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전경린 공명 산문집
전경린 글, 이보름 그림 / 늘푸른소나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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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지속되는 싱숭생숭함의 근원지를 알지 못해 방황했고, 혹은 알면서도 회피해버림으로 인해 급기야 황량한 바람이 공허한 폐 속에 그득하게 들어찼다. 타인과 대화를 하려 호흡을 내쉬면, 서리는 냉기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결국은 나조차도 지친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치게 만들기 위해 다가오는 어떤 것도 방어할 수가 없는 무방비 상태. 면연력이 필요하지, 싶은데 우선 폐 속에 들어찬 찬 바람을 좀 몰아내자, 싶었고 사실은 그게 급선무였을 게다. 내가 웃을 수 있는 것. 주변 이들. 그들을 만나고 마음껏 웃고 떠들며 즐겼다고 생각했고, 또 사실이 그랬는데 단 한 순간도 그 순간들이 지겹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미친듯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울음으로 번지게 되고. 이게, 어디서 오는거지, 도대체. 어떤 것의 결핍이 이런 괴기한 현상을 낳은 거지. 그러던 중 전경린의 나비를 만났다. 나비. 팔랑팔랑거리는. - 이것이 내 마음에서 팔랑팔랑거리며 스며들어오길 바라면서.

 

 

 

생이 변하는 순간과 떠나려는 순간, 그리고 영원히 머무르는 순간을 알 수 있다. 스물 다섯 살에는 그 순간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나는, 2011년인 올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뜨는 즉시 스물 다섯 살이 된다. 스물 다섯. 상상도 못 해본 나이인데,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왔네. 이를 어쩌나. 스무 살, 학교에 갓 들어간 내가 스물 다섯 살 복학생과 대면한 후 친밀감이 형성되었을 때, “오빠 참 늙었네요. 난 그 나이가 되려면 다섯 손가락만큼 더 살아야하는데..”라 말하며 깔깔댔었다. 스무 살에게 스물 다섯은 얼마나 높고, 또 얼마나 아득한가. 그런데 벌써 스물 의 나,가 되었고, 곧 스물 다섯의 나,가 될 예정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온 몸이 그녀의 문장에 동요한다. 아니, 동요된다. “난 아직 어려. 아직은 좀 더 ~해도 돼.”라는 내 생각과 충돌을 일으킨 지금. 내가 무얼 생각할 수 있고, 무얼 생각해야 할까. 외로움에 사무치던 그 때에, 친구를 기다리며 이 문장을 읽고 시선이 친구와 함께 하는 그 순간에도 내내 그 문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둔 채로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말하는 것이다. “나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 회한섞인 내 말에 “넌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어.”라 답하던 친구. 하마터면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주책맞게 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 ‘나 정말 열심히 살고있는걸까. 혹, 열심히 사는 척이 아니고...

 

 

 

나는 그의 냄새를 사랑했다. 그의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는 세상을 향해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내 인생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그의 전 생애동안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나 또한 단 하나의 남자를 사랑하며 평생 동안 하나의 생을 온통 함께 사는 것. 우리의 냄새를 다른 냄새와 뒤섞지 않는 것. 나의 꿈은 그것뿐이며 그것은 흡사 하나의 이념과 같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랑’에 실패한 이 후, 다시는 그것에 나자빠지지 말자, 다짐했었다. 지금에서야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그때 당시는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지만, 온 몸 구석구석이 아파서 앓아누웠을 정도로 사랑에게서 받은 상처는, 그리고 내 사랑에 대한 실망은 불쾌할 만큼 지독한 몸살을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극복하고, (사실, 그걸 극복했다고 말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난 여전히 또 다른 누군가와 손을 맞잡았다. - 두 해 전 지금의 그가, 기차에서 내려서 음료수를 사는데, 직원에게서 나와 똑같은 냄새를 맡았다고 얘길하길래, ‘이 사람이 무슨 얘길하고 싶어서 이러는가.’ 싶어, 무슨 냄새?라고 되물었고, 그는, ‘당신이 쓰는 샴푸냄새’라 답했다. ‘이 남자, 내가 쓰는 샴푸 냄새를 기억하는구나.’싶어 울컥했던 적도 있었다. 이렇듯, 어떤 특정한 향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향도 있다. 그건, 사람의 냄새. 사람에게서는 각자의 향기가 있는 탓인지, 그는 나와 헤어지고 ‘내 손에서 당신 냄새가 나.’라고 곧잘 말하고 했는데, 그때 내 손에서도 그의 냄새가 콧 속 깊은 곳을 간지럽히고 있더란 것. 이 문장을 서너 번 눈으로 훑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읊어주고, 그때의 에피소드 아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예전엔 그랬었는데..’라며 깔깔거렸다. - 사실 그의 냄새는 비오는 날이면 더 짙어지는데, 하나의 우산을 함께 쓰고 걸으면 그와 밀착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만남 중 비가 오는 날이면, 짜증날 법도 하건만, 당신 냄새가 짙어져서 좋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풉.

 

 

 

전경린, 이 작가를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만나 호기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내 정신과 육체, 어느 한쪽 먼저랄 것도 없이 치우침없이 지쳐있었던 탓에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지, 싶다. 책이라는 게,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웃고 싶을 때 즐겁고 유쾌한 책을, 울고 싶을 땐 한 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슬픈 책을, 위로받고 싶을 땐 마주잡은 손에서 온기가 폴폴 피어나게 하는 책을 만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전경린의 나비,는 한번쯤, 사랑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꽤 공감표를 던지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경린이 이 책을 쓴 시기가, 자신이 사랑에 실패한 때에 썼던 책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릿했는데, 어쩌면 이 책, 사랑에 다친 사람들을 들춰업고 치료하여 다시 사랑 앞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 위험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사랑은 거절할 수 없는 미혹이며, 독이 퍼지는 듯한 도취이며, 백다섯 조각의 처형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이란,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이다. 더없이 신성하고, 더없이 누추한 비상이면서 동시에 추락인 이상한 벼랑이다. 아, 좋다. 밤새도록 끌어안고 몇 번이고 되뇌이고 싶을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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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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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1 - 스티그 라르손 : http://blog.naver.com/baereerah88/120131396470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권을 읽고 나서 인터넷 서점에 달려가 2권에 광클릭하며 결제까지 마친 나를 발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5분 안팎. 역시 1권을 읽고 난 뒤 바로 읽었어야 했는데, 그 중간에 텀이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물론, 2권을 소장하고 있었다면 단 몇 초도 고민않고 바로 들었을텐데! 시작은 1권을 읽고 나서 몇 일의 혹은 한달이라는 텀을 두고 2권을 읽을 때와 같이 지지부진했으나, 몇 장을 넘기자 언제 그랬냐는 듯 책장을 넘기는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 리스베트, 그녀가 수면에 떠오른 까닭이다. 1권 중간 즈음, 정확히 말하면 다그와 미아가 살해되기 바로 전 혹은 경찰이 그녀를 용의자로 의심하던 그 순간부터 종적을 감추어버렸던 리스베트. 그녀의 행방이 궁금했던 이 중 독자들도 있었지만, 책 속의 블롬크비스트가 더 그렇지 않았을까. 그는 리스베트가 자신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추측 아래, 폴더를 하나 만들어 그녀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역시 그녀는 어디선가 그의 메시지, 그것을 읽는다. 그녀가 등장했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진행될 거라 생각했던 수사였는데, 그녀는 그에게 여전히 ‘살라(zala)’라는 묘연한 단서만 띡,하니 남긴 채로 수사가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는 것을 지켜본다. 1권에서 잠깐 등장했던 살라(zala) .. 그의 본명은 ‘살라첸코’.  1권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악(惡) 또한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데... 도대체 그는 누구이고, 리스베트와는 어떤 관계인가. 또, 왜 그녀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으려 하는가.

 

 

 

이번 작품을 읽으며 이사카 코타로 작가의 「골든슬럼버」가 자연스레 연상되었음은 물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번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읽었던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두 권의 작품_ 조금 다르지만, 또 다르지 않은 점은 무엇인가 말이다. 증거가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인가? 내가 두 권의 작품을 같이 생각하며 읽은 까닭은 ‘공권력’이었다. ‘무자비하게 행사된 공권력으로 인해 짓밟힌 하나의 인권의 구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나는 아직 그것에 대한 대답을 두 권의 책,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결말까지 궁금하게 만들어 버리게까지 한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1권에서 리스베트의 과거를 묘사하느라 조금 길게 늘어진 것을 제외한다면, 전에 읽었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보다는 훨씬 더 박진감 넘치고,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음이 분명하다. -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1부에서도, 2부에서도 이 책에 미칠 것 같은 원인은 찾아내지 못했고, 남은 것은 3부뿐이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 그것은 아마, 이따금 뚝뚝 끊기기도 하지만 레일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는 점. 그것이 아닐까, 싶은 것때문에 3부 물론 기대는 되지만 그것을 읽고 나서도 이런 뜨뜻미지근한 느낌이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더 강렬해서, 읽기가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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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닝 만켈을 시작으로 북유럽 작가들에
빠지기 시작해..여기까지..

이 책은 영화를 먼저.
도서관 책이 늦게 들어온탓에..^^;
스토리라인은 어쩐지..익숙한데..
음울하고 채도낮은 북유럽의 독특한 분위기를 너무
잘 살려내서 그것이 읽는 맛을 좋게 하더라는..
 
카지노 로얄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이언 플레밍 지음, 홍성영 옮김 / 뿔(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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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에 관한 영화가 있었다는 것도, 원작으로 된 시리즈가 있다는 것도, 그것이 이번에 새로 개정되어 나왔다는 것도, 야릇한 여인이 한가득 채우고 있는 이 책을 읽기가 어쩐지 꺼려져 읽기 전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책, 아이니컬하다. 분명 원작이 있는데 영화가 더 떠버린 케이스다. 원작과 영화_ 물론,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원작을 더 선호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영화에서는 책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비치기에는 무리가 있을 뿐더러,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심리를 영화에서는 디테일하게 느끼지 못하는 게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게 글만큼 할까 싶은 것이다) 원작을 선호하는 이유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 유명한 「해리포터」도, 원작이 있었기에 영화가 있었고, 「반지의 제왕」도 원작이 있었기에 영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이, “원작도 있었어?” 하는 반응이었고, 심지어 “원작보다 영화가 더 낫다”는 사람들까지 있었으니.. (이 또한,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 시리즈물은 재미가 있든 없든 그것을 떠나서 “시리즈물은 1탄부터 봐야 재미있는데..”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이번에 읽으려는 챗이 첫 번째인 것을 알고 나서는 주춤하는 것을 단단히 붙잡아 매어놓고 책을 펼쳤다.

 

 

 

첩보기관 MI6으로부터 암호명 ‘007’을 부여받고 마다가스카에서 테러리스트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 제임스 본드. 그리고 그의 파트너 베스퍼 그린. - 국제 테러 조직의 자금줄인 르쉬르프. 히지만 그가 투자한 매춘 조직은 하룻밤 사이에 문을 닫았고, 조합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급히 성매매 업소를 ‘단시간 접객소’로 바꾸며 법의 테두리를 넘나드는 비밀스러운 만남을 알선했고, 지하 포르노 상영관 두어 곳도 운영했지만, 치명적인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그는, 카지노 로얄에서 초호화 포커 대회를 열고, 그 곳에서 테러 자금을 모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운 것을 007이 알아낸다. 상부는 그런 르쉬프르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곳에 본드가 투입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 본드는 패했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읽는 내내 뭔가가 부족하다,싶었다. 이야기에는 복선이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은 충분히 몇 가지의 추측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며, 결국 그것은 그들 중 하나와 일치했다. 맥이 빠졌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본드의 행동에 집중해서 읽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겠지만, 그의 파트너인 베스퍼와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느냐, 아니냐,의 궁금증이 샐쭉하게 삐져나와 있었던 까닭은 아닐까. 사실 ‘스파이’의 이야기에서 사랑을 빼놓으면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다. 지금은 종영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과 「아테나」도 러브라인이 있었기에 재미지게 볼 수 있었던 것이지 싶다. 큭큭. 그런데 어쩌나, 본드가 사랑에 데였는데. 다음 편에서는 그의 걸(일명 본드걸)들에게 시니컬한 태도로 대하는 건 아닐까. 원래 사람이란, 사랑에 한번 데이게 되면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힘들어하는 법이니까. - 그리고 「카지노 로얄」 이것은 아무래도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챙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무래도 내가 읽은 원작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칭찬했던 것들을 느끼기 힘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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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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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 오랜만이다. 작년(2010)즈음에 「최인호의 인연」으로 만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작가와 독자’라는 끈으로 나는 저자의 보이지 않는 그의 또 다른 ‘인연’이 되었다. (그가 수긍할런지는 모르겠지만. 큭큭.) 물론 그의 작품 「인연」은, 「최인호의 인연」으로 한정되어 있어 약간의 지루함이 동반되기도 했지만, 저자는 자신의 인연들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가 써내려가는 글에 무게를 실었고, (여기서 무게는 결코 책의 내용이 무겁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나는, 오롯하게 받아내는 동시에 회의감을 느끼며 ‘나는?’하고 되물음을 했었다. 그렇게 그의 인연들을 소개받는 도중에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나의 인연들을 하나 둘 떠올렸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 곁에 있는 그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고, 책을 덮고 나서는 오랜만에 몇몇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나에게 ‘에세이’는 언제나 ‘가벼움’이란 생각이 강했었는데, (물론, 이것 역시 무겁지 않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감성에세이가 아닌 경우에) 내 이야기를 펼쳐놓기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읽기 전에, 그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작품을, 잠시 들었고, 내가 그의 책에서 가장 인상깊다 생각했던 부분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플래그부터, 다시 읽는 것이다.  그 부분은 아내,에 대한 그의 조용하지만 넘쳐 흐르는 애정,에 대한 부분이었고 역시나, 다시 읽어도 그것은 내게 미소를 띠게 만든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의 이유.

 

 

 

K의 이야기. 왜 이름이 아닌 K가 되는가. 사실 난 이렇게 이름이 붙여있지 않은, 이를테면 이 작품과 같이 K라던지, 김씨라던지,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가 인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쨌든, 그의 이야기는 토요일 아침 일곱시에, 느닷없는 자명종 소리에 깨어버린 K로부터 시작된다. -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토요일인가. 그렇지. 어제는 아내와 전야제(前夜祭)를 벌였고, 그것은 휴일 전날 밤에만 가능한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자명종은 왜 울렸을까. 전날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왔어도 정신이 없거나 기억을 잃을 만큼 과음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내 잠옷. 어디 가고 난 이렇게 발가벗고 있지. 왜 스킨 브랜드가 V가 아니라 Y인거야. 저기에서 채소를 썰고 있는 여자는 분명 내 아내고, 나에게 와락 안기는 이 아이는 내 딸이 맞는데. 아얏, 저 개도 분명 내 개가 맞는데, 이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물어뜯다니. 낯익은데, 왜 낯설기만 하지. 왜. - K의 낯익은 혹은 낯선 타인들의 도시.

 

 

 


우리는 흔히, 어디서 본 사람인데, 어디서 맡은 향인데, 어디서 먹어본 음식인데, 어디서 들은 음악인데,와 같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여기서 ‘어디서 ~한’이라는 것은 ‘낯설지 않음’과 직결되고, 그것은 ‘낯익음’으로 점철되어 진다. 그런데, 저자의 이번 작품을 읽다보니 낯익다,는 단어 만큼 낯선 단어가 또 어디 있으랴, 싶다. 도대체 무엇이 낯익고 무엇이 낯선가. 말 그대로 해석한다면, K는 자신의 방이 낯익고, 아내가 낯익고, 자신의 딸아이가 낯익고, 키우는 강아지가 낯익다고 했다. 반대로, 그가 쓰던 스킨이 V사의 브랜드가 아니라 Y사, X사, D사의 브랜드가 낯설다고 했고. 그렇다면 K, 자신은 낯익은가, 낯선가. 그곳에 물음을 제기하려다가 책 전체에 물음표 기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 또한 건조한 바람을 폐로 들이마신 후, 건조하게 묻는다. 나는, 나인가. - (여담이지만) 요즘 들어 나는, 내면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사실 이런 것은 너무나도 사소해서 내면과의 만남이라고 칭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내 감각 기관 모두를 동원하여 공유한다. 가끔 답답할 때에는 걸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하곤 하는데, 며칠 전엔 생각이 너무 깊은 곳에 뿌리를 심은듯 박혀있어서 그것을 들여다보느라 걷고 있는 게 내가 아니라,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얹어놓은 것만 같다는 착각마저 일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건 아닌가,하는 괴상한 생각이 든다. - 하지만 K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에 그가 나동그라진 것. 때문에 그는 자신을 에워싸던 관계의 고리에서 약간 벗어나 철저하게 벗어나 자신을 관찰한다. 그리고, 합일점을 찾는다. 혹은 찾아진다. 혹은 찾아온다.

 

 

 



작품의 K에게 애처로움을 느낀 것이 비단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작가였기 때문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마음이 혹 K에서 비롯된 걸까. K가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 글쎄. 사실, 내가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이렇게 아릿하게 읽을 수 있었을까. 남성 작가 특유의 단 한 번의 흔들거림도 없었을 동공으로 썼을 법한 딱딱한 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릿함.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일종의 섬찍함, 같은 거랄까. 손톱과 발톱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손톱에 골무를 끼워서 썼을 이책에 대한 표현을 무척이나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섬찍함’으로 종결짓다니. 국어사전을 찾아본 후에, 이 단어가 이런 의미밖에 없던가. 하, 머리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는데. 내가 그것을 느끼는 것은 저자와 K를 동일시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서, 이니셜로 칭하기에 애정을 느낄 수 없다 하였는가, 아니었다. 멋대로 단정지은 내가 오만했다. 저자의 인물을 보는 시선은 나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무뚝뚝함이었지만, 그 속에 애정이 서려있다. 아니, 방울방울 서려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빗겨난 이야기지만) 자신의 정신과 육체가 함께일 때엔, 질타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정신과 육체가 따로인 상태에서 자신을 앞에 세워두고 관찰한다,라... 너 왜 그렇게 사냐, 정말 못났다,며 질타할 수 있을까. 아니, 그대로 두 팔을 뻗어 자신을 끌어안는 게다. 이번 작품에서 그걸 느꼈다. 어쩌면, ‘선생일지도 모르겠군요.’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따라서 K를 바라보는 독자라는 이름을 가진 내 시선 역시, 그윽하다. - 케이, 그의 이야기 끝은, 소멸일까,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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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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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현
」을 접했었다. 얄팍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약간 버겁게 읽었고, 또 그렇게 읽혔지만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또한 몇 페이지 건너 몇 페이지식으로 있었지만) 꽤 좋은 작품이었기에 다음에 소현세자에 대한 지식이 배부른 배를 둥둥 두들기는 것처럼 부풀어 오를 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며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번복하여 읽는 것을 잠시 미뤘었다. 여기서 꽤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 비단 누구나 한번쯤 의구심을 품어보았을 법한 사건의 역사물인 까닭은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만난 것은 ‘고독’이었다. 아비 인조의 고독과 자식 소현의 고독. 저자의 응어리졌을 펜촉을 따라 읽어내려가며 그들이 느꼈을 고독이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늠해보려다 그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겠구나, 싶더란 것. 그래서 그것은 내게 ‘고독’이라는 한 단어로만 각인되어 있다. 습한 곳에 묵혀둔 그 책을 지금에 와서야 들먹이는 까닭은, 그것에는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key point가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것을 자신만의 문체로 다듬었다. 역사하면 단번에 뇌리를 스치는 여성작가,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김별아가 있었으나, 그와는 또 다른 문체에 감탄했더랬다. 그래서, 그렇기에, 그 까닭에, 이번 작품을 읽기 전부터 애정이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과 진, 유진과 유진. 이름이 같은 사람끼리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하며 혼자 가늠해보다가 모르긴 몰라도 확률이라는 것에 덜미를 잡히진 않을까, 생각한다.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기꺼이 이름을 내어준다. 그래서 그들은 유진과 진이 된다. 둘은 함께 여행을 갔던 섬을 잊지 못하고, 쉬러 간다던 유진은 그대로 섬에 장착하고, 진은 그를 찾아간다. 진은 유진이 자신에게 반지를 주며 ”우리 같이 살까?”라고 말한 것을 두고 아내 행세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집에, 그의 침대에, 한 여자아이가 잠들어있다. 그의 서번트. 그리고 그가 서번트에게 남겨놓은 봉곳한 배. 진은 저 꽃같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고, 곧,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한다.

 

 

 


지금, 이렇게 살고 싶잖아요. 무슨 짓을 해서든, 움켜쥘 것이 여자의 손밖에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이 어둠과 물속을 벗어나고 싶은 거잖아요. 살고 싶은 거잖아요, 나…… 미치게, 미치게 살고 싶은 거잖아요……. 아, 어찌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 참 마음에 안 든다. 장르는 스릴러인지, 재난인지, 로맨스인지 도통 그 어떤 것에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진과 이야나, 그 누구에게도 내 부풀어 오른 감정을 이입할 수 없다. 하물며, 난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접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 것만 같아 저자의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는데, 「소현」을 읽었을 그때의 기억에 지진을 낳아, 그것이 흔들거리게 만들며, 결국 희미해버리게 만들어 버렸다. 저자의 문장들이 바람에 휘날리듯 허공을 유영했고, 나는 손을 뻗어 그것들을 잡았으나, 끝내 조합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장르를 오가는 장편 소설에 지쳐 조합하던 것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꿰맞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후 끄적거리는 내 서평에는 신빙성이 전혀 없다.

 

 

 

저자는 <>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사는>을 이야기하며, 결국은 <살아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까지 가미되었다면, 그 부분만은 약간, 아니 실은 아주 많이 이해할 수 없다. 책에서 상처를 치유함에 있어서 가장 첫번 째로 우선시 되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인물(혹은 대상)에 대한 나의 감정이입인데 책에서 어느 대상에게도 내 마음이 전달되지 못한 까닭이다. 혹여, 그들이 (사랑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가정한다면, 그저 사랑에 실패한 인물끼리 다독여 안아주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나, 싶다.) 사는 것은 어떤 것에 미치는 것과 직결되어 있어서, 그것은 생에 대한 오기를 야기시키지만 동시에 좌절도 동반하기도 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미칠 수 있습니까. (여기서 당신이 읽은 미치다의 의미는 ‘crazy’입니까, ‘reach’입니까.) - 진과 이야나는, 미쳐야 할, 그래도 됐을 타이밍에 미치지 않았지만, (혹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은 미치려고 한다. 그들의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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