개나 스스로 뽑아가며 무섭게 결심을 새로 하는 부분을 보고 울컥했다.

  몸이 힘든것도 이기고 잠이 오는 것도 이기고 영원히 제자리걸음일듯한 절망에 빠진 마음을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내심 안쓰러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모두 견뎌냈다. 그리고 일에 진심을 담기 시작하면서 웃음을 찾게됐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사람들의 온정도 알게됐다. 무엇보다 이종룡 그 자신이 변했다. 아르바이트를 평균 7개나 하면서 그는 일을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이 숙지하고 있는 중요사항을 모두 깨우쳤고 더불어 가치관도 달라졌다. 작은 것도 버리지 않고 단 1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신뢰를 얻는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게됐고 자신이 받은 도움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하게 됐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갚았다는 것도 물론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러한 변화야말로 정말 큰 소득이 아닐까. 나누고 서로 돕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게되고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또한번 울컥했다.

  마지막 남은 빚 100만원을 송금하고 주저앉아 울었다는 그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 10년은 더 일해서 식구들이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말소된 주민등록도 해결됐고 쌓여가는 저축액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손바닥에 불이나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너무 고된 그의 아르바이트 일정에 걱정이 된다. 10년 더 일하면 그땐 환갑이 된다. 돈도 신뢰도 잃으면 안되지만 되돌릴수는 있다. 하지만 건강은 잃게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제 몸을 돌봤으면 좋겠다. 때로 어린아이를 돌보듯 살살 달래가며 보듬어주어야 하는것이 건강이라고 전하고싶다. 앞으로는 정말 행복한 날만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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