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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책은 거의 빌려 보는 편인데 그림과 사진이 있는 여행기와 미술 관련 책은 되도록이면 사본다. 한두시간이면 금방 볼 수 있지만, 생각날 때마다 또보고 또보고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나도 그런 곳에 여행을 떠나고, 책에서 본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늘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것과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다른 나라의 풍광이 나온것에 아주 열광을 한다. 그래서 본 얼티네이텀에서 각 도시들을 먼 각도에서 그리고 가까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그 씬이 정말 좋았고, 007 카지노 로얄에 나왔던 베네치아, 아멜리아가 소개한 파리의 구석구석.. 이렇게 영화를 통해서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고(읽어 왔고) 그래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잘 풀어내고 더군다나 여행을 좋아해서 영화에 나왔던 여행지는 꼭 여행을 해보는 평론가 이동진의 따끈한 책이 또 나왔다. 이런 책이 나와주면 이렇게 여행기를 통해 여행을 다니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투스카니의 태양"에 나오는 이탈리아의 코르토나나 포지타노, "폭풍의 언덕"의 주무대인 영국 요크셔 지방, "원스"의 아일랜드 등은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먼저 간 사람의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 좋고,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캐스트 어웨이"의 피지나 잉마르 베르히만이 말년을 보내고 영화를 찍었던 스웨덴의 작은 시골마을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대신 해주었기 때문에 고마운 것이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의미가 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을 보는 것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에 가보는 것이 전부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봤더라면 메디나 셀리 광장에도 가보았을 것이고, 대단한 건축물로만 느꼈던 성 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모두가 각자가 관심을 갖는 것에만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꿈으로만 여겼던 유럽여행을 2008년 겨울 한 달 동안 다녀 올 수 있었다. 그때는 온통 책에서 본 그림을 직접 실제로 본다는 일념 하나로 각 도시의 미술관만을 다녔었다. 니스에 가서도 해변을 못보고(정말이다..) 해변과 먼 샤갈과 마티즈 박물관을 갔었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도 세기말 비엔나 도시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레오폴드 미술과, 빈 미술사 박물관 등 미술관에만 발품을 판 것이다. 멋진 도시 피렌체에 가서도 두오모에 올라가고, 베키오 다리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에 우피치 미술관에서 그림만 보다 나왔다. 한 달밖에 없는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왜 꼭 그림에만 집착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기를 통해 다시 또다른 여행을 꿈꾸어 본다. 영화를 통해 먼저 그 도시를 탐색해 보고 실제로 가보고 영화의 감동을 또 다시 느껴 보는 것.. 참 멋진 일일 것이다.
영화는 그다지 예술장르에 쳐주지 않던 그가 잉마르 베르히만의 영화를 본 것을 시작으로 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을 영화의 세계로 안내해 준 잉마르 베르히만이 말년에 살았던 정말로 을씨년스러운 포러섬까지 찾아간 그의 집념과 용기가 대단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맘마미아에 나왔던 그리스의 그 작은 섬을 정말정말 가보고 싶었었다. 근데 먼저 간 저자가 묘사한 그리스의 작은 섬마을은 11월에 방문해서인지 너무나 쓸쓸한 풍경이었다.(그 좋아보이던 작은 다리들도 다 세트여서 하나도 없단다...) 이렇게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먼저간 이의 친절한 답사로 여행지 선택에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앞으로 갈 여행을 꿈꾸며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볼 것 같다.
좋았던 말들..
아마도 여행은 뒤로 걷는 일일 것이다. 그게 내 삶의 자취이든 세상의 뒤안길이든, 뒤로 걸을 때 익숙하고 빠르게 지나쳤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재발견다. P. .105
고독은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위에 있지 않다. 언제나 그것은 북적대는 시장 한복판이나 모두들 떠들썩하게 술잔을 비워대는 술집 같은 곳에 있다. 인간은 컴퓨터 그래픽처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한순간에 말끔히 지워버리고서, 눈을 감은 채 코앞의 군중을 보지 못하는 척, SOS를 친다. P.179
아이러니하게도 촬영 장소에 가면 오히려 영화와 멀어지는 경험을 가끔씩 했다. 현장이 품고 있는 현재의 리얼리티는 은막이 구현했던 초시간적인 판타지를 종종 무화시켰다. 그렇기에 영화의 궤적을 좇아 떠나는 여해이 결국 기억에서 낭만을 제거하는 역설적 여정인 경우도 없지 않았다.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