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14
다자이 오사무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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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한 줄도 적을 용기가 없어서 우선 독서노트를 작성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생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수고를 들여가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고 한동안 방황했다. 다른 책을 곧바로 읽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초점도 희미해졌다. 그저 ‘한 남자의 우울한 수기’라고만 생각하게 되기를 바랐는데, 서평을 써야 하는 지금까지도 그러질 못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무방비 상태에서 소꼬리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맛있게 무언가를 목으로 넘기고 있는데 누가 왈칵 목을 잡아 비트는 느낌이기도 하다.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요...



1. 보기 싫은 주름을 얼굴에 만들고 있는, 이상한 표정의 소년

2. 상당히 교묘한 미소를 띤, 이상하게 잘생긴 남학생 (왠지 모를 악몽과 같은 섬뜩함)

3.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이상한 얼굴의 남자



서평을 쓰기 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부러 찾아보았다.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이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11. 너무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로서는 인간의 삶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6.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제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 해도 인간을 제 마음에서 끊어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겨우 간신히 인간과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필사적인, 그야말로 1,000번에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육교를 오르내리고 지하철을 타는 행위들에 대해 고상한 놀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자주 했던 그는, 공복감과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지냈던 그는,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은 기억은 없지만 배가 고픈 체한 적이 있는 그는, 실질적인 괴로움, 그러니까 단지 먹고사는 일만 해결되면 그걸로 끝나는 괴로움이 뭔지 몰랐던 그는, 그는 주변 사람들과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를 몰랐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로 익살을 선택했다.


그는 인간에게 호소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그였으니까.

호소를 하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결국 처세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그럭저럭 세상에 통할 논리를 들이대면 져 버리는 게 고작이니까.




이 부분을 읽으며 참 외로웠겠구나. 왈칵, 방치해두었던 마음이 무방비하게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내려앉은 마음이 좀처럼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묵직하게 내려앉아 명치가 아렸다. 단 몇 시간 만에 읽을 수도 있는 책이었지만 쉬이 읽을 수 없었다.

18.어찌 되었든 사람들을 웃기면 된다. 그러면 이른바 인간들이 말하는 ‘삶이라는 것의 바깥쪽에 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람이고 텅 빈 채로 실존한다.

학교에서 그는 장난꾸러기, 익살꾼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들에게 익살을 서비스하는 편이 더 편하니까.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철봉 연습을 하며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은 그에게 (백치라고 생각했던) 다케이치가 슬며시 다가와 말한다. 일부러 그랬지?” 그때 그가 느꼈을 공포감은 허를 찔린 기분보다 더한 경악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그만의 ‘인간과의 소통’이 단절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지 않았고, 그것을 계기로 다케이치와의 관계를 맺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상처 입기 쉬운 내면을 쉽게 내비쳤다는 부분에서 나는 그가 다케이치와의 우정을 오래 간직하길 바랐다. 하지만 도쿄로 이사를 가면서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도쿄로 옮기게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다케이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 여자가 아닌 우정으로 부를 수 있는 친구는 다케이치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다케이치가 그에게 두 가지 예언을 한다.


아마 너한테는 여자들이 홀딱 반할 거야.

너는 위대한 화가가 될 거야.


요조는, 그 예언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 예언은 짧은 이야기 속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니까.

여기까지 쓰다가, 한 가지 새롭게 생각해본다. 이제까지 요조를 향한 다케이치의 예언이 맞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조가 그 예언에 따라 맞추어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예언에 꼭 맞게.




도쿄로 간 요조는 자신보다 여섯 살이 많은 미술학도를 만나게 된다. 호리키 마사오. 요조는 그로부터 술과 담배, 여자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아니지만, 요조는 그를 퍽 믿고 따른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신뢰나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던 그가 그를 따른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히로시마가 고향인 쓰네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호리키는 쓰네코를 ‘궁상맞은 여자’라고 칭한다. 이런 궁상맞은 여자와는 키스도 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덩달아 요조 역시 쓰네코를 궁상맞은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자신의 처지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미약하게나마 쓰네코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전 세 개를 향한 쓰네코의 “어머, 겨우 그것뿐인가요?”라는 말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굴욕감을 안기게 되고 마는 것이다. 요조와 쓰네코는 동반자살을 꾀했고, 함께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쓰네코는 죽었고, 요조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기소유예(起訴猶豫).


 



그러면서도 그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넙치네 집에 얹혀있다가 (정확히는 넙치가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가라고 했으면 인생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넙치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요조의 학비를 대주는 것처럼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쓰여있다.) 다른 여자들에게 빌붙어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 나오기는 하지만, 다케이치가 말한 여자들이 홀딱 반한다는 말은, ‘돌봐준다’라는 말과 상통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번에는 이혼녀인 시즈코였다.




그런 그에게 호리키는 말한다.

“너도 이쯤에서 여자 등치는 짓은 그만둬.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요조는 ‘세상이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이다.’라고 역설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호리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누군가에게 빌붙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이라니, 게다가 그것에 대한 어떤 부끄러운 감정도 느끼지 못하다니. 이건 기생충과 다를 바 없어. 이쯤부터 내가 요조에게 느낀 동정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즈코와 시게코의 대화를 듣고 그는 그들의 행복을 망칠 수 없어 발길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결국 그가 향하는 곳은 교바시 근처에 있는 스탠드바 2층에서 또다시 여자에게 기대어 사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 즈음 술을 끊으라고 말하는, 작은 담배가게의 하얀 얼굴에 덧니가 있는 열일고여덟 살의 아가씨 요시코와 결혼하게 된다.


117. 그로 말미암아 얻은 기쁨은 결코 크지 않았지만, 그다음 찾아온 슬픔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뛰어넘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역시 저에게 ‘세상’은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결코 그런 단판 승부로 결정되는 손쉬운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시코가 왜소한 장사꾼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물을뿐이다.

132.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될까요?

132. 과연 천진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134. 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될 수 있는가.



그에게 있어 요시코는 신뢰였다. 나는 생각한다. 신뢰, 신뢰는 긍정적인 단어인가, 부정적인 단어인가. 다시 바꿔 생각한다. 신뢰는 희극 명사인가, 비극 명사인가. 책을 읽으면 신뢰는 오로지 비극 명사일 뿐이다. 오로지 그것으로밖에 명명하지 못한다. 그 이후로 요조는 모르핀에 중독이 되고 만다. 그런 그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넙치와 호리키, 그리고 요시코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그는 제 발로 폐결핵 요양원을 간다.




148.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 그는 이를 무저항이 죄냐고 물었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신뢰는 죄가 될까요?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에 신뢰를 쏟아부었다. 그는 제 발로 갔다. 이는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 때문이었다.

그 다정한 미소 하나에 요시코는 완전하게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매장되고 만 것이다. 그의 삶은 신뢰로 가득 찼다가 완전하게 패배했다.


그가 간 곳은 폐결핵 요양원이 아니라 정신 병원이었으니까.




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될까요?


149. 이제 저는 더 이상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인 모양입니다.



아아, 요조.




151.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나게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그의 불안했던 생은 그렇게 끝이 난다.

하느님같이 착했던 사람의 생.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생을 위로하기 위해 술을 한 잔 마셔야겠다.

 

 

 

PS.


107. 세상. 어쩌면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게다가 그 자리에서의 투쟁을 그 자리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때 그 자리에서의 단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대의명분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모든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이었고,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개인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문장은 여러 번 나눠서 읽었다.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이토록 모순적인 정의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만들어가는 세상,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개인. 개인의, 저마다의 세상. 그들의 세상. 그들의 세계. 그들이 믿는 것들이 현란하게 가득 찬 우주.







PS2.


147. “아냐, 이건 이제 필요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무엇을 권하는데 그걸 거절한 일이 내 생애에 그때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무엇을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이나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어색한 금이 생길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저는 반미치광이처럼 원하던 모르핀을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거절했습니다.




어쩌면 요조는 현대인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

그로 인해 불행을 느끼는 현대인

거절을 해도 괜찮아.

너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

그것이 진정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너를 위해서

네가 생각하는 부당한 것에 대해 거절해도 괜찮아.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ps3.

요조, 혹은 다자이 오사무.

당신의 실격은 무효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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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十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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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하고-) 아, 가을이다.  가을에는 어쩐지 시 한 편을 외고 싶어진다. 현실은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닐 궁리하느라 책 한 권 겨우 읽을까 말까인데, 시를 왼 다니. 너무 웃기지만, 가을에는 확실히 시와 가까워지기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쓸쓸해서라거나 외로워서라거나 적적하다거나 하는 불유쾌한 단어들 때문이 아니라 높다란 하늘이 그렇고 적당한 뜨거움과 따듯함을 가진 가을볕이 그렇고 쾌청한 날씨가 그렇고 선선하게 부는 다정한 바람이 그렇고 산뜻한 공기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읽다만 시를 필사하는 일을 가을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했고, 이전에 사두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를 다시 집어 들기도 했으며, 이번에 윤동주 시인 외 16명 시인의 시가 실려있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는 시집을 집어 들기도 했다.




나의 배우자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라고 조금 우습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이 얼마나 시적인 말인가. 나는 이미 저렇게 표현한 J씨 때문에라도, 자꾸만 저렇게 읽게 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책에는 윤동주, 박석, 정지용, 박인환, 노천명, 김영랑, 윤곤강, 박용철, 이장희, 이상화, 이용악,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다카하먀 교시, 마쓰오 바쇼, 사이교, 가가노 지요니, 이케니시 곤스이의 시가 실려있는데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시 마다마다에 수록되어있다. 아니, 어쩌면 그림 한 점 한 점에 시가 수록되어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장 첫 부분이었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함께 볼 수 있었다는 점인데, 아 -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十月 부분은 이 부분이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이 첫 부분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거의) 몰랐던 고흐의 작품들도 한 점씩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이후로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직접 마주하니 이렇게 예쁜 시화집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열두 권의 시화집을 모두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생기고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것은 특히나 탐이 난다. 아직 十一月, 十二月은 출간되기 전인데, 어떤 화가의 그림이 실릴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르누아르나 칼 빌헬름 홀소에나 모네의 그림으로는 출간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텐데, 하고 희망을 걸어본다. (흠, 모네나 홀소에는 몰라도 르누아르의 그림은 사실, 11월이나 12월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달밤ㅡ도회(都會)

  ​        이상화

먼지투성이인 지붕 위로

달이 머리를 쳐들고 서네.


떡잎이 터진 거리의 포플라가 실바람에 불려

사람에게 놀란 도적이 손에 쥔 돈을 놓아버리듯

하늘을 우러러 온 쪽을 던지며 떨고 있다.

풋솜에나 비길 얇은 구름이

달에게도 날아만 들어

바다 위에 섰는 듯 보는 눈이 어지럽다.


사람은 온몸에 달빛을 입은 줄도 모르는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예사롭게 지껄이다.

아니다, 웃을 때는 그들의 입에 달빛이 있다.

달 이야긴가 보다.


아, 하다못해 오늘 밤만 등불을 꺼 버리자.

촌각시같이 방구석에서, 추녀 밑에서

달을 보고 얼굴을 붉힌 등불을 보려무나.


거리 뒷간 유리창에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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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 진지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자기 탐구 놀이
롤프 도벨리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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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의심은 나로 하여금 자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내어서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어쩐지 내게 던지는 질문이 무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아무래도 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골몰히 생각하면서도 내놓은 답에 대한 충분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심심풀이로 100문 100답을 했던 것을 기억해내곤 그때보다는 깊이 있는 질문지를 직접 만들기도 해보기도 했었는데, 그 질문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예속된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질문이 돌고 도는 느낌이기도 했다.

게다가 특히나 근래에는 하고 싶었던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사이에 있는 나는 즐거우면서도 자괴감에 쉽게 빠지는 생활들을 하고 있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시간들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나의 배우자인 J는 내게 끊임없이 “요즘 일은 좀 어때?” “힘들다면 뭐가 제일 힘들어?”라면서 먼저 말을 건네어준다. 그런 질문들은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거나 할 때보다는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어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J가 건네는 그런 질문들에 생각을 하고 답을 하면서 혼자 명상을 할 때와는 다른 정돈되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한다. 게다가 그가 주는 피드백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어서 늘 도움을 받는 편이다.




그러다가 롤프 도벨리의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질문은 조금 있는, 단순히 자기 계발서에 지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서 펼치는 순간, 약간의 신음을 내뱉게 되었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없었고 모든 것이 질문투성이었다. 단지, 질문 속에 롤프 도벨리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정도?


질문들의 성향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것까지 점진적으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질문들에 답을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대부분 즐거웠다. 내가 미처 생각하고 있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을 내어 질문들에 답하고 있자니, ‘아, 나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새로운 발견 같은 것도 깨달았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나는 윤리’적인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구나 -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평소에도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내 안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새삼스레 놀랐다.
 

 


누군가에게 보일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어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들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하고 이후에는 그 답변들을 읽고 있는데, 이게 나중에 나에게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2018년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구나. 하면서 조금 발전된 나를 볼 수도 있을 테고 침체되어있거나 퇴보하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지. 아직 이 책에 있는 답들에 대한 답을 전부 다 한 건 아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답을 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싶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최고로 꼽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 역시 끊임없이 이어갈 생각이다. 그럼으로 인해 나의 주체를 재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또 나라는 인간이 삶을 사는 데 있어서 타락하는 것에 경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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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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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라는 문장을 이 책의 서평 첫 머리에 꼭 쓰고 싶었다.



5년 사이에 거주지가 자주 바뀌었다. 대부분의 생을 대전에서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평택으로, 진주로, 대구로 오가는 동안 내가 느낀 결핍들은 때때로 나를 잠식시킨다. 이는 누군가와 비교해서 생기는 결핍이 아니라 내부의 모든 감정들이 충돌하여 일어난 결핍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나는 앞으로 남은 생의 20년 정도는 더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러한 방법을 잘 모르고 있어서 여전히 힘이 든다고 자주 느낀다. 지난번에 겪어봤으니 이번엔 괜찮겠지, 지난번에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좀 덜 힘들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보기 좋게 예상과 빗나갔다. 그때는 그때라서 힘들었고, 지금은 지금이라서 힘들었다. 그때는 그때만큼 힘들었고, 지금은 지금만큼 힘이 든다. 그때도 많이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곱절 힘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어딘가에 정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 적이 있었다. 여행 다니듯 삶을 살면 정말 좋겠다. 나는 여행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지만 그런 마음은 항상 그곳에 정착하고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낯가림이 많은 사람이었고,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게 문제일지도 몰랐다. 이사를 다니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결국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귀결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동안 내가 긍정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지 않아도 되네. 얼마만 더 이곳에 살면 되겠다. 하는 것들이었는데, 특히 지금이 그랬다. 뭘 해도 마음이 붕 떠있는 것 같은 나날들을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몇 년만 더 참으면 된다. 라는 생각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처음보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습지만, <이방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운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힘겨웠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한국에서 지역과 지역 사이를 오가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저들은 어떨까 - 하물며, 모국어가 아닌 그곳의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겠으며,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과연 생길까? 하는 것들에 눈이 시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라는 제목을 보고, 마음이 저렸다. 꼭 나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전 회사에서 안건을 낼 때 “그 지역에서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된다거나, “OO씨가 사는 곳은~” “OO씨, 다음번엔 어디로 가요?” 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내내 주변인이었고,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뼈가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를 읽으며, 나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겠어 - 라는 강한 집착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찾지 못한 숙제의 답을 간절하게 찾고 싶었던 심정의 나는, 여전히 한 마리의 어리고 여린 사슴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




책에는 9편의 단편이 실려있었다.

<히어 앤 데어> <동국> <라스트 북스토어> <천천히 초록> <로사의 연못> <분홍에 대하여> <압시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로드>


체류 기간 2년 동안 거주지를 정해야 하는 동희, 이제야 자신을 찾기 시작한 작은엄마 동국, 헌책방에서 판소리 LP판을 보고 반가워하는 ‘’, 무슨 연유에선지 우울증에 걸린 올케 연희(개인적으로는 안아주고 싶은 인물), 총성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 거의 매일 물 뿌리듯 비가 조금 오고 무지개가 자주 드는 신비한 곳의 검은 연못, 검은 물, 검은 흙 속에 살고 있는 듯한 부부, 마음에 쏙 드는 단어들을 속삭였던 남편과 헤어진 뒤에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로 도망치듯 온 세레나, 생부가 써놓은 ABCD가 이름이 된 압시드,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몰라서 그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 둥지를 떠나 살다가 엄마의 집으로 향하는 삼 남매, 진, 범, 명




단편 중 좋지 않았던 단편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각기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의 단편을 두고서도 오래도록 생각할 수 있음이 실로 반갑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찾던 답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고 나를 쓰다듬어주거나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그려낸 이야기를 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책 뒤편에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보고, 울컥,한 마음을 삼키었다.



늘 그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떠나야 하는 나는, 그곳에서의 삶이 힘들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퇴색되고 급기야 미화되고 있는 것을 종종 느꼈다. 이제 익숙해졌으니까, 하는 마음이 더 컸던 탓도 있었다. 이제 살 만한데, 또다시 어디론가 가야 한다니 - 라는 생각만으로도 아득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막상 마주치고 나면 그러한 마음들은 자주 힘을 잃어버렸다. 어느 지역에 잠시 임시로 거주한다는 생각을 언제나 가지고 있던 탓에 완전한 마음을 줄 수도 없었고, 나는 자주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나는 이번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것이라도 붙잡고 싶었으나 그런 노력들이 허공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급기야는 나는 이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결론까지 내는 상황까지 이르며 주말부부를 먼저 내뱉기도 했다. 그런 나를 잡아준 것은 J지만, 한편으로는 J 때문에…라는 원망과 미움이 커져가던 나날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을 한 단계 내려놓고 유심히 관찰한다. 그러면 그 여느 때보다 선명해지고 분명해진다. 내가 살고 싶은 삶과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하여. 그러면서 이러한 삶들은 결국, 내게 주어진 기회라고 여기게 된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책에서, 우리는 어떤 식이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부분에서 나는 이민을 간 사람과 역이민을 온 사람과 한국에서 사는 사람 모두 각자의 고충을 안고 있구나. 누구나 다 고립되어 있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시간들을 보냈다. 익숙하다고 사랑한 것이 아니고, 낯설다고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모든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들을 내비쳤고, 극렬히 미워하는 시선들을 내리꽂았다. 일부도 전체로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부라고 부른다는 그 말을,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는 그 말을,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대해 일부에게도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는 그 말을 나는 분명하게 지지하는 바이기에 여전히 내가 이곳에서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느낀 것들을 뒤엎기는 힘들겠지만, 조금은 나른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희는 문득 한국에 머문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년 8개월이 지나면 거소증이 만료된다는 사실도. 더 연장할 건지 떠날 건지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엇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가령 어느 천변이 걷기에 좋은지, 어느 밥집이 맛있는지, 어느 마트가 친절한지, 어느 미용실이 샴푸를 더 깔끔하게 하는지 같은 거였다. 이 도시가 점점 몸에 익어가는 것만 같았다. 동희는 제 몸 어딘가에서 잔뿌리들이 뻗어 나와 흙을 가르고 축축한 곳을 찾아 스스로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본능처럼 익숙한 곳은 감지하고 저 홀로 뻗어 나갔다. 그러니 동희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동희의 이야기를 읽으며 왈칵 자주 눈물을 쏟았던, 한국도 미국도 아닌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며,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는 그 말들을, 나는 오래도록 사슴이 풀을 되새김질하듯 이곳에서의 삶이 힘겨워질 때마다 반추하게 될, 귀중한 지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한 마리의 어리고 여린 사슴이다.





 




<히어 앤 데어>

 

21. 지하로 내려오면 방향 감각을 잃었다.


30.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고. 체류 기간 2년 동안 잘 생각해봐요.”

33. 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34. 동희는 문득 한국에 머문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1년 8개월이 지나면 거소증이 만료된다는 사실도. 더 연장할 건지 떠날 건지 지금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가령 어느 천변이 걷기에 좋은지, 어느 밥집이 맛있는지, 어느 마트가 친절한지, 어느 미용실이 샴푸를 더 깔끔하게 하는지 같은 거였다. 이 도시가 점점 몸에 익어가는 것만 같았다. 동희는 제 몸 어딘가에서 잔뿌리들이 뻗어 나와 흙을 가르고 축축한 곳을 찾아 스스로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본능처럼 익숙한 곳은 감지하고 저 홀로 뻗어 나갔다. 그러니 동희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라스트 북스토어>


79. 우리는 어떤 식이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이민자가 나이거나, 내 동생이거나, 내 엄마이거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초록>


101. “나를 떠올리면 그림의 한 부분이 지워지거나 뭉개져 있는 느낌이 들어. 시간의 한 부분이 뭉텅뭉텅 잘려나간 느낌이 든다고. 그런 기분 모르지? 머리와 다리만 있는 몸으로 사는 느낌.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살 거냐는 질문도 하지 마. 날 짜구 몰아내는 것 같아. 어디에서 사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110.“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야. 그렇게 다른 것들을 같은 조건으로 비교하면 고유한 것들이 묻혀버리고 말잖아.”


116.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은 신문지를 꽉 움켜쥔 아버지의 두 주먹뿐. 묻지 않아도 될 것과 알지 않아도 될 것들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완전체로 흘러갈 거였다.




<분홍에 대하여>


151.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의 말을 이해했어. 그도 나의 말을 이해했어. 우리는 서로의 말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었어. 그러니까 사랑이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이 세상 그 누구의 말보다 나는 그의 말이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이해 못 할 말이 세상에 어딨느냐고 물을 거야.”

“돌을 쪼듯, 그는 내 맘에 꼭 드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골라 내게 말을 걸어주던 사람이었어.

“나를 ‘내 예쁜 빨강 눈 토끼새끼’, 그렇게 불러줬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도 듣기 좋아 자주 들려달라고 자꾸 힝힝, 하면서…….

158.“입술도 점점 파리해지고 빛나던 눈동자도 빛을 잃었겠지. 묽어지다 희미해지다 결국 사라지는 것.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 사랑을 놓친다는 것은 그런 거였더라고.

“남편과 헤어지고 어디든 멀리 가고 싶었어. 다른 언어를 스는 곳이면 어디든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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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해설 / 생각뿔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매우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이제야 접했다. 일부러 읽지 않은 건 아닌데, 언젠가 읽겠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수많은 책 중 한 권이었다.

와, 정말 격정적이었어.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촌스러운 나는 이것 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문득, 지금보다 더 어린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책에 대한 어린 내가 느꼈을 감상이 궁금해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장 어린 나이인 지금이라도 책을 부지런히 읽어서 기록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84일 동안 노인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처음에 바다에 나왔을 때 마놀린이라는 소년과 동행하였지만, 40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을 살라오(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소년을 다른 사람의 배를 타도록 권유했다. 노인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멀리까지 나가보기로 한다. 혼자서 바다를 나간 노인은 어마어마하게 큰 (코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5.5미터인) 청새치를 잡았고, 멀리서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들을 물리쳤지만, 결국 노인이 가져온 것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였다는 것.이 이 책의 짧은 줄거리다.


112.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는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너무나도 간단한 줄거리에 우리가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연 노인이 청새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의 묘사였다. 단지 물고기를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사투를 벌인다는 표현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낚싯줄을 계속 잡고 있는 탓에 손바닥이 패이고, 손에 쥐가 나서 마비가 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고, 졸음과도 싸워야만 했다. 그럼에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은 노인의 승리로 청새치를 잡아서 배 옆에 붙잡아매었다.


126. “놈들과 싸울 거야. 죽을 때까지.”

하지만 ​승리도 잠시,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나타난다. 노인은 청새치를 상어로부터 지키는 것이 사명인 것처럼 상어들로부터 청새치를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상어를 물리치는 부분에서는 이러다가 노인이 죽으면 어떡하지, 혹은 상어한테 잡아먹히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노인의 기력이 쇠해가는 것을 느꼈다. 배의 손잡이를 무기로 써야 할 만큼 상어와 대적할 수 있는 무기도 부족한 상황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계속해서 싸운다.



131. “아무것도 없어. 다만 나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남은 것은, 청새치의 앙상한 뼈. 노인은 항구에 도착해서 돛을 감아 묶고 돛대를 어깨 위에 걸머메고 매우 힘겹게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밀린 잠을 잔다. 청새치와 대적하기 전 졸음과 싸울 때, 그렇게도 꾸고 싶었던 사자 꿈을 꾸면서.





136. “다시 저와 함께 고기를 잡아요.”
“아니다.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 더 이상 나는 운이 없어.”
“그놈의 운 타령 좀 고만하세요. 운은 제가 가지고 올게요.”


그리고 소년과 함께 바다에 나가겠지. 그들만의 르 마르(바다를 좋아한다는 표현의 스페인어)에서, 노인은 이제 새와 이야기를 하거나 바다를 향해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신체에 이야기를 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있는 소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었다. 노인의 바람대로 행운의 숫자가 된, ‘85’에 대해 노인은 두고두고 소년에게 말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더 이상 노인은 외롭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PS.

7페이지에서 살라오에 대해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해놓았는데, 그보다는 ‘운이 없는 사람’ 혹은 ‘운이 다한 사람’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재수 없는 사람’ 역시 똑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나처럼) 잘못 해석할 우려도 있으니까. 나의 경우에는 내내 ‘재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에 136. “아니다. 난 운이 없는 사람이야. 더 이상 나는 운이 없어.” “그놈의 운 타령 좀 고만하세요. 운은 제가 가지고 올게요.”를 보면서 아, 그 뜻으로 얘기하는 거였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단 내 문제면 어쩔 수 없겠지만. (흠) 게다가 작품 해설에는 ‘운이 다한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차라리 통일을 하지. 아쉬웠던 부분.


 

* 책 속의 문장들

31. 어둠 속에서 노인은 아침이 오는 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노를 저어 나아가면서 날치들이 물을 떠나면서 내는 몸을 떠는 소리와 솟구쳐 날며 뻣뻣하게 세운 날개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34. 빛의 산란


112.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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