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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김려령은,
개인적으로 참 신기한 작가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동화와 현실, 그 사이에서 기우뚱거리고 있어 결코 동화가 될 수 없는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버린다. 신에게 담임선생 똥주를 죽여달라는 완득이(「완득이」)나, 따돌림으로 인해 죽은 천지(「우아한 거짓말」)나, 가정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도희와 엄마아빠의 부재로 인해 안쓰러운 태석,태희 남매(「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나, 이번에 읽은 손버릇이 나쁜 해일과 가정의
불화에서 상처받는 지란이(「가시고백」)나, 스스로가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밀려드는 따뜻함이, 나는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가는 작가, 그 작가의 작품이 나를 찾아왔다. 봄햇살이
주는 선물처럼.
2010년 3월 2일.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강도가 아니니 흉기를 지녀서는 안 되며 사람을 해쳐도
안 된다. 몸에 지닌 지갑이나 가방에 손을 대는 소매치기 날치기도 아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반에서
지란이 인강을 듣기 위해 아빠의 새 전자수첩을 가지고 왔다가 잃어버리고 만다. 그건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구의 절도임에 틀림없다.
“(…) 어떤 놈이 가져간 거야?” 어떤 놈이긴, 도둑놈이지. 도둑놈, 민해일. 그런 해일이 가족에게 도둑질을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로 유정란
부화를 한다고 한다. ‘까짓것
해 볼 생각이었다. 가족에게만은 늘 책임감 있고 성실한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이 아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정말로 실행이 됐고, 담임과의 상담시간에 유정란 부화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올라 반에서까지 이야기가
되고, 병아리(아리와 쓰리)를 보려고,라는 명목으로라도 해일의 집에 찾아오는 친구가 생겼다. 지란과 진오, 다영.
해일의
손버릇은 어쩌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주는 일련의 재미로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릴 정도의 일이 외로운 해일의 일상에서는 없었던
것. 함부로 누설해서도 안 되고, 비밀리에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일. 그것은 결국 혼자만 알아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러면서 재미있어야 하는 일.
일곱 살, 유치원 선생님의 지갑에 처음 손을 댄 것이 첫번 째였다. 그로 인해 교실은 발칵 뒤집어졌을테고, 어린 해일에겐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자기가 훔친 건전지를 들켜 엉겁결에
나누어주고 만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요리를 만들며,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 아이들에게 고백해도 될 것 같은, 고백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훔친 건전지를 나눠주고 말았다. 안 되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냥 집에 놀러온
친구들인데……. 좋은 아이들이 나쁜 아이를 만났다. 제 잘못을 몰래 나눈 도둑이라니. 물건을 훔칠 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다. (…중략…) 고백
실패. 뽑아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
나도,
당신도, 가시가 하나쯤은 박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빼내느냐, 빼내지 않느냐,는 당사자의 결정사항이다. 괜히 뺐다가 상처가 두드러지게
보일까봐, 빼내는 도중에 찾아오는 고통이 두려워서, 아직 빼낼 수 없어서, 빼내기 싫어서 라는 핑계를 가지고 있다면, 까짓것,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그 가시로 인해 아픈 건 타인이 아니라 당사자인 나,가 될테니까 말이다. 그것을 뽑아내기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나처럼 뽑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다 뽑아낸 것이 아니라, 빼내다가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가시가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음을 느껴 나머지
파편을 더 깊숙히 넣는 이도 적잖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어떤 가시 중에서는 빼냈는데도 빼내지 못한 것도 있다. 언제 빼낼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아, 또다. 이 속은 느낌! 작가는 해일을 통해, 지란을 통해, 너도 한 번
용기를 내어보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해방감을 만끽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해일의
걸음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오늘 반드시 뽑아내야 할 가시 때문이다. 고백하지 못하고 숨긴 일들이 예리한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 뽑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이제와 헤집고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렵지만, 저 가시고백이 쿡쿡 박힌 심장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해일은 뽑아낸 가시에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라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함께 가시 뺀 자리의 고름을
짜내든 심장을 도려내든.’ 딩동. - 자, 이제 내 차례다. 이 용기가 언제까지 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