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보기에 초기 그리스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디오니소스 신의 고통이었다. 그는 에우리피데스(Euripides) 이전까지 디오니소스가 계속해서 비극의 영웅으로 등장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프로메테우스나 오이디푸스는 모두 본래의 영웅인 디오니소스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무대 위에서 디오니소스가 드러나는 양상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실수를 범하고 고통받으며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개인으로 제시되는데 그의 이런 시련은 꿈과 현상 세계의 해석자인 아폴론의 영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개인들은 사실 개별화의 고통을 겪는 영웅, 디오니소스일 뿐이다. 디오니소스는 어린 소년으로서 거인족 타이탄의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는 시련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개별화라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의해서도 또다시 갈기갈기 찢기는 존재이다. 그는 개별화로부터 고통받는다. 니체는 개별화야말로 모든 고통의 근원이자 본래적 원인이며 따라서 거부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 세계는 한없이 심오하고 비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근본적으로 융합되어 있는 하나의 상태이며 개별성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서 악의 원인일 뿐이다. 예술은 개별화의 저주를 풀고 원초적인 융합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희망을 제시한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소외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끝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삶의 고통에 노출된다. (개별화 = 소외)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예수 그리스도 같은 인물로 재현하면서 <비극의 탄생> 전체를 통해 구원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비극의 탄생>에서 제시하는 신정설(神正設)은 기독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의 미학적 정당화는 세계의 원초적 토대에 대한 것이지 인간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존재의 공포와 부조리를 잘 알고 또 느끼고 있었고 이런 인식으로부터 나온 강력한 필요에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라는 두 신을 창조해냈다. 

 

- 키스 안셀 피어슨, 「HOW TO READ 니체」,24-25쪽 

세계는 대립되는 힘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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