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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행 - 때론 투박하고 때론 섬세한 아홉 남자의 여행 이야기
정영호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6년 6월
평점 :
어젯밤 잠을 설쳤다.
둘째는 뒤척이긴 했지만, 밤새 곤히
잤다.
새벽 3~4시면
깬다. 이건 필히 내 삶에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무언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날뻔했다.
오늘 아침 출근한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첫 장이 축구이야기다.
남편은 호주에
축구지도자 자격증을 따러 갈 계획이었다. 그러다 덜컥 우리 전직장 시험에 붙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축구는 그의 꿈이었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마다 조기축구회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그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슴 속에 간직한 그 꿈을 이어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초등학생, 어린이집 다니는 딸, 그리고 전업주부 아내. 그는 쉴 수 없다. 떠날 수
없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네.
자유로운 영혼이 묶여있을 걸 생각하니.
남편은 자신의 꿈을 접고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나머지는 덤이다.
그래도 항상 잊고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_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중에서
35쪽
사람이 절박해야 창의력도 메마르지 않고 뭐든지 하게 된다고
했던가.
46쪽
6,000킬로미터든, 1,500킬로미터든 기록과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세상에 많고 각자 자기 몫의
여행을 하면 된다. 중요한 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정 원하는, 실패도 두렵지 않은 '나만의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97쪽
도대체 약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길래 낯선여행지에서 그렇게 혼자 미련을 부려가며 20분 넘게 코에
점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냔 말이다. 결국 약속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내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식도
안쓰러웠다. 아마 자신의 많은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약속을 아무 것도 아닌 감정의 배설로 취급한다면 우리 삶은 너무
건조하다.
113쪽
지나간 추억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어쩌면 추억은 현재 진행형으로도 존재하지 않을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130쪽
"내 말은 조물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거야.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아. 사실 그게 나의 가장 큰 내 삶의
가치관이기도 해. 대신에 나는 그때그때 제일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고 현재에 더욱 집중하려고 하지. 우리에겐 사실 미래도 과거도 없으니까.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이지. 나는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에 현재의 나를 구속하고 싶지 않아.
나는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들이 계획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그 계획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해.
마치 한낱 개미 같은 존재가 자기의 앞날을 계획하고 있는
거지. 그게 계획대로 될 리가 없잖아. 당연히."
134쪽
음,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이부분은 너 말고도 내가 아는 몇몇 한국인들에게서도 느끼는 건데.
너희 한국인들은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돼.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너희만큼 착실하고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부지런하고 강한 사람들을 못 봤어.
그런데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서양사람들보다 수준이
아래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항상 어딘가 위축되어 있고.....
실수라도 하면 갑자기 유령이라도 튀어나와 자기들을 때를
것처럼.
....
한국의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몰라도 이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해. 너희
개개인들은 정말 완벽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말이야.
그저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들 속에 있다고 자꾸 내면화하지 마,
아니니까."
마치 단편영화 모음 같은
여행책.
장면 전환이
마치 영화같았다. 각각의 여행기가 마치 내가 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미국 자전거 여행기, 인도 오토바이대여, 인도에서 축구,
이탈리아 도보 여행기뿐 아니라 도소면을 눈 앞에 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거 연인을 추억하는 모습까지.
남자들의 여행이 거칠거라는 상상은
고정관념이었다.
한사람의 여행기를 한 권 주욱 읽는다면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
이 책은 지루할 틈이 없다. 각각 개성이 다른 작가님들의
여행기가 생기발랄하게 이어진다.
하루 동안 여러 곳을 여행다닌 듯한 착각이
들정도이다.
요즘처럼
축축한 장마기에
마음을
상큼하게 해줄
책.
눈물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