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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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만남이 두려워요. 
만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 '잃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잃는 거예요. (p363)

 

 

 

 

초등학교 땐 거저 주어도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고,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고물 컴퓨터가 있었는데 인터넷도 되지 않았던 이유로 그 컴퓨터의 용도는 항상 게임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처음 컴퓨터가 생겼던 나는 고심해서 아이디라는 것을 만들었고, 비밀번호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식상한 아이디였는데, 보물단지처럼 소중히 아끼며 그 아이디로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e-mail이라는 것을 주고 받는데 열중했던 적이 있었다. e-메일은 손편지와는 달리 타자를 몇번만 두들기면 힘들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많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처음 본 물건에 호기심이 생기듯 자연스레 그동안 써왔던 편지를 버리고 그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항상 하교 전까지 봤던 친구들이지만 컴퓨터를 켜면 친구들에게 집에 와서 뭘 했는지, 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으니 e-메일이라는 그것이 한 때 내 생활에 얼마나 크게 미쳤는지 알만하다. 갑자기 옛 생각을 하며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는 이 책이 e-메일 형식이기 때문이다. 편지 형식으로 된 책을 요근래 몇 작품 접했지만, 이런 형식은 처음이기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에미가 잡지사의 담당자에게 정기구독을 해지해달라는 e-mail을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의 첫 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단순한 철자 하나때문에 메일은 레오에게 도착하는 진부한 스토리로 시작을 하게 되며, '에이 뭐야 이거,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거였어?' 라며 첫 부분부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구색을 갖추고 있는 터라 찬찬히 그들의 비밀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에미는 한 가정에서 아내, 엄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가정주부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 되고 있고, 레오는 연인이었던 마를레네와 헤어지고 공황 상태였다. 그럼으로 그들이 e-메일을 주고 받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가족타임아웃'이고 '마를레네 극복 요법'이 되는 것이다. 비밀을 하나,둘 털어나가며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점차 사랑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던 중 '식별놀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서로는 정확히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짐작만 할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에미의 친구를 레오에게 소개시켜주는데…….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 책은 편지가 아닌 두 사람의 e-메일을 옮겨적은 것이기 때문에 문체는 생각보다 많이 딱딱했고, 가령 나긋나긋한 문체로 바뀌어버릴 때면 에미와 레오가 보내는 메일들을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면 내용을 보고 파악하던가, 뒤에 있는 이름을 보고 파악해야만 했는데, 이것은 작가가 그렇게 써놓은 건지 혹은 번역이 그렇게 된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 부분에서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이런 식의 한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메일을 볼 때면 그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마음에 확 와닿는 것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끔 마음을 조금 살랑살랑 흔들리게 하는 문장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들을 불륜으로 치부해버렸을 땐 아름답다기보다는 '아, 젠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에미가 유부녀가 아니었으면, 난 그들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응원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현실을 무시한 가상 속의 안락함은 영원할 수 없다. 등에 짊어진 현실은 점점 더 내 목을 조여올 것이고, 그로 인해 가상 속에서 안락함을 위로의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가상은 가상일 뿐 어떤 명쾌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강한 반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때로는 나 역시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행복한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나로 성장하게 된다. 그 속의 나는 내가 만들어낸 워너비일 수도, 혹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창출해내는 것이다. 아무런 제약없는 이 가상공간의 유혹에서 빠져듦으로써 우리는 점점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타쿠라 불리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들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에미와 레오는 그 경계를 침범했기에, 작가는 결말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하기보다는 감정은 극적으로 올려놓은 상태에서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어놓고 '니 마음대로 상상하라.'는 식으로 던져주고는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새록새록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난 그들에게 참 미안하게도, 어떻게해서든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인 즉슨, 그들에게는 각자가 책임져야할 (특히 에미에게) 위치가 있고, 한낱 사랑이라는 감정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까지 혼동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세계에서 발을 떼고 싶지 않다면, 현재의 남편인 베른하르트와 정리를 한 다음에 만나야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던져보기도 한다. 행복한 가정의 표본과 레오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 이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두 손에 꽁꽁 쥐고 있는 그녀를 볼 때면 산 속에 꽁꽁 묶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무 주저리주저리 늘어놔서 무슨 글을 썼는지조차 모르겠다. 확실한건 그들에게 '사랑'이 어떤 식으로 방문을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으로는 사랑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야 하고, 그렇기에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방법 자체가 나와는 좀 달라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happy end도 그렇다고 sad end도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서 에미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는데, 후속편인 <일곱번째 파도>가 이어진다고?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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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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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에서 사막 여우가 말했던 것처럼 <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가까워 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알게 되겠지! > 누구나 연인이 아니더라도 보고싶어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사랑하는 연인 사이는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에 나오는 안토니아와 루카스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한 연애 중 10개월 째 동거로 인해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있어서 그런 사소한 설레임조차 느낄 수 없는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이다. 그렇기에 연애초기의 루카스의 '너는 내가 만난 최고의 여자야. 여기서 브라질까지 왕복하는 거리만큼 널 사랑해.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야…….' 라는 가슴 설레게 하는 문자가 '올 때 물 좀 사올 수 있어?' 라는 딱딱한 목적성 문자로 변질되기까지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루카스의 호의적인 피트니스 팰리스 이용권 선물은 '살 좀 빼'라는 암묵적 지시로 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용권의 안내문을 안토니아가 변질시킨 문장(본 이용권을 가져오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구명 튜브를 끼고 있는 것 같은 당신의 배와 출렁거리는 허벅지 살을 흔들어댈 수 있습니다-p46)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더랬다. 게다가 친한 친구 카타는 책에서 봤다며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2년'이 지나면 남자는 현재의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중점에 두고 결정한다고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루카스의 전 여자친구인 자비네가 옆동네로 이사하면서 루카스는 그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다녀온다고 한다. 녀는 루카스에게 멋진 여자로 비치게 하기 위해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상상을 하며 혼자 끙끙 앓게 된다. 그러다 루카스는 자비네와 함께 그린피스(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하게 된다. 그 둘은 그러면서 함께 있을 시간이 더욱 더 많아지고 급기야 안토니아는 '남자친구 사수하기'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 남자친구에게도 전 여자친구가 등장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안토니아처럼 남자친구를 사수하려고 고군분투를 할까, 혹은 전 여자친구에게 보내줄까. 둘 중 하나의 선택의 기로에 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건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그의 행동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루카스는 안토니아가 그런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는 행동들을 서슴지않고 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안토니아의 입장에 서서 루카스를 죽어라 욕하며 한편으로는 안토니아가 그에게 바란 것은 어떤 비싸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라는 것을 알았을 땐 역시 남자들은 말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게다가 나도 누군가와 감정을 주고 받으면서 생각했던 말들 중 하나인 내가 좋아하는 멜로 드라마에서는 모두 껴안고 해피엔드인데, 현실은 그게 아닐까봐 두렵다.(p325) 라는 말이었다. 내가 항상 봐왔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인데, 나만 그렇지 못하고 엇나갈까봐 항상 불안했었고, 그 불안은 지금도 이어져서 가끔은 못된 상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항상 남자의 몫이 아닐까? 나 역시 여자이기에 루카스보다는 안토니아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남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은 안토니아의 행동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2년이 지나면 사람에게서 사랑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는군. 호감이 생길 때는 도파민, 사랑에 빠졌을 때는 페닐에틸아민, 그러다가 그 사람을 껴안고 싶어지고 같이 자고 싶어지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마침내 엔돌핀이 분비가 되면서 서로를 너무 소중히 여겨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거야. 하지만 그 모든게 2년 정도가 지나면 항체가 생겨서 바싹바싹 말라버린다고. 그럼 도파민이든 엔돌핀이든 모조리 끝장이고 아무 것도 없이 싫증난 남자와 여자만이 있을뿐이지." - < 내 이름은 김삼순 中 >카타의 '2년 호르몬 이론'을 읽으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정말 사랑에도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결론은 서로에게 믿음이 깨어진 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 대답이 마음이 변했을 때라고 생각했으나, 그 때는 방부제를 충분히 쳐 둘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사랑의 유통기한이 2년뿐이라면 나와 함께 진행중인 사랑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참 우울할 것 같다. 아마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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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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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James Mercer Langston Hughes

 

Hold fast to dreams

For if dreams die

Life is a broken-winged bird

That cannot fly.

 

Hold fast to dreams

For when dreams go

Life is a barren field

Frozen with snow.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책은 고 장영희 교수의 1주기 유고집인데 부끄럽게도 나에게 그녀의 첫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책이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포근했고, 나를 감싸안아줄 것만 같은 색상들이 글보다 먼저 나를 맞이했다. 그녀의 책은 모두가 다 만족할만큼 하나같이 좋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난 어리석게도 한국 사람들의 냄비근성을 욕하며 '아마 이제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인물이라 난리법석인 것'이라고 여겼고,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왠지 한낱의 '인간극장'일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도서관 신간에 꽂혀있을 그 당시 읽으려고 손을 뻗지도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그냥 한번 훑어보기라도 할껄 - 하는 후회와 미련이 한껏 짙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p47) 누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냐라고 묻는다면, 난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닐까? 라고 말할 것같다. 아마 그 때가 수많은 선택의 갈래에서 필요없는 나뭇가지들을 쳐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도 당연스레 생각하고 있어서 항상 감사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세속적이고 감사할줄 모르는 몰지각한  나를 꾸짖듯이 그녀는 아니, 그녀가 인용한 톨스토이는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항상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어야하고 실천해야하는 말이거늘 나는 너무 소중한 말들을 잊고 있었다. 그런 나를 위해 그녀는 이 책에서 수없이 보고 보고 또 보았던 그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해서 나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다.

 

"Yes, I can" , "I think I can." (p116) 나는 항상 불가능한 일들에도 Yes, I can의 의미인 막연히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만을 추구하기보다는 I think I can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전환하는 쪽을 일러준다. 어려워도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구별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하고, 안되는 일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포기가 미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문단의 글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나는 항상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안되는 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고 안되는 것을 느지막이 깨닫고 나서야 그걸 이미 접고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더라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텐데!!! 라며 뒤늦게 후회한 일들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투자를 하고 또 후회를 하는 나를 보며 문득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 . 하지만 손만 닿으면 이뤄낼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에 후회를 하면서도 계속 똑같이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경지까지 가려면 난 한참 멀었나보다 - 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졌다.

 

"죽음은 삶을 리모델링한다." (p123)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삶을 리모델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만큼 깨닫는 것이 힘들기에 '뭐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라는 말로 애써 자신을 위로하려든다. 차라리 신축 건물처럼 처음부터 여기엔 무엇을 짓겠다 라는 무언가가 정해지는 것처럼 사람도 태어났을 때 나는 무엇이 하고싶다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리모델링할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계기가 없는 한 그것은 힘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금은 조금 아파도, 남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 지금 네가 느끼는 배고픔, 어리석음이야말로 결국 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의미있게 만들 힘이 된다는 것, 네게 꼭 말해주고 싶단다. 젊은 너는 네 삶의 배부름을 위하여, 해박함을 위하여 행군할 수 있는 시간과 아름다운 용기가 있기에. (p61-62) 특히 요즘 일에서나 공부에서나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나가지 못하고 이러다가 패배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찾아간 끝도 보이지 않고 오아시스조차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큰 힘이 되준 말이었다. 지금의 추위과 굶주림이 나중에는 나를 덮어주는 담요가 될 것이고 식()이 될 것임을 알려주며 꼬옥 안아주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만약 지금 항해하는 배의 항해사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이라는 답을 찾아냈다. 답은, 지극히 거침없고 무자비하지만 그 사람을 바다에 던져서라도 내가 항해사가 되어야한다는 것.

 

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에게 몰라볼 정도의 엄청 커다란 변화를 준 것은 아니지만, 요근래 밤새 거센 파도를 일으키던 내 마음을 정리하기엔 적격인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의 재미를 알 수 있는거지. 극한 상황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처럼.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녀의 전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어 요동치는 내 마음까지도 잔잔하게 어르는 그녀의 문체를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데 이제 그녀의 글을 볼 수 없다니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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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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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제목부터 픽 - 하고 웃음을 끌어내기에 충분한데, 표지 또한 너무나도 익살스럽게 그려놓아서 더욱 끌리는 책이었다. 특히 요즘에는 봄을 타는지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져서 가끔은 내 기분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 모를 때가 참 많다. 이럴 수록 유쾌발랄한 책을 읽어서 퍽퍽한 마음에 윤활제를 발라 생기돌게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책들은 내팽개쳐두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고 제일 먼저 집어들었다.

 

 

 

물질주의는 경멸하고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지적이고 자존심 센 젊은 여작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내달라는 요구로 리더 킹싸이즈 햄버거사의 회장인 토볼드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토볼드와 함께 생활하면서 취재라기보다는 그저 그의 지시들을 메모하는 것들이 취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녀는 속으로는 멍청하고 오만방자하며 천박하고 무자비하기까지 한 토볼드를 아주 신랄하게 욕하면서도 그녀 자신이 향락주의에 매료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만다. 예를 들면 토볼드가 연설하는 말을 들으며 (치사한 새끼,라고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외쳤다.) (p154) 라던가 나는 화를 꾹 참느라 부글부글 끓었다. 반박하고 싶었다. 이 불쌍한 바보 멍청아,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을 뿐 끽 소리도 내지 못했다. (p155) 였지만, 한 페이지, 한 장을 더 읽다보면 그녀는 분노해서 펜을 집어던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책 장을 더욱 거세게 넘겼으나, 그녀의 분노는 오래가지 못하고  토볼드 앞에서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심술궂어요"라고 나는 짐짓 애교를 떨면서 말했고, 내 음성은 가식적인 소리를 냈다. (p162) 라고 말하며 그녀의 처지를 부각시키고, 이미 그녀가 토볼드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향락주의에 매료되어서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으로 독자가 생각하게 만들기 또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는 반년째 최상류사회의 매혹적인 울타리 속에 푹 잠겨 있다보니, 내가 거기서 발견한 수없이 많은 지복이 단지 일정 시간만 허용된 것임을 알수록 더욱 탐나 보였다. (p178) 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비웃으며 묻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 너희들은 그 향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성 싶냐며. 정말 그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보란 듯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나도 마찬가지로 그녀와 같은 생활을 했을 것만 같은데.. 그보다 토볼드에게 연민을 느꼈던 건, 누군가 그를 밟고 일어설까봐, 돈만 안다고 경멸할까봐 하는 걱정들때문에 다들 자는 밤에도 잠을 도통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점점 변해가는 토볼드를 관찰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터다.

 

 

 

사실 이 책을 다 끝내고 줄거리를 인식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목줄에 목이 쓸려 엉망이 되었고,(p6) 이것이 책을 시작하는 첫 줄인데, 화자는 자기가 '목줄 매인 개'마냥 표현해내었다. 이 책 처음부터 심상치않다며 읽어내려가는데 이게 왠걸.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런건지 몇 장이 채 넘어가기도 전에 지루해졌다. 게다가 괄호가 왜 이렇게도 많은지 겨우 한 문장을 읽는데도 맥이 툭툭 끊김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도대체 이 문장이 어디에서 끊어지는건지 모를만큼 구어와 문어가 수도 없이 중첩되어서 문장이 벌써 끊어졌는데 내가 그것도 모르고 그저 쭉쭉 읽기만 한건지 심지어는 내가 책을 잘못 읽고 있는건지 의아했다. 그렇기에 더욱이 집중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읽기만 하는 독자인 나도 이렇게까지 힘이 드는데 번역가는 오죽했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힘을 들이면서까지 읽어야 하나 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리디 쌀베르라는 작가의 스타일이 원래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문장들이 많이 낯설어서 힘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왠지 엄청나게 대단한 책을 한 권 읽은 듯한 기분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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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괜찮니 - 사랑 그 뒤를 걷는 자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
최예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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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에 아파했고, 힘들었을 때 의지했던 책이 있었는데, 아직도 내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있는 '이미나- 그 남자 그 여자'였었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원래 '이소라의 FM 음악도시'라는 라디오에서 코너로 자리잡아서 몇 번 듣다가 즐겨 듣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사랑을 하던 두 사람의 각각 다른 혹은 같은 내면을 써내려갔고, 이별 편에서는 보고 듣는 독자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라디오를 듣던 시절 여리고 풍부한 감성을 지녔고 사랑에 대한 환상도 많았던 고등학생이었으니 두말 할 것 없었다. 그리고 책으로 출간되어 사고 읽진 않았었는데, 그 때의 연인과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읽기 시작했었다. 그 때는 그 모든 사연들이 꼭 그 때의 내 상황과 참 많이 닮아있어서 그 책을 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그와 비슷한 '사랑아, 괜찮니'라는 책을 선물받아 부담없이 슥슥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읽다가 울컥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난 분명 그 시절을 다 씩씩하게 겪어내고 지금 이렇게 행복해하고 있는데, 불행이라는 것이 내 뒤에서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종잇장 뒤집듯 너무 쉽게 변했기에 지금 내 마음도 그 사람 마음도 당장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변할 것만 같아서 읽는 내내 가슴이 참  아파왔다.

 

 

책의 거의 첫 부분인 표현하라고. 표현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는 건 기적을 바라는 거라고. (p23) 이 문장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책을 덮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안좋은 일이 있으면 얼굴에 다 드러나지만, 멀리 있는 그 사람과 통화를 한다고 해서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항상 투덜대고 징징대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만을 바랬었다. 그러다가 알아주지 않으면 신경질과 짜증을 있는대로 내고, 그 사람이 지칠 걸 알면서도 참 많이 못된 짓도 많이 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많이 이기적이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 듯 싶다.

 

 

어느 연인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권태의 정의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라고 한다. 물건에 대한 권태는 내팽개치고 두면 언젠가 찾아지거나 잊혀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사람에 대한 권태는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마주서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할지 모르겠다. 난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딱히 권태라고 할 만한 것들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때에 '권태기'라고 느낄 수 있는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는 사랑이고 오늘은 어떻게 이별이 될 수 있냐는 어느 노랫가사말처럼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와 이별할 때 견디지못할 정도로 싫어서 헤어진 적 보다는 구속, 집착, 부담감 등과 더불어 여러 외부 요인이 작용했었기에 헤어진게 대다수였으니까. 내가 혹은 그가 혹은 누군가가 권태를 느끼고 있다면 작가의 말을 인용해야겠다. 사랑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고. 권태기는 새로운 빛깔의 사랑으로 거듭나기 전의 과도기일 뿐이라고. (p175)

 

 

그리고 몇 페이지를 더 넘기다가도 멈칫하게 되는데 사랑은 적당한 온도와 속도를 유지해야한다. (p180) 라는 문장이 붙은 제목이었다. 내가 이걸 감성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시간인 자기 전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 마음이 찌릿찌릿하게 와닿았다. 그에게 우리 사랑의 온도는 몇 。C이고 속도는 몇 km인지 우리가 너무 느리게 혹은 너무 빠르지 않게 안전운행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고 일어나니 적당하게 잘 흘러가고 있으니까 걱정말라는 문자가 와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불안하다. 이 행복이 이 웃음들이 나중엔 추억으로 얼룩지게 될까봐. 그러면 작가는 이렇게 답해줄 것만 같다. 지금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라고. 돌아볼 때는 이미 늦었다고. 그래. 까짓거. 해보지 뭐. 하지만 분명 내일이 오면 또 징징거리고 있을터다.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내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일러주는 책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 감정을 콕콕 찌르고 짓무른 상처들에 연고를 발라주고 메마른 감성에 물을 주기도 하고 오래된 습관때문에 움직이기를 힘겨워해서 미소조차 짓지 못하는 피부에 윤활제를 발라주고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 심장들에 펌핑을 달아준다. 그 펌핑덕분에 오늘도 내 심장은 팔딱팔딱 잘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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