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게 권하는 경제학 -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경제학의 쓸모 10대에게 권하는 시리즈
오형규 지음 / 글담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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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침체된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코로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는 망하기 직전으로, 국민들이 그동안 벌어두었던 돈을 축내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경제 침체 속에 물가가 계속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부동산은 나날이 거품이 껴서 평생 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금액대로 치솟고 있으며, 현재 출몰하는 부동산법은 공산국가화를 만들고 있고, 나라의 세금은 이미 다 써버려서 추경을 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추경이라 함은, 국민의 세금에서 다시 거둬들이는 일이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나라에서 세금을 낮추고 물가를 잡으며 경제활동에 관한 규제를 풀어 소비를 촉진시켜야 하지만, 지금 이 중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하고 있는 일은 전혀 없다. 세금을 낮추기는커녕 나랏돈이 없어 기존에 있던 세금의 세율은 높이고 여러 방면에서 법안을 만들어서라도 세금을 못 받아 안달이다. 인플레이션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는 잡히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경제 활동은 제한되는 것이 매우 많아졌다. 잘 버티다가도 매번 도돌이표가 되는 현 상황에 폐업하는 곳들이 곳곳에 보여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시급이 가파르게 오르며 물가 인상이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몇몇 누리꾼의 억지의 댓글들을 보면서 무슨 얼빠진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물가 인상의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속으로 비웃었다. 물가는 어느 시점이 되면 꾸준히 오르는 게 맞다. 2000년의 물가와 2010년의 물가와 2020년의 물가는 당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지금의 100만 원이 2040년에도 100만 원이 같은 돈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것.

임금이 오르면 더 많이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진짜 월급을 풍족하게 받으려면 시급이 오르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자기 발전을 모색하고 기업과 협상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길이다.

 

 

그래서 나는 시급을 올린다고 할 때나, 코로나로 인해 지원금을 준다고 할 때나 너무 답답했다. 지원금을 받은 지인들이 애들 자전거를 산다는 말에, 가전제품을 바꾸겠다는 말에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이 터져 나갔다. (실제로 그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어느 카페에서는 명품백을 산다고도 하더라만은 다행히 내 주변에는 그런 이는 없었다.)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지원금을 주는 것은 맞으나 생활 지원금이라는 취지와는 맞지 않으니까. 그것은 과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꼴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세금은 더 뜯어갈 테고, 물가는 더 오를 테니까. 그렇게 내야 할 돈은 쌓여만 갈 테니까. 결국 조삼모사니까.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내야 하는 세금에 잠식당하고 말지도 모른다.

 

 

나는 경제에 관한 소식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는다. 정말 궁금한 것은 인터넷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팩트만 있는 기사는 많지 않아 가려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그 외에는 남편이 틀어두는 뉴스(나는 잘 보지 않으므로)에서 소식을 접한다. 그러다가 <10대에게 권하는 경제학>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청소년에게 설명을 하며 전달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하던 경제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까 하여 호기가 생겼다.

 

 

경제는 유교사상의 기본 원리인 ‘경세제민’의 줄임말로 (經世濟民: 다스릴 경, 세상 세, 도울 제, 백성 민) ‘세상을 다스려 나라를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디즈니월드는 왜 닷새째부터 거의 공짜인지, 영화의 조조할인과 중고생 할인, 짜장면에는 있고 군만두에는 없는 것, 자동차 보험료는 왜 20대 남자가 가장 비싼지에 대하여 가격차별의 경제 원리와 소비자의 소비촉진, 기업의 이윤창출 등을 연관시켜 쉽게 설명을 하며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경제에 대해 어렵지 않게 접근하게끔 도와준다.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것은, 나는 언제든 경제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트를 갈 때나 버스를 탈 때나 온라인 쇼핑을 할 때나 하물며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하는 시간들조차도 말이다. 직접적으로 돈을 소비하기도 하고, 또는 전력과 가스를 소비하면서 간접적으로(이게 간접적인지 수동적인 것인지 조금 애매하지만) 돈을 소비하는 것 역시 모두 경제활동에 포함되므로.

 

 

또한 경제를 인체의 신진대사에 비유를 하는데, 정말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을 해두어서 감탄한 부분

가계(가정), 기업 정부 = 사람의 두뇌

금융 시스템(은행 같은 금융회사만이 아니라 저축, 대출, 투자, 대금 결제) = 심장

돈 = 혈관을 도는 혈액

산업 = 인체의 척추나 뼈대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하고 기술을 개발해 상품을 생산하는 것 =숨 쉬는 호흡기

생산된 재화를 소비하는 과정 = 위, 장 등 소화기

경제 찌꺼기 = 배설기관

 

 

쓰레기 배출량에 따라 경기의 흐름을 예측한 버핏은 사람들이 물건이 많이 사면 쓰레기 배출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경기가 살아나고 쓰레기 배출량이 줄면 경기가 뒷걸음질 친다고 보았다고 하기도 하고, 고속도로 통행량, 전력 사용량, 놀이공원 입장객 수 등으로 경기를 판단하기도 하고, 불황일 때는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든지, 경기가 좋으면 업소용 주류가 / 경기가 나쁘면 가정용 주류가 잘 팔린다는 속설, 불황일수록 비싼 기초화장품 대신 상대적으로 값싼 립스틱이, 옷감이 적게 드는 짧은 치마가 유행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신사복이 많이 팔리면 경기가 회복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이론이지만, 그중 립스틱은 마스크로 인해 현재로는 가늠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짧은 치마는 음 잘 모르겠다. 옷감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짧은 치마를 사본 적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낀 것 중 하나는 불황일수록 복고가 유행한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속담과 소설, 영화를 경제를 풀어낸 것 역시 굉장히 신선했다.

속담으로는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친다, 싼 게 비지떡, 이왕이면 다홍치마, 바늘 가는데 실 간다, 꿩 대신 닭

소설로는 <톰 소여의 모험>, <인어공주>, <허생전>, <상도>

영화로는 <다크 나이트>, <매트릭스>, <1984>, <멋진 신세계>, <가타카>, <아일랜드>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전부이다. 당시 그것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였을 뿐인데, 그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서 스미스의 이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주입식 교육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기를, 「국부론」에서 국가의 부는 국가의 금은 보유량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수준이라고 꼬집었고, 국부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분업과 상거래를 제시했으며, 그 외에도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을 벌려는 관심 덕분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윤 추구가 사회의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 된다는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경제 체제의 경제학의 밑바탕이 된,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원리와 함께 국가의 부를 늘리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길을 명확하게 제시했던 「국부론」을 (어렵겠지만)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서 찾아보았더니... 생각보다 더 너무나도 어려울 것 같아서 섣불리 구매하지 않고 우선 도서관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읽다가 포기하더라도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책은 10대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가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겠다. 나 역시 즐겁게 읽었고,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기도 했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불만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 툭툭 털고 함께 살아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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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보듯 나를 돌본다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앨리스 빈센트 지음, 성세희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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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은 식물에 관한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내가 아니어도 잘 지내는 식물들이지만 그렇게라도 그들의 안위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되니까. 그리고 내가 그 친구들을 데려올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언제 어떻게 데려왔는지, 그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경각심을 좀 가지고 싶기도 하고. 이것들은 내가 데려온 친구들을 소중히 다루고 잘 길러내고 싶다는 마음들이 여전하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싱그러운 책의 표지에 “나는 식물에게 인생을 배웠다”라고 쓰여있는 문장을 보고, 저자는 어떤 시기에 식물을 만났을까. 어떻게 마음을 주게 되었을까. 어떤 마음들을 전해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저자는 동거 중인 애인이 있다. 하지만 열정이 식은 것 같다는 애인의 말에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는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이별이기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별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저자도 마찬가지로, 이별의 원인을 본인에게 두면서 애인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읽을수록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웠다.

저자가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해왔던 가드닝도 이별 이후에는 헛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일상에서 보게 된 발코니에서 주변의 우울함에 맞서 도도하게 반짝거리는 양귀비. 통통한 털복숭이 양귀비 꽃대가 밖으로 터져 나오 빳빳이 흠도 없이 세탁한 이불깃처럼 새하얀 꽃잎들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식물들은 내가 사랑을 하는지, 애정이 식었는지 상관하지 않았고, 낙심한 내가 자신들을 관리하기를 멈췄다는 것도, 처음부터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손댈 필요조차 없던 뭔가를 찾아 보살피려는 의도로 가드닝을 시작했다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양귀비의 작은 기적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식물을 천천히 살펴보기로 한다.

 

 

애인과 헤어진 6월부터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1년의 기록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을 돌보다가도, 초록의 환경에 쌓여있다가도 이별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좀 답답해지기도 하였으나, 그게 솔직한 마음이겠지 생각해 본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저자는 새 애인을 만나게 된다. 원나잇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진실은 모르겠으나 (=문화가 다르기도 하고 원나잇에 대해 좋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보는 나이기에)) 다행히 새 애인은 좋은 사람인 것처럼 책에는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전 애인을 잊지 못한 상태에서 새 애인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기에 이따금 오는 혼란과 충돌이 당황스럽다. 그렇기에 새 애인과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 이야기를 하다가, 정원 이야기를 하다가, 도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남자 이야기로 돌아가 뻥 뚫린 가슴을 다시 막아버린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남자들로 컨디션이나 자존감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저자는 이별의 아픔이 식물들로 인해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글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단지 새 애인이 생겼다는 것과 그 사랑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 전 애인의 이별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128. 부들레야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행복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의 행복은 부들레야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그들의 달라진 모양과 키를 확인하는 일에서, 달력과 시계가 보여주는 어떤 숫자보다도 큰 변화를 체감하게 만들었다.

 

 

책에는 자주 부들레야가 등장한다. 부들레야, 나도 부들레야처럼 천천히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난스럽지 않게, 천천히, 올바르게, 그러면서 단단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했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들레야처럼.

 

 

오탈자 P116. 8월 _ 언니는 임신 3개월에 접어드는 중으로 볼록 나온 배가 작은 몸에 익살맞게 붙어있었다. 폭신하면서도 단단한 아기 주머니. 내 손을 대보라고 보여주던 언니의 손이 기억난다. 언니가 “거기가 아기 엉덩이야!”라고 말했다. 같은 방, 같은 소파 위였으나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태어나지 않은 존재의 작은 엉덩이를 느낄 수 있었다.

10월_ 눅눅한 목요일 아침, 해도 뜨기 전에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한나 언니의 아들이 태어났다고.

임신 3개월에 아기의 엉덩이를 느낄 수 없을뿐더러, 8월에 3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10월에 태어나다니...

문맥상 8월에 8개월이어야 맞지 않을까?

 

 

오탈자 P208. 핏줄은 유전자로만 이어지 않는다. → 이어지지

오탈자 P305. 엄나는 나에게 그게 정상이라고 →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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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Art & Classic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유보라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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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어릴 때 읽었고, 이후 2010년에 읽었다. 당시 서평 말미에는 “십 년 후,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또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올는지 기대해본다.”라고 적어두었었는데, 정말 이렇게 10년 후에 읽게 될 줄도 모르고 그런 서평을 썼었네. 그런데 이게 그 이후에 오랜만에 읽는 것이 아니라, 5년 전 <어린 왕자>를 지목해 필사를 한 적도 있어서 어떻게 보면 5년 만에 읽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눈으로 읽는 것과 쓰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는데, 필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어린 왕자는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은 떼쟁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전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어린 왕자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다가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책의 끄트머리에 가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비행기 엔진의 부품이 망가져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어린 목소리에 잠이 깼다.

“양을 그려 줘요…….”

조종사는 양을 그려주었지만 아프지 않은, 염소가 아닌, 늙지 않은 양을 원하는 어린 왕자에게 귀찮음을 느끼며 상자를 그려주고는

“네가 원하는 양이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종사는 매일 조금씩 어린 왕자의 별은 어떤지, 어떻게 출발했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알게 된다.

왕, 허영심에 빠진 사람, 주정뱅이, 사업가, 가로등 등지기, 지리학자들을 만나며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란 참 이상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어린 왕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어린 왕자가 만났던 그들은 모두 우리 자신이었다.

다스리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인간, 허영심으로 치장한 채로 선망받고 싶어 하는 인간,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인간, 실질적으로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계속해서 끝도 없이 소유하려는 인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또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인간,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상상 혹은 망상만 하는 인간 등등.

나는 어떤 어른, 어떤 인간에 해당이 되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많이 슬퍼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어느 한쪽에 치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내 안에 들어차있었으니까. 나는 어떤 어른,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람들은 어디 있어? 사막은 좀 외롭네……”라는 어린 왕자에게, “사람들이랑 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뱀.

단지 한 마디씩 했을 뿐인데, 외로움은 누군가 채워주거나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영역임을 일깨워주다니.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뱀의 말에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어릴 땐 친구들을 만나고 웃고 떠들고 난 이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쓸쓸했었다. 그때 그런 감정을 어떤 장소에서 느꼈었는지, 그 감정의 탁함까지도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결핍에서 온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시의 나는, 참 외로웠구나.

(…)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나와 밀밭은 아무 상관도 없지. 밀밭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네 머리카락이 황금빛이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니! 밀밭도 황금빛이니까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나는 밀밭으로 부는 바람 소리조차 사랑하게 될 거야…….

길들이는 것은 곧 관계를 맺는다는 것임을 알려주는 여우

누군가를 길들이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여우는 처음부터 알았을까?

나는 그것이 무서워 지역을 옮길 때마다 누군가와 친밀한 감정을 나눠갖는다는 것을 경계해왔다. 먼저 손을 뻗었다가도 슬그머니 손을 다시 감추기도 했고, 잡았던 손도 냉정하게 빼서 주머니에 넣은 다음 곁을 주지 않기도 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테니까.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점점, ‘평생’이라는 단어가 무용한 것임을 깨달으며 조금씩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움보다 즐거움으로 전환하려는 기색도 내비치곤 한다.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그것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상기시키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끈질기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해. 먼저 저기 잔디에 약간 떨어져서 앉아. 나는 곁눈질로 너를 지켜볼 거고 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말이라는 건 오해의 씨앗이 되니까.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내 옆으로 오면 돼…….”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달라고 말하며 길들이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는데, 이 부분을 몇 번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으므로.

급하게 나를 알리지 말고, 급하게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그런 끈끈한 관계.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중요한 것을 나열해보다가 눈에 보이는 것을 죽죽 그어본다. 그러다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열심히 살아남은 것은

J에 대한, 또 나에 대한 J의 사랑, 나에 대한 믿음, 존중심, 정신적인 평온,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꽉 잡고 놓지 않는 끈질김

*

다시 만난 어린 왕자야, 반가워!

 

 

왕자의 모습이 아닌 어린 소녀의 어린 왕자는 더 예쁘고 더 반갑고 더 사랑스럽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 수가 있지, 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설레던 책 :)

 

 

 

 

 

 

너무 예쁜 일러스트

어떻게 이렇게 예쁜 어린 왕자를 상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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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엔딩은 없다 - 인생의 삑사리를 블랙코미디로 바꾸기
강이슬 지음 / 웨일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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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삶의 엔딩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하다가 언젠가의 일을 기억했다. 나는 육십까지만 살 거야!라고 그저 흘러가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며 정말 육십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스물여덟의 어느 날이었다. 아픈 것을 참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했지만, 아픈 것을 참고 견디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지금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육십이라는 나이에 올 건강의 적신호를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죽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내가 죽는다는 상상을 하면 눈물이 글썽글썽 차오르는 갑자기 감성이 충만해진 남편의 앞에서 전처럼 푼수처럼 말하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만으로도 나는 하루의 엔딩을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체로 즐거웠고 기뻤고 웃으며 보냈지만, 어느 날은 슬펐고 어느 날은 우울했고 어느 날은 시니컬했고 어느 날은 지루했다. 그런 날은 오늘 하루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잘 지냈어. 괜찮은 하루였어.라고 끝맺음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잘 살아내었다는 방증이 되었다.

저자는 책 제목을 <새드엔딩은 없다>라고 할 만큼 슬픈 일들이 많았던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치 울긴 왜 울어~’의 캔디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슬프지만 긍정을 노래하는 그런 분위기의 저자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술을 먹고 윗니 네 개를 해먹고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부서진 치아들에게 밍키와 쫄병들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는 일

사랑을 염세적으로 보지만, 사랑을 하며 피로한 쪽이 100배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일

연애를 그렇게 쿨하게 하는 편이지만, 정작 자신 앞에 다가온 사랑은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일

꿈에도 몰랐던, 고양이 강짱과 함께 사는 일

고시원의 집게벌레와 반지하의 바퀴벌레, 옥탑의 꼽등이를 극복하고 드디어 1층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제 쥐와 살아야 하다니!

의도치 않게 선을 넘어 단골이 된 것을 포기한 일

아무렇지 않은 일들에 대해 고향 친구들의 눈물을 바라보며 함께 우는 척도 하고 놀리기도 하는 일

바바리맨을 놀려주는 일

팔짱을 끼고 화장실을 같이 가던 일

엄마에게 가방을 선물하던 일

서른이 되어서야 엄마의 서른을 이해하는 일

그래서 연보라색 블라우스를 입고 싶어 했던 엄마에게 미안해서 파스텔톤의 옷을 선물로 사드리는 일

복점 대신에 길고 붉은 흉터가 아로새겨진 일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이 고작 반 뼘짜리 타투였으면 하는 일

서른이 되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무섭고 싫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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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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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책 한 권에 담아내는데, 꽤 심각한 일도 담백하고 담담하게 그린다. 풋, 하고 웃음이 터질 때도 있고, 마음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글이 찐득찐득했다. 문장이 찐득거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입천장에 달라붙어 조금씩 혀로 핥아먹는 기분을 느끼게 하던 그런 캐러멜처럼, 조금씩 닳는 페이지가 아쉽기만 했다. 강이슬이라는 작가는 다른 책도 아니고 에세이에 불과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호기가 생겼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

고등학교 입학 첫날, “동방신기가 좋아, SS501이 좋아?”라는 말에 이승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던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누군가의 팬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너무나도 깊은 공감을 했다.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 테이프, 씨디, 팬클럽 가입 등을 하며 우르르 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누군가를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이었다. 당시에는 신화, GOD, HOT, 젝스키스 등 왜 이렇게 많았는지 (휴)... 하지만 내가 거기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내 거짓말이 탄로 날 것을 알았기에 당시 듣고 있던 노래의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그게 유승준이라니.

그러던 어느 날 나한테 “너는 어때? 괜찮아?”라고 하길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고, 들어보니 유승준이 입대한다고 해놓고 미국으로 튀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난 걔가 군대를 가든 안 가든 상관이 없었는데 너무 귀찮은 일이라 “어! 정말 실망했어!!!"라고 분노하듯 이야기했다. 난 그렇게 덕후인 척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느낀 그 후련함을 너무나도 깊이 공감했다.

 

주변은 나만 빼고 모두 덕질을 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것에 대해 열렬하게 좋아하거나 모으는 편이 아닌데, 주변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좋아해서 사 모으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 중 가장 가까이에는 내 남편이 있는데, 내 남편은 레플리카(축구 유니폼)을 사 모은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용돈을 모아서 사는 걸 보면 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일까.

아,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있긴 있네. 남편이랑 술. 좋았다 싫었다 해서 문제지. 남편은 요즘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더 좋아진다며 자꾸 졸졸 따라다니고 엉겨 붙고(이 단어를 쓰면 자기가 머리카락이냐고 묻는다), 술은 요즘 다이어트한다고 먹지 않은 지 어언 20일이 다 되어간다. 일주일에 7번 술을 먹으라고 해도 매번 맛있게 잘 먹는 난데!

좋아하는 것 중 책도 있는데, 책은 읽기 싫은 시기가 종종 있고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책을 사 모으고 싶지는 않으므로... 대부분의 것들이 책과 같은 이유로 완전하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인 것 같다. 분명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만큼은 아닌 것 같고... 뭐 그렇다.

학창 시절의 친구가 가장 오래간다는 말에 대해서 저자는, 머리가 굵어지니 취향이라는 것이 확고해졌고 사람에게도 취향이랄 게 생겼다고. 내 취향의 사람에게 더 강하게 끌리는데 그런 사람들은 교실처럼 같은 공간 안에 오랜 시간 붙어 있지 않더라도 이야기 몇 마디로 금방 농도 짙은 친밀감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친밀감을 갖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많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몇 년 전부터 몇 번의 시도를 (생각보다 많이) 해보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크게 얻은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슬프기까지 하다. 낯가림이 심하고 경계가 심해서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내 성격이 한몫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취향에 맞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겠지. 하며 지내야지.

284. 올해는 최대 미니멈의 강도로 일하면서 최소 맥시멈의 자유를 느끼고 최소 미니멈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최대 맥시멈의 수입이 있기를.

어떤 책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살면 참 좋겠다. :)

오탈자 p136. 혼자서 한 칸을 차지하는 일은 잘 없었다거의 또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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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물 -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아무튼 시리즈 19
임이랑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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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리가 죽었다.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도래했다. 나리는 내 이름을 따서 “나무리라”라는 이름을 지어준 4월에 우리 집에 온 해피트리 친구였다. 무엇이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시름시름 앓았는데, 이전처럼 햇빛이 강해서 그런가 보다. 물을 좀 주면 괜찮아지겠지. 리나도 그랬었는데 지금은 예쁘게 살아있잖아.라는 생각으로 물을 담뿍 주었다. 그랬는데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볼 때마다 물을 주며 제발 살아줘...라고 말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리는 아마 무식한 양육자의 물들로 인해 과습으로 죽은 것 같다. 가지를 다 잘라주고, 지금은 뿌리만 남았는데 물을 주지 않은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뿌리에 물이 한가득 묻어 나오니까. 물로 인해 뿌리가 뚝뚝 끊어지고 있으니까.

 

    

 

 

 

 

이후 결혼기념일을 맞아 꽃집에 간 나는 다정한 꽃집 사장님께 여쭈었다. 데리고 있던 해피트리가 있는데, 죽어버렸다고. 아무래도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고.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구매했다는 내 말에, 아마 뿌리가 이리저리 움직여 몸살을 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셔서 나는 놀라서 “집에 온 지 8개월인걸요.”라고 했는데, 잘 살다가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식물도 있다고 하셨다. 나리는 말을 할 수 없거니와 또 죽었기에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물을 수는 없다. 그저 내 탓이랄 수밖에.

 

    

 

 

봄까지 기다려보라는 꽃집 사장님의 말씀도 있으셨지만, 나는 나리에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나리의 뿌리를 빼내지 못했다. 미안해서. 뿌리를 빼내지 않는 것이 더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계속 미안해서. 내가 식물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더 애틋한 까닭은, 내가 힘들 때에 데려온 친구가 리나와 나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릿아릿해져서 내 손으로 쟤를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 사이에 내가 꽃꽂이를 할 때 만든 새(bird) 모양의 토피어리가 죽었다. 2018년이면 2년도 다 되어가는데 그 친구가 죽은 것. 나는 그 친구에게 별 애정이 없었지만, 물을 주는 이는 항상 J였기에 J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자주 알게 된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래서 9월에 사두고 읽지 못했던 (아니, 초반까지 읽다가 다른 책을 읽으며 까먹어서 완독하지 못했던) <아무튼, 식물>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바로 이전에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라는 책을 읽어서 한 템포 쉬어가고 싶기도 했는데, 그와는 결이 다르니 괜찮을 것이었다.

 

 

 

 

 

 

 

13. 신기하게도 나는 이 시기에 식물에 깊이 매료되었다.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나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고, 스스로를 치장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식물들은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났다. 그 건강한 방식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내가 식물을 들여놓은 이유였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거기에 덧붙이자면 내가 원하는 때에 초록을 보는 것이 좋아서.

 

 

 

 

 

58. 내가 돌보는 것들은 적어도 내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사리들처럼 내가 원해서 돌보는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식물을 좋아했다. 분명하게 생명이 있지만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아서. 물론 때가 되면 물도 줘야 하고, 환기도 시켜줘야 하고, 볕도 보게 해주어야 하지만 어디에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어있지 않아서.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시간을 내어서 식물들을 돌본다기보다 시간이 날 때 양껏 예뻐해 준다. 이와 같은 조금은 나태한 양육자의 손에서도 잘 커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43. 나를 돕기 위해,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친구들을 형편없이 대접하지 않기로 한다.

 

조금 반성이 되던 문장이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하지만 반성한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오늘은 그동안 예뻐해 주지 못한 만큼 더 예뻐해 줘야지, 하고 다짐하는 편이 더 빠르다.

 

 

 

 

 

113.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새순이 올라오는 것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한동안 새순이 많이도 올라왔다. 새순이 올라올 때마다 사랑이 피어난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고, 그래서 새순을 볼 때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대신 그 새순들을 보며 소원을 하나씩 빌었다. 매일매일 다른 타인들의 건강들을.

 

 

 

 

 

60. 매일같이 공을 들이고 최선을 다해 키워도 결코 자라나지 않는 것, 슬프지만 그런 것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 어렴풋이 모르는 척 계속 해나가고 싶은 마음. 결국 벽에 부딪혀 멈추게 되더라도 계속 키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

 

쉽게 자라는 것들과 아무리 공을 들여도 자라지 않는 것들이 뒤섞인 매일을 살아간다. 이 두 가지는 아무래도 삶이 쥐여주는 사탕과 가루약 같다.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나의 결정들이 모여서 내 삶의 모양이 갖춰질 테다. 그러니 자라나지 않는 것들도 계속해서 키울 것이다. 거대하게 자라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존재하면 된다. 물론 달콤한 사탕도 포기하지 않는다. 입속에서 사탕을 열심히 굴리면서 가루약을 조금씩 뿌려 먹는 삶을 살아가야지.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고단하고 행복한 매일이다.

 

저자는 완벽하게 죽은 것이 확인되면 바로 치우는 편이라고 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식물을 데려와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잘 안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해볼 뿐. 새 친구를 들여야지.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인사도 시켜야지. 깍지벌레가 생기면 안 되니까, 깍지벌레가 가까이 갈 수 없는 정도의 거리는 두고 ‘반갑다 친구야’를 해줘야지. 함께 같이 살아가야지.

 

 

 

 

 

 

 

123. 식물의 삶이란 가끔 매우 끈질겨서 아름답다. 소리 없이 죽어가기도 하지만 비밀스럽게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나무를 몇 개월씩이나 정성껏 돌보게 만들 정도로 중독적이다.

 

나는 책을 읽고 생각했다. 우선 나리를 봄까지 보류해야겠다고. 뿌리가 썩어서 뚝뚝 끊어지는 것을 이미 목격했지만, 좀 더 잠시 곁에 있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봄이 아니더라도, 이번 해까지만이라도. 그래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끝까지 나는 나만 생각한다.

 

 

 


 

 

 

 

 

 

오탈자 111. 어느 새 절로 작물들이 자라나 ▶ 어느새 절로 작물들이 자라나 (or) 어느 새에 절로 작물들이 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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