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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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1] 내 생일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가치를 지녔었던 이것, 이 책을 먼저 접한 지인들의 평을 보면서 덩달아 높은 기대치를 지녔었던 기억이 난다. 급기야 모든 위시들을 뒤로 제껴두고, 장바구니에서 이것이 나에게 주는 내 생일선물,이라며 주문하기 클릭. 가장 먼저 읽어주리라, 깔깔거리며 책을 안은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데, 꼭 일 년 만에 은교를 품었다. 아마 영화화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미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어디에 있나, 하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좋은 작품을 만났으니 다행이지, 싶다. 사실, 책을 초반에 읽을 때에 읽기 거북함이 먼저 들었던 감이 먼저 들었다.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며 내용 전개에 있어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역겹다는 것. 맞다. 딱 그 느낌이었다. 특히나 시인 이적요가 은교를 「나의 처녀, 은교에게」라며 첫 편지를 쓰는 장면을 보며 극에 달했었다. 주책,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고, 은교가 마치 나인 것처럼 불쾌했으며, 역겨웠다. 급기야 나는 그를 ‘노망난 노인’으로 치부해버리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까닭은, 생각의 전환이다. 만일 그것조차 없었더라면, 책을 읽은 후에도 그들 세사람 모두는, 나의 마음 속에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었음을.

 

 

 

 

 

자신이 죽으면 1년 후에 공개해달라고 했던 시인의 노트가 Q변호사의 손에 쥐어졌다. 그곳에 놀라운 고백 두 가지가 정갈하게 쓰여있을 것이다.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다.’와 ‘내가 서지우를 죽였다. ’ - 노트에는 세 사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시인 이 적요, 제자 서 지우, 그리고 한 은교. - 1. 노인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 자신의 살붙이같은 데크의 의자에 놓여있던 소녀를 보게 되고, 고이연…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녀의 숨소리가 들리고 맞은편 의자로 걸어가 쌔근쌔근,하는 소녀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녀의 쇄골에서 가슴께쪽으로 내려가는 창[槍]을 본다. 그것이 이 적요와 한 은교의 첫, 만남이다. 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2. 오십대에 모 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된 그가 강의를 하고 있던 도중 한 학생이 질문을 해온다. 그것으로 안면을 익힌 그가 연구실로 들어와 “앞으로 교수님 수업, 청강을 허락받으러 왔습니다.”라며 당차게 이야기해온다. 그것이 이 적요과 서 지우의 첫, 만남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 만남이라고 해봤자 몇 달의 인연뿐. 그리고 십여 년쯤 후, 그가 노인을 다시 찾아왔다. 거의 유일하게 그를 믿을 수 있었고, 살붙이 같은 정을 느꼈다. 단 하나의 가족이었고, 모든 희노애락과 오욕칠정을 내보여도 되는 유일한 친구였다. 다만 그가 제자로서 문학판에서 쑥쑥 뻗어나가지 못하는 게 늘 마음 아팠다. 멍청하다고 욕을 하고, 온갖 구박을 하며 위악적으로 굴어봐도 밭이 근본적으로 부실하니 소출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 그는 여전히 ‘내 새끼’였다.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마음이 가장 많이 갔던 서지우. 그는 헤어진 아내를 거론하며, 둘의 관계는 미적지근했다,고 말했었다. 만나면 따뜻하고 안 보면 조금 쓸쓸한, 그것이 나의 사랑이다. (…) 내가 꿈꾸는 사랑은 오래 앉아본 듯한, 편안한 의자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하던 그가, 사랑은 본래 미친 불꽃, 불가사의한 질주의 감정이라고 말하던 이적요의 말에 동의하지 않던 그가, 은교를 향한 자신의 사랑은 뜨겁고 무겁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 -해져 그 부분에서 다음 장을 휘리릭 넘길 수가 없었다. 서지우가, 은교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좀 더 뻔뻔했더라면, 혹은 은교만,을 사랑했더라면 작품에서 내가 서지우를 품을 이유는 없었을 게다. 그는, 은교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마, 하고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어떻게 살아온, 어떤 선생님인지 나는 알고 있다. 보호해야 할 분은 은교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선생님을 잃고 싶지 않고, 은교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다. 때로 선생님이 나의 장애물이며 짐이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선생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은교 이상이다. (…) 그래봤자, 당신은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은교를 당신의 노망난, 미친 욕망으로부터 지킬 것이므로. 아니, 은교만이 아니라, 선생님, 당신도 나는 지켜야 한다. 은교를 ‘늙은이’로부터 지키는 것이 ‘늙은이’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길이 전혀 없을 땐 아, 당신을 죽여서라도, 당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진실로 말하건대, 나는 여전히 아직도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

 

 

 

 

 

 

앞서 말했던 생각의 전환,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라는 것에 기초하는데, 이적요가 한은교를 사랑했는가? 답은 그렇다. 아주, 많이. 하지만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이 남녀 관계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했다면, 글쎄, 난 소름돋음에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내가 바로 그 부분을 두고 이적요를 ‘노망난 노인’으로 치부했던 까닭이다. 늙는 것, 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참혹한 범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의 욕망은 더럽고 끔찍한 범죄이므로, 제거해 마땅한 것, 이라고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었다. 이적요는 한은교가 지닌 젊음을 사랑했던 듯 보였다. 젊음을 가지고 싶고, 젊음을 끌어안고 싶고, 젊음을 사랑하고 싶은, 그보다 젊지 않은 혹은 늙은 남자의 갈망 같은 것. 그렇기에 은교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젊음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었다,고 그렇게 이해했다. 물론 그게 답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른 의미로 내가 이해했다 하더라도, 난 내 뜻을 굽힐 마음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 정말, 싫다. 이적요 시인이 본 경일운 아름다움이란 은교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단지 젊음이 내쏘는 광채였던 것이다. 소녀는 ‘빛’이고, 시인은 늙었으니 ‘그림자’였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

 

 

 

-

 

 

 

어둠 속에 앉아 있었지만 내 온몸은 풍뎅이처럼 부풀어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으려 할수록 분노가 내 속에서 놀라운 폭발력으로 빅뱅을 거듭하고 있었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아름답게 만개한 꽃들이 청춘을 표상하고, 그것이 시들어 이윽고 꽃씨를 맺으면 ㅡ 굳은 씨앗이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이라는 씨앗은 수많은 기억을 고통스럽게 견디다가, 죽음을 통해 해체되어 마침내 땅이 되고, 수액이 되고, 수액으로서 어리고 젊은 나무들의 잎 끝으로 가, 햇빛과 만나, 그 잎들을 살찌운다.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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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애의 모든 것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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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이 어느새 살랑살랑 다가온 모양이, 연애를 하라고 꼬리를 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 봄 기운에 못이겨 로맨스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몇 년 전에 읽은 작품까지도 기웃기웃하며 뒤적거려보기도 했더랬다. 그러다가 시선이 주- 욱 이끌렸던 작품. 「내 연애의 모든 것」 - 사실, 표지는 애덤 셸의 「토마토 랩소디」와 비슷하다. 아니, 거의 흡사하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듯 하다. 그 부분은 여전히 불만이다. (차라리 사과나무를 그려넣지 그랬어? 라는 불만을 내뱉기도 - ) 하지만, 그렇게 불만·불평만을 늘어놓기엔 저자가 들려주려는 로맨스가 특이하다. 아무래도 올해에 총선이 있는 까닭에 더 그렇게 느끼는걸까. (요즘엔 책을 읽으면 시기가 비슷하게 맞물리는 경향이 있다.) 내용은, 여야 국회의원의 사랑.

전직 판사 출신으로 현 새한국당의 소속 김수영 의원과 진보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오소영 의원의 핑크빛 연애. 하지만, 그것은 핑크빛이 될 수 없다는 점. 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얽혀진다? 굉장히 괴상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환경이 참 고약하다, 생각했다. 결국 그들이 눈엣가시라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이가 나서 그들의 사랑을 대신 공표해버린다. 위기다. 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 한편으로는 현 정치와 전혀 무관하다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작품 속에도 철저하게 녹아들어 있었음에 현 정치판을 풍자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저자는 그것을 오직 문학의 영역에서 발화된 정치 풍자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을 재미로 받아들이든, 심각하게 받아들이든, 그건 개인의 몫이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문학적 무지와 정신 병리적 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조속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풉.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의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을 이용하여 두 사람의 차이를 메우거나 어느 한쪽을 움츠러들게 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 (p206) 그래도 저자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쨌든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불보듯 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서로 이끌린 점은 부정할 수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사실 나, 모든 로맨스 소설은 다 위기에 한 번씩 봉착하여 그렇진 않지만, 마냥 행복한 모습만 그려내고 있었더라면, 또 -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얘기해버리는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면, 지금 내 현재가 조금 혼란스러워졌을지도 모르겠다.앞서 니체의 말처럼, 상대방을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래, 그게 사랑이지. 그리고, 나도, 어쨌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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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할 때 듣는 클래식 [2CD]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노래 / ㈜서울미디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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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참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 든다. 몇 년 전에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극중 윤수(강동원)가 사형을 집행하기 전 나왔던 쇼팽의 「이별의 곡」은 내 마음을 통째로 음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이후로 쇼팽의 「이별의 곡」을 들으면 그 장면이 생각나서 얼마나 울어 제꼈던지 모른다. 그것이 처음 클래식과의 만남이었다. 지금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라는 곡을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곡이 하나 둘 늘어남과 동시에 좀 더 좋은 곡을 알고 싶은데…하는 욕심도 늘어난다. CD1에서는 집중력을 높이는 음악과 기억력과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음악이 들어있는데, 요건 그냥 주욱 이어서 들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조곤조곤하게, 뛴다고 얘길해야하나.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들 취향이 많은 나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CD2에 수록되어 있는 이 참 마음에 든다. 사실 이런 류의 클래식을 많이 들어보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듣고 있노라면, 숲 속에서 나무 사이로 그물망을 하나 묶어놓고 그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달까. 경쾌하고 맑은 곡조들이 나를 방방 뜨게 만들었다. 또한 은 낮잠을 자며 누적된 피곤함을 바람에 띄워 날려보내줄 것만 같은 곡조들이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일하며 듣다가 깜빡 잠이 들뻔 했었으니. 큭큭. 듣는 중 내가 아는 곡들이 몇몇 곡 보여서 이거 많이 들어본 곡인데! 이거 내가 아는 곡인데! 라며 내심 반가워하기도 했다. 며칠 후에 30개월이 조금 넘은 조카가 집에 방문하는데, (물론, 아기들에게 맞춰 나온 것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 조카라서 이 곡조들이 편안하게 다가갈지 모르겠다. 오면 틀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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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는 봄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산책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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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봄. 2012년의 봄. 그래, 봄이다. 봄인데, 아직 겨울이다. 문장의 간극 사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봄인데 아직 겨울이라니. 이게 무슨 지랄같은 문장인가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 2012년의 날씨가 그렇다. 겨울은 분명 지나갔어야 하는 날씨임에도 봄이 오지를 못하고 자꾸만 주춤거리고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봄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어이가 없지만, 착각 한 번만 해야겠다. 날씨,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봄을 주지 않은 거니? 라고. 그리고 착각 하나 더. 미안하게도 난 「다시 오는 봄」을 「오지 않는 봄」으로 착각하고 읽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 책을 이야기 할 때에도 오지 않는 봄을 읽으면서 - 오지 않는 봄에서 - ... 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책을 덮는 순간, 미쳤다, 생각했다. 오지 않는 봄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봄이 오지 않았으면, 내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 하아, 참 질긴 책 읽기,였다. 책을 읽으며 이만큼의 분노에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라웠다. 어쩌면 그동안 읽어왔던 그 어떤 책보다, 나를 혼란의 회오리 속으로 집어넣은 게 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난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도중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위안부. 〔comfort women〕내가 이 단어를 정확하게 인지했던 때는 언제일까.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때는 10대,였을거다. 그때의 수많은 나,는 어디서 무얼 했을까. 작품은 그 수 많은 나, 중 열일곱 살의 순화를 이야기한다. ㅡ “돈 모을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 집에 송금도 할 수 있고, 예쁜 옷도 살 수 있고, 밥도 실컷 먹으며 저금도 할 수 있지. 이렇게 좋은 일은 없을 거야.” 라는 교묘한 꼬득임에 꼬여 일본인을 따라나서지만, 도착한 곳은 난징. 이곳은 어디고, 왜 내 이름이 ‘김순화’가 아니라 ‘우타마루’이며, 나를 덮치려고 소변줄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는 이 군인들은 도대체 다 뭔가. 계속해서 몰려드는 병사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순화를 덮쳤다. 병사들은 마치 서서 소변이라도 보는 듯했다. 쉰여섯 명의 병사가 나가자 드디어 끝이 났다. (…) “나는 인간이 걸까……? 아니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옆 방 원청심의 자살소식이 들려왔다. 순화는 그 죽음을 진심으로 부러워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잘 들어!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다. 너희는 천황폐하께 바쳐진 몸이다! 너희 마음대로 죽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마음대로 죽은 사람은 그 시체를 개나 돼지의 먹이로 줄 것이다!” 그들은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들어오는 병사들을 거절했지만, 이를 안 장정생이 ‘징벌방’이라고 불리는 아궁이처럼 뜨거운 다락방에 넣고 나흘 동안을 감금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본말을 배웠고, 통조림 하나를 얻기 위해 교태를 부렸으며, 때때로 병사에게 농을 먼저 건네기도 했다. 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삶.

 

 

 

 

 

모든 것은 끝나지 않는 시작이다. 끝난 순간부터 다시 시작한다. 허무한 날들이 지나간다. 두 달쯤 지나자, 몸상태가 안 좋아지고 하루에 몇 번이나 토할 것 같았으며, 몸이 나른해서 뭐든 귀찮고, 빈혈로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꼬박꼬박하던 달거리가 멈췄다. 임신. 그것을 순화는 자각하지 못한 채 넉 달이 지냈다. 그런 그녀에게 장정생은 “임신했다더군. 임신하면 다른 병사의 아이는 임신하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열심히 일해.”라고 말하며 냉담한 시선을 던진다. 병사들은 임산부와 성교를 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며 순화의 방을 자주 드나들었고, 그녀는 그때마다 아기가 질식하는 건 아닌가 걱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교 도중 갑작스러운 진통이 시작되었다. 난산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죽었든, 살았든) 세상에 나왔고, 순화는 “제 아기예요. 제가 낳은 아기예요. 제 아기를 안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애원하지만 그마저도 박탈당한다. 그리고 장정생은 말했다. “나흘 뒤 실밥을 풀 거야. 너는 젊으니까 나흘만 지나면, 실밥 풀어도 괜찮아.” 나흘 뒤 실밥을 푼다는 것은 그 다음 날부터 손님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물로 순화는 거부할 수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식사당번이 주먹밥과 단무지를 담은 쟁반을 복미 머리맡에 뒀다. 복미는 병사에게 몸을 대주며 주먹밥을 먹었다. 비참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다. (…) 꼬리뼈 주위와 허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거기서 피와 고름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게다가 썩고 짓무른 구멍에선 구더기들이 들끓었다. 몰려 있던 구더기는 복미의 내장까지 잠식하고 있었다. (…) “다른 위안부들도 같은 증상이다. 할 수 없지. 바로 처분해라.” (…) “도와주세요. 난 아직 살아있어요.” - 정말,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이다. 이 대목을 출근하기 전에 1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서 읽었었는데, 버스에서 눈물이 계속 나서 혼났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를 몰랐고, 그것은 내 마음을 검은 그림자가 삼킨 것처럼 종일을 따라다녔다. 작품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를 따라가면 글은 영상이 되어 머릿 속을 지배했다. 중간중간, 작품을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았음을 느낄 때에는 책을 들고 방 안을 서성거리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힘겹게 읽어내렸다. 답은 하나였다. 결국은, 모든 고통이 수반된 지옥같은 시간들을 인내하고 (이걸 인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고향에 돌아가는 순화들의 웃음을 보고 싶어서,라는 것. 그 뿐이었는데.

 

 

 

 

 

“작가 양석일이 상정한 이 책의 독자는 일본인이다. 즉 이 소설은 ‘위안부를 소재로 해서 일본어로 쓰인 최초의 소설’이다.” 꼬박 팔년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순화들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순화들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작품을 접하고나서야 스물다섯이나 먹고 그때의 역사를 헤집는 있는 내가 있었다. 멍청하게, 이제서야. 매주 수요일,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았다.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나, 싶다. 사실 나, 부끄럽게도 세상의 순화들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송두리째 들어내고 싶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일본인들 못지 않게 잔혹한 일을 한거다. 지금은 사월이고, 봄이 활개를 쳐도 좋은 달이다. 하지만 아직 추운 바람이 완전히 가시질 못했다. 이 책이 일본인들에게도 많이 접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순화들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것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봄,이 찾아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까닭이다. 책을 다 덮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로 얼룩진 눈 끝에 또 다른 눈물이 아롱지는 것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올해에 가장 잘한 일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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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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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은, 개인적으로 참 신기한 작가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동화와 현실, 그 사이에서 기우뚱거리고 있어 결코 동화가 될 수 없는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버린다. 신에게 담임선생 똥주를 죽여달라는 완득이(「완득이」)나, 따돌림으로 인해 죽은 천지(「우아한 거짓말」)나, 가정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도희와 엄마아빠의 부재로 인해 안쓰러운 태석,태희 남매(「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나, 이번에 읽은 손버릇이 나쁜 해일과 가정의 불화에서 상처받는 지란이(「가시고백」)나, 스스로가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밀려드는 따뜻함이, 나는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가는 작가, 그 작가의 작품이 나를 찾아왔다. 봄햇살이 주는 선물처럼.

2010년 3월 2일.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강도가 아니니 흉기를 지녀서는 안 되며 사람을 해쳐도 안 된다. 몸에 지닌 지갑이나 가방에 손을 대는 소매치기 날치기도 아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반에서 지란이 인강을 듣기 위해 아빠의 새 전자수첩을 가지고 왔다가 잃어버리고 만다. 그건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구의 절도임에 틀림없다. “(…) 어떤 놈이 가져간 거야?” 어떤 놈이긴, 도둑놈이지. 도둑놈, 민해일. 그런 해일이 가족에게 도둑질을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로 유정란 부화를 한다고 한다. ‘까짓것 해 볼 생각이었다. 가족에게만은 늘 책임감 있고 성실한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이 아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정말로 실행이 됐고, 담임과의 상담시간에 유정란 부화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올라 반에서까지 이야기가 되고, 병아리(아리와 쓰리)를 보려고,라는 명목으로라도 해일의 집에 찾아오는 친구가 생겼다. 지란과 진오, 다영.

해일의 손버릇은 어쩌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주는 일련의 재미로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릴 정도의 일이 외로운 해일의 일상에서는 없었던 것. 함부로 누설해서도 안 되고, 비밀리에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일. 그것은 결국 혼자만 알아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러면서 재미있어야 하는 일. 일곱 살, 유치원 선생님의 지갑에 처음 손을 댄 것이 첫번 째였다. 그로 인해 교실은 발칵 뒤집어졌을테고, 어린 해일에겐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자기가 훔친 건전지를 들켜 엉겁결에 나누어주고 만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요리를 만들며,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 아이들에게 고백해도 될 것 같은, 고백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훔친 건전지를 나눠주고 말았다. 안 되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냥 집에 놀러온 친구들인데……. 좋은 아이들이 나쁜 아이를 만났다. 제 잘못을 몰래 나눈 도둑이라니. 물건을 훔칠 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다. (…중략…) 고백 실패. 뽑아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나도, 당신도, 가시가 하나쯤은 박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빼내느냐, 빼내지 않느냐,는 당사자의 결정사항이다. 괜히 뺐다가 상처가 두드러지게 보일까봐, 빼내는 도중에 찾아오는 고통이 두려워서, 아직 빼낼 수 없어서, 빼내기 싫어서 라는 핑계를 가지고 있다면, 까짓것,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그 가시로 인해 아픈 건 타인이 아니라 당사자인 나,가 될테니까 말이다. 그것을 뽑아내기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나처럼 뽑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다 뽑아낸 것이 아니라, 빼내다가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가시가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음을 느껴 나머지 파편을 더 깊숙히 넣는 이도 적잖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어떤 가시 중에서는 빼냈는데도 빼내지 못한 것도 있다. 언제 빼낼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아, 또다. 이 속은 느낌! 작가는 해일을 통해, 지란을 통해, 너도 한 번 용기를 내어보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해방감을 만끽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해일의 걸음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오늘 반드시 뽑아내야 할 가시 때문이다. 고백하지 못하고 숨긴 일들이 예리한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 뽑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이제와 헤집고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렵지만, 저 가시고백이 쿡쿡 박힌 심장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해일은 뽑아낸 가시에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라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함께 가시 뺀 자리의 고름을 짜내든 심장을 도려내든. 딩동. - 자, 이제 내 차례다. 이 용기가 언제까지 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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