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의 '정신산만(Distraction)'이라는 개념은 동시대 영화이론가였던 크라카우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크라카우어는 「정신 산만의 숭배」(1926)에서 예술의 수용 방식과 연관해 이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여기에서 크라카우어는 1920년대 중반 새롭게 등장한 베를린의 대형 영화관을 기존의 변두리 극장과 비교해 "영화궁전"이라고 칭한다. 호텔 로비와도 같이 화려한 외관을 지닌 새로운 대형 영화관이야말로 '정신 산만의 궁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궁전'의 내부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격이 관람자의 주의를 주변적인 것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심연으로 침잠하지 못하게 만든다.  - 「정신 산만의 숭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신 산만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현실의 해부가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중요성'을 지닐 수 있음을 간파한다. 왜냐하면 눈부신 감각 인상들의 파편적인 연속 속에서 관객은 실제의 파편화된 현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라카우어에 따르면, 영화는 자본주의의 현실 경험이 지닌 추상성과 파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매체다. 다시 말해 영화가 주는 혼잡함의 퍼레이드 속에서, 사회의 부조화에 대한 순간적인 감각이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피상성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와 조우한다. 그 자신의 현실이 찬란한 감각 인상들의 파편화된 연속 속에서 폭로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관람자들에게 숨겨진 채 남아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공격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 「정신 산만의 숭배」 

 

  그러나 실상 대부분의 예술에서는 잡다함과 파편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예술적 조화와 통일성을 꾸며내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크라카우어는 파편성의 진리로부터 도피하는 것이야말로 정화가 지닐 수 있는 잠재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연극의 낡은 관습에 영화의 혁명적 잠재성이 종속됨으로써, 은폐된 현실의 파편들을 드러내고 일상적 존재의 예기치 않은 거처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능력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부조화와 단편성을 숨기는 대신에,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정신 산만'을 요청했다. 

  요컨대 정신 산만이란 "통제되지 않은 우리 세계의 무질서를 반영"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현실의 의미 없는 표면을 기록하는 영화는 그 표면의 모습이 단지 '임시적'이며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언제나 '다른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역사적 기억을 벗어난 순간들의 새로운 배열"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라카우어는 영화를 "메두사의 머리를 비출수 있는 아테나 여신의 방패"에 비유한다. 

 

  오직 영화만이 분명한 의미에서 자연에 거울을 비출 수 있으며, 만약 실제 삶에서 직접 마주 대한다면 우리를 돌로 굳어버리게 만들 그러한 사건들도 영화를 통해 반영할 수 있다. 영사막이 아테나 여신의 방패인 것이다. - 「영화 이론(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물론 크라카우어도 영화가 주는 정신 산만이 대중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끼칠 가능성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정신 산만은 그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정신 산만에 중독된 동질적인 대도시 대중"을 생산한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는 감각의 자극이 너무나 신속하게 교체되어버리므로, 그 자극들 사이에서 대중이 관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영상이란 이면이 없는 표면 위의 움직임, 즉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움직임의 연속일 뿐이며, 영상을 바라보는 주관의 의식은 일종의 유아적 과대망상 상태로 퇴행하여 꿈과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가 정신 산만한 지각 방식에 호소함으로써 관객을 무의식적으로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하고 그럼으로써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 어두운 극장의 환경이 적절한 판단과 정신 활동을 위해 필요한 환경적 자료들을 자동적으로 빼앗아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영화의 옹호자와 비판자가 모두 영화라는 매체를 일종의 마약에 비유했던 것이다. 

- 신혜경,『벤야민&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p.g.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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