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직업에서 곤란을 겪지 않는 법 - 20대에 만나야 할 100가지 말
센다 다쿠야 지음, 최선임 옮김 / 스카이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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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한 때와 일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비례하던 때였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싫은거라면, 그동안의 내공을 발휘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일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가지고 있던 모든 의욕이 추락하더란 말이다. 또, 일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워서, 혼자 끙끙 앓으며 때로는 막막한 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퇴근하고 집에 걸어가는 한 시간 이십 분동안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다면,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어떤 것이 있고, 나는 그 문항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들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아직도 그 문제는 -ing로 현재진행형지만, 내가 이 일을 배움으로써 ‘득’이 되면 됐지, ‘실’은 될리 없다는 생각과 나의 꿈인 그것은 이 일과 절대 별개일 수 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해야한다, 혹은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굳어가는 상태다. 평소 자기계발은 진부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만[왜 매번 내가 생각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의문이지만] 늘어놓고 있어, 그때뿐이라며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필요하니 선뜻 손이 내밀어지더란 것.

 

 

 

 

즐거운 일은 없어도, 즐거운 듯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있다. 처음부터 일이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고, 처음 2-3주 동안은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는 날들이 설레였다. 하나를 배우면 둘을 배우고 싶어지는 그러한 일이었는데, 그것도 잠시였더란 것. 그것은 아마 내 마음가짐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순간부터 이해할 수 없다,가 아니라 이해하기 싫다,로 변모되었던 게다. 즐거운 일이 왜 없겠는가. 분명 자기에게 맞는 일은 즐거울텐데. 물론, 그것이 오래 가든, 오래가지 못하든 그것은 개인의 차이에 달렸겠지만. 나는 으레 일을 할 때, 웃으면서 하는 일보다는 인상을 찌푸려진 채로 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가끔 책상 앞에 놓인 거울을 슬쩍 들여다 볼 때마다 놀랄 때가 많은데, 그건 그 때문이다. 일이 하기 싫어서 혹은 너무 많아서 인상을 찌푸릴 때도 있겠지만, 그게 그러다보니 습관이 된 모양이다. 어차피 내가 맡아서 해야하는 일이라면, 웃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최면을 걸어본다.

 

 

 

 

기한도, 합격점도 모두 스스로 정한다. 사회인의 공부 기한과 합격점은 모두 스스로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얼핏 보면 굉장히 편한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들려고 마음먹으면, 기한도 합격점도 굉장히 엄하게 잡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정한 기한이나 합격점이 학교에서 주어진 그것보다 느슨하고 질질 끌게 되면, 별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은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해진다. <check point. 다른 사람이 정해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기가 좋을 때 시작해 자기가 좋을 때 끝내면 된다.> 바로 이번 주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했다가 실패한 공부는 두 번은 안 하게 되는데, [이건 정말 나쁜 버릇이자 못된 습관이다.] 배우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고, 이 공부를 해야 내가 지금 일을 하는 것도, 또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100% 동감하는 까닭에 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 부분을 읽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학교를 다닐 때 누가 방망이를 들고 쫓아오는 것을 피하듯 헐떡거리며 정해진 분량을 공부할 때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다, 생각하니 내가 정해놓은 것까지는 꼭 하고 자야지, 하는 마음에 다음 날 신체적인 무리[가령, 피곤이라던가 멍한 상태]가 올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것. 그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의미를 부여해 즐겁다,고 생각한다. 뭐, 그거면 된 것 아니겠는가.

 

 

 

 

결단에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역시 그만둘까’라는 마음이 든다. 인간은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최종적으로 현상 유지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배우려고 했던 건축 스케치는 언제쯤 배울것인지 아직도 결단이 나질 않았다. 그때는 하려고 마음먹고 찾아보다가 시간 30분이 맞지 않아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직 고민 중이다. [지금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왜 선뜻 하질 못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스스로 결단하는 것 외에는 결단이 아니다. 누구와 상담해도 좋다. 그 대상이 몇 명이어도 좋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최종적으로 결단을 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스스로 결단한 것 이외에는 일체 결단이라 부를 수 없다. 결단에 실패해 인생을 망쳤다고 하자. 그것은 100% 자기 책임이며,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단은 즐겁다. 인생을 망친 것처럼 보여도, 결단하지 않는 인생 같은 건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가장 애먹은 사람 중 하나가 옆에 있는 남자친구다. 어쩌면, 내가 이것 혹은 저것 이라고 똑부러지게 결정하지 않는 한, 맨날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나에게 지겹다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오히려 다독거리며 ‘난 이렇게 생각해. 그래서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선택은 네 몫이야.’라고 말을 하며, 나로 하여금 현재 상황을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결단을 내리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결단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반발하게 만들 정도로 나와 견해가 다른 점도 있었다. 문구들은 어떤 자기계발에서도 볼 수 있는 말들의 총집합이어서 참 상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런 책을 어느 시기에,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읽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내가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열다섯 안팎이었던 것 같지만.] ㅡ 며칠 전, “실장님, 전 이 일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내가 이야기했고, “이쪽 계통에 들어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에요.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고, 제약도 많으니까. 나도 입사하고 이 일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몇 년 동안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이 일을 5년이 넘도록 하고 있네요.”라고, 실장님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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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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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선물을 받아 ‘곧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가 2년 동안 책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이번에 출간된 그의 작품인 「행복의 추구」를 펼치려고 할 때,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아마 먼지가 한가득 쌓였겠지, 라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서 아주 잠깐, 「빅 픽처」를 먼저 만나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행복의 추구」의 고전틱한 표지에 넋을 잃은 것마냥 쳐다보며, 이번 책이 좋으면 너도 곧 꺼내서 읽으마, 했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롭다. 무척이나 개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책에 관심을 처음 두던 계기를 만들어준 [구성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욕을 많이 먹고 있는, 하지만 영원히 나에게는 고마운 작가로 기억될] ‘기욤 뮈소’와 비슷한 문체였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모든 건 너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 하더라도 넌 그 잘못된 판단때문에 벌어진 일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거야. 늘 아픔이 따라 다니겠지. 그런 점에서 인생은 불합리해. 작고 커다란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지. 사람들은 그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거야. 생에서 슬픔은 필수적이야. 슬픔이 우리에게 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지. 신이 술을 인간에게 부여해준 건 생의 필연적인 비극성 때문일지도 몰라.” (1권 55p)

 

 

 

 

케이트 말론ː은 엄마의 장례를 다 마치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아파트의, 엄마의 침대에서, 엄마의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가 전화벨이 울림을 느끼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ㅡ“미안해요. 잘못 걸었어요.” 그녀는,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새러 스마이스라는 여성에게 조문 편지와 만나자는 전화를 받지만, 그녀는 한동안 세상일에 거리를 두고 아들과 단출한 시간을 갖고 싶다,며 조문 편지에 감사드린다고 답장을 써보낸다. 그러자 그녀 앞으로 또 다시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녀가 살아온 날들의 축소판인 사진들이 있는 사진첩과 편지 한 장. ‘내게 전화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게 그녀는 새러 스마이스의 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는 군복 차림의 아버지 사진, 가난아기인 그녀를 안은 아버지 사진, 대학 시절 그녀의 사진, 첫돌이 막 지난 아들 에단을 안고 있는 그녀의 사진, 그리고 젊은 남녀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젊은 남녀는 새러 스마이스와 그녀의 아버지 잭 말론. 이윽고 새러 스마이스가 말한다. “잭 말론, 즉 케이트의 아버지는 내가 평생 사랑한 남자였어요.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의 보수적인 중산층 부모님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새러 스마이스ː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까닭에 대학 졸업 후에 뉴욕에 정착해 <라이프> 지에서 일을 하며, 저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오빠 에릭이 주최한 추수감사절 전야제에서 그를 만났다. 잭 말론. 군가가 내 손에 맥주병을 쥐어주었다. 바로 그때 그를 보았다. 짙은 카키색 군복을 입은 남자. 그는 파티 장을 휘둘러보다가 잠깐 동안 내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딱 일초쯤, 아니면 이초? 그가 미소를 지었고, 나도 미소를 보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잠시 힐끗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하룻밤을 보내지만, 종군기자인 그는 9개월 뒤에 꼭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헌데, 무슨 이유인지, 매일 같이 편지를 쓴다던 그에게서는 편지 한 통이 없다. 이별을 예감한 그녀는 그것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다시 몸을 추스를 때 즈음 ‘미군/미국 주둔지, 베를린’이라고 찍힌 엽서가 날아왔다. <미안해요. 잭>, 그리고 그녀는 조지 그레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이별이 남긴 상처였을까. 그녀의 사랑에는 더이상 열정이 없었다. 그녀가 조지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저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래서였다. 결국 처음부터 삐걱댄 그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 지나지 않아 파경을 맞았고,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새러. - 추수감사절 이후, 4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를 만난다. 그의 옆에는 그의 아내 도로시와 그의 아들 찰리가 있다.

 

 

 

 

처음에는 사랑이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사랑이 내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아픔을 들춰내고 들쑤시는 경험일 뿐이었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 모순들로 가득 찬 허구의 세계일 뿐이었다. (1권 p324) 4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도로시에게 새러와의 관계를 알린 잭에게 도로시는, 일주일에 이틀은 당신이 출장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집에 돌아오면 이전처럼 나와 찰리를 대해줘라,라는 조건을 달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그들만의 외식을 즐긴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새러의 오빠 에릭이 어느 날 찾아와서 덜덜 떨며, 그들이 나에게 이름을 대라고 하고 있어. 라고 얘기한다. 학창 시절에 사회주의운동에 잠시 가입했었는데, 그때에 함께 가입했던 당원의 이름을 밀고하라는 것. 그에게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밀고자가 되든지, 아니든지. 에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에릭의 문제로 몇 백, 몇 십 장의 책 장 끝에 서 있는 잭과 새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는, 직접 보고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작품을 읽으며 미국의 시대상 배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미국은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인데, 동성애자를 도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과 미혼모는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여 직장에서도 채용될 수 없다는 것과,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도덕에 반하는 일이라 여겨 집주인은 세입자를 임의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결혼한 여자는 일하지 않는 게 나라의 오래된 관습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공산당을 색출하는 것. 지금 미국의 모습으로서는 전혀 상상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책 속에 들어앉아 혼란을 주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도중에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검색해보니, ‘여성은 남성의 보호 아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상이 아주 깊이 침투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조지 그레이와 새러 스마이스의 결혼 생활 중, 조지가 하는 행동이 딱 그짝이다. 생각하니 또 한바탕 열이 오르려고 한다.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새삼 깨달았어. 삶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앙이라는 사실을……. 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사실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있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게 돼. 대개는 혼란의 와중에 갑자기 끝나 버리지. 우리의 생이 종착점이 있는 아수라장이라는 사실만 안다면……” (2권 p362) 1권을 다 읽었을 때에는, 사랑, 그 지독한 독사과, 라고 생각했고, 2권을 다 읽고 나서는 행복, 그 가엾은 왕비,라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인생, 그 독살맞은 백설공주,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달건 쓰건 시건 맵건 짭쪼롬하건간에, 어찌됐건 나,만의 인생인 것이다.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빼면 뭐가 남죠? 결국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 (1권 p146) 사실 나, 새러의 인생을 이해하거나 가엾게 여기거나 두둔하거나 혹은 부정하거나 세차게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그녀의 인생인 까닭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의 새러나, 케이트나, 메그나 그 어떤 누구도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없다. 행복해지려고 하는 사람들뿐.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그 행복이 그들의 인생을 위로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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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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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선물을 받아 ‘곧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가 2년 동안 책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이번에 출간된 그의 작품인 「행복의 추구」를 펼치려고 할 때,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아마 먼지가 한가득 쌓였겠지, 라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서 아주 잠깐, 「빅 픽처」를 먼저 만나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행복의 추구」의 고전틱한 표지에 넋을 잃은 것마냥 쳐다보며, 이번 책이 좋으면 너도 곧 꺼내서 읽으마, 했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롭다. 무척이나 개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책에 관심을 처음 두던 계기를 만들어준 [구성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욕을 많이 먹고 있는, 하지만 영원히 나에게는 고마운 작가로 기억될] ‘기욤 뮈소’와 비슷한 문체였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모든 건 너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 하더라도 넌 그 잘못된 판단때문에 벌어진 일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거야. 늘 아픔이 따라 다니겠지. 그런 점에서 인생은 불합리해. 작고 커다란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지. 사람들은 그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거야. 생에서 슬픔은 필수적이야. 슬픔이 우리에게 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지. 신이 술을 인간에게 부여해준 건 생의 필연적인 비극성 때문일지도 몰라.” (1권 55p)

 

 

 

 

케이트 말론ː은 엄마의 장례를 다 마치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아파트의, 엄마의 침대에서, 엄마의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가 전화벨이 울림을 느끼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ㅡ“미안해요. 잘못 걸었어요.” 그녀는,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새러 스마이스라는 여성에게 조문 편지와 만나자는 전화를 받지만, 그녀는 한동안 세상일에 거리를 두고 아들과 단출한 시간을 갖고 싶다,며 조문 편지에 감사드린다고 답장을 써보낸다. 그러자 그녀 앞으로 또 다시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녀가 살아온 날들의 축소판인 사진들이 있는 사진첩과 편지 한 장. ‘내게 전화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게 그녀는 새러 스마이스의 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는 군복 차림의 아버지 사진, 가난아기인 그녀를 안은 아버지 사진, 대학 시절 그녀의 사진, 첫돌이 막 지난 아들 에단을 안고 있는 그녀의 사진, 그리고 젊은 남녀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젊은 남녀는 새러 스마이스와 그녀의 아버지 잭 말론. 이윽고 새러 스마이스가 말한다. “잭 말론, 즉 케이트의 아버지는 내가 평생 사랑한 남자였어요.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의 보수적인 중산층 부모님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새러 스마이스ː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까닭에 대학 졸업 후에 뉴욕에 정착해 <라이프> 지에서 일을 하며, 저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오빠 에릭이 주최한 추수감사절 전야제에서 그를 만났다. 잭 말론. 군가가 내 손에 맥주병을 쥐어주었다. 바로 그때 그를 보았다. 짙은 카키색 군복을 입은 남자. 그는 파티 장을 휘둘러보다가 잠깐 동안 내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딱 일초쯤, 아니면 이초? 그가 미소를 지었고, 나도 미소를 보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잠시 힐끗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하룻밤을 보내지만, 종군기자인 그는 9개월 뒤에 꼭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헌데, 무슨 이유인지, 매일 같이 편지를 쓴다던 그에게서는 편지 한 통이 없다. 이별을 예감한 그녀는 그것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다시 몸을 추스를 때 즈음 ‘미군/미국 주둔지, 베를린’이라고 찍힌 엽서가 날아왔다. <미안해요. 잭>, 그리고 그녀는 조지 그레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이별이 남긴 상처였을까. 그녀의 사랑에는 더이상 열정이 없었다. 그녀가 조지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저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래서였다. 결국 처음부터 삐걱댄 그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 지나지 않아 파경을 맞았고,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새러. - 추수감사절 이후, 4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를 만난다. 그의 옆에는 그의 아내 도로시와 그의 아들 찰리가 있다.

 

 

 

 

처음에는 사랑이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사랑이 내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아픔을 들춰내고 들쑤시는 경험일 뿐이었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 모순들로 가득 찬 허구의 세계일 뿐이었다. (1권 p324) 4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도로시에게 새러와의 관계를 알린 잭에게 도로시는, 일주일에 이틀은 당신이 출장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집에 돌아오면 이전처럼 나와 찰리를 대해줘라,라는 조건을 달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그들만의 외식을 즐긴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새러의 오빠 에릭이 어느 날 찾아와서 덜덜 떨며, 그들이 나에게 이름을 대라고 하고 있어. 라고 얘기한다. 학창 시절에 사회주의운동에 잠시 가입했었는데, 그때에 함께 가입했던 당원의 이름을 밀고하라는 것. 그에게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밀고자가 되든지, 아니든지. 에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에릭의 문제로 몇 백, 몇 십 장의 책 장 끝에 서 있는 잭과 새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는, 직접 보고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작품을 읽으며 미국의 시대상 배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미국은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인데, 동성애자를 도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과 미혼모는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여 직장에서도 채용될 수 없다는 것과,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도덕에 반하는 일이라 여겨 집주인은 세입자를 임의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결혼한 여자는 일하지 않는 게 나라의 오래된 관습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공산당을 색출하는 것. 지금 미국의 모습으로서는 전혀 상상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책 속에 들어앉아 혼란을 주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도중에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검색해보니, ‘여성은 남성의 보호 아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상이 아주 깊이 침투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조지 그레이와 새러 스마이스의 결혼 생활 중, 조지가 하는 행동이 딱 그짝이다. 생각하니 또 한바탕 열이 오르려고 한다.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새삼 깨달았어. 삶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앙이라는 사실을……. 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사실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있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게 돼. 대개는 혼란의 와중에 갑자기 끝나 버리지. 우리의 생이 종착점이 있는 아수라장이라는 사실만 안다면……” (2권 p362) 1권을 다 읽었을 때에는, 사랑, 그 지독한 독사과, 라고 생각했고, 2권을 다 읽고 나서는 행복, 그 가엾은 왕비,라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인생, 그 독살맞은 백설공주,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달건 쓰건 시건 맵건 짭쪼롬하건간에, 어찌됐건 나,만의 인생인 것이다.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빼면 뭐가 남죠? 결국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 (1권 p146) 사실 나, 새러의 인생을 이해하거나 가엾게 여기거나 두둔하거나 혹은 부정하거나 세차게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그녀의 인생인 까닭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의 새러나, 케이트나, 메그나 그 어떤 누구도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없다. 행복해지려고 하는 사람들뿐.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그 행복이 그들의 인생을 위로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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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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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다 비슷비슷한 레파토리들에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 다가가기에는 약간의 부담이 없잖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해,라며 그동안 그의 작품들을 끈질기게 읽어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가장 최근 그의 책을 읽은 게 어떤 것인가 불현듯 궁금해져 서평을 뒤적여보니, 마지막이었던 그의 작품은 단편 「탐정클럽」으로 2010년이다. [그때도 역시, 질린다-는 표현을 썼었다. 하지만 버릴 수 없다,로 잠정결론 지었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러고서 참 오랜만에 만나는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에 신작인 「신참자」가 출시되었다고 하여, 처음엔 머뭇머뭇거리다가 줄거리나 살펴보자 하여 찾아보니, [그때의 해석으로는] 하나의 단편들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이야기에 [아마도 전혀 다른 장르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가 생각나, 읽어보고 싶다 - 며, 결국 손에 덥썩 집은 채로 게걸스럽게 읽어내렸다.

 

 

 

 

 

 

 

고덴마초 살인 사건_ 이혼 후, 친구의 번역 일을 도우며 도쿄 니혼바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이 교살당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니혼바시 경찰서로 새로 부임한 신참자 가가 교이치로[일명 가가형사]가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니혼바시로 왔는가,부터 시작해서 한 번에 샤샤삭 풀어버리기엔 꽤 골치가 아픈 사건이다. 그녀와 접촉했던 보험 설계사가 사건 당일 들른 ‘센베이 가게’,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닌교야키 용기와 소화가 덜 된 닌교야키. 그것을 사건 당일 사간 ‘마쓰야’요릿집의 수련생, 그녀가 벚꽃이 그려진 젓가락 세트를 주문했다던 ‘야나기사와’라는 사기그릇 가게, 그녀가 수제품 주방가위를 샀던 ‘기사미야’, 그녀가 자주가던 하마토 공원에서 만난 ‘데마라 시계포’주인과 그의 개 돈키치, 그리고 그녀가 자주 쓰다듬어주던 ‘고다카라 이누’라 불리는 모자견 동상, 그녀가 케이크를 사려고 들렀던 ‘케이크 가게’ 등등 - 그녀의 발길이 닿았던 모든 곳을 가가형사, 그가 관찰하고 있다.

 

 

 

 

 

 

 

 

(…)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가가형사,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각자 따로 비밀에 붙이기로 했던 것들때문에 조금 더 지체되긴 했지만]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주어 결국은 그들을‘가족애’로 귀결시키기에 이른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족 소설은 「붉은 손가락」,「편지」,「비밀」 세 권 정도로,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첫 작품으로 읽었던,「붉은 손가락」을 접했었을 그 당시에 느꼈던 따뜻한 [물론 사건 자체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날 수 없지만] 느낌을 받아 오랜만에 호기롭게 읽을 수 있었던 듯 하다. 이 얼마만인가, 따뜻한 추리 소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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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2 - 복잡한 생각을 잠재우는 행복한 마음 다스리기 생각 버리기 연습 2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양영철 옮김, 스즈키 도모코 그림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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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카르트가 남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때에는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느낌을 맛본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이런걸까. 아무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무기력해짐을 느끼는 까닭에, 생각을 함으로써 노트에 펜을 굴리려 무진 애를 쓸 때도 많다. 그래서 당장의 일이 아닌 멀지 않은 미래인 내일부터 아직 계획이 잡히지 않은 몇 달 후, 몇 년 후의 일까지 대충 어림짐작하여 계획을 잡아놓는 일도 꽤 많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왜 생각을 해야한다,고 무엇도 아닌 내 자신으로부터 강요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걸까.

 

 

 

 

 

 

 

생각과 말, 행동은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면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다 ㅡ 혀에서 굴려지는 어감은 낯설지 않은데, 그 단어를 계속 입 안에 품은 채로 웅얼거리다가 생각하다,라고 써놓고 꽤 낯설다, 생각한다. 요즘은, 머릿 속이 복잡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그 순간부터 나의 뇌신경에서는 두통을 유발시키는 어떤 물질이 생성되는 것만 같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분명 난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에 가지를 친 전혀 다른 성질의 또 다른 생각이 이미 머릿 속에 들어앉아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생각이 항상, 부정적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내게 있어 생각이란, 어느순간부터 ‘고민·걱정·근심’을 뜻하는 단어로 불리게 된다. 여담으로, 가끔 그와 통화 중에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가 묻는다. ‘왜 말이 없어요?’ 그러면 나는 답한다. ‘응, 생각 중이야.’ - 요즘은 버리고 싶은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실은, ‘고민·걱정·근심’을 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모두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생각’에서 출발할 때가 많으니까, 생각을 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마음에 '싫어. 짜증나'라는 것이 메아리치면, 자신도 모르게 싫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거나, 싫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싫은 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가장 강렬한 것은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된다. 또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장소를 찾게 된다. 그런 다음 실제로 기분 나쁜 상황을 접하고는 '제기랄, 저 녀석이 기분을 잡쳤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어서 스스로 움직였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며 자업자득이다. 정답이다. 내 상황을 예로 한 가지 들자면, 예전의 나는 내 기분이 아주아주 뭉개져버려 형태조차 알 수 없을 때,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읽곤 했었다. 그 사람의 지독한 괴로움과 아픔과 슬픔을 바탕으로 ‘난 당신보다 우월해! 그런 당신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지, 암만.’ 라는 것을 느끼고 싶었으나, 책의 부분부분 분노를 표출하게끔 만드는 장면마다 ‘어떻개 이런 그지같은 상황이 다 있어! 뭐가 이래?’라며 온갖 짜증을 늘어놓는 내가 있었다. 그 책을 집었던 목적은 흔적조차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는 채로. 그래서, 앞서 구절을 읽으면서 ‘아, 내가 짜증을 만들어서 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며 뭔가에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을 들킨 사람처럼 흠칫흠칫거렸더랬다.

 

 

 

 

 

 

 

우리는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단정 짓고 비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은 '옳다'라는 인상을 형성하려 한다. '당신은 틀렸다. 하지만 나는 옳다.'는 독불장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오만과 자만에 빠져 허덕이게 될 것이다. 머릿속으로 '나는 옳다. 그러므로 완벽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뇌 안에서는 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왕은커녕 비천한 난민일 뿐이다. 『경집』 나는 고집이 참 세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옳고, 내가 하는 행동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고집이 세다,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하려고 할 때에 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내 의견을 먼저 앞세우기에 바쁜 편이다. 그런 나에게 그는 넌지시 얘기한다. ‘또 다섯 살처럼 자기 말만 하네.’라고.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상대방이 내 의견을 반박하고 나서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생각하니 한숨이 폭,하니 절로 나온다.

 

 

 

 

 

 

 

만일 당신이 상대의 발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시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면 누구와 함께 있든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머릿 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습관화된 탓에 당신의 마음은 뒤틀어진 망상에 휩쓸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당신은 타인의 조언을 이해할 수 없고 나아가 내(부처)가 강조하는 마음의 인과법칙도 이해할 수 없다. 『경집』내가 항상 언쟁을 벌이는 때는 어쨌든 내가 유리한 입장에 있을 때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 권리를 주장해오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언어로서 그들을 깔아뭉개기도 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책의 〈의견에서 벗어나다〉 부분을 연달아 두세 차례 읽으며, ‘응, 맞아.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 몰라. 자신감이 없으니까, 상대방에게 찬성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처음에 그 부분을 접했을 때에는, 가장 부정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으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장소불문하고 몇 십 번, 아니 몇 백 번, 몇 천 번 〈(내) 의견(만) 내세우기〉라는 악마가 찾아왔었다. 그래서 내가 책을 한 번 더 읽어야겠다,며 다시 한 번 들춰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그러다가 이 부분을 보고서는 마음에 진정제를 놓은 듯, 차분해짐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필사해놓고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겠다, 생각한다.

 

 

 

 

 

 

 

화를 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기 마음의 분노를 이겨내라. 긍정의 마음으로 부정의 마음을 이겨내라. 기분 좋게 다른 사람에게 양보함으로써 인색해지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라. 진실을 말함으로써 거짓을 말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라. 『법구경』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결국은 내 치부를 들춰보는 것이라는 걸. 마음에 불을 끼얹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아!’하는 탄식이 터져나올 때마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숙이고, 어깨가 축 쳐진 - 그런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그때만 흠칫거리며 놀랄 뿐, 내일도 모레도 나는 변화하진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그것을 고쳐야겠다,고 느낀 그 순간부터 반복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아마 이 책은 당분간 옆에 꼭 끼고서 몇 번이고 들춰봐야겠다,며 베개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자기 전 나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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