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왕자에서 사막 여우가 말했던 것처럼 <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가까워 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알게 되겠지! > 누구나 연인이 아니더라도 보고싶어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사랑하는 연인 사이는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에 나오는 안토니아와 루카스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한 연애 중 10개월 째 동거로 인해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있어서 그런 사소한 설레임조차 느낄 수 없는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이다. 그렇기에 연애초기의 루카스의 '너는 내가 만난 최고의 여자야. 여기서 브라질까지 왕복하는 거리만큼 널 사랑해.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야…….' 라는 가슴 설레게 하는 문자가 '올 때 물 좀 사올 수 있어?' 라는 딱딱한 목적성 문자로 변질되기까지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루카스의 호의적인 피트니스 팰리스 이용권 선물은 '살 좀 빼'라는 암묵적 지시로 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용권의 안내문을 안토니아가 변질시킨 문장(본 이용권을 가져오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구명 튜브를 끼고 있는 것 같은 당신의 배와 출렁거리는 허벅지 살을 흔들어댈 수 있습니다-p46)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더랬다. 게다가 친한 친구 카타는 책에서 봤다며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2년'이 지나면 남자는 현재의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중점에 두고 결정한다고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루카스의 전 여자친구인 자비네가 옆동네로 이사하면서 루카스는 그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다녀온다고 한다. 녀는 루카스에게 멋진 여자로 비치게 하기 위해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상상을 하며 혼자 끙끙 앓게 된다. 그러다 루카스는 자비네와 함께 그린피스(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하게 된다. 그 둘은 그러면서 함께 있을 시간이 더욱 더 많아지고 급기야 안토니아는 '남자친구 사수하기'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 남자친구에게도 전 여자친구가 등장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안토니아처럼 남자친구를 사수하려고 고군분투를 할까, 혹은 전 여자친구에게 보내줄까. 둘 중 하나의 선택의 기로에 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건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그의 행동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루카스는 안토니아가 그런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는 행동들을 서슴지않고 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안토니아의 입장에 서서 루카스를 죽어라 욕하며 한편으로는 안토니아가 그에게 바란 것은 어떤 비싸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라는 것을 알았을 땐 역시 남자들은 말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게다가 나도 누군가와 감정을 주고 받으면서 생각했던 말들 중 하나인 내가 좋아하는 멜로 드라마에서는 모두 껴안고 해피엔드인데, 현실은 그게 아닐까봐 두렵다.(p325) 라는 말이었다. 내가 항상 봐왔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인데, 나만 그렇지 못하고 엇나갈까봐 항상 불안했었고, 그 불안은 지금도 이어져서 가끔은 못된 상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항상 남자의 몫이 아닐까? 나 역시 여자이기에 루카스보다는 안토니아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남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은 안토니아의 행동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2년이 지나면 사람에게서 사랑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는군. 호감이 생길 때는 도파민, 사랑에 빠졌을 때는 페닐에틸아민, 그러다가 그 사람을 껴안고 싶어지고 같이 자고 싶어지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마침내 엔돌핀이 분비가 되면서 서로를 너무 소중히 여겨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거야. 하지만 그 모든게 2년 정도가 지나면 항체가 생겨서 바싹바싹 말라버린다고. 그럼 도파민이든 엔돌핀이든 모조리 끝장이고 아무 것도 없이 싫증난 남자와 여자만이 있을뿐이지." - < 내 이름은 김삼순 中 >카타의 '2년 호르몬 이론'을 읽으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정말 사랑에도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결론은 서로에게 믿음이 깨어진 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 대답이 마음이 변했을 때라고 생각했으나, 그 때는 방부제를 충분히 쳐 둘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사랑의 유통기한이 2년뿐이라면 나와 함께 진행중인 사랑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참 우울할 것 같다. 아마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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