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선물을 받아 ‘곧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가 2년 동안 책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이번에 출간된 그의 작품인 「행복의 추구」를 펼치려고 할 때,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아마 먼지가 한가득 쌓였겠지, 라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서 아주 잠깐, 「빅 픽처」를 먼저 만나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행복의 추구」의 고전틱한 표지에 넋을 잃은 것마냥 쳐다보며, 이번 책이 좋으면 너도 곧 꺼내서 읽으마, 했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롭다. 무척이나 개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책에 관심을 처음 두던 계기를 만들어준 [구성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욕을 많이 먹고 있는, 하지만 영원히 나에게는 고마운 작가로 기억될] ‘기욤 뮈소’와 비슷한 문체였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모든 건 너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었다 하더라도 넌 그 잘못된 판단때문에 벌어진 일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거야. 늘 아픔이 따라 다니겠지. 그런 점에서 인생은 불합리해. 작고 커다란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게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지. 사람들은 그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거야. 생에서 슬픔은 필수적이야. 슬픔이 우리에게 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지. 신이 술을 인간에게 부여해준 건 생의 필연적인 비극성 때문일지도 몰라.” (1권 55p)

 

 

 

 

케이트 말론ː은 엄마의 장례를 다 마치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아파트의, 엄마의 침대에서, 엄마의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가 전화벨이 울림을 느끼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ㅡ“미안해요. 잘못 걸었어요.” 그녀는,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새러 스마이스라는 여성에게 조문 편지와 만나자는 전화를 받지만, 그녀는 한동안 세상일에 거리를 두고 아들과 단출한 시간을 갖고 싶다,며 조문 편지에 감사드린다고 답장을 써보낸다. 그러자 그녀 앞으로 또 다시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녀가 살아온 날들의 축소판인 사진들이 있는 사진첩과 편지 한 장. ‘내게 전화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게 그녀는 새러 스마이스의 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는 군복 차림의 아버지 사진, 가난아기인 그녀를 안은 아버지 사진, 대학 시절 그녀의 사진, 첫돌이 막 지난 아들 에단을 안고 있는 그녀의 사진, 그리고 젊은 남녀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젊은 남녀는 새러 스마이스와 그녀의 아버지 잭 말론. 이윽고 새러 스마이스가 말한다. “잭 말론, 즉 케이트의 아버지는 내가 평생 사랑한 남자였어요.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의 보수적인 중산층 부모님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새러 스마이스ː는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까닭에 대학 졸업 후에 뉴욕에 정착해 <라이프> 지에서 일을 하며, 저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오빠 에릭이 주최한 추수감사절 전야제에서 그를 만났다. 잭 말론. 군가가 내 손에 맥주병을 쥐어주었다. 바로 그때 그를 보았다. 짙은 카키색 군복을 입은 남자. 그는 파티 장을 휘둘러보다가 잠깐 동안 내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딱 일초쯤, 아니면 이초? 그가 미소를 지었고, 나도 미소를 보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잠시 힐끗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하룻밤을 보내지만, 종군기자인 그는 9개월 뒤에 꼭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헌데, 무슨 이유인지, 매일 같이 편지를 쓴다던 그에게서는 편지 한 통이 없다. 이별을 예감한 그녀는 그것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다시 몸을 추스를 때 즈음 ‘미군/미국 주둔지, 베를린’이라고 찍힌 엽서가 날아왔다. <미안해요. 잭>, 그리고 그녀는 조지 그레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이별이 남긴 상처였을까. 그녀의 사랑에는 더이상 열정이 없었다. 그녀가 조지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저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래서였다. 결국 처음부터 삐걱댄 그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 지나지 않아 파경을 맞았고,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새러. - 추수감사절 이후, 4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를 만난다. 그의 옆에는 그의 아내 도로시와 그의 아들 찰리가 있다.

 

 

 

 

처음에는 사랑이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사랑이 내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아픔을 들춰내고 들쑤시는 경험일 뿐이었다. 사랑은 온갖 감정의 모순들로 가득 찬 허구의 세계일 뿐이었다. (1권 p324) 4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도로시에게 새러와의 관계를 알린 잭에게 도로시는, 일주일에 이틀은 당신이 출장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집에 돌아오면 이전처럼 나와 찰리를 대해줘라,라는 조건을 달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그들만의 외식을 즐긴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새러의 오빠 에릭이 어느 날 찾아와서 덜덜 떨며, 그들이 나에게 이름을 대라고 하고 있어. 라고 얘기한다. 학창 시절에 사회주의운동에 잠시 가입했었는데, 그때에 함께 가입했던 당원의 이름을 밀고하라는 것. 그에게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밀고자가 되든지, 아니든지. 에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에릭의 문제로 몇 백, 몇 십 장의 책 장 끝에 서 있는 잭과 새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는, 직접 보고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작품을 읽으며 미국의 시대상 배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미국은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인데, 동성애자를 도덕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과 미혼모는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여 직장에서도 채용될 수 없다는 것과,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도덕에 반하는 일이라 여겨 집주인은 세입자를 임의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결혼한 여자는 일하지 않는 게 나라의 오래된 관습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공산당을 색출하는 것. 지금 미국의 모습으로서는 전혀 상상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책 속에 들어앉아 혼란을 주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도중에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검색해보니, ‘여성은 남성의 보호 아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상이 아주 깊이 침투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조지 그레이와 새러 스마이스의 결혼 생활 중, 조지가 하는 행동이 딱 그짝이다. 생각하니 또 한바탕 열이 오르려고 한다.

 

 

 

 

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새삼 깨달았어. 삶이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앙이라는 사실을……. 인생이라는 이야기에는 사실 해피엔딩도 비극적인 결말도 없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이 있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끝나 버리게 돼. 대개는 혼란의 와중에 갑자기 끝나 버리지. 우리의 생이 종착점이 있는 아수라장이라는 사실만 안다면……” (2권 p362) 1권을 다 읽었을 때에는, 사랑, 그 지독한 독사과, 라고 생각했고, 2권을 다 읽고 나서는 행복, 그 가엾은 왕비,라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인생, 그 독살맞은 백설공주,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달건 쓰건 시건 맵건 짭쪼롬하건간에, 어찌됐건 나,만의 인생인 것이다. 내 행복을 누군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행복해지려는 욕구를 빼면 뭐가 남죠? 결국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거죠.” (1권 p146) 사실 나, 새러의 인생을 이해하거나 가엾게 여기거나 두둔하거나 혹은 부정하거나 세차게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그녀의 인생인 까닭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의 새러나, 케이트나, 메그나 그 어떤 누구도 행복해보이는 사람은 없다. 행복해지려고 하는 사람들뿐.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그 행복이 그들의 인생을 위로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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