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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제목부터 픽 - 하고 웃음을 끌어내기에 충분한데, 표지 또한 너무나도 익살스럽게 그려놓아서 더욱 끌리는 책이었다. 특히 요즘에는 봄을 타는지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져서 가끔은 내 기분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 모를 때가 참 많다. 이럴 수록 유쾌발랄한 책을 읽어서 퍽퍽한 마음에 윤활제를 발라 생기돌게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책들은 내팽개쳐두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고 제일 먼저 집어들었다.
물질주의는 경멸하고 예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지적이고 자존심 센 젊은 여작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내달라는 요구로 리더 킹싸이즈 햄버거사의 회장인 토볼드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토볼드와 함께 생활하면서 취재라기보다는 그저 그의 지시들을 메모하는 것들이 취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녀는 속으로는 멍청하고 오만방자하며 천박하고 무자비하기까지 한 토볼드를 아주 신랄하게 욕하면서도 그녀 자신이 향락주의에 매료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만다. 예를 들면 토볼드가 연설하는 말을 들으며 (치사한 새끼,라고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외쳤다.) (p154) 라던가 나는 화를 꾹 참느라 부글부글 끓었다. 반박하고 싶었다. 이 불쌍한 바보 멍청아,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을 뿐 끽 소리도 내지 못했다. (p155) 였지만, 한 페이지, 한 장을 더 읽다보면 그녀는 분노해서 펜을 집어던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책 장을 더욱 거세게 넘겼으나, 그녀의 분노는 오래가지 못하고 토볼드 앞에서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심술궂어요"라고 나는 짐짓 애교를 떨면서 말했고, 내 음성은 가식적인 소리를 냈다. (p162) 라고 말하며 그녀의 처지를 부각시키고, 이미 그녀가 토볼드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향락주의에 매료되어서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으로 독자가 생각하게 만들기 또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는 반년째 최상류사회의 매혹적인 울타리 속에 푹 잠겨 있다보니, 내가 거기서 발견한 수없이 많은 지복이 단지 일정 시간만 허용된 것임을 알수록 더욱 탐나 보였다. (p178) 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비웃으며 묻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 너희들은 그 향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성 싶냐며. 정말 그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보란 듯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나도 마찬가지로 그녀와 같은 생활을 했을 것만 같은데.. 그보다 토볼드에게 연민을 느꼈던 건, 누군가 그를 밟고 일어설까봐, 돈만 안다고 경멸할까봐 하는 걱정들때문에 다들 자는 밤에도 잠을 도통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점점 변해가는 토볼드를 관찰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터다.
사실 이 책을 다 끝내고 줄거리를 인식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목줄에 목이 쓸려 엉망이 되었고,(p6) 이것이 책을 시작하는 첫 줄인데, 화자는 자기가 '목줄 매인 개'마냥 표현해내었다. 이 책 처음부터 심상치않다며 읽어내려가는데 이게 왠걸.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런건지 몇 장이 채 넘어가기도 전에 지루해졌다. 게다가 괄호가 왜 이렇게도 많은지 겨우 한 문장을 읽는데도 맥이 툭툭 끊김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도대체 이 문장이 어디에서 끊어지는건지 모를만큼 구어와 문어가 수도 없이 중첩되어서 문장이 벌써 끊어졌는데 내가 그것도 모르고 그저 쭉쭉 읽기만 한건지 심지어는 내가 책을 잘못 읽고 있는건지 의아했다. 그렇기에 더욱이 집중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읽기만 하는 독자인 나도 이렇게까지 힘이 드는데 번역가는 오죽했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힘을 들이면서까지 읽어야 하나 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리디 쌀베르라는 작가의 스타일이 원래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문장들이 많이 낯설어서 힘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왠지 엄청나게 대단한 책을 한 권 읽은 듯한 기분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