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Art & Classic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유보라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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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어릴 때 읽었고, 이후 2010년에 읽었다. 당시 서평 말미에는 “십 년 후,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또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올는지 기대해본다.”라고 적어두었었는데, 정말 이렇게 10년 후에 읽게 될 줄도 모르고 그런 서평을 썼었네. 그런데 이게 그 이후에 오랜만에 읽는 것이 아니라, 5년 전 <어린 왕자>를 지목해 필사를 한 적도 있어서 어떻게 보면 5년 만에 읽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눈으로 읽는 것과 쓰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는데, 필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어린 왕자는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은 떼쟁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전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어린 왕자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어린 왕자를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다가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책의 끄트머리에 가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비행기 엔진의 부품이 망가져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어린 목소리에 잠이 깼다.

“양을 그려 줘요…….”

조종사는 양을 그려주었지만 아프지 않은, 염소가 아닌, 늙지 않은 양을 원하는 어린 왕자에게 귀찮음을 느끼며 상자를 그려주고는

“네가 원하는 양이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종사는 매일 조금씩 어린 왕자의 별은 어떤지, 어떻게 출발했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알게 된다.

왕, 허영심에 빠진 사람, 주정뱅이, 사업가, 가로등 등지기, 지리학자들을 만나며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란 참 이상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어린 왕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어린 왕자가 만났던 그들은 모두 우리 자신이었다.

다스리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인간, 허영심으로 치장한 채로 선망받고 싶어 하는 인간,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인간, 실질적으로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계속해서 끝도 없이 소유하려는 인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또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모르고 사는 인간,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상상 혹은 망상만 하는 인간 등등.

나는 어떤 어른, 어떤 인간에 해당이 되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많이 슬퍼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어느 한쪽에 치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내 안에 들어차있었으니까. 나는 어떤 어른,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람들은 어디 있어? 사막은 좀 외롭네……”라는 어린 왕자에게, “사람들이랑 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뱀.

단지 한 마디씩 했을 뿐인데, 외로움은 누군가 채워주거나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영역임을 일깨워주다니.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뱀의 말에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어릴 땐 친구들을 만나고 웃고 떠들고 난 이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쓸쓸했었다. 그때 그런 감정을 어떤 장소에서 느꼈었는지, 그 감정의 탁함까지도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결핍에서 온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시의 나는, 참 외로웠구나.

(…)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나와 밀밭은 아무 상관도 없지. 밀밭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네 머리카락이 황금빛이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니! 밀밭도 황금빛이니까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나는 밀밭으로 부는 바람 소리조차 사랑하게 될 거야…….

길들이는 것은 곧 관계를 맺는다는 것임을 알려주는 여우

누군가를 길들이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여우는 처음부터 알았을까?

나는 그것이 무서워 지역을 옮길 때마다 누군가와 친밀한 감정을 나눠갖는다는 것을 경계해왔다. 먼저 손을 뻗었다가도 슬그머니 손을 다시 감추기도 했고, 잡았던 손도 냉정하게 빼서 주머니에 넣은 다음 곁을 주지 않기도 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테니까.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점점, ‘평생’이라는 단어가 무용한 것임을 깨달으며 조금씩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움보다 즐거움으로 전환하려는 기색도 내비치곤 한다.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그것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상기시키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끈질기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해. 먼저 저기 잔디에 약간 떨어져서 앉아. 나는 곁눈질로 너를 지켜볼 거고 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말이라는 건 오해의 씨앗이 되니까.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내 옆으로 오면 돼…….”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달라고 말하며 길들이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는데, 이 부분을 몇 번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으므로.

급하게 나를 알리지 말고, 급하게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천천히 받아들이는 그런 끈끈한 관계.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중요한 것을 나열해보다가 눈에 보이는 것을 죽죽 그어본다. 그러다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열심히 살아남은 것은

J에 대한, 또 나에 대한 J의 사랑, 나에 대한 믿음, 존중심, 정신적인 평온,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꽉 잡고 놓지 않는 끈질김

*

다시 만난 어린 왕자야, 반가워!

 

 

왕자의 모습이 아닌 어린 소녀의 어린 왕자는 더 예쁘고 더 반갑고 더 사랑스럽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 수가 있지, 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설레던 책 :)

 

 

 

 

 

 

너무 예쁜 일러스트

어떻게 이렇게 예쁜 어린 왕자를 상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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