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 없는 자리
채이든 지음 / 렛츠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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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 동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숨이 나왔고, 극악무도한 행동들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그나마 양호했다. 어떤 때는 소리마저 나오지 않는데 내 손은 내 입을 막기 위해 경계태세를 취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는 거칠었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들과 같은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과 공포심을 느꼈다. 이 책의 또 다른 이름은 '절망'이었다.


<벽장 속의 아이>와 <ROOM> 이후에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소재의 책을 부러 찾지 않았다. 내가 찾지 않아도 언론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동학대였다.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서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뿐이었다. 발견했기에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들. 그동안 이렇게 이렇게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우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경악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우리가 듣는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극도의 아픔을 줄 수 있는 행위였을까? 분명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 끔찍하고 악랄한 행동들이 아이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이건 예측이나 추측이 아닌, 그런 짓까지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에서 온다.


“채이든! 아빠랑 엄마는 지금 헤어질 거야! 너는 아빠랑 살 건지 엄마랑 살 건지 선택해야 해! 누구랑 살고 싶어? 이 자리에서 당장 말해!



이든이는 할머니와 넷째 큰아빠, 큰엄마, 아빠, 엄마와 살았다. 하지만 이때도 엄마의 손찌검을 다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이든이의 삶이 그리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든이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했는데, 네 살이었다. 겨우 네 살에 뺨을 얻어맞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아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몇 차례씩이나. 이든이를 그 존재만으로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는 존재는 단연코 할머니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는 엄마와 이혼을 한다며 누구랑 살 건지 선택을 이든이에게 하라고 한다. 이든은 자기를 때리는 엄마가 아닌 아빠를 택한다. 아빠는 이든이가 발을 다쳤을 때, 무릎 꿇고 앉아서 이든의 발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이든이를 생각하는 아빠였으니까.

그런 아빠가, 이든이를 버렸다. 세류 성당에. 다섯 살의 어린 이든이는 매일매일 아빠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빠는 오지 않았다. 등나무 벤치에서 소꿉놀이를 할 때 ‘언니’가 나타났다. 따뜻한 손을 가진 언니였다. 꽃 중에 장미꽃을 제일 좋아하는 언니였다. 언니는 이틀 후에 온다고 하고 언니는 언덕을 내려갔다. 이제 이든이는 아빠 외에 기다릴 사람이 또 생겼다. 언니.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빠가 돌아왔다. 그리곤 이사했다는 옥탑방으로 이든이를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잘 됐다! 친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런데 언니라고 부르면 안 돼.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야 해.이든이가 네 살에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했고, 다섯 살에 아빠는 재혼을 해서 새엄마가 생겼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이든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엄마에서 벗어나 새엄마가 생긴 이든이는 이제 사랑만 받으며 지낼 수 있었으면 했다. 아... 정말 그랬으면 했는데...





“먹어! 마늘은 건강에 좋은 거야!

마늘을 씹었다. 콩나물 머리를 씹는 것보다 어려웠다. 매운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맛이 어때?

새엄마가 물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준 건데 맛없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맛있어요”

“그래? 무슨 맛이 나는데?

나는 맛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과자 맛도 나고, 캐러멜 맛도 나고, 소시지 맛도 나고 그래요…….

“그래? 잘됐구나! 마늘이 과자처럼 맛있다니 많이 먹어야겠다!

새엄마는 도마에 꺼내놓은 통마늘을 나에게 전부 먹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웃었다. 나는 새엄마를 따라 웃었다.

몸에 좋으니 마늘을 먹으라고 내미는 새엄마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든이는, 매운 마늘을 먹고도 맛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프면 아프다,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없다, 싫으면 싫다는 솔직한 말을 다섯 살의 이든은 말하지 못했다. 종이 인형의 옷을 걸치는 고리가 없는 것도, 마늘을 먹이는 것도, 전에 뺨을 때리는 게 습관이었던 엄마에 비하면 고약한 장난을 치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왜 귀가 아프지? 새엄마가 웃는데 나는 왜 웃음이 안 나오지? 아빠한테 물어볼까? 아빠는 언제 오지?

새엄마는 이든의 귀를 쭉 잡아당기고, 손톱으로 귓불을 찍기도 했다. 계속 반복하다 보니 귓불에서 진물이 배어 나와서 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이든. 그전까지는 귀를 잡아당기는 행동을 당해본 적이 없었던 이든은 왜 귀를 잡아당기는지, 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를 못한다. 이든이는 아빠한테 귀가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새엄마가 중간에 끼어든다. 이와 같은, 새엄마는 웃지만 이든이는 웃을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매일 다르게 생긴다.

이든은 묻는다. 있잖아요……. 엄마는 왜 일요일에만 잘해주나요?





“너 제발 좀 차에 치여 죽어라. 응? 내가 누구보다 슬프게 울어주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러줄 테니까. 내가 나중에 천벌을 받아도 좋아. 지금 너랑 사는 게 지긋지긋한데 어쩌겠어? 봐서 트럭이 오는 것 같으면 뛰어들라고!

“지금 뛰어들어요?

“미쳤니? 네가 지금 뛰어들어서 죽으면 내가 뭐가 되겠어? 사람들이 애 하나 간수 못 하고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할 거 아니야!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너 혼자 다니다가 찻길에 뛰어들어! 내가 평생 너를 기억하고 미안해할 테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도착해서 남은 사진, 등기 봉투에 들어가지 못한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앨범에 사진을 꽂아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표시 같은 것……. 나는 사진에다 아픈 부분을 표시했다. 파란색 사인펜으로 귀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칠했다. 눈과 코, 볼에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칠했다. 손톱 반달이 밀렸을 때 아팠으니까 손에도 동그라미를 그렸다. 앞니 빠진 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파란색 동그라미로 얼룩졌다. 사진 뒷면에는 생각나는 대로 글자를 끄적였다.


하하하 웃어요. 엉엉 울어요. 안녕하새요. 나는 당나기 친구람니다.



아... 새엄마의 횡포가 갈수록 점점 심해진다. 이제는 죽으라고 한다. 차에 뛰어들어 죽으라고 하고, 젓가락을 콘센트에 꽂아서 죽으라고 하고, 파마약을 먹고 죽으라고 하고, 저수지에 빠져 죽으라고 한다. 심지어 보일러를 떼는 기름을 물에 타서 먹이기까지 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며칠 동안이나. 처음에는 고약한 장난인 것만 같았던 것들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더 이상 이든이가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엄마에게는 명패로 맞아서 앞니가 나갔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빠에게는 각목을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고 맞기도 하며, 심지어 그 각목 위에 아빠는 발을 얹기까지도 한다. 새엄마라는 여자도 죽일 년이었지만, 아빠라는 작자는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아니, 이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을 남발해도 화가 풀리지 않는 류의 분노였다.

자신의 사진에 아픈 부분에 표시하는 부분이라든지,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이든이가 쓴 글을 보면서 마음이 아렸다. 아빠와 새엄마와 있어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이딴 글을 큰집으로 보내기 위해 그 여자는 이든에게 글씨를 가르쳤다. 이든은,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을 텐데 하하하 웃는 게 뭔지 알까. 눈이 빨개졌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나는 책을 덮었다. 더 이상 읽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읽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지하철이었다.



이웃들은 이런 집안을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 책에는 화가 나지 않는 이유가 없었다. 나를 화나게 하기 위해 미치게 만든 책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나는 분노에 가득 찼다.

남의 가정사, 내가 간섭하면 뭐하나. 라는 생각을 나도 했고, 우습지만 지금도 한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그렇기에 오해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아이였다. 내가 아는 아이라는 존재는, 사랑으로 키워주고 감싸서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가장 연약한 존재였다. 잘못이 있다면 혼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도대체 그 아이가 뭘 잘못했나. 이든은 자신이 혼나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몰랐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울면 자신 때문에 운다고 생각을 하고, 누군가 자신을 보고 화를 내면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 어린아이에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 머리가 복잡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어디선가 이런 일이 여전히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서다. 허구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절망이었다.

 



‘나도 마른자리에 누워봤으면……. 물기 없는 자리에.

그 와중에도 이든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살기 위해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몇 번이나. 대견하고 기특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올 곳은 연립주택뿐이라는 사실이 이든도, 나도 처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손이 따뜻했던 그 여자를, 미련하게 용서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용서가 최고의 미덕은 아닌 것 같아서. 용서라는 건, 용서를 받으려고 준비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써두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마음이 넓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든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나는, 인과응보를 절절하게 믿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모두 어떤 형태로든 벌을 받기를 원한다.

이든의 소원은 단 한 가지였다. 마른자리, 물기 없는 자리에 누워봤으면. 하는 것. 끝내 이든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작가가 이든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물기 없는 자리에서 매우 잘 지내고 있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한다. 정말 진심으로. 그리고 어린 날의 이든에게 정말 잘했다고, 어른이 된 이든이가 어린 이든을 힘껏 껴안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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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인성이다 - 청소년을 위한 긍정 대화법
후쿠다 다케시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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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의 옆에 있으면 덩달아 나도 선한 기운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인다. 나도 그런 고운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실제로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은 못 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2017년 4월, 제주에서 만난 대령의 부인을 보고 나서였다. 물론 그분의 속속들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3박 4일 동안 함께 다녀본 결과, 참 ‘닮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언행이 무척 인상깊었다. 수수함과 단단함이 함께 엿보였던 참 소녀 같던 분_ 남편의 직급이 본인의 직급인 몇몇 사람을 만나고 나니 그분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다니던 시간도 많았는데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건 조금 아쉽다. 난 지금도 J와 대화를 할 때에 그분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게 건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분. 어떤 단편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해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말투는, 말은,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들은 그 사람의 인성이라고 나도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근래 두 달 동안 나는 조금 취약해졌다. 미세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다름 아닌 회사 사람들에게서. 어디에나 다 그런 존재가 있다고, 특히나 조직생활 내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나는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넷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내게는 없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와, 저렇게 말하는 사람도 돈 벌겠다고 조직생활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이곳은 내가 있던 어떤 곳들 중에서도 ‘어린’ 조직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어린 조직에 자꾸만 속해가려고 워밍업 중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면 안 되지, 라는 생각으로 근래에는 잘 읽지 않는 자기계발을 찾아 읽고 있다.

입사를 한지 나흘째 되던 날, 자격지심에 가득 차 보였던 “내가 우스워요?”라는 말을 했던 이 대리는 더 이상 내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과장이랍시고 나를 휘어잡으려고 했던 곽 과장 역시 이 작은 조직에서 직급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대표님과 직접 직급에 대해 협상을 하겠다고 말을 하며 입을 막았다. 모든 직원에게 반말을 하지만 유독 내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더욱더(...) 편하게 말하던 손 이사는 내게만큼은 경어체를 쓰게 되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윤 실장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윤 실장은 내게 제대로 구축된 회사가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지만, 그런 윤 실장은 내가 회사 분위기에 윤활유가 되기를 내심 바랐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사람이 되지 못했고, 그런 압박이 좀 심해지면서 나는 이 회사의 며느리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우습지만, 이 모든 일은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를 퇴사할 생각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 나와 말이 통하는 다른 직원들이 있고, 대표님의 마인드가 내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며, 무엇보다 내가 배워볼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다스리기 위한 첫 번째 책,‘청소년을 위한 긍정 대화법’이 부제로 붙은 <말투가 인성이다>는 손바닥만한 책으로 작고 얇지만 단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긍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1. ‘상대’와 ‘듣는 사람’을 구별한다는 점이었다. ‘상대’는 단지 그곳에 있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상대’가 ‘듣는 사람’인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 정말 와닿았다. 가끔 실장님은 “-해주세요.”라고 말하는데, 나는 처음에 실장님이 전화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내게 하는 말이었는데, 나는 정말 내게 하는 말인 줄을 몰라서 두 번 말할 때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리마다 파티션이 쳐져 있고, 나도 내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사람이 날 쳐다보지 않고 뜬금없이 말을 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말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실장님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니니 저를 부르고 말씀해달라 부탁드렸다. 본인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할 때는 더더욱. -아... 내가 회사에서 뭔가 요구하는 게 많네. 내가 까탈스럽나.

2. ‘왜 경어가 있는가’에 대해서 124. 커뮤니케이션이란 서로 상대를 의식하면서 이해하고 존중하며 행하는 대화로 상대에게 정중하게 말하는 표현 방식이다. 나 역시 이사님께 경어를 써달라고 요청했을 때, 전혀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왜? 라는 반응_ 하지만 계속되는 불쾌함으로 인해, 경어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높이면서 상대도 함께 높여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며 경어를 써주기를 완곡하게 표현했다. 대부분 친하게 되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하면서 말을 놓게 되는데, 나는 그런 문화가 별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같거나) 먼저 말을 놓으라는 말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가 내게 “말을 놔도 되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 상대가 나와 친밀하다고 하면 yes, 아니라면 no. 그런데 가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자기가 듣기가 더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게 말을 놓으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얼마가 어리든 무조건 나는 경어체를 쓴다. 그래야만 그만큼의 예의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기 위해 경어를 쓴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은 것이고, 또 나는 그게 더 편하다.





읽고 생각을 좀 정리하다가,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J와의 관계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부부 필독서를 읽으면 나만 읽으니 나만 노력해! 라는 생각처럼, 이 책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필독서였으니까. 나는 여전히 타인들의 말들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혹은 나도 저런 점은 배워야지. 라고. 하지만 나를 해치는 말들에 대해서는 내가 기꺼이 그것들에 대해 응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도로써. (물론 내가 완곡한 표현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회사의 책장에 끼워놔야겠다. 누구라도 읽겠지... 좀 읽었으면... (휴)

나는 오늘 나의 인성을 고운 언행으로 조금 더 단단하게 다져봐야겠다.

 





오탈자 64. “괜히 말을 걸어나” ▶ “괜히 말을 걸었나

오탈자 67. 중고등학교 여학생 중에서 B와 같은 타이프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타입이나 성향으로 고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타이프가 뭔가 했다. 아니면 말고.

오탈자 81. P67과 동일 (타이프 ▶ 타입, 성향)

오탈자 128. 대단힌 정중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대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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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마주 창작동화
안느 방탈 지음, 유경화 그림, 이정주 옮김, 서울초등국어교과교육연구회 도움글 / 이마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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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나는 특별한 아이니까요. 이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았어요. 우리 부모님이 종종 말했거든요. 하지만 왜 그토록 내가 ‘특별하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아이들이 자기 부모님에게는 특별하지 않나요? 나는 그렇다고 확신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별하게 특별한 것 같아요.

​이 책의 소개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을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손에 쥐고 읽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특별한 아이, 발랑탱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에는 엄마가 학교를 항상 데려다주었지만, 올해 개학을 하고부터는 학교를 혼자 가보라는 아빠의 말에 따라 혼자 학교를 가게 된 발랑탱. 현관문을 열고 대문까지 열네 걸음, 아니 열세 걸음 반에 가고, 골목 끝까지는 백여든아홉 걸음에, 정류장까지는 이백일곱 걸음에 간다.
정류장에 도달했는데 버스가 조금 빨리 왔는지 정류장에 도착해있다. 바퀴 구경을 좋아하는 발랑탱은 버스의 바퀴를 구경하다가 다시 학교를 가려는 찰나, 노란색 비옷을 입고 어깨에는 가방을 멘 아줌마가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갑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발랑탱의 고민이 시작된다. 못 본 척하고 학교를 갈까, 지갑을 주울까 고민을 한 발랑탱은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이후로는 경찰서를 찾기 위한 발랑탱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1인칭 시점으로 ‘나’는 발랑탱이다.

이야기만 읽어보아서는 발랑탱이 도대체 어디가, 왜 특별한지 나와있지 않다. 다만, 부모님의 “발랑탱, 너는 특별해.”라는 말과 교장선생님의 “특별히 관리를 해야 하는 특별한 아이예요.”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볼 때, 발랑탱이 특별한 이유는 어딘가 장애가 있어서겠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발랑탱은, 자폐증을 가진 아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책 소개만 보고 발랑탱이 자폐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릴 때까지도 발랑탱이 자폐아라는 사실을 상기를 해야만 했을 정도로 알아채지 못했다.


6-7. 엄마는 왼쪽 뺨부터 시작해 양쪽 뺨을 번갈아 가며 한 번, 두 번, 세 번, 뽀뽀를 해 줘요.

나는 현관문을 열고 길 쪽으로 나 있는 작은 정원을 지나가요. 열네 걸음 만에 대문에 가요.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열세 걸음 반이에요. 열네 번째 걸음은 다른 걸음보다 보폭이 좀 좁았거든요.

9. 골목 끝까지 가려면 백여든아홉 걸음을 걸어야 해요. 우선 옆집까지 세어 보면 서른일곱 걸음이고, 정원이 큰 페로 아저씨 집까지는 일흔두 걸음이에요. 그리고 여든 걸음째 길모퉁이에 있는 소제르 아줌마 집 대문에 다다라요.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본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물론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러는 경향이 있음도 역시. 하지만 나는 내가 어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지만, 길을 걷다가 불구가 되어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내가 아는 세상은, 안전하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적어도 자폐를 가진 아이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보게 된 건, 내 주변에 그것도 가까이에 그런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J와의 첫 만남에서 역사에 대해 질문을 해보라고 했을 때 모든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던, 내가 아는 초등학생 중 가장 똑똑한 아이. 나의 외삼촌의 둘째 아들 이야기다. 삼촌과 숙모의 친인척에는 병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둘째 상민이는 선천적으로 자폐를 가지고 태어났다. 삼촌은 경제적인 풍족함을 누리지만, 상민이의 치료비용으로 대부분의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삼촌은 상민이는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몫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고 삼촌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민이를 믿고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삶의 공허함을 나타냈다.

J가 이전에 그런 장애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처음에 청첩장을 주러 직접 방문한 외갓집에 온 가족이 다 모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민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쉽게 상민이가 그런 아이라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색안경을 끼고 볼까 봐. 이전에는 자폐를 가진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직접 그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내가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온기 가득한 대화가 오갔다. J는 일부러 상민이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역사에 대해 문제를 내라는 상민이의 말에 J는 상민이가 알만한 것만 내지는 않았다. 일부러 어려운 것도 내고 상민이가 맞히지 못하면 그런 상민이를 놀리기도 했다. 나는 그런 J가 고마웠다. ​어쩌면 마음을 써서 배려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넌 나와 달라’라는 것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상민이 역시 그런 J의 마음을 아는지 매형이라고 말하며 잘 따랐다. 한-참이나 어린 처남이 생긴 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주변에 이런 특별함을 가진 상민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조금은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을 것도 있는 인간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것은, 신체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결정짓는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의 신체는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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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나는 이혼을 상상하곤 한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상상하기보다는, 그와 함께 살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다. 대부분 마음이 공허할 때 그렇다. 나의 감정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쪽은 언제나 그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일기 때문이다. 내가 서운함을 느끼거나 서러움을 느끼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대부분 그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우리, 각자 살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어렵지 않게 상상해본다. 하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결혼한 이후로 그와 각자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상상을 해보는데,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은 내가 각자 사는 삶에 대해 불안정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는 결혼한 이후로 내게 ‘안정’이라는 큰 쉼터가 되었다. 나는 그이가 잘 가꾸어놓은 초원에서 양분을 얻고 쑥쑥 자라는 어린 사슴이다. 그러한 사실이 내게 큰 위안과 감사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자고 있는 그의 손을 찾는다. 그러면 그는 잠결에 내 손을 더 꽉 그러잡는다. 그의 온기에서 나는 평온을 되찾는다.




이 책을 읽을 무렵도 그때였다. 감정이 폭발적으로 일던 봄. 봄은 그렇다. 풀릴 것 같은 날씨이면서도 춥고, 덥고, 습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사람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분명 봄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도 언젠가부터 봄을 멀리하게 되었다. 나의 감정이 봄의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숨의 <이혼>은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중 하나였다. 책의 제목은 수상작인 <웃는 남자>에 실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혼>을 펼쳤다.




책에는 이혼을 한 사람, 이혼을 앞둔 사람, 이혼을 하고 싶어 했지만 못한 사람이 나온다. 보면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특히 부부로서의 오십삼 년의 삶이 그러했다. 아…… 오십삼 년이라니. 자그마치 오십삼 년. 요즘 이혼은 무척 쉬운 것처럼 말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125. “엄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엄마가 그랬잖아. 아버지하고 이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모르겠다…….

“왜 몰라?

“그러게…….



꼭 내 아빠가 그랬다. 또 내 엄마 역시 그랬다. 둘 모두 그랬는데도, 그랬다. 둘은 삼십 년을 넘게 부부로 지내왔지만, 여전히 맞추지 못하는 퍼즐이다. 그리고 맞출 수 없는 퍼즐이기도 하다. "너네 아니었으면 네 아빠랑 벌써 이혼했어.”라는 말을 나는 듣고 자랐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잘못한 일이 있다면, 결혼을 하기도 전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면서 나와 내 동생은 어쨌든 몸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우리 남매는 앞가림 하나는 누구보다 잘했다. 내 동생은 중간에 힘든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건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나는 우리 집이 꽤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었다. 나는 오히려 아빠에게 엄마와 이혼을 하라고 말을 한다. 엄마와 사이가 괜찮았을 때에도 아빠와 이혼하라고 말을 했다. 그냥 둘은 서로 각자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남매도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서로 각자 편하게 사시는 삶을 권해드리고 싶었다.





125. “엄마, 지금 감정이 어때?

“응……?

“엄마가 지금 느끼는 감정 말이야. 슬퍼?

…….

“행복해?”

“…….”

“아니면 화가 나?

“…….”

“막 화가 나지 않아?

“모르겠어…….

“화가 나 미칠 것 같지 않아?

그러나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녀였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법원에서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이혼숙려기간이 지난 4주 후, 법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쪽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보다 엄마는 이혼을 훨씬 더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울었던 것도 엄마고, 법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연락을 끊은 것도 엄마라고 했다. 나는 중간에서 화가 났다. 정말, 책의 민정처럼 화가 나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내 부모가 아니라 나였다. 나 역시 더 이상 도울 수 없다고, 민정처럼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뱉은 말에 대해 나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미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후회하면 안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는 각자의 삶은 각자가 살아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삶은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는 것도, 내가 신경을 쓰는 것만큼 상대는 (그게 아무리 부모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내 경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본인 삶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명치가 아팠다. 숨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 젠장할.



119. 결혼해 사는 내내 수억 광년 떨어진 행성처럼 서로 겉도는 느낌이었거든. 주말부부로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새벽에 잠에서 깨, 그 사람 손을 슬그머니 그러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옆에 누워 잠든 그 사람이 이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고멀게 느껴져서.


가끔 나는 그가 내게서 조금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 역시 그럴 때마다 그를 지그시 바라보곤 한다. 그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왜? 하고 물음을 던지지만, 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당신이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라고 하는 말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이해를 잘 하지 못하고 토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게 멀어질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렇기에 그런 행동을 일부러 하지 않았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는 내게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오 년을 함께 살 맞대고 살다 보니, 나의 행동들에 물음표를 그리며 나의 행동을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점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 휴지를 가져다주고, 내가 그의 손을 찾으면 손을 더 꽉 잡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타서 내 앞에 놓아준다.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고 있다.





132.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던 날 철식이 그녀에게 물었다.

“나는 고아가 되는 건가?

“고아?”

그녀가 되물었다.

“고아…….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녀는 물었다.

“그게 마흔일곱 살이나 먹은 남자가 할 말이야?

철식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고아라고? 미친놈.

나는 이 책을 한 달 사이에 세 번을 읽었다. 감정을 그러잡고 싶을 때마다 읽은 것은 아니었고, 단편들을 순차적으로 읽지 않았기에 읽은 때가 두 번이었다.

아마 그 언젠가 또 숨구멍을 짓눌러 올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하게 미칠 것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다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

부부는 결혼했다고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란걸, 그렇기에 세상에 이혼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색안경끼고 보지 않을 수 있을 수 있는 마음도 동시에 생겼다. 나와 그는 오늘, 조금 더 부부에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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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 들으면 두 번 말하라 - 영리한 인생을 사는 50가지 기술
와카오 히로유키 지음, 김현영 옮김 / 마음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에 이끌려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영리한 인생을 사는 50가지 기술’중 하나에 불과했던 <여덟 번 들으면 두 번 말하라>였다. 각 50가지 제목들에 한 장 반 내지 두 장 정도 분량의 설명이 부가되어 있다. 이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 모두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이 책에 대해 진부하다는 이유를 대며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던 이유를 대부분 차지하는 것은, 50가지 중 겨우 1을 읽을 때였다. ‘당신은 오늘, 죽는다’라는 강렬한 부분에서 고백하기를, 책의 저자인 와카오 히로유키는 마흔다섯에 중증 급성간염으로 생과 사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삶의 유한성을 깨달은 것.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나서 삶의 본질은 우리가 아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그러면서 조금 경계했던 것은, ‘삶은 유한하기에 욜로(You Only Live Once)처럼 살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러지는 않았다. 내가 사는 삶에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면 핵심이었다.

나는 삶이 무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삶의 유한성을 쉽게, 또 자주 잊는다. 삶의 유한성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 필요가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열심히 살아내고 싶기도 한 이중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이 당장 나에게 다가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근래에 자주 생각하는 것 중 하나를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나는 오늘 부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어쩌면 불구가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나는 오늘 안전한가?




19. 내일이 되면 오늘보다 조금 더 늙습니다. 앞으로 남은 긴 인생에서 오늘의 당신이 가장 젊습니다. 무언가를 할 생각이라면 오늘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공부였다. ‘5월에는 하던 공부를 마저 해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시작하기가 싫을까. 나는 의지박약인가.’하며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가장 젊은 날, 나는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그것을 하자!’ 결심했다. 그간 용케도 잘 미뤄왔다. 나는 6월에 볼 시험을 5월에 접수할 것이다. 나에게 공부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는, 안타깝지만 조만간 사라지고 말 것이다.




108. 밝은 미래를 건설하고 싶다면 일단 배워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배움을 가까이하면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나 역시 무척 공감하는 말 중 하나. 나이가 많든 적든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의지, 용기만 있다면 그것은 재미없는 삶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차피 나 그거 한두 달밖에 못할 것 같은데… 내가 그걸 배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은 ‘고작 한두 달이라도 내가 재미있게 배웠으면 됐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즐겁게 배웠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으면 됐다. 그에 대한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나니까.

게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90세 노인의 수기>를 읽으면 이제 막 서른을 지난 내가 이 세상에 배울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하기 싫을 때 나는 자주 그 글을 찾아서 읽는다. 그럴 때면 나는 몹시도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106. 살다 보면 한자리에 서서 한 방향으로만 안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집에 갇히고 맙니다. 그럴 때는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보세요.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관점을 바꾸는 일이 몹시 괴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관점을 바꿔 생각하는 것보다 타인의 말을 듣고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며 수용하는 것이 내게는 조금 더 쉬운 일이다. 그것은 타인과 나의 다름을 인정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람의 관점을 나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지기에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관점을 바꾸는 일이 나는 무척 힘들게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할 정도. 내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나 내게 피해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쉽게 관점을 바꾸거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소신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어린 나이에 고집을 넘어 아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과의 대화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부분을 타인을 통해 듣고 싶어 하는 욕구를, 나는 '아직' 가지고 있다.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아가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침을 즐겨야 한다고 (요즘은) 생각하고 있다.


209. 언쟁이 아니라 대화를 해야합니다.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208. “나는 말싸움을 하지 않는다. 말싸움에서 이긴들 상대방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가치관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편이 아닌데, 내게 그는 절대적인 타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일까. 나는 그와 대화를 하다가 언쟁으로 변질될 때가 있다. 내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그가 내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그런 언쟁이 발생하는데, 특히 내 쪽이 좀 더 많이 심하다. 각기 개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와 나의 모든 것이 맞을 수가 없는데도, 나는 종종 그것을 잊는다. ‘그는 나와 같은 방향에서 나와 똑같이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으면 괜스레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가 독선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나의 의견이 다를 때는 나는 어쩐지 내가 무척이나 독선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째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맨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그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을 진부하고 식상하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사는 거 아닌가. 사실 이 책의 저자인 와카오 히로유키 역시 이렇게 써놓고도 모든 것을 다 지키며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본질을 알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깨우치기가 쉽다는 것. 두 해 전부터 내가 가슴속에 담아두고 매번 꺼내어 보는 말,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처럼. 근래의 나는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상실된 상태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봐야지.


ps. 하지만 책의 제목은 좀 생뚱맞다. 예를 들면, 단편집 중 하나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쓴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고 그 부분을 특히나 임팩트 있게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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