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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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를 이전에 먼저 만났었다. <금수>를 읽을 때도 조곤조곤하게 작가의 문장들이 연한 순두부처럼 보드라우면서도 섬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밝을 수 없는 소재이지만, 따뜻함은 내내 지속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주인의 손에 내맡긴 채 잠에 든 얌전한 강아지가 된 듯했다. 멍하니 있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고 역시나 나의 예상이 딱 맞았는데, 그것에 대한 후폭풍이 몹시 심각한 것이었다. 그랬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냐는 것이 중요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중요했다.




일본 여행 중에 뇌졸중으로 죽음을 맞이한 기쿠에 고모의 사후정리를 하기 위해 고모가 살던 로스앤젤레스를 가게 된다. 조카였던 겐야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놀라움을 느낄 새도 잠시, 변호사가 보여준 유언장에는 찜찜한 문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섯 살에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알고 이던 레일라가 죽은 게 아니라 행방불명이 된 거라니?


“삭제된 마지막 다섯 줄에는 마약 레일라를 찾게 되면 겐한테 물려준 모든 유산의 70퍼센트를 레일라에게 주었으면 좋겠지만, 찾지 못하면 레일라 같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회운동에 유용하게 썼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문구가 덧붙여져 있었어요. (…)”
“레일라 요코 올컷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곧바로 백혈병으로 죽었어요.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레일라는 여섯 살 때 행방불명되었어요. 1986년 4월 5일이에요. 보스턴의 집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막 개장한 대형마트에서요.” 


겐야는 어쩌면 무모하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레일라를 찾기 위해, 아니 생사라도 알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게 된다.





159. “레일라는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너희들의 깨끗한 마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야. 만악 레일라가 살아 있다면 도와줘.”


이 책의 가장 매력이라 함은, 착한 등장인물'들'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뿐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모두 착하기는 힘든데 말이지- 하면서. 책의 등장인물들은 레일라를 찾는 데에 여념이 없다. 겐야도, 사립탐정인 니코도 그 누구 하나 소홀함이 없다. 레일라의 실마리는 니코에 의해 하나씩 베일을 벗게 되지만, 그렇다고 가정만 할 뿐, '왜'가 없다. 겐야는 교코와 케빈에게서 '왜 그렇게 했는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듣게 된다. 호흡을 길게 하여 천천히 읽고 싶었지만, 그런 속도 모르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야속하게 점점 빨라지기만 한다. 그렇게 마주한 충격적인 진실에 나는 머리가 어수선했다.



377. 레일라는 4월 5일에 죽는다, 나는 레일라 묘의 묘석으로 살겠다.

내가 기쿠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서 그런 감정을 이입하는 것 자체가 조금 힘이 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쉽게 이입이 됐다. 그보다 나의 배우자가 이언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것이 훨씬 더 이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기쿠에라면'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엄마라는 건, 나아가 '정상적인' 부모라는 건, 그런 걸까.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말인가.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내가 그녀였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고 남은 생을 견뎌내야 했던 순간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모든 진실을 마주하고 난 뒤에 나는 기쿠에가 안쓰러워 표지의 여인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것 같다. 마치 표지의 여인이 기쿠에인 듯.





41. 배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각각의 꽃이 그저 피고 싶을 때 피는 자연스러운 조합이 아름답다. 정말이지 잘난 체하지 않게 심어 놓았는데, 반대로 그것이 바로 기쿠에 고모의 잘난 체라고 생각하며 겐야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158.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올 거야.


160. 그 순간 풀꽃들의 수런거림이 시작되었다.
분명치 않은 웃음소리. 속삭이는 목소리. 얌전한 중얼거림.......

나는 이 책을 발코니에서 읽었다. 내 발코니에는 얌전하고 가지런하게 나의 식물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나의 식물들에게 오랜만에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나 역시 식물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속삭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키우던 식물이 죽으면 한동안 의욕이 상실되는 것도, 똑같은 식물을 키우는 것을 겁내는 것도 그와 상응한다. 레일라를 둘러싼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기쿠에의 정원이 탐 나서 나는 잠시 사그라들었던 전원주택의 꿈을 생각해내었다. 기쿠에는 어쩌면, 상실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이와 같은 멋진 정원을 가꾸어낸 것은 아닐까. 식물들에게 말을 걸었을 기쿠에, 식물들과 교감하며 잔잔하지만 큰 슬픔을 마음속에 묻어두었을 기쿠에.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미야모토 테루의 결말 하나로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서른세 개의 거베라 화분은 기쿠에의 바람처럼 언제까지고 싱그럽게 자라날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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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조광희 장편소설
조광희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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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십이 년에 처한다.



무죄였던 원심이 뒤집어졌다. 12년. 동호는 친구 승철의 변호를 맡았다. 원심이 이렇게 허무하게 뒤집힐 수 있나. 원심이 뒤집혔다면 이건 변호인의 책임이 크다.라는 생각으로 동호는 죄책감을 느끼고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가 선거 시절에 도움을 줬던 서울시장이 메일을 한 통 보내오는데 내용인즉슨, 전임 시장이자 현재 국회의원의 비리를 조사해달라는 것. 하지만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은 과연 만만치 않다. 그는 정의를 구현하고 싶어 하는 변호사인 까닭에 더욱 극심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섣부르게 고용하는 것도 불안하여 동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들에게 부탁을 한다.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걸 목격하게 되고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동호는 그 비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칠 수 있을까?

리셋, 왜 리셋일까. 생각했다. 어째서 리셋일까. 이건 정말 간단하지 않다. 인간의 인생은 리셋될 수 없다. 켜켜이 쌓아온 역사이기 때문에. 하지만 장 회장은 이십억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사버리려고 한다. 그 제의는 솔깃하다 못해 움츠러들게 한다. 돈이면 모든 것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이들이 ‘암묵적 진실’이지 않을까. 그 사실만으로도 슬퍼진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조양호의 일가도, 어쨌든 모든 것이 ‘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그만큼의 돈을 가져본 적 없어 돈이 우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런 돈을 쥐고 있다면 정말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평생 먹고 살 수만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양심까지 팔아치울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가장 가까이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생각을 억제하기 위해,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라는 말로 나의 뇌를 맑게 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뉴스에서 마주할 때면 모든 뇌의 흐름이 끊어지게 됨을 느끼는 건 이미 돈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책 두 권이 생각났는데, 안천식 변호사의 <고백 그리고 고발>에서 기을호 씨와 대기업의 사건은 사법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면, 손아람 님의 <소수의견>은 한 사람을 위해 대한민국을 피고인으로 두고 재판을 진행시키는 것.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 피차일반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 분배되어 있는 부분 중 정의를 위한 부분은 너무나도 약소하고 보잘 것 없어서 진실을 호도하려는 자들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 여전히 난제로 남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것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돈과 권력에 쉽게 휘말릴 수밖에 없고, 생명과 밀접하면 더욱 그러하다.


과연 나는, 윤리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가? ... 확답할 수 없다. 내게 돈과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고, 주어질 확률이 그리 크지 않기에 지금 당장은 아니. 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지만, 정말 그것이 내 앞에 주어졌을 때 그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 그렇게 진실은 규명되지 못하고 호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나는 내가 윤리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고민할 수 있는 인간이었으면 한다.

+

등장인물 중 이 사람은 왜 넣었을까- 싶은 이가 있었다. 왜. 왜. 왜지? ... 결국은 신경 쓰지 말자- 그것은 그리 크게 신경 쓸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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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을 완성해 줘
장하오천 지음, 신혜영 옮김 / 이야기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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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나의 사랑에서 벗어나 타인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돌릴 때가 있다. 그게 딱 요즘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에는 찾아보지도 않았을 드라마를 본다며 TV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그와 나의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봄이니까,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까, 꽃이 피니까, 분홍색의 옷을 많이 입으니까 라는 우스운 핑계들로 점철 지어진다. 어쨌든, 어떤 계절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봄은 사랑을 시작하기 참 좋은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다 보면 처음엔 그와 내가 갓 연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도 생각이 나서 실실거리지만, 곧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야기에 개연성이 없거나 기상천외한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너무나도 잘 아니까. 사랑에 빠졌다가 다퉜다가 결국은 둘이 이어지는 스토리는 어쩌면 너무나도 흔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물론 엔딩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명심하고.

나는 링컨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말을 넣어도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뜬금포 고백) 한 예로,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사랑의'라고 바꿀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론이나 해석이든 전부 가능한, 알파의 의미를 가져서 더욱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사랑에 관심을 가진다. 내가 가진 사랑의 형태와 대조시키기보다는, 그 사람의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서. 그러한 이유로 집어든 책이 <나의 세상을 완성해줘>였다. 열두 편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어느 순간, 사랑에 관한 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사랑은 이렇지만, 이 사람이 하는 사랑은 이렇고, 저 사람이 하는 사랑은 저렇다는 것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알지 않나. 사람 생김새가 다르듯, 사랑도 각양각색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 이야기에 함께 웃고 슬퍼하며 공감하는 것은 그 사랑과 나의 사랑이 완전하게 닮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비슷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이게 진짜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라는 생각을 많이 배제시키려 노력했다. 각기 사연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겪지 않은 일이라고 하여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지는 일'이라고 속단하는 것이 조금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조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도 남들이 들으면 신기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남들은 시시하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조미료가 조금 과했다. 열두 편의 사랑을 엿보았지만, 어떤 사랑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다. 마음이 에 닳는다거나 안타깝다거나 웃음이 나온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사랑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누군가의 감정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치중했기에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들의 상황뿐이라 더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어쨌든 아쉬움이 짙다.








오탈자402. 샤펑 농담에서 통쩐은 꿈쩍하지 않았다 ▶ 쉬찬

오탈자402. 통쩐과 쉬펑쉬찬

오탈자403. 착안 여자애라면 곱게 키울만하지. ▶ 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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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
김성우 지음 / 쇤하이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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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여느 엄마가 그러했듯, 나의 10대를 책임져주었고, 나는 그런 점이 여전히 감사하다. 어린시절의 나는, 훗날의 나의 자식에게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지내는 6년 동안 손수 교복을 다림질해주는 그런 엄마. (물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님에도) 맞벌이한다고 제대로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내 자식 집에서 이만큼의 보살핌을 받고 지낸다는 표시의 하나였다. 나는 주름치마를 입던 중학생 때, 누구보다 빳빳하고 반질반질한, 열 맞춰 정돈되어 있는 그런 교복 치마를 뽐냈었다. 엄마의 바람처럼 어디 가서 기죽지 않았고 오히려 동기생들의 부러움을 산 채로 학교를 다녔다. 또한 지금까지도 여전한 나의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습관은, 바쁜 와중에도 아침을 꼭 차려주었던 엄마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엄마와 애틋하다거나 애잔하다거나 애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2015년까지는 엄마와의 관계가 다정다감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꽉 막힐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건조된 감말랭이도 엄마와 나의 관계만큼 건조하고 메마르진 못할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엄마와의 관계 개선을 꿈꾸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포기해야만 했다. 지금 엄마와 나의 가치관은 너무나도 다르고 그것이 충돌되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며, 그것은 슬프게도, 길고 긴 3년의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엄마를 찾는다. 엄마의 삶을 가엾게 여기기도 하고, 애처롭게 여기기도 한다.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감사한 마음을 지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전체적인 생을 부정할 수는 없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타인의 엄마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다른 이의 낯선 엄마의 모습에서 나의 엄마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지만, 김성우 님의 엄마를 만났다.

21. 밥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을 할 때에, 나는 새삼 부끄러워졌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밥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면 훈훈한 온기가 돌고, 밥이 있었고, 그에 걸맞은 반찬들이 있었으며, 매일 보드라운 수건이 걸려있었고, 화장실 휴지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결혼을 한 순간, 나는 그게 아님을 여실히 깨달았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가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나의 엄마였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편안함은 없었다.

 

 

97.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김성우 어머니의 말씀. 내가 언젠가부터 마음 깊이 되새기는 말 중 하나인,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와 비슷한 말인 것 같아서 계속 반복해서 보았던 부분.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는 이유는, 다시 태어나면 삼 형제를 더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사람, 꼭 여자로 태어나고 싶으시다나.

 

 

 

어머니와 했던 말이 글감이 되고 그것을 엮어낸 책이다. 책은 쉽게 읽힌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을 지니며 읽는다. 나는 딸이면서도 같은 여자인 엄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나의 어려움을 엄마에게 토로한 적도 많지 않다. 내가 엄마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는 2015년 겨울에서 2016년 봄 그 사이였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삐거덕댔던 것들이 그때에 부서진 것이리라. 그래서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부럽게 느껴진다. 나의 마음이 이런 것처럼 나의 엄마도 그럴 테지. 하지만 거기까지 일 뿐, 나는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나의 엄마의 안녕을 바라는데, 특히나 오늘은 엄마의 평온을 바란다.

 

   


 

 

오탈자 97.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특출하게

 

오탈자 241. 늘상 게으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부하니 노상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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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내 맘 좀 알아주면 좋겠어 - 서툰 표현 뒤에 감춰진 부부의 속마음
다카쿠사기 하루미 지음, 유윤한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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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함께 했든 완전한 타인과 타인의 결합에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부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 이라는 타인들과 달리, 가깝게는 가족이 그렇고 가족 중에는 남편과 아내 즉, 부부가 그렇다. 서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소홀할 수 있는 게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고 보는 나는, 분기에 한 번 정도는 원만하고 순조로운 부부생활을 위해 부부를 위해 쓰인 책들을 찾아 읽는 편이다. 물론 그 속에 해답이 있을 리 없다. 많은 예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 아니고 내가 그와 같은 생각을 지닌 것이 아니라면 공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찾아읽는 까닭은, 여러 상황들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상으로 만나보고 내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지, 이 일에 적합한 대응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나 내가 이전에 가졌던 고민들을 만나면 더없이 유익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책 제목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당신도 내 맘 좀 알아주면 좋겠어>라니.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서운해하고 섭섭해하고 속상해하는 게 비단 부부관계에 한정된 것이겠냐마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 묶인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절실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부관계에 세 가지 요점이 있었는데 자기 호감, 자기 유능감, 자기 중요감이 그에 속했다.

자기 호감 ;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자기 유능감 ;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자기 중요감 ;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이것은 부부라는 테두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에 속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나와 가장 친밀한 이에게 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요즈음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고생은 고생대로 해놓고 황혼이혼이라니? 차라리 나를 찾을 수 있을 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황혼이혼을 요청하는 사람은 남편보다는 아내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1)도움을 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허무감, 2)일을 우선시하는 남편의 태도가 안겨준 고독감, 3)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그에 속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중 2번을 2015년에 느꼈었는데, 일을 나보다 우선시한다기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본인의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외로움이 좀 있었다. 대화를 해도 제자리라는 것을 느껴서 허무할 때도 있었고, 결국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이 컸던 그는 오로지 본인을 위해서 '친정으로 가있으면 어떻겠냐'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본인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의논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나는 2번 하나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혼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던 중 교육이라는 가면은 씌워 억지로 들어야 했던 강연을 들은 계기로 그는 '일보다는 가정' 바뀌기는 했지만 당시에 나는 결혼에 대한 회의감이 심각하게 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야망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를 믿고 결혼을 했을까. 하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도 이어졌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면 조금은 움찔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읽었던 책 전경린 <나비>가 정말 큰 도움이 됐었다.


모든 남자들은 상실한 나라를 가진 고독한 존재들이다.

알렉산더대왕, 칭기즈칸, 진시황제, 나폴레옹, 심지어 히틀러도 바로 그 나라에 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겐 세계를 다 정복한다 해도 결코 갈 수 없는 나라가 있다.

 전경린 , 나비」




51. 남자는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존재.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거나 생각해주기보다는 신뢰해주기를 원합니다.

“당신이라면 괜찮아. 난 믿어.


그는 내가 집에 와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그가 내게 직장에서의 일을 전부 내게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가 힘든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하지 않고, 이후에 다 해결되면 이야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힘든 일이 해결되면 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삭힐 때도 많다. 나는 내가 걱정할까 봐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그것이겠지만, 자기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면 더욱 그랬다. 나 역시 일을 하다가 자존심에 금 가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것을 전부 말하지는 않는다. 회포를 풀 수 있는 유대관계가 있는 회사 동료가 있다면 더더욱. 그런 면에서 그와 나는 똑같은 게 아닐까. “무슨 일 있어?”의 대답을 요하는 말보다 그가 유난히 힘들어 보일 때면 술상을 차려 그와 함께 각자가 짊어졌었던 하루의 피곤을 풀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고 싶다.



194. 여성들은 상대 남서이 자신에게 어떻게 해줄지를 시험하고 관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일이나 기념일 당일까지 말을 안 하고,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봅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만일 상대가 자기 뜻대로 하주지 않았을 경우 남는 것은 분노와 슬픔입니다.


이 부분에서 아차 싶었다. 내가 꼭 그렇기 때문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은 그가 알아서 잘 챙기지만, 으레 회식이나 술 약속이 그랬다. 내가 정말 다녀왔으면 하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응, 그래요. 알았어. 다녀와.”라고 말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는 “너 알아서 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나의 대답에 따라 약속을 잡거나 잡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너 알아서 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네.”라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76. 왜 먼저 알아주지 못하냐고 짜증을 내지 말고,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세요. 선택권을 줘버리고선 내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면 화가 나는 타입; 나는 내가 그러지 않으면 좋겠는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글로 부부관계가 원만해지는 법을 배웠고 행동으로 다이렉트로 연결될 고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자양분이 되어 우리 부부의 밑거름에 보탬이 될 테니까.



오탈자 156. 이혼을 하던 관계를 회복하던, '이렇게 하기를 잘했다'라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 행복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 이혼을 하든 관계를 회복하든

('-하던 '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이라면, '-하든'은 선택의 문제이니 '-하든'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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