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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Dream
James Mercer Langston Hughes
Hold fast to dreams
For if dreams die
Life is a broken-winged bird
That cannot fly.
Hold fast to dreams
For when dreams go
Life is a barren field
Frozen with snow.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책은 고 장영희 교수의 1주기 유고집인데 부끄럽게도 나에게 그녀의 첫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책이 참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포근했고, 나를 감싸안아줄 것만 같은 색상들이 글보다 먼저 나를 맞이했다. 그녀의 책은 모두가 다 만족할만큼 하나같이 좋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난 어리석게도 한국 사람들의 냄비근성을 욕하며 '아마 이제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인물이라 난리법석인 것'이라고 여겼고,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왠지 한낱의 '인간극장'일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도서관 신간에 꽂혀있을 그 당시 읽으려고 손을 뻗지도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그냥 한번 훑어보기라도 할껄 - 하는 후회와 미련이 한껏 짙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다." (p47) 누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냐라고 묻는다면, 난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닐까? 라고 말할 것같다. 아마 그 때가 수많은 선택의 갈래에서 필요없는 나뭇가지들을 쳐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도 당연스레 생각하고 있어서 항상 감사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세속적이고 감사할줄 모르는 몰지각한 나를 꾸짖듯이 그녀는 아니, 그녀가 인용한 톨스토이는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항상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어야하고 실천해야하는 말이거늘 나는 너무 소중한 말들을 잊고 있었다. 그런 나를 위해 그녀는 이 책에서 수없이 보고 보고 또 보았던 그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해서 나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다.
"Yes, I can" , "I think I can." (p116) 나는 항상 불가능한 일들에도 Yes, I can의 의미인 막연히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만을 추구하기보다는 I think I can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전환하는 쪽을 일러준다. 어려워도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구별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하고, 안되는 일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포기가 미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문단의 글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나는 항상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안되는 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고 안되는 것을 느지막이 깨닫고 나서야 그걸 이미 접고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했더라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텐데!!! 라며 뒤늦게 후회한 일들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투자를 하고 또 후회를 하는 나를 보며 문득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 . 하지만 손만 닿으면 이뤄낼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에 후회를 하면서도 계속 똑같이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경지까지 가려면 난 한참 멀었나보다 - 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졌다.
"죽음은 삶을 리모델링한다." (p123)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삶을 리모델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만큼 깨닫는 것이 힘들기에 '뭐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라는 말로 애써 자신을 위로하려든다. 차라리 신축 건물처럼 처음부터 여기엔 무엇을 짓겠다 라는 무언가가 정해지는 것처럼 사람도 태어났을 때 나는 무엇이 하고싶다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리모델링할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계기가 없는 한 그것은 힘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금은 조금 아파도, 남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아도, 지금 네가 느끼는 배고픔, 어리석음이야말로 결국 네 삶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의미있게 만들 힘이 된다는 것, 네게 꼭 말해주고 싶단다. 젊은 너는 네 삶의 배부름을 위하여, 해박함을 위하여 행군할 수 있는 시간과 아름다운 용기가 있기에. (p61-62) 특히 요즘 일에서나 공부에서나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나가지 못하고 이러다가 패배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찾아간 끝도 보이지 않고 오아시스조차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큰 힘이 되준 말이었다. 지금의 추위과 굶주림이 나중에는 나를 덮어주는 담요가 될 것이고 식(食)이 될 것임을 알려주며 꼬옥 안아주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만약 지금 항해하는 배의 항해사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이라는 답을 찾아냈다. 답은, 지극히 거침없고 무자비하지만 그 사람을 바다에 던져서라도 내가 항해사가 되어야한다는 것.
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에게 몰라볼 정도의 엄청 커다란 변화를 준 것은 아니지만, 요근래 밤새 거센 파도를 일으키던 내 마음을 정리하기엔 적격인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의 재미를 알 수 있는거지. 극한 상황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처럼.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녀의 전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어 요동치는 내 마음까지도 잔잔하게 어르는 그녀의 문체를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데 이제 그녀의 글을 볼 수 없다니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