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나
김성우 지음 / 쇤하이트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나의 엄마는 여느 엄마가 그러했듯, 나의 10대를 책임져주었고, 나는 그런 점이 여전히 감사하다. 어린시절의 나는, 훗날의 나의 자식에게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지내는 6년 동안 손수 교복을 다림질해주는 그런 엄마. (물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님에도) 맞벌이한다고 제대로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내 자식 집에서 이만큼의 보살핌을 받고 지낸다는 표시의 하나였다. 나는 주름치마를 입던 중학생 때, 누구보다 빳빳하고 반질반질한, 열 맞춰 정돈되어 있는 그런 교복 치마를 뽐냈었다. 엄마의 바람처럼 어디 가서 기죽지 않았고 오히려 동기생들의 부러움을 산 채로 학교를 다녔다. 또한 지금까지도 여전한 나의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습관은, 바쁜 와중에도 아침을 꼭 차려주었던 엄마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엄마와 애틋하다거나 애잔하다거나 애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2015년까지는 엄마와의 관계가 다정다감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꽉 막힐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건조된 감말랭이도 엄마와 나의 관계만큼 건조하고 메마르진 못할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엄마와의 관계 개선을 꿈꾸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포기해야만 했다. 지금 엄마와 나의 가치관은 너무나도 다르고 그것이 충돌되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며, 그것은 슬프게도, 길고 긴 3년의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엄마를 찾는다. 엄마의 삶을 가엾게 여기기도 하고, 애처롭게 여기기도 한다.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감사한 마음을 지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전체적인 생을 부정할 수는 없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타인의 엄마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다른 이의 낯선 엄마의 모습에서 나의 엄마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지만, 김성우 님의 엄마를 만났다.

21. 밥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을 할 때에, 나는 새삼 부끄러워졌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밥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면 훈훈한 온기가 돌고, 밥이 있었고, 그에 걸맞은 반찬들이 있었으며, 매일 보드라운 수건이 걸려있었고, 화장실 휴지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결혼을 한 순간, 나는 그게 아님을 여실히 깨달았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가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나의 엄마였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편안함은 없었다.

 

 

97.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김성우 어머니의 말씀. 내가 언젠가부터 마음 깊이 되새기는 말 중 하나인,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와 비슷한 말인 것 같아서 계속 반복해서 보았던 부분.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는 이유는, 다시 태어나면 삼 형제를 더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사람, 꼭 여자로 태어나고 싶으시다나.

 

 

 

어머니와 했던 말이 글감이 되고 그것을 엮어낸 책이다. 책은 쉽게 읽힌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을 지니며 읽는다. 나는 딸이면서도 같은 여자인 엄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나의 어려움을 엄마에게 토로한 적도 많지 않다. 내가 엄마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는 2015년 겨울에서 2016년 봄 그 사이였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삐거덕댔던 것들이 그때에 부서진 것이리라. 그래서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부럽게 느껴진다. 나의 마음이 이런 것처럼 나의 엄마도 그럴 테지. 하지만 거기까지 일 뿐, 나는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나의 엄마의 안녕을 바라는데, 특히나 오늘은 엄마의 평온을 바란다.

 

   


 

 

오탈자 97.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특출하게

 

오탈자 241. 늘상 게으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부하니 노상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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